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리 없는 비명, 흑토의 밤
어둠은 차갑고도 무거웠다.
지하 석실의 바닥에 누워 있던 백서진은 천천히 눈을 떴다. 가슴팍에 박힌 세 자루의 은침 주변으로 검붉은 핏물이 말라붙어 버석거리는 소리가 났다. 심장을 옥죄던 칠성탈명침의 화독(火毒)은 역침쇄명결의 기괴한 순환로를 따라 억지로 묶여 있었지만, 그 대가는 가혹했다.
기경팔맥이 찢어진 경맥 벽을 따라 독기가 강제로 흐를 때마다, 온몸의 뼈마디를 수천 개의 달구어진 바늘로 찌르는 듯한 상시적인 극통이 전신을 난도질했다. 가만히 숨을 쉬는 것조차 지옥의 불길을 삼키는 것과 같았다.
"으음……."
서진은 신음을 삼키며 입술을 깨물었다. 턱 끝을 타고 흘러내린 식은땀이 차가운 돌바닥을 적셨다. 당장이라도 고통을 이기지 못하고 스스로 가슴을 찢어발기고 싶은 충동이 밀려왔다. 미치지 않기 위해, 그는 눈을 감고 소림사의 고승 혜안대사에게 배웠던 뇌공차단 호흡법(뇌공차단 호흡법)을 전개했다.
들이쉬고, 내쉬고.
호흡이 느려질 때마다 서진은 의식의 흐름을 심장 깊은 곳, 통증이 시작되는 근원으로부터 강제로 분리해 냈다. 고통 자체가 사라지는 것은 아니었다. 그저 자신의 정신을 육체의 비명으로부터 한 걸음 멀리 떨어뜨려 놓는 비장한 방책일 뿐이었다. 고통을 타인의 일처럼 방관하는 기이한 감각 속에서, 서진은 간신히 흐트러졌던 이성의 끈을 붙잡았다.
품속에서 바스라진 누이 백소영의 나무 새 조각 파편이 손끝에 만져졌다. 날카로운 나뭇결이 살점을 찔러왔지만, 서진은 그것을 더 꽉 쥐었다.
'사흘…… 독고패가 내게 준 기한은 사흘이다.'
하지만 정파의 개가 되어 날뛰는 토호 놈들이 그 약속을 순진하게 지킬 리 없었다. 서진은 욱신거리는 오른쪽 다리를 끌며 지하 폐가의 돌계단을 기어 올라갔다. 마비되어 감각이 없는 왼손은 도포 자락 사이에 단단히 고정해 둔 채였다.
서고 뒤편의 숨겨진 책장 틈새를 통해 낡은 서고(낡은 서고)의 본채로 들어서자, 매캐한 먼지 냄새와 함께 밤의 서늘한 서북풍이 뺨을 스쳤다. 서진은 빗자루를 쥔 채 어둠 속에 몸을 웅크렸다.
스스스슥.
그때, 서고 외곽의 썩은 울타리 너머로 은밀한 발소리가 들려왔다. 한둘이 아니었다. 서진은 즉시 지형지물 은신구결(지형지물 은신구결)을 발동했다. 흑토곡의 황량한 모래바람과 어둠, 그리고 서고 구석에 쌓인 먼지 더미의 기운 속에 자신의 호흡과 체온을 완벽히 동화시키는 은형술이었다.
서진의 창백한 신형이 서고 천장의 어두운 대들보와 바위 틈새 속으로 스르륵 녹아들었다.
콰직!
낡은 서고의 문짝이 거칠게 부서지며 횃불 세 개가 어둠을 갈라놓았다. 붉은 불꽃이 흔들릴 때마다 서고 내부의 먼지가 뿌옇게 일어났다. 들어선 자들은 독고패(독고패)가 거느리는 흑토곡의 악랄한 졸개들이었다.
