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짐승들의 양심선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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적호(赤虎)의 거대한 콧구멍이 임재희의 도포 자락에 닿는 순간, 맹수의 핏빛 눈동자가 기묘하게 흔들리기 시작했다.


“크어어어……?”


방금 전까지 축기기 고수조차 단숨에 찢어발길 기세로 울부짖던 청운문의 수호 영수가 갑자기 동작을 멈췄다. 붉은 불꽃 영기를 내뿜던 거대한 털가죽이 미세하게 떨리더니, 맹수의 코가 재희의 소매 끝동을 킁킁거리며 냄새 맡기 시작했다.


재희가 입고 있는 옷은 다름 아닌 ‘영수 털 방한 도포(靈獸 毛 防寒 道袍)’였다. 사료비 횡령 사건의 실마리를 제공했던 사육당의 하급 제자들이 재희에게 감사의 뜻으로 바친 물건으로, 사육당의 온갖 영수들이 자발적으로 흘린 부드러운 솜털만을 모아 정성껏 비단과 함께 짜낸 호신구였다.


적호의 거대한 뇌리에 본능적인 각인이 일어났다. 이 옷에서 풍기는 냄새는 자신들이 가장 아끼고 보호해야 할 ‘영수들의 은인’이자, 매일 밤 자신들의 굶주린 배를 채워달라고 하늘에 기도하던 순박한 사육 제자들의 땀방울 냄새였다.


“크릉……? 골골골골골골……”


적호의 핏빛 눈동자가 순식간에 동그랗고 순한 개냥이의 눈빛으로 변했다. 맹수의 입에서 흘러나온 것은 살기 어린 포효가 아니었다. 거대한 맷돌이 돌아가는 듯한 우람한 모터 소리, 즉 영수 특유의 극진한 친밀감 표시인 골골송이었다.


쿵! 적호가 앞발을 가볍게 내리며 재희의 발치에 엎드렸다. 그러고는 커다란 불꽃 머리를 재희의 옆구리에 대고 마구 부벼대기 시작했다. 맹수의 콧김이 서생포 자락을 휘날렸다.


“으악! 저리 가! 털 날려요! 나 알레르기 비염 있단 말입니다!”


무공 경지가 전혀 없는 평범한 범인인 재희는 축기기 급 영수의 무지막지한 친밀감 표현에 몸이 옆으로 사정없이 밀려났다. 재희는 비명을 지르며 도포에 묻은 붉은 털을 털어내려 애썼다.


“이봐요, 적호 씨! 아무리 반가워도 그렇지, 공무 수행 중인 관리의 제복을 이렇게 훼손하면 기물파손죄로 추징금을 물릴 수밖에 없습니다! 저리 비켜요!”


그 해괴한 광경을 지켜보던 사육당주 지만철의 턱관절이 딱 벌어졌다. 그가 쥐고 있던 제어 레버가 손안에서 삐걱거렸다.


“이, 이게 무슨 해괴망측한 짓거리냐! 적호! 저 빌어먹을 서생 놈의 목덜미를 물어뜯으란 말이다! 왜 그 비천한 범인 놈에게 꼬리를 흔들고 지랄이냔 말이다!”


지만철이 이성을 잃고 소리치며 단전의 영력을 억지로 쥐어짜 내 적호를 조종하려 주술을 전개했다. 그의 손끝에서 붉은색 예속 주술 사슬이 뿜어져 나와 적호의 목덜미를 조였다.


“크르르릉!”


적호가 고개를 번쩍 들었다. 지만철을 향해 돌아선 적호의 눈동자에는 조금 전 재희를 바라볼 때의 순함은 온데간데없고, 오직 굶주림과 배신감으로 가득 찬 포악한 살기만이 이글거렸다.


지만철은 그동안 사료비를 가로채며 이 영수들에게 썩은 잡초와 진흙만을 먹여왔다. 영수들에게 지만철은 자신들을 학대하고 굶주리게 만든 ‘악질 고용주’이자, 세금 한 푼 내지 않고 자신들의 생존권을 갈취해 간 탈세범에 불과했다.


“지만철 씨.”


재희가 주판을 툭툭 치며 차갑게 가라앉은 목소리로 말했다.


“동물 사료비 횡령은 전생에서도 아주 질 나쁜 중범죄로 취급받았습니다. 짐승들은 말을 하지 못하니 횡령해도 들키지 않을 거라 생각하셨습니까? 하지만 천도가 규정한 ‘질량 보존의 법칙’과 성분 연산 수치는 거짓말을 하지 않습니다. 당신이 짐승들의 고혈을 짜내 만든 그 15,000 영석의 오차는, 이 영수들의 위장이 가장 확실하게 증명하고 있습니다.”


재희가 철제 주판을 들어 지만철을 가리키며 크게 외쳤다.


