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가 빠진 검은 철검
매연과 유황 냄새가 끈적하게 달라붙는 흑토곡(흑토곡)의 어귀는 언제나 회색빛 안개에 잠겨 있었다. 숨을 들이쉴 때마다 목구멍을 긁는 탄가루의 서슬에 외지인들은 며칠도 버티지 못하고 피를 토하며 달아나는 곳. 하지만 기경팔맥이 찢어지고 심장에 일곱 개의 독침이 박힌 백서진(백서진)에게는 이 지독한 연기야말로 자신의 피비린내를 감춰줄 가장 안전한 장막이었다.
서진은 오른쪽 다리를 무겁게 절뚝거리며 흙먼지 날리는 길을 걸었다. 낡은 회색 삼베옷 자락 아래로 드러난 가슴팍은 칠성탈명침(칠성탈명침)의 화독이 내뿜는 열기로 인해 벌겋게 익어 있었고, 검붉은 독혈이 배어난 붕대가 흉측하게 감겨 있었다. 어제 밤, 서고를 습격했던 독고패의 졸개 세 놈을 처단하는 과정에서 베인 왼손바닥의 자상은 지독한 불길처럼 욱신거렸다. 기혈이 통하지 않는 왼손가락은 완전히 굳어 붕대 속에서 미라처럼 무감각하게 굳어 있었다.
‘독기가 너무 사납다.’
서진은 입안에 고이는 쇠 맛 나는 침을 삼켰다. 역침쇄명결(역침쇄명결)을 통해 심장의 극독을 공력으로 치환하고 있었지만, 파괴된 단전터에서 소용돌이치는 기운은 너무도 거칠고 비정상적이었다. 빗자루 자루 따위의 가벼운 나무 막대로는 이 사나운 기류를 견디지 못하고 이내 바스러질 터였다. 그에게는 독기의 폭발력을 온전히 담아내 줄 무겁고 단단한 무기가 필요했다.
치익, 콰아아아.
대장간의 거대한 가죽 풀무가 울부짖는 소리와 함께 시뻘건 불꽃이 어둠을 갈라놓았다. 흑토곡 한구석, 검은 그을음으로 뒤덮인 초라한 판자 건물이 바로 외다리 대장장이 철쇠(철쇠)의 일터였다. 쇳물이 끓어오르는 도가니 앞, 구리빛 근육질 몸매를 지닌 거구의 사내가 한쪽 다리로 단단히 디딘 채 거대한 주물 망치를 내리치고 있었다.
깡! 깡! 깡!
망치가 묵철(묵철)을 때릴 때마다 사방으로 불꽃이 비산했다. 철쇠는 이마의 땀을 닦지도 않은 채, 문가에 그림자처럼 서 있는 서진을 힐끗 바라보았다. 덥수룩한 수염 사이로 드러난 그의 눈빛은 묵철보다도 무겁고 차가웠다.
"벙어리 놈이 여긴 왜 기어들어 왔느냐. 여기가 시체나 닦는 서고인 줄 아나."
철쇠의 퉁명스러운 목소리에도 서진은 대답하지 않았다. 그저 묵묵히 다가가 철쇠의 발밑에 놓인 검은 광석들을 가리켰다. 제갈세가가 흑토곡 주민들의 피를 짜내며 강탈해 가던 특수 광물, 흑토곡 묵철광석(흑토곡 묵철광석)이었다. 기운의 전도율이 낮아 일반적인 무인들은 거들떠보지도 않지만, 반대로 사나운 독기를 내포하기에는 이보다 더 좋은 그릇이 없었다.
철쇠는 망치질을 멈추고 서진의 눈을 똑바로 쳐다보았다. 창백하고 핏기 없는 얼굴, 붕대로 칭칭 동여맨 가슴팍, 그리고 그 너머에서 일렁이는 기괴한 검붉은 안광. 철쇠는 서진의 눈 속에 서린, 세상을 통째로 저주하고 불태워버릴 듯한 끝없는 원한의 심연을 읽어냈다. 그것은 가문이 몰살당하고 나락으로 떨어진 자만이 가질 수 있는 투귀(鬪鬼)의 눈빛이었다.
