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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천당가의 검은 눈동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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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하 석실의 무거운 침묵을 깨고, 부러진 검은 철검 끝에서 일렁이는 검붉은 기운이 바닥을 적신 피눈물 위로 기괴한 그림자를 드리웠다. 역침쇄명 3성의 경지. 전신의 기경팔맥이 찢겨 나간 폐인이 오직 심장의 독기와 자학적인 자침술만으로 이끌어낸 검붉은 독기 검강은 마치 살아 숨 쉬는 뱀처럼 검신을 타고 꿈틀거렸다.


백서진은 거친 숨을 내쉬며 바닥에 주저앉아 있었다. 그의 왼손은 이미 완전히 괴사하여 검게 변해 있었고, 가슴팍의 함몰된 묵철 흉갑 아래에서는 일곱 개의 검붉은 침공이 요동치며 화독의 아지랑이를 뿜어내고 있었다. 뼈를 깎는 고통이 전신을 지배했지만, 그의 차가운 안광만큼은 어둠 속에서도 흐려지지 않았다.


그때였다. 서진의 코끝으로 미세하고 기이한 향기가 흘러들었다.


그것은 흑토곡 특유의 썩은 진흙 냄새나 피비린내가 아니었다. 지독하리만치 정제되고, 마치 차가운 난초 향을 머금은 듯 은은하면서도 폐부를 찌르는 치명적인 독향(毒香). 백씨 의가의 가문 의술을 몸으로 익히고 심장에 박힌 칠성탈명침의 독기를 매일 다스려온 서진의 감각이 경고음을 울렸다.


‘사천당가(四川唐門)의 독이다.’


그것도 어설픈 하급 무사가 부리는 독이 아니었다. 독무를 완벽하게 통제하여 공기 중에 미세한 입자로 흘려보낼 수 있는 초일류 독수들의 흔적이었다. 서진은 빗자루를 짚듯 반토막 난 이가 빠진 검은 철검을 지면에 짚고 억지로 몸을 일으켰다. 오른쪽 무릎 관절은 백사담의 냉독으로 얼어붙어 뻣뻣하게 굳어 있었기에, 일어설 때마다 관절이 삐걱거리는 섬뜩한 소리가 석실에 나지막이 울렸다.


서진은 아진을 향해 조용히 손짓했다. 말을 잃은 시종 소년은 서진의 눈빛만 보고도 그의 의도를 알아채고 석실 구석의 어둠 속으로 기척을 완벽히 감추었다. 서진은 부러진 검을 질질 끌며 지하 폐가 밖으로 통하는 칠성동의 습하고 어두운 동굴 통로로 걸어 나갔다.


어둠 속에서 서진의 독기 감지(毒氣感知) 능력이 깨어났다. 눈을 감자 머릿속에 주변 십 보 안의 모든 기류와 독성 물질의 흐름이 선명한 붉은색 선으로 투시되듯 그려지기 시작했다.


동굴 샛길 바위 뒤편, 두 개의 기이한 독성의 소용돌이가 감지되었다. 하나는 거대하고 고요한 심연과 같았고, 다른 하나는 뱀처럼 날카롭고 변칙적으로 요동치고 있었다.


"거기 있는 거 다 아니까 나오시지."


서진의 갈라지고 메마른 목소리가 어두운 동굴 벽을 타고 울려 퍼졌다.


스으으.


바람을 타듯 소리 없이 보라색 장포를 걸친 날렵한 형체가 어둠 속에서 스르륵 나타났다. 전신에 기괴한 약초 주머니를 주렁주렁 매달고, 고양이 같은 눈망울을 번뜩이는 소녀였다. 사천당가의 이단아이자 천재 독수라 불리는 당소요였다. 그리고 그녀의 뒤편, 검은 가죽 안대를 차고 손끝이 독으로 검게 물든 노인이 그림자처럼 모습을 드러냈다. 사천당가 밀찰조의 조장이자 과거 사천당가를 스스로 이탈했던 독물 전문가, 당외였다.


