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위선의 제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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폭우가 대리석 기와를 두들기는 소리가 임시 분타의 거대한 대청마루를 가득 메우고 있었다. 제갈세가의 요패를 제시하고 들어선 연무장 초입은 기묘할 정도로 정적에 잠겨 있었다. 사방에 걸린 횃불이 습한 공기 속에서 치익 소리를 내며 흔들릴 때마다, 바닥에 깔린 백색 대리석 위로 길고 검은 그림자들이 일렁였다.


서진은 도포 소매 속에 검게 죽어버린 왼손을 깊숙이 감춘 채 천천히 걸음을 옮겼다. 서리 늑대 가죽으로 만든 질긴 가죽 붕대로 온몸을 동여맨 탓에, 숨을 들이쉴 때마다 갈비뼈가 조여드는 극통이 밀려왔다. 가슴팍에 덧댄 묵철 흉갑은 심장 주변에서 요동치는 칠성탈명침의 열독과 공명하듯 미세한 진동을 일으키며 서진의 살을 차갑게 누르고 있었다.


‘주민들의 신음이 들린다. 이 안쪽이다.’


서진의 독기 감지 능력이 대청마루 너머 지하 깊은 곳에서 흘러나오는 미세한 피비린내와 습한 기운을 포착했다. 그 순간, 사방의 명암이 기괴하게 뒤틀렸다.


“흐흐흐…… 쥐새끼가 제 발로 덫에 기어들어 왔구나.”


대청마루 이층의 난간 너머에서 음산하고 예리한 목소리가 흘러나왔다. 마른 체구에 염소수염을 기르고, 손에 깃털 부채를 든 사내. 제갈세가의 책사이자 이번 인질극을 설계한 제갈표였다. 그의 가느다란 눈동자 속에 서진의 절뚝거리는 오른쪽 다리와 가슴을 움켜쥔 기괴한 몰골이 담겼다.


“백씨 의가의 마지막 찌꺼기가 살아있다는 소문을 들었을 때 가소롭기 짝이 없었다. 기경팔맥이 찢어지고 왼손이 썩어 들어가는 폐물이 감히 세가의 권위에 도전하려 들다니. 네놈이 구하려는 개돼지들은 저 지하에서 이미 손가락이 하나씩 잘려 나가고 있다!”


제갈표가 깃털 부채를 가볍게 휘둘렀다.


철컥! 콰아앙!


순간, 서진의 발밑에서 엄청난 쇠붙이의 마찰음이 울렸다. 대청마루 사방의 대리석 바닥을 뚫고 두꺼운 무쇠 창살들이 솟구쳐 올랐다. 제갈표가 미리 배치해 둔 ‘보급 차단 진법’의 기관이 작동한 것이다.


서진은 본능적으로 디딤발을 구르며 빗자루 검로의 요결을 응용해 무쇠 창살 사이를 빠져나가려 했다. 그러나 절뚝거리는 오른쪽 무릎 관절의 동상 마비가 그의 신형을 찰나의 순간 멈추게 만들었다.


깡!


반토막 난 묵철검의 끝이 급격하게 솟구치는 쇠창살의 틈새에 강력하게 끼어버렸다. 묵철검을 타고 전해지는 무시무시한 반동이 서진의 오른손 아귀를 찢어발길 듯 흔들었다. 검을 놓칠 뻔한 아찔한 위기 속에서, 서진은 뇌공차단 호흡법을 전개하며 억지로 오른손을 비틀어 검을 빼냈다. 이미 그의 오른쪽 어깨와 손목 관절에서는 뼈가 갈리는 듯한 날카로운 마찰음이 새어 나오고 있었다.


“잡아라! 그 마귀 놈의 사지를 찢어 맹주께 바쳐라!”


제갈표의 외침과 함께, 대청마루의 어둠 속에서 청색 무복을 입은 제갈세가의 정예 무사 열 명이 검을 뽑아 들고 솟구쳤다. 그들이 펼치는 검망은 서진의 상체와 하체, 특히 움직이지 못하는 왼손 방향의 사각지대를 완벽하게 겨냥하고 있었다.


