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독배를 든 가짜 의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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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지훈의 정강이뼈가 무참히 으스러지던 그날 밤의 소란은 청룡성 강씨 소공작 저택을 단숨에 얼어붙게 만들었다. 사법을 집행하는 진장로와 중립파 원로들이 지켜보는 앞에서 완벽한 가법(家法)과 제국 대명률을 들이대며 역공을 가한 강태현의 지략은 가문 내의 판도를 흔들기에 충분했다. 그러나 그 승리의 대가는 가녀린 태현의 육체에 고스란히 누적되어 있었다.


“콜록! 쿨럭...!”


깊은 밤, 태현의 개인 침소 안에서 억눌린 기침 소리가 새어 나왔다. 하얀 비단 손수건으로 입가를 훔치자, 어두운 방 안에서도 선명하게 보일 만큼 붉은 선혈이 묻어났다. 선천적 맥 폐색증(Congenital Vein Occlusion). 태어날 때부터 전신의 기혈 맥이 단단히 막혀 내공을 쌓을 수 없는 지독한 체질에 더해, 어제 지훈을 제압하기 위해 기믹 휠체어의 반발 결계를 강제로 가동했던 충격이 척추를 타고 올라와 극심한 신경통을 유발하고 있었다.


“도련님... 괜찮으십니까? 오칠공 어르신께서 전해주신 약선 탕약이라도 더 데워오겠습니다.”


휠체어 뒤에서 안절부절못하며 서 있던 전담 시종 길동이 울먹이는 목소리로 물었다. 태현은 가볍게 손을 흔들어 그를 만류했다. 창백하리만치 하얀 피부 위로 식은땀이 흘러내렸지만, 그의 단정한 이목구비와 깊은 눈빛만큼은 흔들림이 없었다.


“아니다, 길동아. 가만히 숨을 고르면 진정될 터이니 호들갑 떨지 말거라. 지금 저택 외곽에는 숙부님의 눈귀가 사방에 깔려 있다. 내가 약해진 모습을 보이면 저들은 즉시 움직일 게다.”


태현은 휠체어 등받이에 몸을 깊이 기댔다. 지극 한철로 보강된 골조가 든든하게 그의 척추를 지탱해 주었지만, 뼈마디를 파고드는 오한은 쉽게 가시지 않았다.


숙부 강태식은 절대 이대로 물러설 위인이 아니었다. 장남인 강지훈이 원로들 앞에서 반역죄로 몰려 후계 구도에서 완전히 도태되었으니, 이제 강태식이 취할 수 있는 선택지는 단 하나뿐이었다. 가주 대행인 자신을 소리 소문 없이 영구히 제거하는 것.


그리고 그 예상은 단 하루도 지나지 않아 현실로 다가왔다.


***


다음 날 오후, 태현의 안채 마당으로 기묘한 무리가 들어섰다. 가문 내에서 은밀히 강태식의 편에 서 있던 방계 무사들이 한 노인을 극진히 호위하며 걸어오고 있었다.


“소가주 대행님, 숙부 대감께서 대행님의 worsening된 병세를 걱정하시어 중원에서 명성이 자자한 신의(神醫)를 어렵게 초빙하셨습니다!”


방계 무사의 우두머리가 가식적인 미소를 지으며 외쳤다. 그의 뒤에서 걸어 나오는 노인은 그야말로 선풍도골(仙風道骨)의 풍모를 지니고 있었다. 화려하고 신비로운 문양이 수놓아진 백색 의원 포를 입고, 턱밑에는 하얗고 단정한 염소수염을 기른 노인. 그의 손에는 은침 통과 기묘한 향기가 풍기는 약상자가 들려 있었다.


약장수 사기꾼.


태현은 휠체어에 앉아 창밖으로 그를 바라보며 속으로 차갑게 웃었다. 천안통에 가까운 그의 안목은 노인의 걸음걸이와 미세한 호흡만으로 그가 무공이 전무한 사기꾼이자, 강태식의 지시를 받고 움직이는 하수인임을 단번에 간파했다.


