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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변과 차변의 이계 진혼곡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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머리가 깨질 것처럼 아팠다.


임재희는 무거운 눈꺼풀을 들어 올리며 신음했다. 콧수염을 바짝 태우는 듯한 매캐한 연기 냄새와 눅눅한 곰팡이내가 코끝을 찔렀다. 사방에서 밀려드는 한기가 뼈마디를 시리게 만들었다.


‘여기가 어디지……?’


대한민국 일류 세무법인의 파트너 세무사, 임재희. 그의 기억은 대기업 특별 세무조사를 방어하기 위해 72시간 연속으로 밤샘 야근을 하던 세무대리인실에 멈춰 있었다. 마지막 순간, 가슴을 쥐어짜는 듯한 극심한 통증과 함께 모니터의 숫자들이 빙글빙글 돌던 장면이 선명했다.


과로사.


세무사 시험 수석 합격이라는 화려한 타이틀도, 밤낮없이 숫자를 쫓아다니던 집념도 결국 심장마비 앞에서는 무력했다.


“으윽…….”


재희는 몸을 일으키려다 멈칫했다. 자신의 손이 이상했다. 수십 년간 마우스를 쥐어 굳은살이 박여 있던 두터운 손가락은 어디 가고, 뼈마디가 앙상하고 창백한 서생의 손이 눈에 들어왔다. 게다가 입고 있는 옷은 현대식 정장이 아니었다. 먼지가 뽀얗게 앉은 낡고 거친 회색 도포였다.


주변을 둘러보았다. 형광등 불빛 대신 어스름한 등잔불이 흔들리고 있었고, 철제 책상 대신 삐걱거리는 나무 탁자가 방 한가운데를 차지하고 있었다. 그리고 벽면을 가득 채운 것은 바인더 파일이 아닌, 누렇게 바랜 대나무 가죽 장부와 한지 뭉치들이었다.


그때, 닫혀 있던 나무 문이 조심스럽게 열렸다.


“오, 정신이 드는가? 재희야.”


하얗게 센 긴 수염을 늘어뜨리고 코끝에 조잡한 돋보기안경을 걸친 노인이 탕약 그릇을 들고 들어왔다. 청운문의 은퇴한 늙은 회계사, 백무현이었다.


“내가…… 어떻게 된 겁니까? 어르신.”


“어떻게 되긴. 문파의 뒤엉킨 장부를 정리하겠다고 고집을 부리다가 사흘 밤낮을 굶고 쓰러졌지 않느냐. 아무리 갈 곳 없는 서생이라지만, 몸을 돌봐가며 해야지. 문파에서 주는 쥐꼬리만 한 은혜에 목숨을 걸 필요는 없다.”


백무현은 혀를 차며 탕약을 탁자 위에 내려놓았다. 그의 다정한 걱정 어린 말투 속에서 재희의 머릿속으로 낯선 기억들이 파편처럼 흘러들어왔다.


수선계(修仙界).


하늘을 날고 번개를 부르는 수선자들이 지배하는 약육강식의 세상. 그리고 이곳은 파산 직전의 하급 문파인 ‘청운문(靑雲門)’의 먼지 쌓인 서기실이었다. 빙의한 육체의 원래 주인 역시 임재희라는 이름의 평범한 서생으로, 문파의 말단 계사로 일하다가 과로로 급사한 것이 분명했다.


‘이계 빙의라니. 소설에서나 보던 일이 나에게 일어나다니…….’


재희는 황당함에 실소를 터뜨렸다. 하지만 혼란도 잠시, 그의 시선이 탁자 위에 널브러진 장부들로 향했다. 직업적 본능이 뇌를 지배하기 시작했다. 재희는 떨리는 손으로 누렇게 바랜 한지 장부 한 장을 펼쳤다.


그리고 그 순간, 임재희의 심장이 다시 한번 멎을 것처럼 요동쳤다.


“……이게 뭡니까?”


재희의 목소리가 잘게 떨렸다. 목소리에 담긴 것은 빙의에 대한 경악이 아니었다. 극단적인 혐오와 분노, 그리고 영수증 없는 지출을 보았을 때 발작하는 세무사 특유의 발작 증세였다.


장부의 내용은 그야말로 처참했다.


[삼월 오일: 영초 500뿌리 매입 - 하급 영석 1,000개 지출]

[삼월 십일: 대장로님 수련 지원 - 하급 영석 5,000개 지출]

[삼월 십오일: 대접비 - 하급 영석 300개 지출]


끝이었다. 날짜와 대강의 명목, 그리고 지출된 영석의 액수만 덩그러니 적혀 있을 뿐, 그 어떤 증빙 서류도 첨부되어 있지 않았다. 인장도 없고, 상대방의 수령증도 없었으며, 무엇보다 차변(Debit)과 대변(Credit)의 균형을 맞추는 복식부기의 흔적조차 보이지 않았다.