서진의 시야가 붉게 물들기 시작했다. 가슴의 묵철 흉갑 속에서 일곱 개의 독침이 심장을 찌르는 듯한 열독을 뿜어내며 기맥을 태웠다. 정상적인 내공이 없는 그에게 남은 힘은 오직 이 독기가 팽창하며 만들어내는 자학적인 파괴력뿐이었다.


‘진법의 눈을 찾을 시간은 없다. 지반 자체를 무너뜨린다.’


서진은 피눈물이 고인 눈을 부릅뜨며 오른발을 강하게 디뎠다. 어긋난 무릎 뼈가 가죽 붕대 속에서 비명을 질렀지만, 그는 역침쇄명결의 내력을 오른팔에 집중시켰다. 그리고 반토막 난 묵철검을 머리 위로 높이 치켜들었다가, 대청마루 중앙을 향해 수직으로 내리찍었다.


쿵! 쿠구구구궁!


묵철중검격(墨鐵重劍擊)의 무시무시한 파괴력이 대지를 강타했다.


묵철의 엄청난 중량과 독기 진기가 결합한 충격파가 백색 대리석 바닥을 일격에 박살 냈다. 굉음과 함께 대청마루의 지반이 거대한 균열을 그리며 주저앉았고, 솟구쳐 올랐던 무쇠 창살들의 기초 지지대가 우지끈 부러지며 사방으로 튕겨 나갔다. 깨진 대리석 파편들이 폭풍처럼 비산하며 사방을 덮쳤다.


“으아악! 지반이 무너진다!”


공중에서 서진을 덮치려던 무사들이 예측하지 못한 지진 같은 진동에 중심을 잃고 비틀거렸다. 진법의 축이 물리적으로 파괴되면서 대청마루 전체가 자욱한 먼지 안개 속에 갇혔다.


서진은 그 찰나의 순간을 놓치지 않았다. 무사들이 균열된 바닥 위에서 균형을 잡으려 버둥거리는 사이, 그는 폐부 깊은 곳에 고여 있던 검붉은 독혈을 진기로 강하게 압축했다. 위장이 녹아내리고 폐 경맥이 찢어지는 듯한 극통이 목구멍을 타고 역류했다.


푸하아악!


서진의 입에서 검붉은 피안개가 폭풍처럼 분사되었다. 독혈분출(毒血噴出)의 비열하고도 치명적인 기습이었다.


부식성의 극독이 섞인 피안개가 전방의 무사 다섯 명의 얼굴을 그대로 덮쳤.


치이익! 치익!


“아아아악! 내 눈! 내 얼굴이!”


강한 산성의 독혈이 그들의 안구와 피부에 닿는 순간, 살점이 녹아내리는 끔찍한 소리와 함께 비명이 대청마루를 찢었다. 무사들은 검을 떨어뜨린 채 얼굴을 움켜쥐고 바닥을 뒹굴었다. 피안개 속에서 그들의 이목구비가 형체도 없이 부식되어 가는 광경은 지옥의 묵시록과도 같았다.


“이, 이 괴물 같은 놈이……!”


이층 난간에서 그 광경을 지켜보던 제갈표의 얼굴이 하얗게 질렸다. 지략가로서의 오만함은 순식간에 사라지고, 전신을 엄습하는 극심한 공포만이 그의 뇌리를 지배했다. 제갈표는 깃털 부채를 내던지며 이층 뒤편의 비밀 통로를 향해 광적으로 달아나기 시작했다.


서진은 폐 경맥이 찢어지는 고통에 쿨럭이며 검붉은 피를 한 움큼 토해냈다. 시야가 흐려지고 이명이 울렸지만, 달아나는 원수의 뒷모습만은 놓치지 않았다.


그는 오른손을 도포 품속으로 집어넣어 차갑고 묵직한 백동 자루를 쥐었다. 부친 백무흔이 평생 환자들의 환부를 도려낼 때 쓰던, 가문의 마지막 유산인 은장도였다.