"야, 진짜네? 사부님 말씀대로 단전이 완전히 깨지고 기경팔맥이 찢어진 폐물인데, 어떻게 이렇게 생생한 독기 검강을 품고 있는 거지? 게다가 내 독안개의 흐름을 눈감고도 정확히 읽어내다니……."


당소요는 보라색 부채를 입가에 대고 고양이처럼 눈을 가늘게 뜨며 서진을 투시하듯 바라보았다. 그녀의 시선은 서진의 가슴팍, 붕대 새로 새어 나오는 일곱 개의 검붉은 침공에 머물렀다.


"저 상처…… 저건 무림맹주 독고황의 비전 암기인 칠성탈명침이잖아? 심장에 저게 박히고도 살아 있는 인간이 존재했다니! 이건 의학적으로 불가능해. 심장이 뛰는 매 순간 독소가 온몸을 찢어발겼을 텐데, 어떻게 기맥을 유지하고 있는 거야?"


당소요의 목소리에는 적의보다 기이한 학술적 탐구욕과 흥분감이 가득 서려 있었다. 그녀에게 백서진은 처단해야 할 적이 아니라, 평생 한 번 마주할까 말까 한 기괴하고 완벽한 생체 실험용 관찰 대상이었다.


당외가 안대 너머로 차가운 살기를 뿜어내며 한 걸음 앞으로 나섰다.


"소요야, 방심하지 마라. 비록 사지가 망가진 폐인이라 하나, 저놈이 뿜어내는 기운은 평범한 사파의 독공이 아니다. 가문의 비전 침술을 뒤틀어 심장의 극독을 공력으로 강제 치환하는 금기 무공의 기운이다. 무림맹과 제갈세가가 눈에 불을 켜고 이 흑토곡을 뒤지는 이유가 바로 저놈이었군."


당외의 손끝에서 검푸른 독선들이 아지랑이처럼 피어올랐다. 사천당가의 정종 기공인 만독조화공의 위압감이 좁은 동굴 내부를 순식간에 압착해 왔다.


서진은 물러서지 않았다. 그는 절뚝거리는 오른쪽 다리를 단단히 디디고, 오른손으로 부러진 묵철검을 낮게 깔았다. 비록 왼손은 괴사하여 쓸 수 없었지만, 그의 오른손 아귀힘만큼은 묵철의 중량을 완전히 장악하고 있었다.


"당가가 왜 정파의 개가 되어 흑토곡까지 기어들어 왔는지 모르겠군. 맹주의 사냥개가 되어 내 목을 가져가려느냐?"


서진의 비웃음에 당소요가 부채를 가볍게 흔들며 생글생글 웃었다.


"아하하! 무림맹? 우리가 왜 그 위선적인 늙은이들 좋은 일을 해줘? 사천당가는 맹주의 명령 따위엔 관심 없어. 하지만…… 네 몸의 비밀에는 아주 관심이 많지. 네가 정말 저 칠성탈명침의 극독을 스스로 통제하고 있는 건지, 아니면 그냥 죽어가는 시체인지 내가 직접 확인해 봐야겠어!"


말이 끝나기도 전에, 당소요의 손가락 끝이 미세하게 튕겨 나갔.


핏! 핏! 핏!


소리도 없고, 빛도 반사하지 않는 사천당가의 기습 비기, 무영사신 암기 세 자루가 서진의 목덜미와 심장 혈도를 향해 쏘아져 들어왔. 일반적인 무인이라면 어둠 속에서 궤적조차 읽지 못하고 숨통이 끊어졌을 치명적인 암습이었다.


하지만 서진의 독기 감지(毒氣感知) 능력은 이미 허공에 퍼진 미세한 기류의 마찰과 암기에 묻은 독의 궤적을 붉은 실선으로 투시하고 있었다.


서진은 오른쪽 무릎의 동상 통증을 무시한 채, 오른손의 부러진 묵철검을 회전시켰다. 쓸쓸한 빗자루질의 궤적이 좁은 동굴 허공을 크게 쓸어내렸다.


깡! 깡! 깡!