원시적이기 짝이 없는 단식부기.


“증빙은 어디 있습니까? 영초 500뿌리를 누구에게 샀는지 거래처 사업자등록번호…… 아니, 문파 인장이라도 찍힌 영수증이 있어야 할 것 아닙니까! 대장로 수련 지원비 5,000 영석은 대체 어떤 명목으로 집행된 겁니까? 품의서나 영수증이 첨부되지 않았는데 어떻게 출금 처리가 된 거죠?”


재희가 눈을 부릅뜨고 다그치자, 백무현은 탕약을 마시려다 말고 멍하니 그를 바라보았다.


“영수증? 증빙이라니……? 그게 무슨 소리냐. 대장로님께서 영석이 필요하다고 하셔서 금고에서 내어드리고 적어둔 것뿐이다. 수십 년 동안 문파의 장부는 늘 이렇게 기록되어 왔느니라.”


“수십 년 동안 이 따위로 장부를 썼다고요?!”


임재희의 눈동자가 광기로 번뜩였다. 현대 대한민국에서 1원짜리 오차를 잡기 위해 밤을 새우고, 허위 세금 계산서를 들이미는 악덕 기업주들의 멱살을 잡던 일류 세무사였다. 그에게 있어서 장부 불일치와 증빙 없는 지출은 단순한 실수가 아니었다. 그것은 우주의 질서를 파괴하는 대역죄이자, 온몸에 소름이 돋게 만드는 극심한 정신적 고통이었다.


“이건 장부가 아닙니다! 낙서장이지! 차변과 대변의 합이 맞지 않는데 어떻게 결산을 낸단 말입니까? 대체 지금까지 어떻게 감사를 버텨낸 겁니까? 국세청…… 아니, 천도가 분노해서 번개를 내리꽂지 않은 게 기적입니다!”


“재희야, 진정해라. 머리가 어떻게 된 것이냐? 천도가 왜 장부 때문에 번개를 내린단 말이냐…….”


백무현이 겁을 먹고 뒤로 한 걸음 물러섰지만, 재희의 귀에는 아무런 소리도 들리지 않았다. 이미 그의 뇌 속에서는 숫자가 맞지 않는다는 강박증이 폭주하고 있었다. 이 장부를 이대로 방치한다면, 그는 빙의 후유증이 아니라 스트레스로 다시 한번 과로사할 것이 분명했다.


“주판! 주판은 어디 있습니까!”


재희는 탁자 위를 뒤져 먼지 쌓인 낡은 나무 주판을 움켜쥐었다. 그리고 사방에 흩어진 10년 치 청운문의 장부 더미를 끌어모았다.


“내 오늘, 이 썩어빠진 장부의 대변과 차변을 맞추기 전에는 단 한 발짝도 이 방에서 나가지 않겠습니다!”


“재희야! 너는 아직 몸이……!”


탁! 타다닥! 탁!


백무현의 만류는 재희의 손끝에서 시작된 경쾌하고 무자비한 주판 소리에 묻혀버렸다. 재희의 손가락은 인간의 한계를 초월한 속도로 움직였다. 영기를 다루는 수선자의 비검술보다도 빠른 속도였다. 오직 숫자를 맞춰야 한다는 광적인 완벽주의가 그의 범인 육체에 초인적인 동력을 불어넣고 있었다.


현대식 복식부기법(複式簿記法)의 전개였다.


재희는 장부의 모든 단식 기록을 차변(자산의 증가, 비용의 발생)과 대변(자산의 감소, 수익의 발생)으로 강제 분할하기 시작했다. 들어온 돈과 나간 돈의 인과관계를 입체적으로 엮어내자, 장부 깊숙이 숨겨져 있던 횡령과 유용의 흔적들이 붉은 고름처럼 터져 나왔다.


“이건 영초 매입이 아니라 허위 청구다. 단가가 시장 가격의 세 배잖아? 대장로 수련비 5,000 영석은 아예 금고에서 무단으로 인출된 개인 횡령이고!”


주판을 두드리는 재희의 눈빛이 충혈된 채 빛났다. 백무현은 그 모습을 보며 침을 꿀꺽 삼켰다. 평범한 범인 서생의 몸에서 뿜어져 나오는 기세가, 마치 내문 장로들이 전개하는 영압만큼이나 무겁고 위압적이었기 때문이었다.


