빨간 딱지가 선사하는 물리적 봉인
“감히 일개 서생 놈이 내 가문을 망치려 드느냐! 죽어라, 임재희!”
이귀태 장로의 비명과도 같은 외침이 청운문 내성 북서쪽의 대나무 숲을 뒤흔들었다. 축기기 중기의 강력한 영력이 실린 그의 애검 ‘금화검’이 반공을 가르며 푸른빛의 검기를 뿜어냈다. 사방으로 뻗어 나가는 검풍은 마당에 심어진 백년 된 영초들을 사정없이 짓밟고, 대리석 바닥을 쩍쩍 갈라놓았다. 그야말로 멸문지화의 폭풍이 임재희의 정수리를 향해 무섭게 쏟아져 내리는 형국이었다.
무공 경지가 전혀 없는 범인의 몸인 임재희로서는 피할 길도, 막을 길도 없었다. 날카로운 검기가 그의 낡은 서생포 자락을 찢어발기며 뺨을 스치기 직전, 재희의 가슴 품속에 고이 접혀 있던 고대 세법의 파편, ‘조세율법 초장’이 무서운 속도로 진동하기 시작했다.
화아아아아악!
재희의 등 뒤로 수만 장의 황금빛 장부 페이지들이 홀로그램처럼 허공에 펼쳐졌다. 차변과 대변의 숫자들이 완벽한 대칭을 이루며 회전하는 순간, 범접할 수 없는 신성한 법치적 권능의 장막—‘인과율 공무 결계(Causality Barrier)’가 발동했다.
쾅————!!!
이귀태의 서슬 퍼런 검기가 황금빛 장막에 부딪히는 순간, 마치 고압 전류가 합선된 듯한 격렬한 스파크가 사방으로 튀었다. 허공에 펼쳐진 장부 수식들이 검기의 파괴적인 궤도를 미세하게 굴절시키며 충격을 흡수해 나갔.
“쿠흑……!”
물리적 충격은 결계가 막아냈으나, 그 여파로 발생한 매서운 바람이 재희의 얼굴을 강타했다. 재희는 안구 건조증으로 인해 뻑뻑해진 눈을 깜빡이며, 관자놀이를 지그시 눌렀다. 야근 피로가 누적된 상태에서 이런 급격한 기후 변화(?)는 세무사의 안구 건강에 극도로 해로웠다.
하지만 그의 시선은 이미 이귀태의 머리 위를 향해 고정되어 있었다. 재희의 양 눈에 깃든 황금빛 안광—‘인과안(因果眼)’이 무섭게 번뜩였다. 이귀태의 머리 위로 피처럼 붉은 글씨가 선명하게 떠올랐다.
[피의자 이귀태 누적 탈루액: 하급 영석 52,400개]
[소득 대비 지출 초과율: 52,400%]
[세금 탈루 및 불법 자산 형성 혐의: 극대]
“월급 100 영석짜리 장로님이 어떻게 5만 영석이 넘는 호화 사저를 지었는지 궁금했는데, 결국 독약손과의 뇌물 커넥션이었군요.”
재희가 차갑게 가라앉은 목소리로 말했다. 그의 목소리에는 두려움 대신, 장부의 거대한 오차를 발견했을 때 발작하는 회계 강박증 세무사 특유의 광기 어린 집착이 가득 실려 있었다.
“이, 이놈이 대체 무슨 사술을 부리는 것이냐! 내 검기를 정면으로 막아내다니!”
이귀태가 경악하며 장검을 다시 치켜들었다. 그의 단전에서 금화수련공의 영력이 다시 한번 폭발하듯 뿜어져 나왔다. 장검의 날이 더욱 찬란한 푸른빛으로 물들며, 대기를 찢어발길 듯한 기세로 재희의 목을 향해 사선으로 쇄도했다.
“강 형, 박 조장. 뒤로 물러서십시오. 지금부터 불법 자산에 대한 강제 집행을 시작하겠습니다.”
재희가 소매 속으로 손을 뻗었다. 그의 손가락 끝에 닿은 것은 조세율법 초장의 기운을 받아 특수 제작한 붉은색 부적 딱지, 즉 ‘압류 빨간 딱지(押留 赤標)’였다. 장당 제작비만 하급 영석 10개가 소요되는 고순도 붉은 먹물로 쓰인 법구였다. 오늘 이 자리를 위해 감사전의 소모품 예산을 아낌없이 털어 넣은 비장의 무기였다.
