붉은 묘지 위의 사냥
서고 마당의 비산하는 바위 가루 속에서, 서진은 검은 철검을 질질 끌며 다가오는 적들을 공동묘지의 음산한 안개 속으로 유인하기 시작했다.
쇳소리가 메마른 흙바닥을 긁을 때마다 소름 끼치는 파공음이 정적을 찢었다. 오른쪽 무릎 관절에서 느껴지는 통증은 상상을 초월했다. 철쇠의 대장간에서 무거운 묵철검을 휘두르다 어긋나 버린 뼈마디는 디딜 때마다 날카로운 송곳으로 쑤시는 듯한 극통을 유발했다. 미세 골절로 인해 이미 무릎 주변은 벌겋게 부어올라 열기를 뿜어내고 있었다.
‘여기서 무너지면 모든 것이 끝이다.’
서진은 아랫입술을 피가 터지도록 깨물며 통증을 억눌렀다. 뇌공차단 호흡법을 전개하자, 머릿속을 찌르던 비명이 서서히 멀어지며 감각이 차갑게 가라앉았다. 그는 가슴팍을 단단히 움켜쥐었다. 칠성탈명침이 박힌 심장 부근은 여전히 불타는 숯덩이를 품은 듯 뜨거웠고, 검붉은 독혈이 붕대 새로 번져 나와 삼베옷을 적시고 있었다.
스스스슥.
숲 너머에서 옷자락이 풀숲을 스치는 소리가 들렸다. 제갈세가 서북수색대의 정찰조였다. 서진은 절뚝거리는 다리를 이끌고 서고 뒤편의 음산한 벌판, 죽어간 도망자들의 시체가 거칠게 묻힌 흑토곡 공동묘지로 향했다. 밤낮으로 밀려드는 서리 바람과 썩은 시체의 독기가 뒤섞여 한 치 앞도 보이지 않는 자욱한 잿빛 안개가 깔린 금역이었다.
서진은 회색 비석 뒤의 그림자 속으로 몸을 들이밀었다. 지형지물 은신구결을 발동하자, 그의 창백한 안색과 헤진 회색 삼베옷이 자욱한 시독의 안개 속으로 완벽하게 녹아들었다. 호흡은 실타래처럼 가늘어졌고, 심장 박동마저 굳어가는 시체처럼 느려졌다. 오직 오른손에 쥔 이가 빠진 검은 철검만이 그의 살기를 머금은 채 미세하게 진동할 뿐이었다.
"어이, 방금 그 거대한 소음은 이쪽 서고 마당에서 난 게 확실한가?"
안개 속에서 청색 도포를 입은 제갈세가 수색대원 다섯 명이 모습을 드러냈다. 그들은 화려한 은빛 세검을 손에 쥔 채, 사방을 경계하며 공동묘지 입구로 조심스럽게 발을 디뎠다. 선두에 선 사내는 가죽 흉갑을 덧댄 정예 무사였다.
"분명 바위가 깨지는 듯한 굉음이었습니다. 그 벙어리 놈이 숨어 있는 서고 방향이 틀림없습니다."
"쯧, 그 벙어리 폐물 새끼가 그런 소리를 낼 리가 있나. 필시 무너져가는 서고 벽돌이 내려앉았거나 산짐승이 바위를 건드린 게지. 제갈우 대주님께서 이 잡듯 뒤지라 하셨으니 대충 흔적만 보고 돌아가자고. 이런 시체 썩는 구덩이에 오래 머물고 싶지 않다."
대원들은 코를 움켜쥐며 비석들 사이로 흩어졌다. 그들의 발걸음은 방심으로 가득 차 있었고, 안개로 인해 시야는 극도로 제한되어 있었다. 서진은 비석 뒤에서 그들의 움직임을 독기 감지 능력으로 짚어냈다. 어둠 속에서도 적들이 품은 푸른 청풍기공의 흐름이 붉은 선이 되어 서진의 머릿속에 선명하게 그려졌다.
‘다섯 놈. 각개격파한다.’
서진은 숨을 들이쉬며 소매 속에 감추어 둔 은침통을 만졌다. 오른손가락 끝에 기맥을 모으고, 가장 뒤처져 걷던 대원의 목덜미를 겨냥했다.
핏!
미세한 파공음조차 안개에 묻혀 들리지 않았다. 서진의 손가락 끝에서 튕겨 나간 은침 한 자루가 허공을 뚫고 대원의 목덜미 혈도에 정확히 박혔다. 암수투척의 치명적인 저격이었다.
"윽……!"