“청운문 감사전 수석 감사관의 권한으로 선포합니다! 사육당주 지만철 씨, 당신의 사료비 횡령 혐의는 기정사실로 확정되었습니다. 짐승들의 진짜 목소리를 들어보시죠!”


그 순간, 적호가 하늘을 향해 길게 포효했다.


우오오오오옹————!!!


그 포효 소리가 사육당 내부의 어두운 복도를 타고 사방으로 퍼져나갔다. 그러자 사육당 우리 안에 갇혀 있던 수십 마리의 영수들—푸른 털의 청랑(靑狼), 날카로운 부리의 금계(金鷄), 거대한 멧돼지들이 일제히 울부짖기 시작했다.


그들은 지만철이 예산 절감을 핑계로 수리하지 않아 낡아 빠진 목조 우리의 빗장을 스스로 부수고 쏟아져 나왔다. 수십 마리의 영수들이 감사전 경비대와 마소희의 앞을 지나, 지만철과 그의 수하 약사들을 겹겹이 포위했다.


그리고 기이한 일이 벌어졌다.


가장 앞에 선 적호가 갑자기 목을 켁켁거리더니, 바닥을 향해 무언가를 크게 토해냈다.


퉤!


적호의 입에서 나온 것은 붉은색 영기가 서린 최고급 사료가 아니었다. 시커멓게 썩은 진흙 뭉치와, 청운산 뒤편 거친 돌밭에서나 자라는 날카롭고 indigestible한 잡초 뿌리들이었다.


뒤이어 다른 영수들도 일제히 울부짖으며 자신들의 위장 속에 들어있던 시커먼 잡초 뭉치와 진흙을 지만철의 발치에 뱉어내기 시작했다. 순식간에 사육당 마당에 시커먼 잡초 더미가 산더미처럼 쌓였다.


“보, 보십시오……!”


마소희가 그 모습을 보며 눈물을 흘렸다.


“지가당주님이 최고급 사료라며 장부에 적어둔 수량의 실체는 저 썩은 잡초와 진흙이었습니다! 영수들이 스스로 자신들이 당한 착취를 증언하고 있어요!”


수십 마리의 영수들이 뱉어낸 잡초 더미를 등 뒤에 두고, 임재희를 향해 일제히 고개를 숙였다. 마치 숫자의 진실을 밝혀 자신들의 억울함을 풀어준 ‘세무 대종사’에게 올리는 신성한 경배와도 같았다.


“아아…… 스승님!”


소지성이 감격에 겨워 주먹을 불끈 쥐며 외쳤다.


“이것이야말로 영수들의 영혼마저 감화시키는 절대적인 회계 공법, ‘적자 폭로 양심선언(赤字 暴露 兩心宣言)’이로구나! 짐승들이 스스로 똥과 잡초를 뱉어내며 스승님의 주판 소리에 맞춰 경배를 올리다니, 참으로 장엄하고도 부조리한 광경이옵니다!”


“소 서기, 감동하는 건 좋은데 제발 그 똥 얘기 좀 그만하시고, 저 잡초 무게 좀 달아보세요. 장부상 수입량과 비교해서 실제 횡령 단가를 확정 지어야 하니까요.”


재희가 이마의 식은땀을 닦으며 툴툴거렸다.


지만철은 사방을 포위한 영수들의 분노 어린 안광과, 자신의 발치에 쌓인 썩은 잡초 무더기를 보며 안색이 종잇장처럼 하얗게 질려갔다.


“이, 이 비천한 짐승 놈들이 감히 누구를 향해 이빨을 드러내느냐! 대장로님의 비자금을 지키기 위해서라면 네놈들을 전부 살처분해서라도 장부를 덮을 것이다!”


지만철이 마지막 발악을 하며 품속에서 강력한 폭축 사술 부적을 꺼내 들었다. 그가 영력을 주입해 부적을 터뜨려 사육당 전체를 증거와 함께 폭파하려던 순간이었다.


“어디서 감히 무증빙 화공 주술을 전개하려 하십니까.”


재희가 차가운 눈빛으로 소매 속에서 빨간 압류 딱지를 꺼내 손가락으로 가볍게 튕겼다.


“빨간 압류 딱지 투척술(赤標 投擲術)!”


휙! 붉은 광선을 품은 압류 딱지가 공중을 가르며 날아가 지만철의 비대한 이마 한가운데에 정확히 흡착되었다.


착!


“끄아아악?!”


딱지가 붙는 순간, 사유재산 압류 딱지 주술이 발동했다. 지만철의 단전에서 회전하던 영기가 한순간에 얼어붙으며 차단되었고, 천도가 규정한 ‘세금 체납 징벌 중력’이 그의 전신을 짓눌렀다. 지만철의 몸이 수만 근의 철퇴를 맞은 듯 무거워지더니, 대리석 바닥에 사정없이 코를 박으며 엎어졌다.


