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백옥 단약방의 수상한 알리바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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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붕에 뚫린 커다란 구멍 사이로 푸르스름한 새벽안개가 서기실 바닥에 낮게 깔렸다.


마른하늘에 떨어진 천뢰를 맞고 온몸이 시커멓게 그을린 살수 독거미는, 완벽한 아프로 펌 형태로 부풀어 오른 머리를 바르르 떨며 바닥에 엎드려 있었다. 그녀의 이마에는 임재희가 붙여놓은 ‘압류 빨간 딱지’가 붉은 안광을 뿜어내며 축기기 초기의 영력 흐름을 완벽하게 동결하고 있었다.


임재희는 퀭한 눈을 비비며 가죽 서류 가방에서 대장로 조귀덕의 인장이 찍힌 살인 교사 계약서를 다시 한번 꺼내 들었다. 밤샘 야근으로 인해 눈가에는 짙은 다크서클이 턱밑까지 내려와 있었고, 안구 건조증으로 인해 눈이 뻑뻑하기 짝이 없었으나, 그의 뇌세포는 분노로 무섭게 요동치고 있었다.


“내 살인 청부 비용이…… 백옥 단약방의 약재 구매 경비로 처리되어 있었다니.”


재희의 목소리가 부르르 떨렸다. 그것은 목숨을 위협받은 자의 공포가 아니었다. 영수증 없는 지출, 그리고 ‘용도 외 예산 유용’이라는 회계적 대역죄를 목격한 세무사의 극단적인 강박증적 발작이었다.


“수석 감사관님, 그것이 그렇게 심각한 문제입니까?”


옆에서 밤새 백업 장부를 대조하던 소지성이 눈을 동그랗게 뜨며 물었다. 재희는 주판을 탁 소리 나게 내려놓으며 소지성을 쏘아보았다.


“심각한 정도가 아닙니다, 소 서기! 이건 횡령과 배임의 교과서적인 사례예요! 문파 제자들의 치료와 건강을 위해 쓰여야 할 복리후생비 성격의 약재비를 빼돌려 무등록 살인 용역업자에게 지급했다고요! 심지어 장부상에는 ‘삼월 분 보혈단 약재 매입비’라고 버젓이 가짜 적격 증빙을 만들어 올렸습니다. 이건 성실한 납세자와 천도의 세법에 대한 정면 도전입니다!”


재희의 카랑카랑한 외침에 바닥에 엎드려 있던 독거미가 움찔하며 몸을 웅크렸다. 그녀는 단전이 봉인된 채로 바르르 떨며 신음했다.


“덜덜덜…… 제발 살려다오. 추징금이고 가산세고 내 비밀 금고를 털어서라도 다 낼 테니, 제발 단전만은……”


“당연히 내야지요. 독거미 씨 머리 위에 뜬 미납 세금 4,200 영석에 납부지연가산세 100%를 더해 총 8,400 영석의 추징 고지서를 발부했습니다. 천도의 계약으로 묶였으니 떼먹을 생각은 마십시오.”


재희는 차갑게 말하며 고지서 한 장을 독거미의 그을린 품속에 쑤셔 넣었다. 그리고 자리에서 벌떡 일어났다. 피로로 인해 무릎 관절에서 뚝 하는 소리가 났지만, 숫자의 오차를 정화하겠다는 광기 어린 집념이 그의 몸을 움직였다.


“강 형, 박 조장. 단약방으로 갈 준비를 하십시오.”


서기실 문가에서 거대한 흑철도를 세워두고 졸고 있던 수석 호위 강철심이 번쩍 눈을 떴다.


“형님, 드디어 대장로의 목줄을 쥐러 가시는 겁니까?”


“목줄이 아니라 장부를 쥐러 가는 겁니다. 백옥 단약방의 이중 장부를 낱낱이 털어내어 조귀덕의 검은 돈줄을 완전히 말려버릴 겁니다.”


* *


청운문 내성 동쪽에 위치한 ‘백옥 단약방(白玉 丹藥房)’은 평소 제자들의 발길이 끊이지 않는 문파 최고의 노른자위 부서였다. 화려한 청기와 지붕 아래로 은은한 약향이 풍겨 나왔지만, 임재희의 눈에는 그 화려함 뒤에 숨겨진 천문학적인 액수의 검은 돈의 냄새가 먼저 감지되었다.


재희가 감사전 경비대원들을 거느리고 단약방 정문을 열어젖히자, 약재를 정리하던 제자들과 약사들이 일제히 동작을 멈추고 그들을 바라보았다.


“이 무슨 해괴한 짓거리냐! 감히 단약방의 성역에 감사전 따위가 발을 들여?”


단약방 안쪽에서 꾀죄죄한 도포를 걸치고 손톱 밑에 검은 약독이 낀 음침한 인상의 사내가 걸어 나왔다. 백옥 단약방의 수석 약사이자 대장로 조귀덕의 핵심 수하, 독약손(毒藥手)이었다.


