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심연 속의 은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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축축하고 차가운 흙내가 사정없이 코끝을 찔렀다. 귀를 찢을 듯이 울려 퍼지던 제갈세가 장로 제갈송의 검풍 소리도, 서고를 통째로 집어삼키던 화염의 포효도 이제는 아득한 꿈처럼 멀어져 있었다.


백서진은 차가운 지면 위를 쓸려 가고 있었다. 전신의 혈관이 터져 나가며 삼베 도포를 적신 피가 진흙과 뒤엉켜 검붉은 흔적을 남겼다. 그의 거구를 필사적으로 끌고 가는 것은 열두 살밖에 되지 않은 벙어리 시종, 아진이었다. 아진은 혀가 잘린 목구멍으로 꺽꺽거리는 울음소리를 삼키며, 서진의 겨드랑이 사이에 양손을 끼워 넣은 채 진흙바닥을 기고 있었다. 소년의 작은 가죽신은 이미 닳아 터져 발가락 끝에서 피가 배어 나오고 있었다.


"아…… 진……."


서진이 갈라진 목소리로 아진의 이름을 불렀으나, 입술을 열 때마다 울컥하며 검붉은 독혈이 쏟아져 나왔다.


일시적 일류 경맥 복구의 대가는 참혹했다. 황금 침 서른여섯 개를 전신에 박아 강제로 이끌어냈던 공력은 이미 신기루처럼 사라진 지 오래였다. 그 반동으로 찢어진 기경팔맥의 단면들은 마치 수천 마리의 불개미가 갉아먹는 듯한 극통을 뿜어내고 있었다. 하지만 진짜 재앙은 가슴속에서 도사리고 있었다.


화아아악!


가슴 깊은 곳에서 끔찍한 고열이 치솟았다. 서고 방화의 열기와 무리한 공력 운용으로 인해, 심장 주변에 박혀 있던 일곱 개의 칠성탈명침(칠성탈명침)이 마침내 통제를 잃고 요동치기 시작한 것이다. 이것이 바로 칠성탈명침 1차 대폭주(칠성탈명침 1차 대폭주)였다. 독침들이 심장 근육을 더 깊숙이 파고들 때마다 전신의 피가 끓어올라 기도를 막았고, 폐부는 뜨거운 쇳물을 들이마신 것처럼 타들어 갔다.


아진은 타버린 서고의 잔해 아래, 무너진 책장 뒤에 숨겨져 있던 좁은 석문으로 서진을 이끌었다. 과거 백년 전 의선 갈홍이 은거하며 금기된 학문을 연구했다는 비밀 거처, 의선의 지하 폐가(의선의 지하 폐가)로 통하는 돌계단이었다. 아진은 서진의 거구를 업다시피 하여 어두운 지하 계단을 한 계단씩 굴러떨어지듯 내려갔다. 무거운 돌문이 쾅 소리를 내며 닫히자, 지상의 소음은 완벽히 차단되고 오직 서진의 거친 천식 같은 호흡 소리만이 지하 석실을 가득 메웠.


지하 석실은 한 치 앞도 보이지 않는 암흑이었으나, 서진의 머릿속은 오히려 붉은 광채로 번뜩이고 있었다. 심장의 독기가 뇌하수체를 침범하며 극심한 환각이 그의 시야를 덮친 것이다.


‘서진아.’


어둠 속에서 은은한 약초 향과 함께 온화하면서도 강직한 목소리가 들려왔다.


서진의 피눈물로 흐려진 시야 너머로 한 사내의 형상이 어렴풋이 모습을 드러냈다. 단정한 백색 도포를 입고 인자한 미소를 짓고 있는 사내. 백씨 의가의 전 가주이자 그의 자애로운 부친, 백무흔이었다. 하지만 이내 부친의 백색 도포가 붉은 선혈로 물들기 시작했다. 목줄기에서 검붉은 피를 흘리며 참수당하던 가문의 마지막 날이 부친의 얼굴 위로 겹쳐졌다.


‘서진아, 이것이 내가 너에게 가르친 의술의 길이더냐. 사람을 살려야 할 침으로 네 육체를 찢고, 남의 피를 흘려 복수를 탐하는 것이 정녕 네가 선택한 삶이란 말이냐.’