쿵! 지만철의 코뼈가 부러지며 붉은 피가 바닥에 흥건하게 고였다.


“내, 내 단전이…… 영력이 흐르지 않는다! 몸이 무거워서 손가락 하나 까딱할 수 없구나! 살려다오!”


“지만철 씨, 당신의 몸과 단전은 이제 문파 감사전에 의해 임시 압류되었습니다. 횡령액 15,000 영석을 전액 완납하시기 전까진 영력의 사적 유용은 불가능합니다.”


재희가 뚜벅뚜벅 걸어가 지만철의 집무실 책상 서랍을 열고, 그가 숨겨둔 진짜 이중 장부와 위조 인장들을 압수했다. 그리고 ‘감사전 공식 인장(監査殿 公式 印章)’을 장부에 쾅 찍어 박제했다.


[사육당주 지만철 횡령 자산 15,000 영석 환수 완료]


재희는 뒤를 돌아 마소희를 바라보았다.


“마소희 씨. 문주님의 전폭적인 지지와 감사전의 권한으로, 오늘부로 당신을 청운문 영수 사육당의 신임 사육당주로 임명합니다. 이귀태 장로의 사저에서 몰수한 부정 자금 중 일부를 긴급 사료비 예산으로 배정할 테니, 당장 저 굶주린 영수들에게 제대로 된 진짜 사료를 공급하십시오.”


“아아……! 수석 감사관님! 감사합니 다! 정말 감사합니다!”


마소희가 눈물을 흘리며 재희에게 깊이 고개를 숙였다. 사육 제자들이 서둘러 창고에서 정직한 진짜 사료 상자들을 꺼내 영수들에게 배포하기 시작했다. 사료 냄새를 맡은 영수들이 꼬리를 흔들며 평화롭게 식사를 시작하자, 사육당을 가득 채웠던 음산한 살기가 순식간에 정화되었다.


하지만 재희의 표정은 그리 밝지 않았다. 지만철의 비밀 서랍에서 나온 이중 장부의 자금 이동 경로를 인과안으로 역추적하던 그의 눈동자가 미세하게 떨렸다.


장부의 붉은 실선은 대장로 조귀덕을 거쳐, 문파 외부의 거대한 어둠으로 뻗어 나가고 있었다.


[최종 자금 세탁 기착지: 지하 흑도 조직 장풍파(長風派)]


대장로 조귀덕이 횡령한 자금을 최종적으로 세탁해 주던 지하 금융의 수장이자, 청운 저잣거리 지하를 지배하는 거대 흑도 조직 ‘장풍파’의 명단이 장부에 선명하게 적혀 있었다. 그리고 재희가 지만철의 자산을 압류하고 동결함에 따라, 조귀덕이 장풍파에 정기적으로 지급해야 할 천문학적인 액수의 ‘자금 세탁 수수료 영석’이 완벽하게 묶여버린 상태였다.


재희가 장부를 가방에 챙겨 넣는 순간, 사육당 정문 방향에서 다급한 발소리가 울려 퍼졌다.


다다다닥!


청운문 외문 제자 한 명이 피투성이가 된 채 사육당 안마당으로 허겁지겁 뛰어 들어왔다. 그의 옷자락은 무참하게 찢겨 있었고, 얼굴에는 공포가 가득했다.


“수, 수석 감사관님! 큰일 났습니다! 당장 저잣거리로 가보셔야 합니다!”


“무슨 일입니까? 아직 퇴근 시간 전인데 무슨 추가 업무 조항이라도 발생했습니까?”


재희가 미간을 찌푸리며 묻자, 외문 제자가 침을 꿀컥 삼키며 울부짖었다.


“저잣거리에…… 청운 저잣거리에 지하 흑도 조직인 장풍파(長風派)의 무뢰배들이 들이닥쳤습니다! 그들의 두목인 장풍파와 행동대장 쇠망치가 300명이 넘는 무장 조직원들을 이끌고 시장을 완전히 점거했습니다! 그들이 감사전의 예금 동결 조치에 반발하며, 당장 동결을 해제하고 감사전을 폐쇄하지 않으면 저잣거리 상인들을 전부 몰살하겠다고 폭동을 일으켰습니다!”


그 말과 동시에, 저 멀리 청운 저잣거리 방향에서 불길한 검은 연기와 함께 상인들의 비명 소리가 바람을 타고 사육당 계곡까지 음산하게 울려 퍼지기 시작했다.


자금 세탁 수수료를 받지 못해 폭발한 흑도 조직의 거대한 무력 폭동이 시작된 것이었다. 재희의 눈동자가 차갑게 번뜩였다.

HẾT CHƯƠNG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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