대원은 비명조차 지르지 못한 채 목을 움켜쥐고 스르륵 쓰러졌다. 침에 묻은 칠성탈명침의 미세한 독기가 기도를 일시에 마비시킨 탓이었다. 질척한 흙바닥에 육중한 신형이 쓰러지는 소리가 고요한 묘지에 나지막이 울렸다.
"응? 장 삼, 뒤에서 무슨 소리가 난 거냐?"
앞서 걷던 대원이 고개를 돌렸으나, 자욱한 안개 때문에 쓰러진 동료의 형체는 흐릿한 그림자로만 보였다. 대원이 의아해하며 다가오는 찰나, 서진은 이미 다른 비석 뒤로 신형을 옮긴 상태였다. 오른쪽 무릎 뼈가 비틀리며 뼈가 쓸리는 극통이 밀려왔지만, 뇌공차단 호흡법으로 감각을 마비시킨 채 이빨을 악물었다.
"어라? 장 삼! 야, 이 새끼 어디 간 거야?"
대원이 쓰러진 장 삼의 시체를 발견하고 경악하여 검을 뽑아 들었다.
"적습이다! 모두 무기를 뽑아라!"
순식간에 남은 네 명의 대원들이 등을 맞대고 원형의 합격진을 전개했다. 그들은 세검을 사방으로 휘두르며 자욱한 안개 속을 쏘아보았다. 긴장감으로 인해 그들의 청풍진기가 격렬하게 요동치며 사방으로 바람을 일으켰다. 바람이 안개를 일시적으로 걷어내자, 비석 뒤에 숨어 있던 서진의 그림자가 살짝 노출되었다.
"저기다! 회색 옷을 입은 놈이다!"
수색대장이 외치며 검끝을 서진의 방향으로 겨누었다. 서진은 지형지물 은신구결이 깨진 것을 직감하고 몸을 날리려 했다. 그러나 어긋난 오른쪽 무릎 관절이 순간적으로 고정되며 신형이 굳어버렸다. 치명적인 기동력의 공백이었다.
쉬이익!
수색대장의 세검에서 푸른빛 청풍검기가 뿜어져 나와 서진의 가슴팍을 직격했다. 서진은 본능적으로 묵철검을 들어 막으려 했으나, 한 발 늦었다. 검기가 서진의 가슴을 스치고 지나가며 칭칭 감겨 있던 거친 가죽 붕대를 처참하게 찢어발겼다.
찌이이익!
가죽 붕대가 찢어지며 심장 주변의 살점이 드러났고, 박혀 있던 일곱 개의 칠성탈명침이 외부의 충격에 반응하여 격렬하게 요동치기 시작했다. 가슴 속에서 불길이 폭발하는 듯한 극통이 밀려왔다. 심맥을 타고 흐르는 화독이 일시에 대뇌를 강타하자 서진의 눈앞이 순간적으로 붉게 물들었다.
"컥……!"
서진은 검붉은 독혈을 뿜어내며 바닥으로 쓰러질 뻔했다. 전신의 모공에서 뜨거운 피가 배어 나왔고, 파괴된 단전터가 팽창하며 기맥이 안에서부터 찢어지는 듯한 주화입마의 위기가 찾아왔다. 수색대원들은 쓰러져 신음하는 서진을 보며 승리를 확신하고 비웃음을 흘렸다.
"하하! 겨우 다리를 절뚝거리는 폐인 새끼였군! 이놈이 대주님께서 찾으시던 가문의 잔당이 확실하다. 사지를 잘라 대주님께 바치자!"
네 명의 대원들이 세검을 치켜들고 서진을 향해 동시에 쇄도했다. 사방에서 찔러오는 예리한 검날들이 서진의 급소를 조준했다.
그 순간, 서진의 핏빛 눈동자가 광기 어린 안광을 뿜어냈다. 그는 가슴의 찢어지는 고통을 억누르며, 오히려 심장에서 폭주하는 화독의 팽창력을 역근경의 우회 진기로 강제로 끌어올려 오른팔에 집중시켰다. 파괴된 단전 대신 찢어진 경맥 벽에 임시 기류가 형성되며, 오른손에 쥔 묵철검이 검붉은 독기로 타오르기 시작했다.
‘소지검로(掃地劍路).’
서진은 부러진 오른쪽 다리를 지면에 말뚝처럼 단단히 디뎠다. 뼈가 완전히 부서지는 듯한 극통이 뇌리를 때렸지만 무시했다. 그는 몸의 비대칭을 회전력의 축으로 삼아, 반바퀴 몸을 기괴하게 회전시키며 묵철검을 지면에 낮게 깔아 휘둘렀다.