“대행님을 뵙습니다. 소인은 중원 전역을 돌며 기경팔맥의 막힘을 뚫는 의술을 펼쳐온 약선(藥仙)이라 하옵니다.”


노인은 태현의 침소로 들어서며 정중하게 고개를 숙였다. 그의 목소리는 신뢰감을 주기에 충분할 만큼 묵직하고 온화했다.


“숙부님께서 저를 위해 이토록 귀한 분을 보내주시다니, 송구할 따름입니다. 콜록... 어서 모시거라.”


태현은 일부러 목소리를 더욱 가냘프게 떨며 지독한 병약함을 가장했다. 약장수 사기꾼의 눈에 미세한 탐욕과 방심의 빛이 스쳐 지나가는 것을 태현은 놓치지 않았다.


사기꾼 노인은 태현의 손목을 잡고 맥을 짚는 시늉을 했다. 그의 손가락이 태현의 뒤틀린 경맥에 닿자, 노인은 짐짓 심각한 표정을 지으며 깊은 한숨을 쉬었다.


“쯧쯧... 선천적으로 타고난 기맥의 막힘이 극에 달해 있군요. 어제 가문의 소란으로 큰 충격을 받으시어 심장의 열기가 장기까지 침투했습니다. 이대로 두면 사흘을 넘기지 못하고 전신이 마비되어 숨을 거두실 터입니다.”


옆에서 지켜보던 길동이 얼굴이 하얗게 질려 손을 떨었다. 사기꾼 노인은 기회를 놓치지 않고 자신의 품속에서 정교하게 가공된 가짜 만년삼 뿌리와 붉은 빛이 감도는 탕약 그릇을 꺼내 들었다.


“하지만 걱정하지 마십시오. 소인이 평생을 바쳐 정제한 이 '만년삼 탕약'을 복용하시면 뒤틀린 기맥이 즉시 정화되고 막힌 맥이 서서히 열릴 것입니다.”


노인이 탕약을 흔들자, 붉은 액체 위로 따뜻하고 향긋한 인삼의 내음이 피어올랐다. 겉보기에는 전설의 영약과 다름없는 완벽한 위장이었다. 가짜 약재상은 탕약에 특수한 향료를 섞어 독초 특유의 비린내를 철저하게 가려두었던 것이다.


그러나 태현의 눈은 속일 수 없었다.


'독소 식별안(Poison Identification Eye) 기동.'


태현의 맑은 동공이 일시적으로 투명한 에메랄드빛으로 미세하게 변했다. 그의 시야 속에서, 붉은 탕약 그릇 주변의 공기가 붉은색이 아닌 기괴하고 음산한 보랏빛 기운으로 시각화되어 소용돌이치기 시작했다.


'마맥초(Ma-maek-cho).'


뿌리 끝에 맹독이 서린 남옥곡 경계의 희귀 독초. 선천적 맥 폐색증을 앓는 자가 저 독초의 즙을 마실 경우, 전신의 기혈이 순식간에 영구히 굳어 심정지로 즉사하게 된다. 강태식은 태현이 원래 병약했다는 사실을 이용해, 마맥초 성분의 폐맥단(Vein-Occluding Pill)을 처방하여 소리 소문 없는 합법적 병사를 기획한 것이었다.


태현은 속으로 백독수련법(Hundred Poisons Cultivation Method)의 기운을 조용히 갈무리했다. 어릴 적 친모의 의문사 이후 독살 위험에 대비해 온갖 독초를 미량씩 복용하며 다져온 그의 감각은, 이 독약이 지닌 파괴력이 얼마나 치명적인지 온몸의 신경으로 경고하고 있었다.


하지만 태현은 당황하는 대신, 나약하게 흔들리는 손으로 탕약 그릇을 받아들었다.


“오... 이토록 귀한 영약을 제게 주시다니... 숙부님의 은혜를 평생 잊지 못할 것입니다.”


태현은 감격에 겨운 표정으로 탕약 그릇을 입가로 가져갔다. 가짜 약재상의 입꼬리가 승리감으로 미세하게 떨리는 순간이었다.


