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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남을 향한 돛을 올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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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갈휘의 거대한 지휘선이 거친 물살을 가르며 돛배의 측면을 향해 무섭게 쇄도해 왔다.


"상이마인! 내 여동생의 목숨을 앗아간 대가를 지옥에서나마 치르게 해주마! 들이받아라! 흔적도 없이 깨부숴라!"


누각 위에서 제갈휘가 미친 듯이 포효했다. 그의 청옥 부채가 허공을 가를 때마다 제갈세가의 무사들이 지휘선의 노를 필사적으로 저어댔다. 수십 척의 철갑선이 뿜어내는 횃불의 붉은 광채가 밤안개 속에서 피처럼 일렁였다. 돛대를 잃고 표류하던 늙은 황씨의 작은 돛배는 그 압도적인 강철 선수(船首) 앞에서 한낱 낙엽에 불과했다.


하설아는 멀리서 그 광경을 바라보며 검을 쥔 손을 부르르 떨었다. 그녀의 매화검 끝에서 피어오르던 백색의 매화 검기가 흔들렸다. 정파의 고결한 이름을 내걸고 수많은 민초들을 학살하던 제갈세가와 무림맹의 추악한 민낯을 목격한 그녀의 심장은 이미 산산조각 나 있었다. 눈앞에서 죽어가는 백서진은 과거 자신이 연모했던 그 고결했던 천재 사내가 아니었다. 온몸이 찢어지고 피를 흘리며 스스로 괴물이 된 복수귀였으나, 하설아는 그의 처절한 눈빛 속에서 지독한 슬픔을 읽었다.


"설아 소협! 위험하니 물러서십시오!"


늙은 황씨가 키를 잡고 비명을 질렀지만, 거대한 철갑선의 그림자는 이미 그들의 머리 위를 완전히 덮치고 있었다. 제갈휘의 지휘선에 장착된 대포들이 불을 뿜으려 포문을 열어젖혔다.


콰아아앙!


바로 그 순간, 장강의 수면 아래에서 거대한 폭음과 함께 물둥반이 솟구쳤다. 제갈휘의 거대한 지휘선이 갑자기 우측으로 크게 기울어지며 비정상적인 마찰음을 내뿜었다.


"무슨 일이냐! 배가 왜 멈추는가!"


제갈휘가 난간을 붙잡으며 비명을 질렀다.


"소주님! 장강 수로채의 수적 놈들이 물밑에 거대한 그물과 자갈 자루 덫을 깔아두었습니다! 지휘선의 하부 목조 구조물이 그물망에 엉키고 얕은 암초 지대에 걸려 좌초되었습니다!"


수로채 사공들의 목숨을 건 기습이었다. 물길의 흐름을 완벽히 꿰뚫고 있던 수로채의 잠수 무사들이 제갈세가의 지휘선 밑창을 거대한 수중 덫으로 고정해 버린 것이다. 닻줄이 끊기고 하부가 고정된 대형 철갑선들은 서로 부딪치며 거대한 목조 파편을 쏟아냈고, 제갈휘가 자랑하던 함포들은 조준을 잃고 엉뚱한 허공을 향해 무력한 연기만을 내뿜었다.


서진은 갑판 위에서 반토막 난 묵철검을 짚은 채 간신히 버티고 있었다. 심장 주변을 보호하던 묵철 흉갑이 완전히 파괴되어 사라진 가슴팍에서는, 일곱 개의 독침 구멍이 붉은 안광을 발하며 검은 독혈을 끊임없이 뱉어내고 있었다. 전신을 조여맨 가죽 붕대는 이미 피로 붉게 젖어 무거워졌고, 부러진 오른팔의 뼈가 어깨 속에서 삐걱거리는 고통이 뇌공차단 호흡법의 한계를 뚫고 들어왔다.


기맥을 다스려야 했다. 서진은 떨리는 오른손으로 도포 품속에서 백동 침통을 꺼내려 했다. 감각을 잃어버린 손가락 끝으로 은침 한 자루를 간신히 집어 올려 자신의 심맥을 찌르려 했다.


툭.


그러나 완전히 마비된 손끝은 은침의 무게조차 지탱하지 못했다. 예리한 은침은 서진의 손가락 사이를 빠져나가, 차가운 장강의 검은 물결 속으로 힘없이 떨어져 사라졌다.


"아……."


서진의 입술 사이로 허망한 신음이 새어 나왔다. 손끝의 감각이 완벽히 사라진 것이다. 스스로 자침하여 통증을 진기로 치환할 기회조차 육체의 붕괴 앞에서는 허락되지 않았다. 그의 몸은 이제 스스로 움직이는 것조차 거부하고 있었다.