철쇠의 눈매가 미세하게 떨렸다. 그는 과거 서진의 가문인 백씨 의가에 목숨을 빚진 수많은 아웃사이더 중 한 명이었다. 가문의 멸문 소식을 듣고도 비겁하게 숨어 살아야 했던 대장장이의 가슴속에도, 정파의 위선자들을 향한 묵은 분노가 쇳물처럼 끓고 있었다.
"……너였구나. 살아 있었어."
철쇠가 나지막이 중얼거리며 화로 뒤편의 어두운 구석으로 걸어갔다. 그는 먼지 쌓인 가죽 무명 천을 거칠게 걷어냈다. 그 안에서 모습을 드러낸 것은, 화려한 보석 장식도 예리한 칼날의 푸른 광채도 없는 투박하고 기괴한 병기였다.
"흑토곡의 묵철을 백 번 단조해 만든 검이다. 기운을 담으면 담을수록 무거워지고, 이가 빠진 채 거칠게 단조되어 정파 명문가들의 화려한 명검처럼 보이지는 않겠지. 하지만……."
철쇠가 무거운 병기를 들어 서진의 앞에 쾅 내던졌다. 지면의 먼지가 자욱하게 피어올랐다.
"네놈의 그 더러운 독기와 핏빛 살기는 오롯이 견뎌낼 게다. 가져가라. 그리고 그 위선자들의 목을 베어라."
서진은 흙바닥에 박힌 이가 빠진 검은 철검(이가 빠진 검은 철검)을 내려다보았다. 검신은 칠흑처럼 어두웠고, 날은 군데군데 이가 빠져 있어 검이라기보다는 거친 철퇴에 가까웠다. 서진은 오른손을 뻗어 검자루를 쥐었다.
드드득.
검을 들어 올리는 순간, 서진의 오른쪽 어깨뼈와 관절이 비명을 지르며 삐걱거렸다. 생각했던 것보다 훨씬 더 무거웠다. 단전이 깨지고 전신 경맥이 조각난 몸으로 이 엄청난 중량을 감당하는 것은 자살 행위나 다름없었다. 하지만 서진은 입술을 깨물며 독기를 끌어올렸다. 심장의 은침 주변에서 검붉은 아지랑이가 피어오르며 묵철검의 표면을 타고 흐르기 시작했다.
서진은 검을 질질 끌며 대장간을 나섰다. 쇳소리가 황량한 길바닥에 길게 긁히는 소리가 진혼곡처럼 울려 퍼졌다.
낡은 서고의 앞마당은 잡초와 자갈로 황폐해져 있었다. 서진은 마당 한가운데에 서서 검을 고쳐 잡았다. 마비된 왼손은 도포 자락 사이에 완전히 묶여 있었기에, 오직 오른손 하나만으로 이 무거운 철검을 휘둘러야 했다. 정상적인 검술 보법으로는 도저히 불가능한 일이었다.
‘힘으로 휘두르는 것이 아니다. 무게에 몸을 싣고, 원심력으로 검을 회전시킨다.’
서진은 뇌공차단 호흡법을 전개하며 전신의 통증을 의식 밖으로 밀어냈다. 그리고 낡은 마당을 쓸던 빗자루질의 궤적을 머릿속으로 그렸다. 빗자루 검로 운기법(빗자루 검로 운기법)의 기초 구결이었다.
서진은 절뚝거리는 오른쪽 다리를 지면에 단단히 디뎠다. 그리고 몸을 반바퀴 회전시키며 검의 무게중심을 앞으로 무겁게 던졌다.
쉬이익!
