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갈휘의 독수
둥! 둥! 둥!
장강의 차가운 수면을 뒤흔드는 북소리는 묵직한 쇠붙이의 울림과 닮아 있었다. 비밀 동굴의 축축한 석석(石室) 벽면이 진동할 때마다 천장에서 차가운 물방울이 떨어져 서진의 뺨을 때렸다.
방금 전 사제 우문철의 기도를 관통했던 부친의 은장도는 이미 그의 도포 품속 깊은 곳에 수거되어 있었다. 우문철의 시체 옆에 우뚝 선 백서진은 오른손으로 반토막 난 묵철검을 짚은 채, 깊은 어둠 속에서 거친 천식 같은 호흡을 몰아쉬었다.
"끄으윽……!"
갈라진 목구멍 사이로 검붉은 독혈이 울컥 쏟아져 나왔다. 가죽 복면 새로 흘러내린 피가 턱밑을 적셨지만, 서진은 오른손 아귀에 힘을 주어 반토막 난 검 자루를 더욱 굳게 쥐었다.
그의 왼손은 도포 자락 속에 완전히 괴사한 채 검게 늘어져 미동조차 하지 않았다. 이미 일 년 전 칠성탈명침의 폭주로 경맥이 완전히 죽어버린 고기덩어리였다. 오른팔 역시 관절의 뼈가 어긋나 철쇠가 감아준 사나운 늑대 가죽 붕대로 칭칭 동여매어 강제로 고정해 둔 상태였다. 걸음을 옮길 때마다 동상으로 얼어붙은 오른쪽 다리가 쇠사슬을 끄는 듯 둔탁한 소리를 내며 진흙바닥을 긁었다.
심장을 가려주던 묵철 흉갑은 이미 단애 절벽의 혈투에서 완전히 파괴되어 분실된 지 오래였다. 헤진 회색 삼베옷 사이로 드러난 그의 창백한 맨 가슴팍에는, 무림맹주 독고황이 직접 박아 넣었던 일곱 개의 검붉은 침공이 마치 지옥의 구멍처럼 입을 벌린 채 검은 피를 뚝뚝 흘리고 있었다.
정종의 내공 따위는 이미 단전이 깨질 때 소멸했다. 지금 서진의 사지를 움직이는 것은 오직 심장의 칠성탈명침이 뿜어내는 화독과, 백사담의 냉독이 기맥 속에서 격렬하게 충돌하며 만들어내는 자학적인 팽창력뿐이었다.
서진은 품속에 숨겨둔 우문철의 청동 암기통 발사기를 매만졌다. 가문의 비전 기작이자, 자신을 나락으로 떨어뜨렸던 추악한 흉기. 그리고 우문철이 죽기 전에 뱉어냈던 자백이 서진의 머릿속을 사정없이 난도질했다.
'제갈세가 소주 제갈휘가 독고황 맹주를 부추겨 네 가문을 학살했다…….'
원수의 이름이 심장의 독침을 자극하자, 가슴팍에서 지독한 작열감이 솟구쳐 올랐다. 서진은 뇌공차단 호흡법을 전개하며 끓어오르는 살기를 억지로 차갑게 가라앉혔. 지금 흥분하면 부러진 오른팔의 뼈가 먼저 으스러질 터였다.
서진은 독기 감지(毒氣感知) 능력을 발동했다. 동굴 입구 너머 장강 수면 위로 가득 찬 차가운 밤안개를 뚫고, 수십 개의 거대한 독성의 소용돌이가 그를 향해 좁혀들고 있었다. 그것은 제갈세가가 부리는 수색 무사들의 기운이자, 그들을 이끄는 소주 제갈휘의 오만한 기상이었다.
서진은 묵철검을 질질 끌며 동굴 입구를 향해 천천히 걸음을 옮겼다. 절뚝거리는 그의 발자국이 지날 때마다 핏빛 이끼 위로 검붉은 독혈의 흔적이 짙게 새겨졌다.
***
장강의 밤은 핏빛 횃불로 가득 차 있었다.
수로 외곽을 완전히 장악한 제갈세가 서북수색대의 대형 철갑선 수십 척이 장강 물길을 가로지르며 거대한 바리케이드를 구축하고 있었다. 횃불의 불빛이 장강의 검은 물결 위로 쏟아져 내려, 강 전체가 마치 피 흘리는 거대한 뱀의 가죽처럼 붉게 일렁였다. 철갑선들의 갑판 위에는 제갈세가의 문양이 새겨진 청색 도포를 입은 사수 수백 명이 시위를 팽팽하게 당긴 채 동굴 입구를 조준하고 있었다.