하설아는 멀어지는 서진의 배를 바라보았다. 장강의 짙은 밤안개가 그의 창백한 얼굴과 부러진 검을 서서히 삼켜가고 있었다. 제갈세가의 무사들이 그녀에게 검을 겨누며 소리쳤지만, 하설아는 차가운 눈빛으로 그들을 쏘아본 뒤 천천히 매화검을 검집에 밀어 넣었다.


서진의 배가 안개 속으로 완전히 사라지는 모습을 보며, 그녀는 추격의 검을 거두고 등을 돌렸다. 위선적인 정파의 대의에 완전히 침묵하겠다는 무언의 선언이었다.


"상이마인! 기어이 도망치는구나! 강남 전역에 추살령을 내려라! 사지를 잘라 가져오는 자에게 천금의 현상금을 주겠다!"


제갈휘의 미친 듯한 절규가 장강의 물결 위로 흩어졌다. 하지만 늙은 황씨의 작은 돛배는 이미 수로채가 열어준 은밀한 물길을 타고, 제갈세가의 봉쇄망을 완벽히 탈출하여 강남의 경계선을 넘어서고 있었다.


배 안의 어두운 가마니 위로 백서진의 거구가 무겁게 무너져 내렸다.


"쿨럭! 커헉……!"


서진의 입과 코에서 뿜어져 나온 검은 독혈이 갑판의 거친 목판을 검붉게 물들였다. 칠성탈명침의 화독이 심맥을 관통하려 요동치고 있었고, 백사담의 냉독마저 통제를 잃고 척추를 얼려가고 있었다. 그의 오른쪽 다리 관절은 극심한 동상으로 인해 이미 돌처럼 딱딱하게 굳어, 앞으로는 걸을 때마다 심하게 절뚝거려야만 하는 영구적인 장애가 고착화되어 가고 있었다.


"소협! 정신 차리십시오! 소협!"


황팔이 서진의 몸을 붙잡고 울부짖었으나, 서진의 안광은 이미 흐려져 어둠 속으로 꺼져가고 있었다. 임사(臨死)의 문턱이었다.


그때, 짙은 밤안개를 뚫고 푸른빛을 내뿜는 작은 나비 한 마리가 소리 없이 배 안으로 날아들었다. 나비는 서진의 피투성이 가슴팍 위에 부드럽게 내려앉았다. 나비의 발끝에 매달려 있던 작은 비단 주머니가 서진의 붕대 위로 떨어졌다.


독의 설화가 보낸 원격 조력, '설화의 서신 봉인약'이었다.


"팔이야! 어서 그 주머니를 열어라!"


늙은 황씨의 외침에 황팔은 떨리는 손으로 비단 주머니를 뜯어냈다. 그 안에는 영롱한 푸른빛을 띠는 미세한 가루약이 들어 있었다. 황팔은 망설임 없이 서진의 굳어버린 턱관절을 억지로 벌리고, 푸른 약 가루를 그의 목구멍 속으로 아낌없이 털어 넣었다.


스으으으.


약 가루가 식도를 타고 흘러내리는 순간, 기적 같은 변화가 일어났다. 상상을 초월하는 차가운 냉기가 서진의 위장과 심맥을 부드럽게 감싸 안았다. 전신을 태우던 칠성탈명침의 화독이 그 차가운 기운에 가로막혀 일시에 안정을 찾았고, 폭주하던 맥상이 거짓말처럼 고요하게 가라앉았다. 흘러내리던 독혈이 멈추고, 서진의 호흡이 미세하게나마 평온을 되찾았다.


서진은 흐릿한 의식 속에서 주머니 안쪽에 적힌 설화의 차가운 서신을 손가락 끝으로 짚었다.


[살고 싶다면, 강남 약시림으로 오라. 네 뒤틀린 맥상을 내 직접 짚어줄 터이니.]


그것은 구원의 약속이자, 새로운 복수의 무대로 이끄는 차가운 인도였다. 서진은 반토막 난 묵철검을 꽉 움켜쥐며 눈을 감았다. 1단계의 핏빛 원한과 흑토곡의 참상을 뒤로한 채, 그의 배는 강남을 향한 돛을 올리고 있었다.


서진의 배가 장강의 푸른 안개를 뚫고 울창한 약초 나무들이 빛을 차단하는 어둡고 음습한 강남 약시림 경계에 진입하자, 멀리서 은은한 피리 소리와 함께 푸른빛 나비들이 배 위로 날아들었다.

HẾT CHƯƠNG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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