묵철검이 허공을 가르며 엄청난 풍압을 발생시켰다. 그러나 회전의 원심력이 몸을 덮치는 순간, 어긋나 있던 오른쪽 무릎 관절에서 기괴한 마찰음이 발생했다.
뚝!
"윽……!"
무릎 뼈가 어긋나며 서진의 신형이 균형을 잃고 자갈밭으로 처참하게 주저앉았다. 손에서 빠져나간 검은 철검이 요란한 소리를 내며 바닥을 굴렀다. 찢어진 경맥 벽을 따라 화독이 폭주하며 목구멍으로 뜨거운 각혈이 밀려왔다. 서진은 흙먼지를 마시며 바닥을 기었다. 부러진 무릎과 마비된 왼손바닥의 자상이 동시에 불타오르며 그의 정신을 흐려놓았다.
"하아…… 하아……."
서진은 피가 섞인 침을 뱉어내며 다시 한번 은침을 움켜쥐었다. 가슴에 박힌 은침을 통해 역근경의 우회 진기를 강제로 끌어올렸다. 부러진 관절의 통증을 내력의 압력으로 억누르고, 그는 다시 비틀거리며 일어섰다. 도망칠 곳은 없었다. 독고패가 준 사흘의 기한은 이미 코앞이었고, 검을 길들이지 못하면 복수는커녕 개죽음을 면치 못할 터였다.
서진은 다시 묵철검을 쥐었다. 이번에는 힘을 완전히 뺐다. 몸의 비대칭을 억지로 교정하려 하지 않고, 절뚝거리는 다리의 무게를 그대로 회전력의 축으로 삼았다.
스스스스.
검끝을 지면에 완전히 밀착시켰다. 마당을 쓸듯, 검끝으로 자갈을 쓸어 모으며 서서히 몸을 돌렸다. 소지검로(掃地劍路)의 시작이었다.
회전이 가속화되자 묵철검의 엄청난 중량이 원심력으로 변해 오른손 끝으로 집중되었다. 서진은 역근경의 우회 진기를 전개하여 검의 무서운 반발력을 어깨 관절이 아닌 전신 기맥의 흐름으로 분산시켜 흡수했다. 어깨가 파괴되는 것을 막기 위한 처절한 등가교환이었다.
심장의 독침이 세차게 공명했다. 검붉은 진기가 묵철검의 균열된 이 사이로 스며들어 검신 전체를 검붉은 아지랑이로 뒤덮었다. 지면의 모래와 자갈들이 검붉은 독기와 함께 거대한 회오리를 그리며 소용돌이쳤다. 무겁고 투박한 묵철검이 비로소 서진의 오른손 끝에서 완벽하게 통제되기 시작한 순간이었다.
서진은 눈을 번뜩이며 마당 구석에 놓여 있던 거대한 단단한 바위를 향해 검을 낮게 휘둘렀다. 원심력과 독기의 팽창력이 응축된 최후의 일격이었다.
콰아아아앙!
굉음과 함께 묵철검이 바위의 하단을 쓸고 지나갔다. 검붉은 독기를 머금은 자갈 폭풍이 소용돌이치며 바위를 안에서부터 부식시키고 찢어발겼다. 거대한 바위는 형체도 없이 수천 개의 자갈 파편으로 산산조각 나며 사방으로 비산했다.
먼지 안개 속에서 서진은 숨을 몰아쉬며 묵철검을 짚고 섰다. 오른손 손목의 가죽 끈 사이로 붉은 피가 흘러내렸지만, 그의 입꼬리는 비틀려 올라가 있었다. 이가 빠진 검은 철검은 그의 독기를 온전히 머금은 채 차갑게 식어 있었다.
그러나 파괴의 거대한 소음은 흑토곡의 적막을 완전히 깨뜨려 버렸다. 숲속 어둠 너머에서 외곽을 감시하던 제갈세가 수색대의 삼엄한 살기가 서고 주변을 향해 좁혀들기 시작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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