그때였다. 탕약에서 기화된 미량의 마맥초 독기가 태현의 콧속으로 흘러들었다. 백독불침에 가까운 체질이었음에도 불구하고, 지독한 폐맥 상태의 육체는 즉각적인 거부 반응을 일으켰다.


“우욱... 콜록! 쿨럭!”


태현이 격렬한 기침 발작과 함께 전신을 부르르 떨었다. 호흡 곤란이 찾아오며 가슴이 타들어 가는 듯한 극심한 고통이 뇌리를 때렸다.


동시에 태현은 의도적으로 손가락의 힘을 완벽히 풀었다.


쨍그랑-!


요란한 파편 음과 함께 붉은 탕약 그릇이 바닥으로 떨어져 박살이 났다. 붉은 액체가 침소의 값비싼 실크 카펫 위로 사방으로 튀어 번져나갔다.


“엇! 대, 대행님!”


가짜 약재상이 경악하여 소리쳤다. 태현은 입가에 묻은 피를 훔치며 휠체어 등받이에 쓰러지듯 누워 거친 숨을 몰아쉬었다.


“아... 내 손이 미끄러져... 숙부님이 주신 영약을... 쿨럭!”


“이, 이 무슨 불경한 짓입니까! 소인이 평생을 바쳐 구한 만년삼 탕약을 이리 허무하게 버리시다니요!”


사기꾼 노인이 당황함을 분노로 위장하며 태현을 윽박지르려 했다. 바닥에 엎질러진 독약의 증거가 시간이 지나면 카펫을 손상시킬 것이기에, 그의 눈빛에는 초조함이 가득했다.


실제로 탕약이 닿은 카펫 표면에서 미세하게 보랏빛 연기가 피어오르며 실이 녹아내리기 시작하고 있었다. 일반인의 눈에는 단순한 뜨거운 열기처럼 보였으나, 독물에 정통한 자의 눈은 결코 속일 수 없는 현상이었다.


바로 그 순간, 태현의 침소 문이 거칠게 열렸다.


“비키거라.”


향긋하면서도 서늘한 약초 내음과 함께, 에메랄드빛 비단 의복을 입은 여인이 차가운 바람을 몰고 방 안으로 걸어 들어왔다.


남옥곡주(Namok Valley Lord)이자 태현의 둘째 아내, 제갈진아였다.


지적이고 신비로운 분위기를 풍기는 그녀의 미모는 평소와 다름없이 눈부셨으나, 지금 그녀의 맑은 눈동자에는 얼음장 같은 살기가 서려 있었다. 진아는 방 안에 퍼진 미세한 기화 독기를 맡는 순간, 자신의 전문 분야인 독술의 신경이 즉각적으로 경고를 울렸음을 깨달았다.


“진아 부인... 콜록... 여기까지 어찌 오셨습니까?”


태현이 위태롭게 숨을 쉬며 그녀를 바라보았다. 제갈진아는 쓰러질 듯한 태현의 창백한 안색을 보는 순간, 가슴속 깊은 곳에서 정체 모를 보호 본능과 분노가 치밀어 오르는 것을 느꼈다.


“서방님의 기맥이 이토록 상해 있는데, 가문의 허락도 없이 외인의 의원을 침소에 들이다니요. 게다가 이 비린내는 대체 무엇입니까?”


진아의 시선이 바닥에 깨진 붉은 탕약 자국과 서서히 녹아내리는 카펫으로 향했다. 사기꾼 노인은 진아의 압도적인 독술 대가(Poison Master)로서의 기세에 눌려 마른침을 삼켰다.


“곡, 곡주님! 소인은 그저 대행님의 기맥을 치료해 드리고자 만년삼 영약을 처방했을 뿐입니다!”


“만년삼?”


제갈진아가 차갑게 웃었다. 그녀는 허리춤에서 비취빛 광택이 흐르는 정교한 비취 침(Jade Needle)을 꺼내 들었다.


“남옥곡의 곡주 앞에서 감히 약술을 논하다니, 간이 배 밖으로 나왔구나.”


진아는 망설임 없이 바닥에 엎질러진 붉은 액체에 비취 침의 끝을 살짝 담갔다.