날카로운 금속음과 함께 사방으로 불꽃이 튀었다. 무거운 묵철검의 넓은 검신이 보이지 않는 세 자루의 암기를 한 치의 오차도 없이 정확하게 튕겨낸 것이다. 튕겨 나간 암기들이 동굴 암벽에 박히며 치익 소리와 함께 돌을 녹여버렸다.


"와, 대단하다! 내 무영암기를 눈도 깜빡 안 하고 막아내네?"


당소요의 눈동자가 더욱 기괴한 안광으로 빛났다. 그녀는 서진의 반응 속도와, 그 부러진 사지로 펼쳐 보이는 정밀한 검로에 완전히 매료된 듯했다.


그때, 뒤에 서 있던 당외가 음산한 기세를 뿜어내며 손바닥을 내밀었다.


스으으으!


사천당가의 강력한 만독조화공 진기가 동굴 통로 전체를 검푸른 독안개 장벽으로 가로막으며 서진의 기맥을 압박해 들어왔. 서진은 소매 속의 은침들을 튕겨 암수투척(暗手投擲)으로 반격하려 했으나, 당외가 방출한 조화공의 독막에 은침들이 닿는 순간 치익 소리를 내며 녹아내려 무위로 돌아갔다. 일류 극치에 달한 당가 대고수의 독력은 서진이 감당하기에 너무도 무거웠다.


서진의 숨통이 턱 막혔다. 심장의 독침이 공명하며 목구멍으로 뜨거운 피가 울컥 솟구쳤다. 하지만 그는 쓰러지지 않았다. 오히려 입가에 묻은 피를 오른손 소매로 거칠게 닦아내며, 심장의 타오르는 화독을 척추 경맥으로 강제로 끌어내렸다.


음한독기 순환법의 극의.


서진의 전신에서 서늘하고 검붉은 아지랑이가 폭발하듯 뿜어져 나왔다. 부러진 묵철검 끝에 서린 검붉은 독기 검강이 두껍게 응축되며, 주변의 공기마저 하얗게 얼려버릴 듯한 서릿발을 일으켰다. 죽음을 각오하고 내력을 쥐어짜 내는 서진의 처절한 투지와 마성에, 당외마저 안대 너머로 눈매를 미세하게 찌푸리며 기세를 주춤했다.


그 무시무시한 기세의 충돌 속에서, 당소요가 갑자기 부채를 접으며 당외의 손을 만류했다.


"사부님, 잠깐만요! 지금 저 사람을 죽이면 너무 아깝잖아요. 저렇게 스스로 몸을 부수면서 독을 진기로 바꾸는 체질은 평생 다시 못 본다고요!"


당소요는 서진을 향해 한 걸음 더 다가왔다. 검붉은 독기 검강이 뿜어내는 기운이 그녀의 보라색 도포 자락을 그을렸지만, 그녀는 전혀 개의치 않는다는 듯 기괴한 미소를 지었다.


"백서진, 우리 거래 하나 할까? 우린 무림맹의 추격조도 아니고, 제갈세가의 사냥개도 아냐. 네가 여기서 어떻게 독공을 운용하는지 내가 옆에서 관찰하게 해준다면, 우리 당가 밀찰조는 네 존재를 무림맹에 보고하지 않을게. 제갈세가의 쥐새끼들이 널 사냥하러 올 때 방관해 줄 수도 있고. 어때?"


서진은 대답하지 않았다. 그저 묵철검을 쥔 손에 더욱 힘을 줄 뿐이었다. 그 비정하고 처절한 대치 속에서, 당소요는 서진의 살기 어린 경계를 완전히 무시한 채 고양이처럼 기민한 신법으로 그의 사각지대를 파고들었다.


스슥.


서진이 검을 휘두르기도 전에, 당소요의 하얗고 가느다란 손가락이 허공을 가로질렀다. 그녀는 서진의 반토막 난 검은 철검 끝에서 아지랑이처럼 피어오르는 검붉은 안개를 향해 손을 뻗었다.

HẾT CHƯƠNG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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