부친의 의념(백무흔 (환각))이 서진의 뇌리를 사정없이 다그쳤다. 서진은 가슴을 쥐어뜯으며 마음속으로 절규했다.


‘의술로는 아무것도 지키지 못했습니다! 고결한 인술을 베풀던 가문이 정파의 위선자들에게 도륙당할 때, 하늘은 침묵했습니다! 저들을 모조리 찢어 죽이기 전에는 저 또한 죽을 수 없습니다!’


부친의 환영은 슬픈 눈빛으로 서진을 바라보았다. 그의 손길이 서진의 타들어 가는 이마를 어루만지는 듯했다.


‘그렇다면 살아남아라. 살아남아 네가 선택한 마도(魔道)의 무게를 끝까지 짊어져라. 복수의 끝에서 네 영혼이 돌이 될지언정, 꺾이지 마라.’


부친의 목소리가 멀어지며 서진은 번개에 맞은 듯 정신을 차렸다. 환각이 걷힌 석실 안, 아진이 울부짖으며 서진의 가슴팍을 흔들고 있었다. 서진의 가슴에서는 칠성탈명침의 화독이 뿜어내는 검붉은 연기가 피어오르고 있었고, 전신의 피부는 열기로 인해 가뭄에 논바닥 갈라지듯 벌겋게 터져 나가고 있었다. 이대로 두면 심장이 타버려 즉사할 것이 분명했다.


"아…… 진…… 침구함……."


서진은 손가락 끝 감각이 사라져가는 오른손을 뻗어 석실 중앙의 돌책상을 가리켰다. 그곳에는 낡은 먼지 더미 속에 묻혀 있던 묵직한 무쇠 상자가 놓여 있었다. 백년 전 의선 갈홍이 사용했다는 의선 갈홍의 침구함(의선 갈홍의 침구함)이었다. 백년의 세월 동안 지하의 맹독성 습기와 음기를 흡수하여, 상자 표면은 거무죽죽하고 음산한 독성을 머금은 채 검붉게 변해 있었다.


아진은 서진의 뜻을 알아채고 재빨리 돌책상으로 달려가 침구함을 통째로 안고 돌아왔. 서진은 떨리는 오른손으로 침구함 바닥의 비밀 걸쇠를 밀어내어 뚜껑을 열었다.


스으으으.


침구함이 열리자마자 뼈를 찌르는 듯한 차가운 냉독의 기운이 석실 안으로 퍼져 나갔다. 그 안에는 세월의 독기에 찌들어 시커멓게 변한 무쇠 침들과, 서진이 품속에 간직해 온 황금 침구 세트가 나란히 빛나고 있었다.


일반적인 자침으로는 이 폭주하는 칠성탈명침의 열독을 막을 수 없었다. 독기를 내공으로 전환하는 역침쇄명결의 수련 법칙에 따라, 가장 가혹하고 자학적인 방식으로 스스로의 혈도를 파괴해야만 했다. 서진은 뇌공차단 호흡법을 극한으로 전개하여 뇌로 향하는 모든 통각 신경을 강제로 잠가 버렸다. 고통을 느끼지 못하게 만드는 방어막이었으나, 육체가 파괴되는 물리적 충격까지 없앨 수는 없었다.


서진은 이빨을 악물고 침구함에서 독기에 찌든 차가운 무쇠 장침 한 자루를 뽑아 들었다.


그리고 망설임 없이, 부러져서 덜렁거리는 오른팔 경맥의 단면(기경팔맥의 끊어진 틈새)을 향해 장침을 수직으로 깊숙이 밀어 넣었다.


뿌드드득!


쇠붙이가 으스러진 뼈와 찢어진 힘줄 사이를 헤집고 들어가는 섬뜩한 마찰음이 석실에 울려 퍼졌다. 통각을 차단했음에도 불구하고, 육체가 느끼는 근원적인 거부감으로 인해 서진의 전신이 활처럼 팽팽하게 꺾이며 비틀렸다. 눈동자가 순간적으로 하얗게 뒤집혔고, 코와 귀에서 붉은 피가 분수처럼 뿜어져 나왔다. 부러진 경맥의 단면에 박힌 무쇠 침은 새어 나가던 진기를 물리적으로 고정하는 족쇄가 되었다.


"윽…… 흐으윽!"


