흑시장의 꼬리와 단약방의 정화
“야! 독약손 씨! 그 상자도 문파 공식 자산이야! 당장 압류 딱지 가져와!”
백옥 단약방의 무너진 비밀 통로 입구에서 임재희의 퀭한 비명이 웅장하게 울려 퍼졌다.
무공 경지라고는 털끝만큼도 없는 평범한 범인의 몸이건만, 숫자의 오차를 발견한 세무사 특유의 광기 어린 집착은 그를 단약방의 그 어떤 고수보다도 빠르게 움직이게 만들었다. 재희는 숨을 헐떡이며 약로 뒤편의 가려진 벽 틈새를 가리켰다.
“소 서기! 뭐 하고 있습니까? 저 도둑놈이 문파의 소중한 고가 약재를 통째로 들고 튀는데 멀뚱히 보고만 있을 겁니까?”
“예, 예! 대종사님! 양익평형신공(兩翼平衡神功)의 실물 자산 보존을 위해 소지성, 즉각 출격합니다!”
소지성이 은빛 장검을 뽑아 들고 비밀 통로 안으로 몸을 날리려던 그 순간이었다.
쉬이이익!
깊고 어두운 통로 내부에서 한 줄기 음산하고 차가운 그림자 검기가 칠흑 같은 어둠을 가르며 번뜩였다.
“컥?!”
어둠 속에서 다급하게 도망치던 독약손의 비명 소리가 동굴 내부를 울렸다. 이윽고 무언가 무거운 쇳덩이가 바닥에 처박히는 둔탁한 소리와 함께, 칠흑 같은 전신 타이즈를 입은 사내가 어둠 속에서 천천히 걸어 나왔다.
재희의 그림자 호위이자, 과거 대장로가 보낸 일류 살수였으나 미납 세금 체납액을 지적받고 참회하여 감사전의 충직한 사냥개가 된 칠살(Chilsal)이었다.
칠살의 오른손에는 그림자 단검이 들려 있었고, 그의 발밑에는 독약손이 온몸을 밧줄로 꽁꽁 묶인 채 개구리처럼 엎어져 버둥거리고 있었다. 독약손이 들고 가려던 묵직한 나무 상자는 칠살의 왼손에 안전하게 들려 있었다.
“보고드립니다, 수석 감사관님. 도주로의 모든 길목을 차단하고 횡령범 독약손을 현장에서 신속히 체포했습니다.”
칠살이 무릎을 꿇으며 상자를 정중히 바쳤다. 독약손은 밧줄에 묶인 채 이를 부득부득 갈며 소리쳤다.
“이, 이 비열한 살수 놈! 감히 대장로님의 은혜를 배신하고 이런 범인 서생 놈의 개가 되다니! 천벌을 받을 것이다!”
“시끄럽소, 독약손 씨.”
재희가 무릎을 탁탁 털며 다가왔다. 그의 숨소리는 이미 가빠질 대로 가빠져 있었다. 겨우 단약방 대전에서 비밀 통로 입구까지 몇 십 미터를 달렸을 뿐인데, 허벅지가 터질 것처럼 쑤셔왔다. 역시 영력이 없는 범인의 몸으로 현장 수사를 뛰는 것은 극심한 육체적 페널티였다.
재희는 안구 건조증으로 뻑뻑해진 눈을 깜빡이며, 독약손이 품고 있던 나무 상자를 노려보았다. 그의 고유 신통인 ‘인과안(因果眼)’이 번뜩였다.
상자 표면 위로 피어오르는 붉은색 숫자들이 재희의 시야를 가득 채웠다.
[품목: 백년 생 청운 영초 및 특급 약재 50세트]
[시장 평가 가치: 하급 영석 5,000개 상당]
[취득 경로: 백옥 단약방 원가 조작을 통한 무단 유출]
[최종 목적지: 귀면동 흑시장 (밀수출 대기)]
“와, 정말 대단하군요.”
재희의 목소리가 얼음장처럼 차갑게 식어 내렸다.
“이게 다 뭡니까? 장부에는 ‘환자 제자 보급용 소모품’이라 적어두고, 실제로는 귀면동 흑시장에 밀수출해서 사적으로 폭리를 취하려던 원자재들이었군요. 원가 조작도 모자라 원자재 횡령이라니, 이건 명백한 소득 대비 과다 지출 및 무단 자산 유출 혐의입니다.”
재희는 소매 속에서 조세율법 초장의 기운을 받아 특수 제작한 붉은색 부적 딱지, 즉 ‘압류 빨간 딱지’를 한 장 꺼내 들었다.
“소득 대비 과다 지출 압류(所得 對比 過多 支出 押留) 조항에 의거, 해당 약재 상자 전체의 소유권을 문파 감사전으로 즉각 귀속합니다.”
재희가 시크하게 손목을 튕겨 빨간 딱지를 나무 상자 표면에 툭 던졌다.
착!