재희는 손목의 탄력을 이용해 빨간 딱지 한 장을 허공을 향해 비스듬히 날렸다.
“빨간 압류 딱지 투척술(赤標 投擲術)!”
스으으윽.
날카로운 파공음과 함께 날아간 빨간 딱지는, 이귀태가 자랑하는 화려한 검기의 장막을 마치 물 흐르듯 통과했다. 천도가 보증하는 공무 집행권 앞에서는 축기기 고수의 주술적 방어막 따위는 아무런 저항체도 되지 못했다.
착!
경쾌한 소리와 함께, 빨간 딱지가 이귀태의 애검 ‘금화검’의 검날 한가운데에 정확하게 흡착되었다.
그 순간, 허공에 붉은색 사슬 수십 조각이 홀로그램처럼 나타나 검 전체를 꽁꽁 묶어버렸다. ‘사유재산 압류 딱지 주술(私有財產 押留 呪術)’이 기동한 것이었다.
스으으읍……!
장검을 가득 채우고 있던 찬란한 푸른빛의 검기가 거짓말처럼 단 1초 만에 흔적도 없이 소멸했다. 보석이 주렁주렁 박혀 영기를 내뿜던 명검은, 순식간에 영적 기능이 완전히 차단된 차가운 고철 덩어리로 전락했다.
그뿐만이 아니었다. 천도의 인과율 중력이 부여되면서, 장검의 무게가 순식간에 100근이 넘는 묵직한 무쇠 덩어리로 변해버렸다.
“어……? 어어?!”
이귀태의 안색이 순식간에 흙빛으로 변했다. 검에 가득 실어두었던 영력이 강제로 회수당하고, 상상을 초월하는 무게가 손목을 짓누르자 그의 몸이 앞으로 쏠렸다. 이귀태는 검을 놓치지 않으려 부득부득 버텼으나, 대지를 향해 쏟아지는 천도의 압류 중력을 이겨낼 재간이 없었다.
쿵————!!!
“커헉!”
이귀태가 장검의 무게에 이끌려 마당 바닥으로 엉성하게 고꾸라졌다. 그의 비대한 체구가 대리석 바닥에 사정없이 부딪히며, 이마가 바닥을 강타하는 둔탁한 파열음이 울려 퍼졌다. 코뼈가 부러진 듯 붉은 선혈이 대리석 바닥을 물들였다.
“장로님!”
사방에서 지켜보고 있던 가문의 사설 호위 무사들이 비명을 지르며 주춤했다. 자신들의 위대한 축기기 장로가 평범한 서생이 던진 빨간 종이 딱지 한 장에 바닥에 처박히는 꼴을 목격한 그들의 뇌리는 공포로 얼어붙었다.
“기회다! 감사전 경비대, 저 사설 무뢰배들을 단숨에 포박해라!”
외문 경비조장 박대포가 기회를 놓치지 않고 소리쳤다. 그의 거구에서 뿜어져 나오는 우직한 기세와 함께, 감사전 경비대원들이 철퇴와 방패를 앞세워 사설 호위 무사들을 사정없이 덮쳤. 사기가 완전히 바닥난 사설 무사들은 제대로 힘 한번 쓰지 못하고 차례대로 무릎을 꿇으며 포박당했다. 강철심 역시 거대한 흑철도를 가볍게 휘두르며 저항하려는 몇몇 상급 무사들의 무기를 단숨에 날려버렸다.
그 사이, 재희는 바닥에 기어 다니며 장검을 떼어내려 발악하는 이귀태를 향해 천천히 걸어갔.
“이, 이 요사스러운 서생 놈이……! 감히 내 단전의 기운을 폭발시켜 이 딱지 따위를 찢어발겨 주마!”
이귀태가 단전의 영력을 억지로 쥐어짜 내며 폭주하려 했다. 그의 몸 주변으로 다시금 불안정한 영기가 요동치기 시작했다.
“장로님, 단전 역시 신체적 자산이자 세금 추징 대상에 해당합니다.”
재희가 품속에서 또 다른 빨간 딱지 한 장을 꺼내 들었다. 그리고 이귀태가 영력을 폭발시키기 직전, 그의 불룩 튀어나온 아랫배—단전 부위에 딱지를 쾅 내리붙였다.