그 대형 전투선의 누각 위, 백색 학창의를 입고 청옥 부채를 가볍게 흔드는 청년이 서 있었다. 제갈세가의 소주이자, 과거 백서진의 천재성에 밀려 만년 이인자의 열등감을 품고 살아온 사내, 제갈휘였다.
제갈휘의 입꼬리가 오만하게 위로 들렸다.
"상이마인(傷痍魔人)의 피비린내가 이 수로까지 진동하는구나. 제갈영 장로님의 한빙장에 심맥이 파괴되고도 쥐새끼처럼 동굴 구석에 숨어 목숨을 연명하고 있었더냐. 더러운 백씨 가문의 망령이여, 어서 기어나와 무릎을 꿇어라!"
제갈휘의 내력이 실린 목소리가 장강의 수면을 때리며 동굴 벽을 사정없이 흔들었다. 그의 칠성검법 기운이 허공에 파동을 일으킬 때마다, 서진의 심장 주변에 박힌 독침들이 미세하게 공명하며 가슴을 후벼 팠다.
그때였다.
철갑선단 뒤편의 좁은 암초 지대를 뚫고, 은빛 매화의 검기를 두른 날렵한 신형이 허공을 도약하여 제갈휘가 서 있는 전투선 갑판 위로 가볍게 착지했다.
백색 무복에 분홍빛 띠를 두르고, 매화꽃처럼 청초하면서도 강직한 안광을 지닌 여검사. 과거 백서진을 남몰래 연모했으나 가문의 멸문 이후 진실을 밝히기 위해 홀로 무림맹의 선동에 맞서 움직이던 화산파의 천재, 하설아였다.
하설아의 등장에 제갈휘는 부채를 접으며 미간을 찌푸렸다.
"하 소저? 화산파의 대제자가 어찌 이 더러운 토벌의 전장에 직접 발을 디디는 것입니까?"
하설아는 대답 대신 허리에 찬 은빛 매화검을 뽑아 들었다. 시린 검날이 횃불 빛을 반사하며 제갈휘의 오만한 얼굴을 비추었다.
"제갈휘, 이 무자비한 수색을 당장 멈추십시오! 무림맹의 법과 대의는 무고한 민초들을 보호하는 것입니다. 흑토곡의 철광을 독점하기 위해 죄 없는 도망자들과 주민들을 참살한 제갈세가의 죄상은 이미 천하에 드러나고 있습니다. 정녕 맹의 이름을 더럽히며 이 학살을 계속할 셈입니까!"
하설아의 목소리는 분노와 슬픔으로 미세하게 떨리고 있었다. 그녀는 이곳으로 오는 길에 목격한 흑토곡의 참상과 사인갱의 피비린내에 이미 정파 무림맹의 위선에 대한 깊은 환멸을 품고 있었다.
제갈휘는 그녀의 매서운 다그침에 코웃음을 치며 부채를 가슴팍에 툭툭 두드렸다.
"대의라 하셨습니까? 하 소저, 화산파가 너무 고결하여 강호의 비정한 생리를 잊으신 모양이군. 저 동굴 안에 숨어 있는 자는 무고한 백성이 아니라, 맹의 감찰관 사공준 어르신을 도륙하고 제갈세가의 무인들을 참살한 '상이마인' 백서진입니다. 마도에 빠져 스스로 괴물이 된 역적을 단죄하는 것이야말로 맹의 법도입니다!"
"그가 정말 마도에 빠진 살인마란 말입니까? 아니면 가문의 누명을 벗기기 위해 스스로 칼을 든 비극의 생존자란 말입니까! 제갈세가가 가문의 비전 약방을 빼앗기 위해 독고황 맹주와 결탁했다는 소문이 사실이 아니란 말입니까!"
하설아의 날카로운 일침에 제갈휘의 눈매가 흉포하게 뒤틀렸다. 가문의 추악한 기밀이 언급되자 그의 가슴속에 내포되어 있던 열등감과 잔인함이 일시에 폭발한 것이다.
