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광산에 드리운 검은 그림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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독배의 소동이 가라앉은 청룡성 안채는 깊은 침묵에 잠겨 있었다. 제갈진아가 처방해 준 남옥곡의 비전 보양재 덕분에 전신의 경맥을 타고 흐르던 마맥초의 지독한 한기는 간신히 억눌렸으나, 강태현의 몸은 여전히 유리 인형처럼 위태로웠다. 소매 깃으로 가볍게 입가를 훔칠 때마다 옅은 혈향이 묻어나는 것은 그가 짊어진 선천적 맥 폐색증의 가혹한 굴레였다.


하지만 태현은 쉴 수 없었다. 휠체어에 앉아 창밖의 칠흑 같은 어둠을 응시하는 그의 눈빛은 얼음처럼 차갑고 맑았다.


‘숙부 강태식이 가짜 의원을 보내 나를 독살하려 한 음모는 일단 무산되었다. 제갈진아가 직접 그 사기꾼의 손목을 꺾고 자백을 받아냈으니, 숙부는 지금쯤 자신의 흔적을 지우기 위해 필사적으로 꼬리를 자르고 있겠지.’


그러나 강태식은 청룡령에서 수십 년간 권력을 탐해온 노회한 자였다. 코너에 몰린 쥐가 가장 사납게 이빨을 드러내듯, 독살이라는 음험한 수가 막힌 이상 그는 이제 가문의 마지막 명맥이자 세 가문의 이권이 얽혀 있는 가장 거대한 화약고를 건드릴 터였다.


바로 청룡령의 심장, 천신 영석광산(Cheonshin Spirit Stone Mine)이었다.


스스슥.


서재의 어두운 그림자가 미세하게 흔들리더니, 창문이 소리 없이 열렸다. 기척을 완벽히 숨긴 채 방 안으로 스며든 것은 웅장한 체구에 구리빛 피부, 그리고 왼쪽 뺨에 호쾌한 흉터를 지닌 사내였다. 그의 어깨에는 용의 송곳니를 닮은 거대한 용아대도(Dragon Fang Greatsword)가 묵직하게 얹혀 있었다.


태현의 유일한 의형제이자, 청룡령 무소속 용병대의 수장인 백룡(Baek Ryong)이었다.


“도련님, 아니 아우님. 몸은 좀 어떠한가? 가짜 의원 놈에게 독배를 받았다기에 내 당장 강태식의 목을 베러 가려 했다네.”


백룡이 호쾌하면서도 나직한 목소리로 말하며 어둠 속에서 걸어 나왔다. 그의 눈빛에는 의동생을 향한 진심 어린 걱정과 분노가 서려 있었다. 태현은 온화한 미소를 지으며 가볍게 고개를 흔들었다.


“형님, 제 몸은 제갈진아 부인의 의술 덕에 무사하니 걱정 마십시오. 사사로이 움직여 숙부에게 명분을 줄 필요는 없습니다. 그보다, 광산 쪽의 동향은 어떠합니까?”


백룡은 용아대도를 바닥에 가볍게 내려놓으며 안색을 굳혔다.


“아우님의 예측이 정확했네. 내 녀석들을 시켜 천신 영석광산 주변을 밀착 감시하게 했는데, 이상한 움직임이 포착되었네. 최근 이틀간 광산 내부의 경비가 비정상적으로 느슨해졌더군. 북무관과 남옥곡, 적련교의 무사들이 교대하는 틈을 타서 강태식의 사주를 받은 방계 장로 강민수(Kang Min-su)의 수하들이 광산 지하로 은밀히 드나들고 있네. 녀석들의 수레에서 독특한 기름 냄새와 화약 냄새가 풍겼다는 보고가 있었네.”


태현의 눈매가 날카롭게 가라앉았다.


“기름과 화약이라... 광산을 통째로 장악할 수 없다면, 아예 붕괴 사고를 조작해 제 관리 책임을 묻고 맹주직과 가주 대행 자격을 박탈하겠다는 속셈이군요.”


태현은 품속에서 나침반 모양의 백옥 법보인 백옥 라반(White Jade Compass)을 꺼내 들었다. 그의 손끝에서 흘러나온 미세한 영기가 라반의 표면에 닿자, 백옥의 표면 위로 청룡령 지하를 흐르는 영맥의 지도와 기류가 미세한 빛의 선으로 그려지기 시작했다.


스르르릉.


라반의 바늘이 비정상적으로 요동치며 광산 지하 1층 채굴 구역의 위치에서 붉은빛을 발했다. 영맥의 흐름이 인위적으로 왜곡되고 있다는 명백한 징후였다.