‘어찌 범인의 손가락이 저리 움직인단 말인가? 영기가 전혀 느껴지지 않는데, 저 기장 속도는 필시 무공의 경지에 이른 자의 신통이거늘!’


장부 더미를 헤치며 계산을 이어가던 재희는, 탁자 아래 삐걱거리는 다리를 고정하기 위해 괴어둔 낡고 두꺼운 서책 조각을 발견했다. 먼지가 두껍게 쌓여 글씨조차 보이지 않는 책이었다.


재희는 본능적으로 그 서책 조각을 꺼내 먼지를 털어냈다. 책장을 넘기는 순간, 머릿속에서 거대한 종소리가 울려 퍼지는 듯한 충격이 일었다.


[조세율법 초장(租稅律法 草章)]


그것은 평범한 종이가 아니었다. 책장을 넘기자 은은한 황금빛 기운이 흘러나와 재희의 손끝을 타고 올라왔다. 수천 년 전, 우주의 질서와 인과율을 숫자로 다스리던 고대 세무 대종사가 남긴 세법의 파편이었다. 천도(天道)가 보증하는 공무 집행권의 기운이, 재희가 지닌 현대의 완벽한 회계 지식과 공명하기 시작했다.


스스스슥!


황금빛 기운이 재희의 두 눈으로 빨려 들어갔다. 순간 눈가가 타오르는 듯한 극통이 일었으나, 이내 재희의 시야가 완전히 뒤바뀌었다.


눈동자가 붉은빛으로 영롱하게 물들었다. 숫자의 인과율을 꿰뚫어 보는 혜안, 인과안(因果眼)의 각성이었다.


재희가 다시 장부를 바라보자, 기이한 현상이 일어났다. 장부 위에 적힌 숫자들의 인과 관계가 붉고 푸른 실선이 되어 허공에 어지럽게 얽히기 시작한 것이다. 허위로 조작된 숫자 위에는 붉은빛의 경고등과 함께 구체적인 탈세 및 횡령 액수가 숫자로 둥둥 떠올랐다.


“……보인다.”


재희가 나직하게 중얼거렸다. 그의 입꼬리가 비틀려 올라갔다. 숫자의 모순이 눈으로 보이는 순간, 그의 회계 강박증은 단순한 고통을 넘어 적들의 숨통을 쥐고 흔들 절대적인 무기가 되었다.


“백무현 어르신.”


“어, 어? 왜 그러느냐, 재희야.”


“청운문의 금고에 남아 있는 실제 영석의 수량과 장부상의 잔액이 정확히 9,845 영석만큼 차이가 납니다. 대변과 차변의 오차가 이 정도라는 건, 누군가 조직적으로 문파의 고혈을 빨아먹고 있었다는 뜻입니다.”


재희가 주판을 탁 내리치며 선언했다.


“이 오차율을 0%로 맞추기 전에는 퇴근할 수 없습니다. 아니, 잠도 자지 않을 겁니다. 나에게 가짜 영수증을 들이민 횡령범들의 목줄을 전부 회계법으로 꼬아버리겠습니다.”


백무현은 눈을 부릅뜬 채 광기를 뿜어내는 재희를 보며 온몸을 사르르 떨었다. 숫자에 미친 광인이 선협 세상에 태어난 순간이었다.


재희는 다시 붓을 쥐고 밤샘 야근에 돌입했다. 장부 오차 정화염이 그의 머릿속에서 타오르며 거짓 숫자들을 하나씩 지워나갔다. 동이 터올 무렵, 마침내 청운문의 기초 장부 마지막 페이지의 차변과 대변의 합이 정확히 0으로 맞물려 떨어졌다.


극도의 정신적 카타르시스가 재희의 온몸을 감쌌다. 퀭한 눈이었지만, 그의 심장만큼은 그 어느 때보다 가볍게 뛰고 있었다.


바로 그 순간.


콰아아앙!


서기실의 낡은 나무 문이 굉음과 함께 박살 나며 사방으로 파편이 튀었다.


“안에 있는 말단 계사 놈은 당장 기어 나와라!”


거만하고 포악한 영압이 좁은 서기실 내부를 가득 채웠다. 청운문 외문의 실세이자, 대장로 조귀덕의 조카인 조태식이 수하들을 거느리고 서기실 문을 거칠게 발로 차며 들어섰다. 그의 손에는 꼬깃꼬깃하게 구겨진 가짜 간이 영수증 뭉치가 들려 있었다.

HẾT CHƯƠNG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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