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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제와의 조우, 깨진 의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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동굴 입구를 가득 메운 철기대의 횃불 불빛이 석실 내부의 핏빛 물결 위로 쏟아져 내렸다.


붉게 타오르는 불꽃이 밤안개와 뒤섞여 기괴한 아지랑이를 만들어냈다. 거친 말발굽 소리가 동굴 벽을 사정없이 때려눕히며 사방으로 공명했다. 횃불의 화광이 석실 내부를 비추자, 조금 전까지 백서진과 죽음을 겨루던 살수 사마연의 신형은 이미 그림자 속으로 흔적도 없이 사라진 뒤였다. 살수다운 기민한 퇴각이었다. 하지만 서진에게는 도망칠 여유 따위는 존재하지 않았다.


자갈이 밟히는 묵직한 가죽 장화 소리가 어둠을 뚫고 다가왔다. 철기대원들의 백색 마갑 사이로, 한 사내가 천천히 모습을 드러냈다.


은실로 정교하게 매화 문양을 수놓은 백색 도포, 허리춤에 차고 있는 황금빛 무림맹 감찰 마패, 그리고 기름을 바른 듯 윤기가 흐르는 머리칼 아래로 드러난 번지르르한 얼굴. 그 사내의 입가에는 특유의 비열하고 얇은 미소가 걸려 있었다.


과거 백씨 의가의 문하생이자, 서진을 ‘형님’이라 부르며 그림자처럼 따랐던 사제, 우문철이었다.


그는 이제 무림맹의 은혜를 입어 서북 감찰사단의 하급 대주로 당당히 출세해 있었다. 가문의 피를 무림맹주 독고황에게 바친 대가로 얻은 화려한 관복이, 동굴의 음습한 횃불 아래에서 역겹도록 번쩍였다.


"허…… 이 기괴한 몰골을 한 괴물이 정말로 백서진 형님이 맞으십니까?"


우문철이 비단 소매를 가볍게 털며 석실 바닥을 내려다보았다. 그의 시선이 서진의 처참한 신체에 닿았다. 완전히 마비되어 도포 자락 속에 죽은 고기처럼 매달려 있는 검은 왼손, 서리 늑대 가죽 붕대로 칭칭 동여매어 기괴한 각도로 고정된 부러진 오른팔, 그리고 걸음조차 제대로 떼지 못해 바닥에 끌리고 있는 절뚝거리는 오른쪽 다리.


가슴팍의 묵철 흉갑이 파괴되어 얇은 삼베 붕대 새로 칠성탈명침의 일곱 개의 붉은 침공이 피를 흘리고 있는 몰골은, 천하제일의 천재라 불리던 과거의 백서진과는 도저히 연결되지 않는 흉물이었다.


"천하를 호령하던 백씨 가문의 후계자가, 고작 이런 쥐구멍 같은 동굴 구석에서 피를 흘리며 숨어 살고 있었다니. 맹주께서 이 소식을 들으시면 참으로 가소로워하시겠습니다."


우문철이 소리 내어 웃었다. 그 웃음소리에는 승리자의 오만함과 과거의 열등감을 완전히 씻어내려는 비열한 조롱이 가득했다.


서진은 대답하지 않았다. 가죽 복면 너머로 드러난 그의 핏빛 안광만이 우문철의 얼굴을 차갑게 꿰뚫을 뿐이었다. 오른손에 쥔 반토막 난 묵철검 끝에서 검붉은 독기가 지익 소리를 내며 바닥의 냉천수를 부식시켰다. 끓어오르는 분노가 심장을 사정없이 때렸지만, 서진은 뇌공차단 호흡법을 전개하며 의식의 흐름을 차갑게 가라앉혔. 지금 감정에 휘둘리면 뼈가 부러진 오른팔이 먼저 무너져 내릴 터였다.


우문철이 손을 가볍게 들어 올렸다. 그의 뒤에 대기하고 있던 무림맹 철기대 사수 열 명이 일제히 노궁을 장전하며 서진을 향해 조준했다. 예리한 강철 화살촉들이 횃불 빛을 받아 살벌한 광채를 뿜어냈다.


"형님, 과거의 정을 생각해서 기회를 드리지요. 순순히 무릎을 꿇고 사지를 묶으십시오. 맹주 전하께 생포해 가면, 어쩌면 가문의 마지막 핏줄인 소영이의 유골함이라도 온전히 보존할 수 있을지 모릅니다."


"……우문철."


서진의 입에서 갈라진 쇳소리가 새어 나왔다. 목구멍에 고인 독혈 때문에 목소리는 으스러져 있었다.


"가문의 은혜를 입고도…… 맹주의 개가 되어 혈육의 피를 판 대가가 고작 그 백색 도포더냐."


우문철의 입꼬리가 미세하게 경련했다. 은혜라는 단어가 그의 비열한 자존심을 찌른 것이다.


"은혜? 사람을 살리는 인술 따위로 무엇을 할 수 있단 말입니까! 백씨 의가가 고결한 척 인술을 베풀 때, 무림맹의 권력자들은 그 뒤에서 천하의 모든 이권을 쥐고 흔들고 있었습니다. 형님이 의서나 뒤적이며 천재 소리를 들을 때, 나는 가문의 방계라는 이유로 늘 찌꺼기 같은 약재나 닦고 있었단 말입니다!"


우문철이 품속에서 작고 정교한 청동 암기통을 꺼내 들었다. 그것은 일 년 전, 서진을 제압하고 그의 심장에 직접 칠성탈명침을 쏘아 넣을 때 사용했던 무림맹의 비전 발사기였다.


"형님은 늘 나보다 뛰어났지. 하지만 그 잘난 경맥과 단전이 찢어지고 심장에 칠성탈명침이 박힌 지금도 과연 천재일지 궁금하군요. 이 독침이 어떻게 작동하는지 기억하십니까?"


우문철의 가느다란 손가락이 청동 암기통의 태엽을 가볍게 튕겼다.


탁!


미세한 금속성 공명음이 동굴 석실 전체에 울려 퍼졌다. 인간의 귀에는 들리지 않는, 특수한 기공의 음파 진동이었다.


그 순간, 서진의 가슴 깊은 곳에서 상상을 초월하는 자극이 일어났다. 심장 주변에 박혀 있던 일곱 개의 칠성탈명침이 그 특수 음파에 반응하여 제자리에서 기괴하게 회전하며 심맥의 살점을 사정없이 후벼 파기 시작한 것이다.


"끄으으윽……!"


서진은 비명을 지르지 못하고 자리에서 주저앉았다. 심장이 안에서부터 갈 갈이 찢어지는 듯한 극단적인 화독의 열기가 전신 경맥을 타고 폭발했다. 얇은 삼베 붕대 새로 검붉은 독혈이 분수처럼 뿜어져 나와 석실 바닥의 핏빛 물결 위로 뚝뚝 떨어졌다. 전신의 기경팔맥이 일시에 수축하며 호흡이 완전히 걸어 잠겼다. 뇌공차단 호흡법으로도 차마 막을 수 없는, 영혼을 찢어발기는 극통이었다.


우문철은 쓰러져 신음하는 서진을 보며 광기 어린 미소를 지으며 철기대 사수들에게 차갑게 명령했다.


"사지를 잘라라. 맹주 전하께 압송할 준비를 하겠다."

HẾT CHƯƠNG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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