딱지가 상자에 닿는 순간, 상자 내부에서 흘러나오던 고순도 약재들의 영적 파동이 순식간에 억제되며 붉은색 쇠사슬 환영이 상자 전체를 꽁꽁 묶어버렸다. 사유재산 압류 딱지 주술이 발동한 것이었다. 상자 자체의 영적 가치가 천도의 율법에 의해 동결되자, 그 무게가 기하급수적으로 무거워져 바닥에 처박혔다.
“아, 아니! 내 소중한 약재들이……! 영력이 완전히 차단되다니! 이 무슨 해괴망측한 사술이냐!”
독약손이 절규했다. 재희는 그 모습을 차갑게 내려다보며 주판을 가볍게 두드렸다.
“사술이 아니라 정당한 압류 집행입니다. 자, 이제 이 엄청난 규모의 밀수 행위를 묵인해 준 진짜 배후를 불어보시죠. 당신 같은 일개 약사가 연맹의 눈을 피해 귀면동 흑시장까지 약재를 밀수출하는 거대한 유통망을 단독으로 구축했을 리가 없지 않습니까?”
“내, 내가 입을 열 줄 아느냐! 대장로님이 살아계시는 한, 너희 감사전 따위는 한순간에 잿더미로……”
“독약손 씨, 착각하지 마세요.”
재희가 퀭한 안광을 번뜩이며 독약손의 코앞까지 얼굴을 들이밀었다.
“대장로 조귀덕 씨는 지금 자신의 비자금 세탁 경로가 막혀서 당장 이번 달 사채 이자 내기도 급급한 처지입니다. 그리고 당신 머리 위에 뜬 이 붉은 숫자들을 보세요. 당신이 불지 않으면, 이 12,450 영석에 달하는 횡령 추징금과 가산세 세금 폭탄은 온전히 당신의 단전과 도심을 갉아먹게 될 겁니다. 수선자로서 평생 쌓아온 공력을 하루아침에 빚 독촉으로 날리고 싶습니까?”
재희가 주판을 ‘탁!’ 하고 튕기자, 독약손의 단전 부근에서 검은 마기와 함께 인과율의 붉은 실선이 요동치며 그의 영력을 압박하기 시작했다. 이중 장부 적발 시 심마 침투 법칙이 가동되고 있었던 것이다. 단전이 옥죄어오는 극심한 고통에 독약손의 안색이 하얗게 질렸다.
“끄아악! 머, 머리가 깨질 것 같다! 단전이…… 내 영력이 역류한다!”
“말하세요. 이 밀수 경로의 최종 결재권자가 누굽니까?”
“이, 이귀태 장로다! 내문 장로회의 이귀태 장로님이 정기적으로 거액의 뇌물을 받고 단약방의 약재 유출을 눈감아 주었다! 흑시장의 유통망 역시 그분의 사설 가문 호위대들이 관리하고 있단 말이다!”
독약손이 고통을 이기지 못하고 눈물을 흘리며 울부짖었다.
재희의 눈동자가 그 이름을 듣는 순간 예리하게 번뜩였다. 이귀태 장로. 조귀덕 대장로의 가장 강력한 심복이자, 감사전의 자격을 사사건건 탄핵하려 들던 내문의 거물 실세였다. 역시나 단약방의 거대한 부패 사슬 뒤에는 장로회의 검은 커넥션이 도사리고 있었다.
“과연, 꼬리가 아주 길고 굵었군요.”
재희가 차가운 미소를 지었다.
* * *
몇 시간 후, 백옥 단약방의 대전은 완전히 새로운 국면을 맞이하고 있었다.
부패한 수석 약사 독약손이 감사전 경비대에 의해 포박당해 압송되었고, 그의 비리를 고발하는 데 결정적 기여를 한 단약 천재 단리혜가 유일심 문주의 정식 서명이 담긴 공문에 의해 새로운 백옥 단약방의 책임자(당주)로 공식 임명되었다.
단리혜는 감사전 제복을 단정하게 차려입은 채, 허공에 뜬 투명한 복식부기 원가 계산표를 보며 감격 어린 표정으로 주판을 두드리고 있었다.
“대종사님! 말씀해 주신 원가 보존의 법칙을 적용하여 청운 소단약의 가격을 산출했습니다. 기존의 10 영석에서 단가 부풀리기 거품을 완전히 제거하니, 정확히 1 영석이 나옵니다! 오늘부로 단약의 가격을 기존의 10분의 1로 즉각 인하하겠습니다!”
단리혜의 선언이 단약방 외부에 모여 있던 수많은 하급 제자들과 범인 일꾼들에게 전해졌다.
“뭐, 뭐라고?! 단약 가격이 1영석이라고?”
“세상에! 그동안 상처가 나도 영석이 없어서 끙끙 앓았는데, 이제 단돈 1영석이면 소단약을 살 수 있단 말인가!”
“감사전 만세! 임재희 수석 세무사님 만세!”
하급 제자들은 서로를 껴안으며 눈물을 흘렸고, 단약방 앞마당은 순식간에 축제 분위기로 변했다. 소지성은 그 광경을 흐뭇하게 바라보며 자신의 기록판을 고쳐 적었다.
