붉은 물결 위의 진혼곡
강남(江南)의 밤은 습하고 무거웠다.
장강의 매서운 칼바람을 넘어 수로의 경계선을 넘어서는 순간, 대기의 질감이 완전히 달라졌다. 사방을 가득 메운 푸른 안개 속에는 썩은 흙냄새와 기묘하게 끈적이는 약초 향이 뒤섞여 있었다. 햇빛 한 줌 들지 않는 어둡고 축축한 강남 약시림의 초입. 그 수로를 따라 늙은 황씨의 작은 돛배가 소리 없이 미끄러져 들어갔다.
갑판 위, 거친 가마니 위에 누워 있던 백서진의 전신이 기괴하게 뒤틀리기 시작했다.
"커헉……! 윽, 으으……!"
서진의 입술 사이로 걸러지지 못한 검은 독혈이 울컥 쏟아졌다. 강남 특유의 고열다습한 공기가 그의 허파로 스며들자마자, 체내의 균열이 송두리째 뒤흔들린 것이다. 심장 깊숙한 곳에 박힌 일곱 개의 칠성탈명침(칠성탈명침)이 외부의 습한 열기에 반응하여 미친 듯이 요동쳤다. 백사담의 냉독으로 간신히 얼려두었던 화독(火毒)의 불길이 대지를 집어삼킬 듯 뿜어져 나와 그의 기맥을 안에서부터 태워버리기 시작했다.
왼손은 도포 자락 속에서 검게 마비된 채 죽은 고기처럼 미동도 하지 않았다. 부러진 오른팔은 가죽 붕대로 칭칭 동여매여 겨우 고정된 상태였고, 오른쪽 다리는 동상으로 인해 이미 돌처럼 굳어 있었다. 자침하여 기혈을 조율할 은침마저 장강의 물결 속으로 잃어버린 지금, 서진에게 찾아온 폭주는 곧 즉사를 의미했다.
"소협! 정신 차리십시오! 소협!"
황팔이 서진의 어깨를 붙잡고 울부짖었으나, 서진의 안광은 이미 흐려져 가고 있었다. 심장 주변의 살점들이 타오르는 화독에 녹아내리며 호흡기가 완전히 막혀 가고 있었다.
이대로 죽을 수는 없었다. 아직 복수의 종지부를 찍지 못했다. 가문의 원수들의 목을 베기 전에는 지옥의 문턱조차 밟지 않겠다는 광기 어린 집념이 서진의 뇌리를 강타했다.
서진은 이를 악물고 오른손 끝의 감각을 억지로 쥐어짜 냈다. 부러진 오른팔의 뼈가 비명을 질렀지만, 그는 이빨로 도포 품속에 남은 백동 침통을 물어당겼다. 굳어버린 오른손가락으로 침통을 열어 장침 세 자루를 간신히 뽑아 냈다.
그리고 망설임 없이 자신의 맨 가슴, 칠성탈명침이 박힌 붉은 상처 구멍 주변을 향해 침을 깊숙이 밀어 넣었다.
푸욱! 푸욱!
"으으으윽……!"
통각을 차단하는 뇌공차단 호흡법(뇌공차단 호흡법)조차 뚫고 들어오는 극단적인 고통이 전신을 난도질했다. 부러진 경맥의 단면에 직접 침을 박아 넣어 독기의 흐름을 억지로 가두는 자학적인 시술. 가슴팍에서 검붉은 피가 분수처럼 뿜어져 나왔고, 기맥이 영구적으로 닳아 없어지는 참혹한 대가가 치러졌다. 하지만 그 대가로 폭주하던 심장의 화독이 일시적으로 억눌리며 가라앉았다.
서진은 거친 숨을 몰아쉬며 갑판 위에 무너지듯 쓰러졌다. 이마에서는 식은땀이 비 오듯 흘러내렸고, 시야는 극도로 흐려져 사물의 형체조차 분간하기 힘들었다.
그때, 배의 어두운 구석에서 나직하고 맑은 소리가 울려 퍼졌다.
둥.
가볍게 튕겨 나간 거문고 줄의 진동이 축축한 밤안개를 가르고 서진의 귀를 때렸다. 낡은 오동나무 거문고를 품에 안고, 두 눈을 하얀 천으로 가린 채 앉아 있는 처녀. 북서부의 전란을 피해 남하하다 늙은 황씨의 배에 몸을 실었던 눈먼 악사, 소만(소만)이었다.
소만은 하얀 천 너머의 눈을 지그시 감은 채, 서진의 방향을 향해 조용히 고개를 돌렸다. 그녀는 무공을 전혀 익히지 못했으나, 소리를 통해 주변 기류의 미세한 떨림을 읽어내는 기이한 감각을 지니고 있었다. 서진의 몸에서 뿜어져 나오는 상상을 초월하는 피비린내와 기괴한 살기, 그리고 공기를 부식시키는 사나운 독기가 그녀의 심금을 울린 것이다.