독약손은 축기기 초기에 달하는 강력한 영압을 은밀히 뿜어내며 재희를 압박하려 했다. 무공이 전혀 없는 범인이라면 그 자리에서 무릎을 꿇고 피를 토할 정도의 기세였다.


파지지직.


하지만 독약손의 영압이 재희의 몸가에 닿는 순간, 재희의 서생포 품속에 있던 조세율법 초장이 미세하게 반응하며 투명한 황금빛 결계를 전개했다. 천도가 공인한 세무 공무원에 대한 물리적, 영적 가해는 즉시 ‘공무집행방해죄’로 감지되는 법이었다. 독약손의 영압은 허공에서 산산이 흩어졌고, 오히려 독약손 본인이 가벼운 영력 반동을 맞아 컥 하며 마른기침을 토해냈다.


“컥! 이, 이게 무슨 사술이냐?”


“사술이 아니라 법치주의의 권능입니다, 독약손 씨.”


재희는 코끝에 돋보기를 걸친 채, 단약방 내부를 샅샅이 훑어보았다. 그의 인과안(因果眼)이 기동하자, 단약방 창고 문과 독약손의 머리 위로 수천 개의 붉은 숫자들이 피처럼 선명하게 일렁이기 시작했다.


[백옥 단약방 누적 오차액: 12,450 영석]

[독약손 개인 횡령 혐의액: 4,500 영석]


재희의 눈동자가 광기로 번뜩였다. 엄청난 노다지였다. 이 정도 오차라면 감사전 보수 공사 예산은 물론이고, 서기들의 야근 수당을 3년 치는 선지급하고도 남을 액수였다.


“백옥 단약방의 약재 구매 대금 4,200 영석이 살수 고용 자금으로 유용된 정황을 포착했습니다. 이에 따라 단약방의 최근 3년 치 회계 장부 및 처방전 전량에 대한 전격 세무조사를 선포합니다. 장부 가지고 나오시죠.”


재희가 품속에서 문주 유일심의 직인이 찍힌 정식 감사 영장을 꺼내 들었다. 독약손은 잠시 당황했으나, 이내 비열한 미소를 지으며 소매를 펄럭였다.


“흐흥, 감사전이라니 콧방귀가 나오는구나. 문주 놈의 빽을 믿고 기고만장한 모양인데, 단약방의 재정은 한 치의 오차도 없이 완벽하게 관리되고 있다! 얘들아, 장부 상자들을 전부 가져오너라!”


독약손의 지시에 약사들이 커다란 나무 상자 서너 개를 대전 바닥에 쿵 소리 나게 내려놓았다. 상자 안에는 누렇게 바랜 처방전과 영수증 한지 수천 장이 가득 쌓여 있었다.


“이것이 백옥 단약방의 정당한 의약 지출 증빙 서류들이다! 내문 제자들의 수련과 치료를 위해 한 치의 거짓도 없이 정당하게 집행된 처방전이지! 범인 서생 놈이 이 방대한 의약 공식을 이해나 할 수 있겠느냐?”


독약손은 수십 년간 다져진 정교한 위조 알리바이를 자부하고 있었다. 처방전의 필적과 약재 소모량은 문파의 한의학적 공식에 맞춰 완벽하게 조작되어 있었기에, 무공도 의학도 모르는 재희가 맹점을 찾아낼 리 없다고 확신한 것이다.


“수석 감사관님, 처방전의 양이 너무 방대합니다. 이 많은 약재 소모 공식을 저희가 단기간에 대조하는 것은 물리적으로 불가능……”


소지성이 산더미 같은 서류를 보며 식은땀을 흘렸다.


그때, 단약방 구석에서 청동 약로를 만지작거리며 눈치를 보던 발랄한 인상의 여제자가 조심스럽게 다가왔다. 불그스레한 볼에 약초 향이 물씬 풍기는 붉은색 연금술사 도포를 입은 단약 천재, 단리혜(단리혜)였다.


“저, 저기…… 수석 감사관님? 혹시 약재 소모 장부를 분석하시는 데 제 도움이 필요하신가요? 스승님께서 매번 약재가 부족하다고 하셔서 저도 단약 정제할 때마다 비율 맞추기가 너무 힘들었거든요.”


단리혜는 단약 제조에는 독보적인 천재였으나, 약재 수급 원가 계산과 유통 마진에는 전혀 감이 없어 매번 독약손에게 속아 ‘약재 유실률이 높다’며 구박을 받아온 인물이었다.


재희는 단리혜를 바라보며 퀭한 안광을 번뜩였다.


“단리혜 씨라고 하셨습니까? 아주 잘 오셨습니다. 안 그래도 단약방의 실제 정제 수율(Yield Rate)과 원재료 투입 대비 산출 균형을 맞추기 위해 전문가의 자문이 필요했습니다. 이리 앉으시죠.”


“예, 예? 수율이요? 복식…… 부기?”


단리혜는 난생처음 듣는 기묘한 용어들에 홀린 듯 재희의 옆자리에 앉았다. 독약손은 가슴이 철렁했으나, 이내 내색하지 않고 소리쳤다.


