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풍협곡의 사투
“감찰관님! 저 아래 구덩이 속에서 기괴한 마기가 뿜어져 나오고 있습니다!”
쏟아지는 폭우 속, 횃불을 든 무림맹 철기대원들의 외침이 사인갱의 음산한 허공을 갈랐다. 구덩이 밑바닥에 홀로 선 백서진은 검붉은 시체독을 머금은 묵철검을 고쳐 잡았다. 기경팔맥이 완전히 찢어진 폐인의 몸뚱이에서, 억울하게 학살당한 흑토곡 주민들의 원혼이 서린 시독이 역침쇄명결의 자학적인 기공을 타고 폭사하듯 소용돌이쳤다.
“정의의 이름으로 학살을 자행하는 위선자들이여, 이 피의 대가를 받아라.”
서진의 가죽 복면 틈새로 쇳소리 같은 독설이 새어 나왔다. 그의 눈동자는 이미 인간의 것이 아니었다. 오직 피와 복수만을 갈망하는 핏빛 안광이 어둠 속에서 번뜩였다.
지이이잉! 우우우웅!
그가 오른손을 휘두르는 순간, 반토막 난 묵철검 끝에서 검붉은 번개 같은 시체독의 검강이 폭풍처럼 뿜어져 나왔다. 구덩이 위에서 창을 겨누며 내려오던 철기대원들의 백색 마갑이 시체독의 강력한 부식성에 닿는 즉시 치익 소리를 내며 녹아내렸다. 비명 소리가 폭우의 소음을 뚫고 고막을 찢었다.
“이, 이게 무슨 마공이냐! 마두다! 상이마인이 나타났다!”
수석 감찰관 사공준은 경악했다. 그는 황금빛 감찰 마패를 집어던지며 자신의 공명진기(公明眞氣)를 극단적으로 전개해 방어막을 형성하려 했다. 하지만 서진은 이미 역천보(逆天步)를 밟아 그의 코앞까지 육박해 있었다. 절뚝거리는 오른쪽 다리가 진흙을 짓밟을 때마다 뼈가 부서지는 극통이 몰려왔지만, 뇌공차단 호흡법으로 감각을 완전히 지워버린 서진의 검로는 한 치의 오차도 없이 정밀했다.
스으윽!
이가 빠진 검은 철검이 사공준의 목덜미를 스쳐 지나갔다. 둔탁한 참격과 함께 사공준의 목이 허공으로 솟구쳤고, 서진은 그의 품속에서 무림맹과 제갈세가의 추악한 결탁 비리가 적힌 ‘무림맹 감찰관의 비밀 장부’를 거칠게 뜯어내었다. 우두머리를 잃은 철기대원들이 비명을 지르며 사방으로 흩어졌다. 서진은 바위 틈새에 숨겨두었던 아진을 데리고 흑토곡을 빠져나오기 시작했다. 가슴의 묵철 흉갑은 독기의 과부하로 인해 이미 쩍쩍 갈라지는 소리를 내며 붕괴의 조짐을 보이고 있었다.
사공준의 처참한 죽음은 정파 무림을 뒤흔들었다. 무림맹 본산은 즉시 백서진을 천하의 대역죄인인 ‘상이마인(傷痍魔人)’으로 선포하고, 그의 창백한 몰골이 그려진 ‘무림맹 추살령 수배서’를 강호 전역에 살포했다. 이제 그는 중원 땅 어디에서도 숨을 곳이 없는 불귀의 객이 되었다.
서진의 신체는 나날이 무너져 내리고 있었다. 사인갱에서 시체독을 무리하게 흡수한 대가로 전신의 피부가 회색 석상처럼 딱딱하게 굳어가는 석화(石化) 현상이 가슴팍까지 기어올랐고, 호흡할 때마다 폐가 찢어지는 듯한 고통과 함께 검은 피를 토해냈다. 그가 흑토곡을 벗어나 강남 약시림에 은거하는 독의 설화를 찾아가기 위해서는, 오직 하나의 출구인 ‘한풍협곡(한풍협곡)’을 반드시 돌파해야만 했다.