"화산파가 감히 제갈세가와 무림맹의 결정을 의심하려 드는가! 하 소저, 그 검을 거두지 않는다면 화산파 역시 마도의 잔당을 비호한 죄로 천하 추살령의 대상이 될 것입니다!"
제갈휘가 손을 번쩍 들어 올리며 수백 명의 사수들을 향해 외쳤다.
"사수들은 들어라! 동굴 입구를 향해 불화살을 일제히 발사해라! 저 안의 쥐새끼와 함께 동굴 전체를 불태워 재더미로 만들어라!"
"안 돼!"
하설아가 비명을 지르며 매화검을 가로질러 제갈휘의 앞을 막아섰다. 화산파의 은빛 검기가 제갈휘의 목덜미를 겨누었으나, 제갈휘의 좌우에 서 있던 세가의 늙은 장로들이 일시에 강력한 기공을 뿜어내며 그녀의 검을 막아섰다. 문파의 안위와 신분의 한계에 가로막힌 하설아는 전면적인 전투를 전개하지 못한 채, 제갈세가의 삼엄한 포위망 속에서 고립되어 가고 있었다.
"발사하라!"
제갈휘의 잔혹한 명령이 수면에 떨어지는 순간, 동굴 입구의 자욱한 검은 밤안개가 서서히 갈라졌다.
지익…… 지익…….
질척한 흙바닥을 무겁게 긁는 둔탁한 쇳소리와 함께, 한 사내가 천천히 안개 속에서 모습을 드러냈다.
가죽 복면으로 얼굴을 반쯤 가린 창백하고 비쩍 마른 체구. 헤진 회색 삼베옷 틈새로 드러난 맨 가슴팍에는 일곱 개의 검붉은 침공이 피를 흘리고 있었다. 그의 오른팔과 다리는 거친 늑대 가죽 붕대로 칭칭 동여매어 기괴하게 고정되어 있었고, 완전히 괴사하여 검게 타들어 간 왼손은 도포 자락 속에 죽은 고기처럼 늘어져 있었다.
그가 오른손으로 짚고 있는 무기는, 반토막이 나 이가 거칠게 빠진 검붉은 묵철검이었다. 검신 전체에 미세한 균열이 가득한 그 마검 끝에서, 서늘하고 거무죽죽한 검붉은 독기 검강이 아지랑이처럼 뿜어져 나와 장강 수면을 부식시키고 있었다.
"서…… 진아……?"
하설아의 손에서 매화검이 미세하게 흔들렸다.
과거 천재 시절 찬란한 백색 도포를 입고 온화한 미소를 짓던 가슴 설레던 정인(情人)의 모습은 그 어디에도 없었다. 눈앞에 서 있는 자는 사지가 부서지고 온몸에서 독혈을 뿜어내는, 오직 정파의 위선자들을 도륙하기 위해 지옥에서 걸어 나온 피투성이 괴물이었다.
하설아의 주름진 눈가에서 뜨거운 눈물이 왈칵 쏟아져 내렸다. 심장이 갈가리 찢어지는 듯한 슬픔과 충격이 그녀의 영혼을 강타했다. 자신이 그토록 그리워하고 찾았던 남자가, 이토록 처참하고 추악한 몰골로 마검의 숙주가 되어 서 있는 광경을 목격한 고통은 형언할 수 없는 것이었다.
서진은 가죽 복면 너머로 흐려진 시야를 통해 하설아를 바라보았다. 그의 핏빛 안광이 흔들렸으나, 이내 차갑게 가라앉았다.
"돌아가라…… 화산의 여검사여. 이곳에 네가 알던 백서진은 없다."
갈라지고 으스러진 쇳소리가 서진의 목구멍에서 새어 나왔다.
그 모습을 본 제갈휘는 질투와 광기에 눈이 뒤집혀 비열하게 웃었다.
"하하하! 꼴좋구나, 백서진! 천하의 천재가 고작 이런 절름발이 병신 마귀 새끼가 되어 기어 나오다니! 사수들은 무엇을 하느냐! 저 마귀 놈과 화산의 배신녀를 향해 불화살을 쏘아라!"
하설아는 눈물을 훔치며 다시 검을 굳게 쥐었다. 그녀는 제갈휘의 무자비한 사격 명령을 온몸으로 막아서며, 서진의 앞을 가로막아 섰다. 은빛 매화검이 횃불 빛을 받아 비장하게 일렁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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