콰아아아앙!
묵철검의 엄청난 중량과 독기의 팽창력이 결합하여 지면의 메마른 흙더미와 자갈, 그리고 음산한 시독의 안개를 일시에 쓸어 올렸다. 거대한 검붉은 자갈 회오리가 사방으로 폭발하며 쇄도하던 대원들의 시야를 완벽하게 차단했다.
"윽! 눈이……!"
대원들이 비산하는 자갈과 매캐한 흙먼지에 가로막혀 비틀거리는 찰나, 서진의 검붉은 묵철검 날이 안개 속에서 귀신처럼 솟구쳤다. 회전의 원심력을 실은 무자비한 하체 참격이 대원들의 다리를 휩쓸고 지나갔다.
서걱! 서걱! 서걱!
"아아아악!"
비명 소리가 묘지를 가득 메웠다. 정예 대원 세 명의 발목 힘줄과 뼈가 묵철검의 중량격에 단숨에 으스러지고 잘려 나갔다. 그들은 사지가 절단된 채 핏물을 쏟아내며 바닥을 뒹굴었다. 얇고 예리했던 그들의 세검들은 묵철검의 둔탁한 타격에 부딪쳐 유리조각처럼 산산조각 나 사방으로 흩어졌다.
수색대장만이 간신히 뒤로 물러나 참격을 피했으나, 그의 얼굴은 이미 공포로 하얗게 질려 있었다. 다리를 절뚝거리는 폐인이라 생각했던 사내가 뿜어낸 기괴하고 무자비한 힘은 인간의 경지를 벗어나 있었다.
"이…… 괴물 같은 놈! 대체 정체가 무엇이냐!"
수색대장이 검을 덜덜 떨며 소리쳤다. 서진은 대답하지 않았다. 지독한 침묵 속에서, 그는 묵철검을 질질 끌며 대장에게 천천히 다가갔다. 쇳소리가 자갈밭을 긁는 소리가 대장의 숨통을 조여 왔다.
대장은 공포를 이기지 못하고 검을 내던진 채 도망치려 몸을 돌렸다. 그러나 서진은 이미 그의 사각지대를 읽고 있었다. 오른손 끝으로 은침통을 튕겼다.
핏! 핏!
두 자루의 은침이 도망치던 대장의 양 무릎 뒤편 오금 혈도에 정확히 박혔다. 대장은 비명을 지르며 흙바닥에 처박혔다. 서진은 다리를 절뚝거리며 다가가, 대장의 등을 묵철검 끝으로 짓눌렀다. 묵철의 무서운 중량이 대장의 척추를 압착하자 뼈가 으스러지는 소리가 들렸다.
"사, 살려다오! 제갈세가의 무사들을 건드리고 무사할 줄 아느냐! 대주님께서……!"
서진은 묵묵히 몸을 숙여 대장의 품속을 수색했다. 그의 손끝에 거친 가죽 재질의 서책이 걸렸다. 서진이 그것을 꺼내 들자, 대장의 눈동자가 절망으로 흔들렸다. 그것은 제갈세가 대주 제갈우의 직인이 찍힌 극비 수색 지도(비밀 수색 지도)였다. 지도에는 흑토곡 주변의 은밀한 보급선과 가솔들의 도주 경로, 그리고 제갈세가가 노리는 가문의 비밀 거점들이 붉은 먹선으로 상세히 그려져 있었다.
‘찾았다.’
서진의 입꼬리가 비틀려 올라갔다. 가문의 복수를 완성하기 위한 첫 번째 단서이자, 제갈세가의 목덜미를 쥘 기밀 물증이었다. 지도를 품속에 소중히 챙긴 서진은, 망설임 없이 은장도를 꺼내 대장의 목덜미를 찔러 단숨에 숨통을 끊어버렸다.
스으으으.
묘지에 깔려 있던 자욱한 시독의 안개가 다시 서진의 주위를 덮어왔다. 서진은 가슴팍의 찢어진 가죽 붕대를 움켜쥐며 거친 호흡을 토해냈다. 심장의 화독이 날뛰며 전신이 마비되는 듯한 고통이 찾아왔지만, 그의 오른손은 비밀 지도를 움켜쥔 채 놓지 않았다.
피비린내로 진동하는 묘지 입구 너머, 칠흑 같은 어둠 속에서 수십 마리 살수견들의 굶주린 이빨과 함께 제갈우의 거대한 군마 소리가 대지를 뒤흔들며 다가오기 시작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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