***
휘이이이잉!
뼈를 찌르는 차가운 서리 바람이 가파른 절벽 사이로 휘몰아치고 있었다. 한풍협곡은 가만히 서 있어도 전신이 얼어붙는 혹한의 지대였다. 몰아치는 혹한은 서진의 심장을 파고드는 칠성탈명침의 타오르는 화독을 식혀주었지만, 동상에 걸려 완전히 얼어붙은 그의 오른쪽 다리 관절에는 치명적인 쥐약이었다. 걸음을 옮길 때마다 어긋난 무릎 뼈가 가죽 붕대 속에서 비명을 질렀다.
“상이마인이 이리로 온다! 준비해라!”
협곡 입구, 제갈세가에 고용된 낭인단장 한도(한도)가 이끄는 흑풍단(흑풍단)이 거대한 바위들로 퇴로를 봉쇄한 채 대기하고 있었다. 늑대 가죽을 두르고 한쪽에 큰 흉터를 지닌 거구의 한도는 거대한 패도(패도)를 어깨에 멘 채 서진을 내려다보며 비열하게 웃었다.
“무림맹의 추살령이 내린 마귀 놈아! 네놈의 머리에 걸린 현금은 우리 흑풍단이 가져가겠다! 노궁 일제 사격!”
한도의 외침과 함께, 협곡 위벽에 매복해 있던 서른 명의 사수들이 일제히 노궁(弩弓)의 시위를 놓았다.
슈슈슈슈슉!
강철 화살촉을 단 화살 비가 서진을 향해 무자비하게 쏟아졌다. 다리가 불편한 서진은 신법으로 피할 수 없었다. 그는 묵철 흉갑(묵철 흉갑)을 가슴에 대고 정면의 화살들을 몸으로 받아내며 거대한 바위 뒤로 몸을 던졌다.
깡! 깡! 쩌정!
강철 화살촉들이 묵철 흉갑에 부딪쳐 튕겨 나갔으나, 그 충격으로 인해 흉갑 표면의 실금들이 더욱 깊게 갈라지며 바스라지기 시작했다. 그 와중에 날카로운 화살 한 자루가 서진의 왼쪽 허벅지를 관통했다. 살이 찢기고 검붉은 피가 눈 위로 울컥 쏟아졌다.
“쿨럭……! 컥.”
서진은 바위 뒤에 기대어 앉아 거친 각혈을 토해냈다. 허벅지의 자상에서 흘러내린 피가 차가운 눈밭을 검붉게 적셨다. 전신의 기혈이 얼어붙는 한기 속에서, 그는 흔들리는 이성을 붙잡기 위해 가슴의 은침을 더 깊숙이 찔러 넣었다.
‘이 차가운 칼바람의 기운을 빨아들인다.’
서진은 역침쇄명결을 전개하여 협곡의 혹독한 서리 바람을 찢어진 경맥 속으로 강제로 흡수했다. 체내에 축적되어 있던 백사담(白蛇膽)의 냉독이 외부의 혹한과 격렬하게 공명했다. 그 반발력으로 인해 반토막 난 묵철검 끝에 푸르스름하고 서늘한 검기, 음한검강(음한검강)이 일시적으로 극대화되었다.
서진은 피가 흐르는 왼쪽 허벅지를 가죽 끈으로 질질 묶고 다시 바위 밖으로 걸어 나갔다. 절뚝거리는 그의 디딤발이 지날 때마다 눈밭에 깊은 핏자국이 새겨졌다.
“아직도 살아서 기어 나오는군! 쏴라! 한 놈도 남김없이 고슴도치로 만들어라!”
한도의 명령에 사수들이 다시 한번 노궁을 발사했다. 수십 자루의 화살이 허공을 가르며 날아들었다. 서진은 차갑게 빛나는 안광을 번뜩이며 부러진 묵철검을 가볍게 휘둘렀다.
지이이잉!