"어이, 그 벙어리 새끼 어디 간 거야? 사흘이나 시간 줄 필요가 뭐 있어? 오늘 밤 당장 이 낡은 서고를 싹 다 불태워버리고, 그 새끼는 잡아다가 광산 노예로 팔아넘기면 그만이지."
앞장선 흉터투성이 사내가 횃불을 휘두르며 낡은 서책들을 발로 차 무너뜨렸다. 다른 두 졸개 역시 단도를 만지작거리며 비열하게 웃었다. 그들은 서진이 지하에 숨겨둔 비밀 통로가 있다는 사실은 꿈에도 모른 채, 서고 구석구석에 기름을 뿌릴 준비를 하고 있었다.
대들보 위에 엎드린 서진의 눈동자가 검붉은 살기로 차갑게 뒤틀렸다. 단전은 파괴되었으나, 심장에 박힌 은침을 통해 흐르는 역침쇄명 1성 (독기 치환)의 기괴한 독기가 그의 기맥을 타고 꿈틀거리기 시작했다. 비록 기경팔맥이 찢어져 정상적인 공력은 쓸 수 없었지만, 독기의 팽창력을 역용한 완력만큼은 일류 무사 못지않은 파괴력을 품고 있었다.
서진은 소리 없이 호흡을 멈추고 하강할 타이밍을 노렸다.
첫 번째 졸개가 서진이 숨어 있는 대들보 바로 아래의 책장 앞으로 다가왔다. 사내가 횃불을 높이 들어 올린 찰나, 서진의 신형이 허공에서 낙엽처럼 소리 없이 하강했다.
탁.
가벼운 마찰음과 동시에 서진의 오른손이 졸개의 턱을 감싸 쥐었고, 다른 한 손이 그의 정수리를 눌렀다.
드드득!
뼈가 어긋나는 둔탁한 소리가 서고의 침묵을 깼다. 졸개는 단 한마디의 비명조차 지르지 못한 채 목뼈가 꺾여 즉사했다. 서진은 사내의 몸이 바닥에 쓰러지며 소리를 내기 전에 그의 도포 자락을 붙잡아 부드럽게 내려놓았고, 떨어지는 횃불을 오른발 끝으로 받아내어 불꽃을 소리 없이 꺼뜨렸다.
모든 과정이 단 한 호흡 만에 이루어졌다.
"어이, 장 씨! 거기서 뭐 해? 조용히 기름이나 뿌려."
서고 반대편에서 기름 항아리를 들고 있던 두 번째 졸개가 장 씨의 횃불이 꺼진 것을 보고 고개를 돌렸다. 어둠 속에서 장 씨가 바닥에 주저앉아 있는 듯한 실루엣이 보이자, 사내는 미심쩍은 표정으로 단도를 뽑아 들며 다가왔다.
"장 씨? 대답해 봐. 쥐새끼라도 나온 거야?"
서진은 거대한 책장 그늘 뒤에 몸을 밀착시켰다. 적의 발소리가 세 걸음 앞으로 다가왔을 때, 서진은 오른손으로 낡은 책장에 쌓여 있던 수십 년 묵은 서책 더미를 강하게 쳐내어 먼지를 털어냈다.
화아악!
밀폐된 공간 속에서 엄청난 양의 곰팡이 가루와 먼지가 폭풍처럼 피어올랐다. 갑작스러운 먼지 폭풍에 사내의 두 눈이 흐려졌고, 횃불의 불빛이 먼지에 반사되어 순간적으로 시야가 완전히 차단되었다.
"컥! 이게 무슨……!"
사내가 비틀거리며 눈을 비비는 찰나, 서진이 어둠 속에서 짓쳐 나왔다. 무기는 없었다. 하지만 서진의 손에는 서고 구석에 놓여 있던 두껍고 단단한 대나무 빗자루 자루가 쥐어져 있었다.
퍽!
서진은 빗자루 자루 끝으로 사내의 명치를 정확히 가격했다. 뼈가 부러지는 충격과 함께 사내의 폐부에서 공기가 한 번에 빠져나갔다. 사내가 숨을 들이쉬며 비명을 지르려 하자, 서진은 오른손으로 그의 목덜미를 움켜쥐었다.