“강민수가 광산 인부들을 매수하여 지하 1층의 지지대를 폭파하려 하는군요. 단순한 파괴가 아니라, 세 가문의 광부들이 가장 많이 몰리는 시간대에 사고를 일으켜 내홍을 유도하려는 심산입니다. 광산이 무너지면 북무관, 남옥곡, 적련교는 서로가 음모를 꾸몄다며 칼을 겨눌 것이고, 청룡령은 순식간에 피비린내 나는 전장으로 변하겠지요.”


백룡이 주먹을 불끈 쥐며 대도를 치켜세웠다.


“비열한 자식들! 아우님, 내 당장 백룡용병단(Baek Ryong Mercenary Group) 전원을 이끌고 광산으로 진격해 강민수의 수하들을 모조리 베어버리겠네. 현장을 덮치면 숙부 놈도 발뺌하지 못할 걸세!”


“안 됩니다, 형님.”


태현이 단호하게 백룡을 만류했다.


“우리가 먼저 관군이나 용병을 움직여 광산을 습격하면, 강태식은 도리어 우리가 사적인 무력으로 광산을 독점하려 한다며 원로회를 선동할 것입니다. 저택 평화 조약의 허점을 찔러 우리를 역모로 몰아세우겠지요. 적들이 파놓은 정치적 덫에 제 발로 걸어 들어갈 수는 없습니다.”


태현은 휠체어 옆의 비밀 보관함에서 묵직한 가죽 주머니를 꺼내 백룡의 앞에 놓았다. 주머니가 탁자에 닿자 짤랑이는 맑은 은화 소리가 방 안을 채웠다. 금풍상단의 상단주 마태상(Ma Tae-sang)에게 지원받은 최고급 백은화(White Silver Coins) 1만 냥이었다.


“이것은 용병단의 군비입니다. 형님, 정면 돌파 대신 우회 전술을 써야 합니다. 백룡용병단 전원을 광산의 정문이 아닌, 험준한 천신 광산 배후 절벽(Cheonshin Mine Rear Cliff) 쪽에 매복시키십시오. 그곳은 경비가 닿지 않는 사각지대이자, 강민수의 수하들이 폭약을 설치하고 도망칠 유일한 퇴로입니다.”


백룡은 태현이 제시한 자금의 규모와 치밀한 매복 전술에 탄복하며 뺨의 흉터를 쓸어내렸다.


“절벽 배후에 매복하여 도망치는 쥐새끼들을 생포하고 물증을 확보하라는 뜻이군. 역시 아우님의 머리는 천하제일이네! 이 백룡, 아우님의 지략을 전적으로 믿고 움직이겠네.”


백룡은 호탕하게 웃으며 1만 냥의 은화 주머니를 챙겨 들고 용아대도를 어깨에 메었다. 그는 태현의 마른 어깨를 가볍게 토닥이며 신형을 날려 어둠 속으로 소리 없이 사라졌다. 의형제의 든든한 뒷모습을 바라보며 태현은 가슴 깊은 곳에서 올라오는 기침을 참아냈다.


‘이제 덫은 놓았다. 강민수, 네가 도망칠 구멍은 존재하지 않는다.’


그러나 시간은 태현의 예상보다 훨씬 빠르게 흘러갔다. 백룡이 광산으로 출발한 지 채 두 시진도 지나지 않은 시점이었다.


쿠구구구구궁-!


갑자기 청룡성 전체가 거대한 대지진이라도 일어난 듯 격렬하게 흔들렸다. 서재의 서책들이 바닥으로 떨어지고, 찻잔이 깨지는 요란한 파편 음이 고요한 밤의 침묵을 찢어발겼다. 저택 외곽에서 들려오는 거대한 폭음은 단순한 자연재해가 아니었다.


쾅!


서재의 문이 거칠게 열리며, 전담 시종 길동이 얼굴이 하얗게 질린 채 숨을 헐떡이며 난입했다.


“도, 도련님! 큰일 났습니다! 방금 천신 영석광산 지하 1층 구역이 완전히 무너져 내렸습니다! 채굴 중이던 세 가문의 광부 수십 명이 지하 갱도에 그대로 매몰되었다고 합니다!”


길동의 절규가 방 안을 뒤흔드는 순간, 태현의 눈동자가 거칠게 흔들렸다. 적들의 실행 속도가 예상보다 빨랐던 것이다. 광산 지하에 잠겨 있던 검은 그림자가 마침내 청룡령 전체를 집어삼키기 위해 그 거대한 이빨을 드러내고 있었다.

HẾT CHƯƠNG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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