검끝에서 뿜어져 나온 푸른 음한검강의 서리 기운이 협곡의 공기 자체를 얼려버렸다. 날아오던 강철 화살들이 서진의 검강에 닿는 순간, 찰나의 시간 동안 하얗게 얼어붙더니 허공에서 파스스 깨져 나가며 얼음 가루로 비산했다. 화살 비가 허공에서 먼지가 되어 사라지는 기괴한 광경에 사수들의 얼굴이 하얗게 질렸다.
“이, 이게 무슨 마공이냐! 화살이 얼어 부서진다!”
사수들이 경악하는 사이, 한도가 거대한 패도를 치켜들고 협곡 위에서 낙하 공격을 감행했다.
“혼원강기! 죽어라, 상이마인!”
일류 극치의 묵직한 강기가 실린 패도가 서진의 머리 위로 수직 하강했다. 기동력이 쇠퇴한 서진은 피할 수 없었다. 그는 오른손으로 묵철검을 쥐고, 마당을 쓸던 몸의 회전력을 검술에 응용한 빗자루 검로(빗자루 검로)의 요결을 전개했다. 묵철검의 엄청난 중량감과 원심력을 이용해 한도의 패도 궤적을 비틀어버리는 반사격이었다.
콰아앙!
두 병기가 맞부딪치는 순간, 빗자루 검로의 회전력이 한도의 거대한 패도에 실린 강기를 밖으로 흘려보냈다. 동시에 묵철검 끝에 서려 있던 음한검강의 지독한 냉기가 패도의 철제 날을 타고 순식간에 전이되었다.
쩍! 쩌적!
하얗게 얼어붙은 한도의 거대한 패도가 서진의 회전력에 휘말려 날카로운 금속음과 함께 두 동강으로 부서져 나갔다.
“내, 내 보도가……!”
한도가 경악하며 뒤로 물러서려 했으나, 서진의 움직임이 더 빨랐다. 서진은 절뚝거리는 다리를 디디며 반토막 난 검을 한도의 가슴팍에 깊숙이 찔러 넣었다.
푸욱!
음한검강의 한기가 한도의 가슴 상처를 타고 들어가 그의 오장육부와 심장을 순식간에 얼려버렸다. 한도는 비명조차 지르지 못한 채, 온몸이 하얀 성에로 뒤덮인 얼음 석상이 되어 바닥으로 쓰러졌다. 그의 심장은 이미 차갑게 얼어붙어 정지해 있었다.
“단장님이 죽었다! 마귀가 우리를 얼려 죽인다!”
대장의 허무한 죽음과 기괴한 무공에 공포를 느낀 흑풍단원들이 무기를 버리고 협곡 너머로 달아나기 시작했다. 협곡의 1차 봉쇄선이 완벽히 무너져 내린 것이다.
서진은 부러진 묵철검을 지면에 짚은 채 거친 호흡을 몰아쉬었다. 허벅지의 자상에서 검붉은 피가 눈 위를 적셨고, 극심한 혹한에 노출된 오른쪽 다리는 이제 감각이 거의 사라져 돌처럼 무거웠다. 가슴의 묵철 흉갑은 한도의 강타를 받아내며 완전히 쪼개져 바닥으로 툭 떨어져 내렸다.
그때, 협곡의 출구 방향에서 스산한 서리 안개가 피어오르며 공기가 이전과는 비교할 수 없을 정도로 차갑게 얼어붙기 시작했다. 안개 속에서 푸른 학창의를 입고 백수염을 휘날리는 한 노인이 천천히 걸어 나왔다. 그의 손에는 서릿발 같은 냉기를 내뿜는 명검, 빙우검(빙우검)이 쥐여 있었다. 제갈세가 최고의 노고수이자 절정 극치의 실력을 지닌 장로, 제갈영(제갈영)이었다.
제갈영의 매서운 안광이 서진의 창백한 얼굴과 부서진 묵철검에 닿았다.
“내 아우 제갈우를 죽이고 가문의 명예를 더럽힌 마귀 놈아. 네놈의 종착지는 이 차가운 협곡의 무덤이다.”
빙우검 끝에서 뿜어져 나오는 푸른 검강이 대지를 얼리며 서진의 숨통을 조여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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