“리혜야! 감히 단약방의 기밀을 외인에게 함부로 발설하려 드느냐! 당장 약로 앞으로 돌아가지 못할까!”


“공무 집행 중인 자문 위원에 대한 협박 역시 가중 처벌 대상입니다, 독약손 씨. 조용히 하고 피조사자 대기석에 앉아 계시죠.”


재희가 철제 주판을 탁 튕기자, 주판알들이 자아내는 차가운 금속음이 대전 내부에 엄숙하게 울려 퍼졌다.


재희는 품속에서 ‘대나무 돋보기’를 꺼내 들고, 현대식 복식부기법(複式簿記法)을 적용해 약재의 입고 흐름과 단약의 출고 흐름을 대조하기 시작했다. 소지성은 옆에서 깃펜을 들고 재희가 불러주는 수치들을 신속하게 대조 장부에 기입해 나갔다.


“단리혜 씨, 질문하겠습니다. 하급 영석 10개 가치의 ‘청운 소단약’ 한 알을 정제하는 데, 실제 청운 영초 몇 뿌리가 소모됩니까?”


“어…… 제 정제 기술 기준으로는 정확히 세 뿌리가 들어갑니다. 손실률을 감안해도 네 뿌리를 넘지 않아요.”


단리혜가 손가락을 꼽으며 정직하게 답변했다. 재희는 대나무 돋보기로 장부의 수치를 스캔하며 주판을 빠르게 두드렸다. 탁탁탁탁! 경쾌한 타건음이 서기실 내부를 메웠다.


“그렇군요. 하지만 여기 독약손 씨가 작성한 장부에는 소단약 한 알당 영초가 무려 서른 뿌리씩 소모된 것으로 기록되어 있습니다. 무려 10배에 달하는 오차군요. 단리혜 씨, 단약방의 가마가 무슨 블랙홀이라도 됩니까? 투입된 원재료의 90%가 허공으로 증발했다는 게 물리적으로 말이 된다고 생각하십니까?”


“예, 예?! 서른 뿌리요? 그럴 리가 없어요! 만약 그렇게 많이 넣으면 가마가 영력 과부하로 폭발해 버릴 거예요!”


단리혜가 소스라치게 놀라며 비명을 질렀다. 그녀의 수학적 맹점이 깨어나는 순간이었다. 재희의 정교한 원가 분석을 통해, 자신이 그동안 독약손에게 당해온 ‘약재 유실 구박’이 완벽한 가스라이팅이자 분식회계였음이 만천하에 드러난 것이다.


“이, 이 빌어먹을 서생 놈이 감히 단약방의 비전 정제법을 왜곡하려 드느냐! 그것은 고도의 내문 비전 주술을 적용해 영력을 극대화하는 과정에서 발생한 정당한 소모다!”


독약손이 얼굴을 붉히며 고함을 질렀다. 하지만 재희는 조소하며 대나무 돋보기의 렌즈를 수천 장의 처방전 뭉치로 돌렸다.


“정당한 소모인지 아닌지는 이 처방전들을 대조해 보면 바로 나오겠지요. 소 서기, 제자 명부 원장을 이리 가져오십시오.”


“예, 스승님! 여기 내문과 외문 제자들의 정식 명부입니다!”


소지성이 감사전에서 챙겨온 두꺼운 명부를 펼쳤다.


재희는 대나무 돋보기를 눈가에 바짝 들이대고, 처방전에 적힌 수령 제자들의 이름과 명부의 실존 인물들을 하나하나 광속으로 대조해 나가기 시작했다. 그의 퀭한 안광이 돋보기 렌즈를 통해 굴절되며 번뜩였다.


그리고 수백 장의 처방전을 넘기던 바로 그 순간, 임재희의 손가락이 피를 흘리듯 멈춰 섰다. 그의 입꼬리가 차갑게 올라가며 눈동자에 지독한 광기가 서렸다.


“……찾았군요.”


재희의 카랑카랑한 목소리가 백옥 단약방의 차가운 공기를 찢었다. 독약손의 안색이 순식간에 잿빛으로 변했다.


“이름하여, 유령 제자를 통한 가공 경비 처리.”


재희가 대나무 돋보기로 한 장의 처방전을 가리키며 독약손을 매섭게 쏘아보았다.


“독약손 씨. 여기 삼월 십오일에 보혈단 50알을 처방받았다고 적힌 내문 제자 ‘김철수’를 비롯해, 지난달에 단약을 처방받았다는 제자 500명…… 이들은 우리 청운문의 정식 명부에 아예 존재하지 않는 실존하지 않는 유령 인물이거나, 이미 3년 전에 문파를 떠난 탈퇴자들입니다! 어떻게 존재하지도 않는 유령 제자들이 매달 수천 영석 어치의 단약을 처방받아 간 겁니까? 대답해 보시죠!”


재희의 일침에 단약방 내부가 폭탄을 맞은 듯 거대한 침묵에 휩싸였다. 독약손의 눈동자가 갈 곳을 잃고 무섭게 흔들리기 시작했다.

HẾT CHƯƠNG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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