“과연 대종사님의 양익평형신공(兩翼平衡神功)은 천하의 기운을 다스리는 절대무공이 분명합니다! 차변과 대변의 균형을 맞추었을 뿐인데, 고통받던 하급 수선자들의 도심이 이토록 맑게 정화되다니요!”
“소 서기, 제발 무공 이름 좀 붙이지 말라니까요. 이건 그냥 합리적인 원가 회계 분석입니다.”
재희가 피곤한 얼굴로 안구 건조증 안약을 눈에 넣으며 투덜거렸다.
그때, 단약방 정문 밖에서 낡은 무명 옷을 입고 은침 주머니를 허리에 찬 노파 한 명이 가난한 범인 의원들을 거느리고 대전 내부로 조심스럽게 걸어 들어왔다. 재희가 빙의 초기 아플 때 따뜻한 약초를 달여주었던 고향의 은인이자, 범인 의원 연합의 대표인 박씨 할머니(Grandmother Park)였다.
“임 어른! 아니, 재희야!”
박씨 할머니가 주름진 손으로 재희의 소매를 꼭 쥐며 눈물을 글썽였다.
“그동안 백옥 단약방의 가혹한 약재 폭리 때문에 우리 가난한 범인 환자들은 약 한 첩 쓰지 못하고 죽어 나갔단다. 그런데 네가 이 탐욕스러운 약사 놈들을 몰아내고 약재 가격을 이토록 낮춰주었으니…… 너야말로 죽어가는 범인들을 살려낸 진정한 활인성수(活人聖手)이구나!”
“활인성수 어른! 가난한 범인들의 고혈을 닦아주셔서 감사합니다!”
뒤따라온 범인 의원들과 주민들이 일제히 무릎을 꿇으며 재희를 향해 절을 올렸다.
갑작스러운 민중들의 뜨거운 숭배와 칭송에 재희는 몹시 당황하여 헛기침을 해댔다. 현대 대한민국에서 세무사로 일할 때는 세금 깎아달라고 떼쓰는 악덕 기업가들의 원망만 들었지, 이런 순수한 감사의 인사를 받아본 적이 없었기 때문이었다.
“아, 아닙니다. 할머니, 어르신들. 일어나십시오. 저는 그저 장부의 숫자가 맞지 않아서 제 강박증을 해결했을 뿐입니다. 당연히 받아야 할 세금을 징수하고, 부당하게 청구된 예산을 삭감한 것뿐이니 감사해하실 필요 없습니다.”
재희가 손사래를 치며 그들을 황급히 일으켜 세웠다. 하지만 그의 마음 한구석에는 세무사로서 느껴본 적 없는 묘한 지적 쾌감과 보람이 묵직하게 자리 잡기 시작했다. 투명한 회계가 부패한 권력을 무너뜨리고, 가장 약한 자들의 권리를 되찾아주는 가장 날카로운 칼날이 될 수 있음을 실감한 순간이었다.
“대종사님, 민중들의 송덕비 건립 예산안을 감사전 예산 조례에 추가할까요?”
소지성이 눈을 반짝이며 묻자, 재희는 즉시 그의 꿀밤을 때렸다.
“쓸데없는 예산 낭비는 전액 삭감입니다! 당장 일이나 하세요!”
* * *
민중들을 돌려보낸 후, 재희는 단약방 안쪽의 수석 약사 집무실로 들어갔다.
독약손이 도망치기 직전 챙기려던 비밀 비품들과 서류들을 정리하기 위해서였다. 칠살이 압수해 온 독약손의 밀수 약재 상자를 탁자 위에 올려놓고, 대나무 돋보기를 들이댔다.
“독약손이 이귀태 장로에게 정기적으로 뇌물을 바쳤다고 자백했는데, 그렇다면 장부상에 반드시 그에 상응하는 ‘지출 증빙’이나 비밀 기록이 남아 있어야 합니다. 세무조사의 기본은 서류니까요.”
재희는 독약손의 책상 서랍 깊숙한 곳을 샅샅이 뒤지기 시작했다. 돋보기 렌즈를 통해 서랍 바닥의 미세한 틈새를 관찰하던 중, 이중으로 덧대어진 비밀 공간이 인과안의 붉은 빛과 공명하는 것을 포착했다.
탁!
재희가 서랍 바닥을 강하게 내리치자, 덜컥 소리와 함께 비밀 칸이 열리며 낡은 가죽 주머니와 함께 정교한 은빛 문양이 새겨진 철제 상자 하나가 모습을 드러냈다.
은빛 문양은 내문 실세 이귀태 장로의 개인 가문 인장 양식과 완벽하게 일치했다.
“찾았습니다.”
재희의 입꼬리가 비스듬히 올라갔다. 그것은 새로운 탈세범의 목줄을 발견한 세무사 특유의, 지독하리만치 차가운 미소였다.
재희가 상자의 빗장을 열고 내부의 서류들을 꺼내 드는 순간, 은빛 상자 내부에서 묵직한 영적 기운과 함께 이귀태 장로의 친필 서명과 지장이 찍힌 진짜 비밀 이중 장부, 즉 ‘뇌물 장부 상자(賂物 帳簿 箱子)’가 마침내 그 모습을 드러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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