콰직!
기괴한 완력이 사내의 목뼈를 으스러뜨렸다. 사내는 단도를 떨어뜨리며 끈 떨어진 인형처럼 바닥으로 무너져 내렸다.
"누구냐!"
마지막 세 번째 졸개가 동료들의 기이한 침묵과 둔탁한 타격음을 알아채고 비명을 지르며 횃불을 휘둘렀다. 사내는 공포에 질려 검을 마구잡이로 휘두르며 서고 출구를 향해 도망치려 했다.
서진은 절뚝거리는 오른쪽 다리를 딛고 디딤발을 굴렀다. 신법은 기괴하게 뒤틀렸지만 속도는 무시무시했다. 서진은 도망치는 사내의 배후를 덮쳤다.
그 순간, 사내가 본능적으로 뒤를 돌며 검을 사선으로 베어왔다. 서진은 과거 천재 시절의 습관대로 왼손을 뻗어 적의 칼날을 잡으려 했다. 그러나 기혈이 통하지 않고 마비된 그의 왼손가락은 그의 의지대로 움직여주지 않았다.
스구국!
차가운 철刃이 서진의 왼손바닥을 비껴가며 깊은 자상을 입혔다. 검붉은 독혈이 상처 틈새로 배어 나왔다.
"윽……!"
전신 경맥을 쓸고 지나가는 극통에 서진의 미간이 좁혀졌다. 기혈이 꼬이며 목구멍으로 뜨거운 각혈(각혈)이 밀려왔다. 하지만 서진은 고통에 굴복하지 않았다. 그는 왼손의 상처를 무시한 채, 오른손에 쥔 빗자루 자루를 창처럼 내질러 사내의 목구멍을 그대로 관통해 버렸다.
푸학!
사내는 목에서 피를 뿜으며 벽면에 처박혔다. 서진은 사내의 목을 고쳐 잡고 마지막 힘을 주어 그의 숨통을 완전히 끊어놓았다.
서고 내부에 다시 차가운 정적이 찾아왔다.
서진은 바닥에 주저앉아 거친 숨을 몰아쉬었다. 왼손바닥에서 흘러내린 검은 피가 바닥의 먼지와 섞여 기괴한 얼룩을 만들었다. 가슴의 은침들이 요동치며 전신에 바늘 극통을 재발시켰지만, 서진은 뇌공차단 호흡법으로 그 통증을 다시 한번 억눌렀다.
그는 쓰러진 세 졸개의 시체를 내려다보았다. 목뼈가 꺾이고 목구멍이 뚫린 시체들에서는 피가 거의 흐르지 않았다. 서진은 이들의 시체를 서고 구석의 무너진 책장 아래에 겹쳐 놓았다. 마치 철거를 시도하다가 낡은 서고의 대들보와 무거운 책장 더미가 무너지며 압사당한 것처럼, 혹은 저희들끼리 내분이 일어나 서로를 찔러 죽인 것처럼 정밀하게 현장을 위장했다.
정면에서 무공을 드러내면 독고패가 경계하여 배후의 제갈세가에 밀고할 터였다. 철저히 자연재해나 도적의 소행처럼 보이게 해야 했다.
서진은 피 묻은 빗자루를 구석에 던져두고, 다시 한번 품속의 나무 새 조각 파편을 만지작거렸다. 그의 눈동자에 서린 안광이 어둠 속에서 붉게 일렁였다.
이튿날 아침, 낡은 서고에서 독고패의 졸개 세 명이 기괴하게 죽은 채 발견되었다는 소식이 흑토곡 전역에 퍼져나갔다. 피 한 방울 흘리지 않고 뼈가 꺾여 죽은 시체들의 모습에, 주민들 사이에서는 밤마다 흑토곡을 배회하는 정체불명의 살인마에 대한 흉흉한 소문이 소리 없이 퍼지기 시작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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