착!
“끄어억……!”
이귀태의 입에서 기괴한 비명이 터져 나왔다. 단전에 딱지가 붙는 순간, 체내를 거칠게 순환하던 영기 흐름이 얼음물에 닿은 듯 꽁꽁 얼어붙으며 정지했다. 이귀태는 단전의 영력을 폭발시키려 할수록 머리 위에서 가해지는 천도의 인과율 중력이 가중되어, 온몸이 대리석 바닥에 접착제처럼 달라붙는 기괴한 경험을 해야 했다. 움직이려 하면 할수록 척추가 으스러질 듯한 무게가 그의 전신을 짓눌렀다.
“단전 및 영기 순환계 임시 압류 완료.”
재희가 품속에서 붉은 먹물이 마르지 않는 깃펜을 꺼내 장부에 꼼꼼하게 기록했다.
“이귀태 장로님, 장로님의 전 재산과 영력은 오늘부로 감사전의 임시 관리 상태에 들어갑니다. 성실하게 납세하고 사셨으면 이런 신체적 압류 조치를 당할 일도 없었을 텐데 안타깝군요.”
“네, 네놈이…… 감히 내 단전을…… 장로회를 무시하고 살아서 나갈 줄 아느냐……!”
이귀태가 바닥에 이마를 처박은 채 부들부들 떨며 저주를 퍼부었으나, 이미 그의 목소리에는 힘이 전혀 실려 있지 않았다. 수십 년간 쌓아온 축기기의 경지가 빨간 종이 딱지 두 장에 완벽하게 봉인당한 꼴이었다.
“박 조장, 이귀태 장로를 구금하고 사저 내부의 실물 자산 조사를 개시하십시오.”
재희의 명령에 박대포가 호탕하게 웃으며 수색대원들을 이끌고 사저 내부로 들이닥쳤다.
“오냐! 집안 구석구석에 빨간 딱지를 사정없이 붙여라! 감가상각 고려해서 아주 꼼꼼하게 다 붙여야 한다!”
감사전 대원들이 사저 내부의 화려한 금실 기와, 자수정 담벼락, 그리고 대청마루에 놓인 최고급 명품 나무 탁자와 자수 가구들에 사정없이 빨간 딱지를 붙이기 시작했다. 딱지가 붙는 물건마다 은은한 황금빛 사슬이 감기며 물리적, 영적 이동이 완벽하게 봉인되었다.
재희는 소지성과 함께 사저 지하 깊숙한 곳으로 향했다. 먼지 한 점 없는 대리석 계단을 내려가자, 강력한 차단 주술이 쳐진 철제 지하 비밀 금고의 육중한 문이 나타났다.
“소 서기, 금고 문에 딱지 붙이세요.”
“예, 대종사님! 압류 집행합니다!”
소지성이 신이 나서 거대한 빨간 딱지를 금고 정중앙에 쾅 붙였다. 주술적 차단막이 흐릿하게 지워지며 굳게 닫혀 있던 철문이 스르륵 열렸다.
금고 내부에는 독약손에게서 상납받은 수만 개의 실물 영석 궤짝들과 함께, 온갖 기이한 보물들이 가득 차 있었다. 하지만 재희의 인과안은 금고 구석에 놓인 평범해 보이는 비밀 나무 상자 하나를 정확하게 포착했다.
재희가 다가가 상자를 열었다. 그 안에는 정교하게 접힌 수십 장의 비밀 편지들이 보관되어 있었다.
재희가 대나무 돋보기를 꺼내 편지 한 장을 자세히 들여다보았다. 편지의 하단에 찍힌 붉은 인장과 서명을 확인하는 순간, 재희의 퀭한 눈동자가 크게 흔들렸다.
그곳에는 대장로 조귀덕의 친필 서명과 함께, 동역 수선연맹의 2인자이자 금융계를 쥐고 흔드는 부맹주 황금성(黃金聲)의 화려한 금빛 개인 인장이 아주 선명하게 찍혀 있었다.
청운문을 고의로 파산시키고 영맥을 통째로 넘기려 한 ‘기획 파산 시나리오’의 전말과, 그 배후에 도사린 연맹 거대 카르텔의 검은 그림자가 마침내 그 꼬리를 드러낸 순간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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