휘이익!


서진의 오른팔이 기괴한 각도로 회전하며 은장도를 전방으로 날렸다.


예리한 은빛 궤적이 폭우의 소음을 뚫고 허공을 갈랐다. 도망치던 제갈표가 비밀 문고리를 잡으려던 찰나, 은장도가 그의 목덜미를 정확하게 관통했다.


퍽!


“끄어억…….”


제갈표는 비명조차 지르지 못한 채 목에 은장도가 박힌 상태로 비밀 문짝에 그대로 고정되었다. 그의 가느다란 눈동자가 경악과 공포로 가득 찬 채 서서히 빛을 잃어갔고, 목덜미에서 흘러내린 피가 화려한 청기와 문양을 적셨다. 가문의 원수 중 한 명인 제갈세가의 책사가 비참한 최후를 맞이한 순간이었다.


서진은 절뚝거리는 다리를 이끌고 무너진 대청마루를 지나 지하 계단으로 향했다. 가슴의 묵철 흉갑은 이미 그의 거친 호흡과 열독으로 인해 뜨겁게 달아올라 있었다.


지하 석실의 철문을 부수고 들어가자, 고문대 위에서 피를 흘리며 묶여 있던 흑토곡 주민들이 눈물을 흘리며 서진을 바라보았다. 아진이 잘린 혀로 신음을 내며 서진의 검은 도포 자락을 붙잡았다.


“……늦지 않았다.”


서진은 아진의 포박을 풀어주고, 주민들에게 성읍 외곽의 수로를 통해 탈출하라고 손짓했다. 주민들이 탈출하는 사이, 서진은 분타 지하 깊숙한 곳에 숨겨진 비밀 철문을 묵철검 끝으로 파괴했다. 그곳이 바로 제갈세가 임시 분타의 지하 밀실, ‘제갈세가 비밀 약고’였다.


약고 내부로 들어서자, 온갖 영약과 침구류가 보관된 무쇠 상자들이 모습을 드러냈다. 서진은 가문에서 약탈당했던 영약들의 냄새를 독기 감지로 찾아내어 상자를 열었다. 그 안에는 심장의 타오르는 화독을 진정시키고 찢어진 경맥의 붕괴를 한시적으로 지연시켜 줄 가문의 비전 해독 영약들이 들어 있었다. 서진은 영약을 입안에 털어 넣으며 타들어 가던 심맥이 차갑게 가라앉는 구원을 느꼈다.


하지만 그의 복수극은 여기서 끝이 아니었다.


약고 가장 깊은 곳, 제갈세가의 문양 대신 무림맹의 비밀 문양이 정교하게 새겨진 검은 철제 상자가 서진의 눈에 들어왔. 서진은 반토막 난 묵철검을 찔러 넣어 상자의 걸쇠를 강제로 부수고 뚜껑을 열었다.


그 안에는 황실의 비단으로 싸인 한 권의 오래된 비밀 장부와 군사 기밀 서류들이 들어 있었다.


서진은 떨리는 손으로 장부를 펼쳤다. 장부의 첫 장에는 제갈세가가 흑토곡 주민들의 피를 짜내며 무단으로 채굴해 온 묵철광석의 납품처가 적혀 있었다.


그 납품처의 이름은 제갈세가 본가가 아니었다.


[무림맹 직속 백무전(白霧殿) 극비 납품 - 특수 암기 및 살수 병기 제조용 묵철 이만 근.]


장부의 하단에는 무림맹주 독고황의 붉은 직인과 함께, 백무전의 상징인 하얀 안개 문양이 선명하게 각인되어 있었다.


서진의 눈동자가 분노와 경악으로 찌그러졌다. 제갈세가가 흑토곡에서 자행한 잔혹한 철광 수탈과 가문의 역모 조작 배후에는, 정파의 수장인 무림맹과 그들의 비밀 살수 조직인 백무전이 깊숙이 결탁해 있었다는 추악한 진실이 밝혀지는 순간이었다.

HẾT CHƯƠNG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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