"……지독한 고통을 품고 계시는군요."
소만의 청초한 목소리가 물결 위로 잔잔하게 퍼졌다. 그녀는 얇고 섬세한 손가락을 거문고 줄 위에 올렸다. 그리고 천천히 현을 튕기기 시작했다.
두웅. 둥. 두두웅.
소만이 연주하는 곡조는 세상의 번잡함을 씻어내는 정화의 음률, '청심곡(淸心曲)'이었다. 기이하게도 거문고 소리가 만들어내는 미세한 음파의 진동이 서진의 귀를 타고 들어가, 그의 찢어진 기맥 내부에서 요동치던 독기의 팽창력을 미세하게 억제하기 시작했다.
서진은 거문고 소리에 맞춰 뇌공차단 호흡법(뇌공차단 호흡법)의 리듬을 동기화했다. 둥, 하고 현이 울릴 때마다 요동치던 심장의 고동 속도가 강제로 늦춰졌고, 타들어 가던 심맥 주변에 서늘한 수분의 온기가 감돌았다. 머릿속을 짓누르던 열독의 환각이 서서히 걷히며, 가슴의 통증이 평온한 정적 속으로 침잠했다.
"소협, 숨소리가 가라앉고 있소!"
늙은 황씨가 안도의 한숨을 내쉬며 가만히 노를 저었다. 소만의 거문고 연주가 서진의 마성을 붙잡아 주는 정화의 방파제가 되어 준 것이다.
그러나 평온은 오래가지 않았다.
멀리 수로 전방에서 웅장한 가죽 북소리와 함께 수십 개의 횃불 불빛이 밤안개를 뚫고 솟구쳐 올랐다. 제갈세가 소주 제갈휘(제갈휘)가 강남 의가 연합을 선동하여 수로 곳곳에 배치해 둔 정찰선들이었다. 철갑을 두른 정찰선 세 척이 그물망처럼 수로를 봉쇄하며 그들이 숨은 갈대밭 방향으로 다가오고 있었다.
서진은 즉시 눈을 감고 독기 감지 (독기 감지 (毒氣感知)) 능력을 발동했다.
머릿속에 사방 삼십 보 안의 모든 독성 물질과 생명체의 기혈 흐름이 붉은 선이 되어 투시되듯 그려졌다. 정찰선 갑판 위에 선 사수들의 호흡 주기, 그들이 먹인 시위의 팽팽한 장력, 그리고 사냥개들이 내뿜는 매캐한 황의 냄새가 피부로 전해졌다. 적들의 시선 방향이 갈대밭 주변을 샅샅이 훑고 있었다.
"살수견들이 냄새를 맡고 이쪽을 보려 해요!"
황팔이 사시나무 떨듯 떨며 나지막이 속삭였다. 정찰선 위의 사나운 사냥개들이 코를 킁킁거리며 돛배가 숨은 갈대밭을 향해 으르렁거리기 시작했다.
그 순간, 소만의 거문고 음률이 미세하게 변화했다. 그녀는 현을 아주 가볍고 빠르게 튕겨, 인간의 귀에는 들리지 않는 미세한 고주파의 진동을 허공으로 쏘아 보냈다. 거문고 소리에 실린 기공의 미세한 떨림이 수면을 타고 퍼져나가 정찰선 위의 사냥개들의 귀를 자극했다.
깽! 깽!
살수견들이 갑자기 방향 감각을 잃고 머리를 흔들며 괴로워했다. 소만의 음파 지원이 적들의 후각과 청각 추적을 완벽히 교란한 것이다. 서진은 지형지물 은신구결을 발동하여 자신의 기척을 제로로 만든 채 숨을 죽였다.
정찰선이 갈대밭 삼 십 보 앞까지 접근했다. 사수들이 횃불을 높이 치켜들고 어두운 갈대 수풀을 유심히 살폈다. 팽팽한 긴장감이 수면을 얼려버릴 듯 무겁게 가라앉았다.
서진은 만일의 사태에 대비해 몸을 일으키려 했다. 부러진 검이라도 쥐고 적의 목덜미를 끊어야 했다.
우드득!
극심한 동상 마비로 완전히 굳어 있던 서진의 오른쪽 무릎 관절이 기괴한 마찰음을 내며 어긋났다. 갈대밭의 고요한 침묵을 깨뜨리는 섬뜩한 뼈 소리였다.
그 순간, 소만의 거문고 연주가 뚝 멈추었다.
갑작스러운 침묵은 수로 전체를 무겁게 짓눌렀다. 정찰선 위의 사수들이 일제히 고개를 돌려 서진이 숨은 갈대밭을 똑바로 응시했다.
"거기 누구냐!"
정찰조장의 날카로운 외침과 함께, 사수들이 일제히 불화살을 조준했다. 팽팽하게 당겨진 활시위가 삐걱거리는 소리가 어둠 속에서 섬뜩하게 울려 퍼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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