치이익-!


침끝이 액체에 닿는 순간, 은은한 비취빛이 돌던 침이 마치 검은 먹물을 뒤집어쓴 것처럼 순식간에 칠흑 같은 색으로 변해버렸다. 침 주변에서 보랏빛 독안개가 미세하게 뿜어져 나오는 것을 본 진아의 얼굴이 무섭게 굳어졌다.


“독소 반응... 그것도 남옥곡 경계의 금기 구역에서만 자라는 마맥초(Ma-maek-cho)로구나.”


진아의 얼음 같은 안광이 가짜 약재상을 꿰뚫었다.


“마맥초는 맥 폐색증을 앓는 자의 기혈을 영구히 마비시켜 심장을 터뜨려 죽이는 극독이다. 이것을 만년삼이라 속여 내 서방님에게 먹이려 했다니... 감히 남옥곡의 비전 독초를 도용해 내 남편을 시해하려 한 것이냐!”


“그, 그것이 아닙니다! 소인은 그저 처방을 따랐을 뿐...!”


사기꾼 노인은 사천당가나 남옥곡의 정예 무인도 아닌 일개 사기꾼에 불과했다. 제갈진아가 뿜어내는 초절정 수준의 독압(毒壓) 앞에 노인은 다리가 풀려 바닥에 주저앉았다. 그는 뒤에 서 있던 방계 무사들을 바라보며 구원을 요청했으나, 무사들 역시 진아의 살기에 질려 검자루만 쥔 채 뒤로 물러섰다.


진아는 태현이 남옥곡의 비전 독경에 적힌 내용보다 훨씬 앞서 독소 식별안으로 이 독배를 간파하고, 자신을 이 자리에 불러내기 위해 의도적으로 잔을 엎질렀음을 직감적으로 깨달았다. 병약한 남편의 천재적인 지략과 대담함에 그녀의 가슴속에 기묘한 학술적 충격과 경외감이 휘몰아쳤다.


“서방님을 해치려 한 대가는 결코 가볍지 않을 것이다.”


제갈진아가 신형을 날려 순식간에 노인의 눈앞으로 다가갔다.


콰득-!


“아아악!”


차가운 뼈 부러지는 소리와 함께 진아의 가녀린 손가락이 사기꾼 노인의 손목을 가볍게 꺾어버렸다. 노인이 비명을 지르며 고통에 몸부림치는 찰나, 진아의 손끝에 들려 있던 검은 비취 침이 노인의 손목 혈도를 가차 없이 관통했다.


“남옥곡 비전의 마비독이다. 사흘 이내에 해독하지 않으면 전신의 신경이 녹아내려 평생 움직이지 못하는 고기덩어리가 될 터이지.”


진아는 피 묻은 비취 침을 털어내며, 공포에 질려 부르르 떠는 노인의 턱을 구두 끝으로 거칠게 치켜올렸다. 그녀의 목소리는 지옥의 심연에서 들려오는 것처럼 차가웠다.


“말하거라. 남옥곡의 독초를 네게 쥐여주며, 내 서방님을 독살하라고 사주한 배후가 누구냐?”


노인은 전신에 퍼져나가는 차가운 마비독의 공포와 손목이 으스러진 고통에 눈물과 콧물을 쏟아내며 비명을 질렀다.


“사, 살려주십시오! 대장로님! 강태식 대감께서 시키신 일입니다! 대감께서 제게 만은화를 주시며 대행님을 병사로 위장해 죽이라고 하셨습니다! 제발 살려주십시오!”


대회의실과 안채 사방을 울리는 노인의 절규가 밤공기를 찢었다. 뒤에 서 있던 방계 무사들은 자신들의 수장인 강태식의 이름이 완전히 까발려지자 얼굴이 흙빛으로 변해 무기를 떨어뜨렸다.


태현은 휠체어 위에서 창백한 미소를 지으며 깊은 숨을 내쉬었다. 숙부 강태식의 숨통을 완전히 끊어놓을 완벽한 사법적 외통수가 마침내 완성되는 순간이었다.

HẾT CHƯƠNG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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