서진은 비명을 삼키며 이번에는 가문의 비보인 황금 침 세 자루를 꺼냈다. 황금 침은 기운의 전도율이 일반 은침보다 백 배 이상 높아, 독기의 흐름을 통제하기에 가장 완벽한 매개체였다.


서진은 스스로의 상체를 내려다보았다. 가슴팍의 함몰된 묵철 흉갑 아래로, 일곱 개의 검붉은 침공이 요동치며 화독의 아지랑이를 뿜어내고 있었다. 독고황이 자신을 죽이려 한 것이 아니라, 백씨 가문의 특이 체질을 이용해 체내에서 극독을 정제하려 했다는 독고황이 독침을 박은 진짜 목적(독고황이 독침을 박은 진짜 목적)이 가슴의 흉터들을 볼 때마다 뼈에 사무치게 다가왔다.


‘나를 독을 담는 그릇으로 쓰려 했다면, 그 독으로 네놈의 목을 베어주마.’


서진은 황금 침 한 자루를 칠성탈명침이 박힌 심장 바로 옆, 거궐혈(巨闕穴)을 향해 망설임 없이 찔러 넣었다.


지익!


심장 근육을 직접 관통하는 듯한 끔찍한 충격과 함께, 칠성탈명침의 화독이 황금 침을 타고 역류하기 시작했다. 서진의 전신 기맥이 불타는 달구어진 철사로 휘감기는 듯한 극통이 휘몰아쳤다. 이어서 그는 남은 두 자루의 황금 침을 심장 좌우의 보조 혈도에 깊숙이 밀어 넣었다. 세 자루의 황금 침이 심맥 주위를 삼각형의 구도로 걸어 잠그며 폭주하던 화독의 기류를 억지로 가두었다.


그 순간, 갈홍의 무쇠 침에 스며들어 있던 백년의 음한 독기와 심장의 타오르는 화독이 서진의 체내에서 격렬하게 충돌하기 시작했다. 뜨거운 불길과 차가운 얼음 칼날이 경맥 내부에서 정면으로 맞부딪치며 사지를 비틀어 놓았다. 전신의 뼈마디가 삐걱거리며 어긋나는 소리가 어둠 속에서 기괴하게 울렸다.


"아아아아아!"


서진은 참지 못하고 짐승 같은 비명을 지르며 바닥을 굴렀다. 그의 오른손 손톱이 바닥의 돌판을 긁어내며 검게 뒤틀리고 갈라졌다. 눈에서 흘러내린 피눈물이 뺨을 타고 흘러내려 차가운 지하 석실 바닥을 적셨다.


하지만 서진은 정신을 놓지 않았다. 그는 이성을 잃지 않기 위해 혀를 깨물며 역침쇄명결 3성의 운기 구결을 완성해 나갔. 상충하는 두 극독의 압력을 오른손 끝으로 집중시켜 배출구로 삼았다.


체내에서 소용돌이치던 검붉은 살기와 음한의 독기가 오른팔 경맥을 타고 폭발하듯 흘러내려, 그가 쥐고 있던 반토막 난 묵철검(이가 빠진 검은 철검)의 검신으로 쏟아져 들어갔.


웅웅웅웅!


부러진 검은 철검이 스스로 울부짖듯 기괴한 명음을 토해냈다. 검신에 새겨져 있던 미세한 균열들 사이로 검붉고 칠흑 같은 독기가 스며들며, 반토막 난 검끝 너머로 무형의 기운이 뻗어 나가기 시작했다.


치이이익!


그것은 단순한 기공의 흐름이 아니었다. 상대의 병기를 녹이고 뼈를 부식시키는 극단적인 파괴력의 기운, 역침쇄명 3성 (독기 검강 형성)(역침쇄명 3성 (독기 검강 형성))의 검강이었다. 서늘하면서도 거무죽죽한 검붉은 검강이 반토막 난 묵철검 끝에서 일렁이며 주변의 돌벽을 스치자, 단단한 대리석 벽면이 치익 소리를 내며 녹아내려 검은 그을음을 남겼다.


서진은 피눈물로 가득 찬 눈을 부릅뜨고, 검붉게 일렁이는 마검의 칼날을 바라보았다. 마침내 스스로의 육체를 파괴하고 얻어낸, 위선적인 정파의 절정 고수들을 척살할 무자비한 심판의 힘이었다.

HẾT CHƯƠNG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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