관부의 배신과 불법 군령
어둡고 깊은 진아각(南쪽 처소)의 내실에는 지독하리만치 무거운 침묵이 내려앉아 있었다. 방 안을 가득 채운 것은 은은한 약초의 향기와, 숨이 넘어갈 듯 위태롭고 가느다란 한 사내의 호흡 소리뿐이었다.
“서방님…… 제발 눈을 떠보세요. 정신을 차리셔야 합니다.”
제갈진아의 고운 손끝이 미세하게 떨리고 있었다. 그녀는 에메랄드빛 비단 소매를 걷어붙인 채, 침상 위에 창백하게 누워 있는 강태현의 전신에 은침을 내리꽂고 있었다. 태현의 하얀 학자 도포는 지하 제단에서 토해낸 검은 피로 얼룩덜룩하게 물들어 있었고, 그의 맥박은 금방이라도 끊어질 듯 불규칙하게 요동쳤다.
선천적 맥 폐색증.
평생 그를 괴롭혀온 지독한 체질에 더해, 지하 제단에서 고대 군주의 황금 혈맥을 강제로 깨워 진법을 통제한 대가는 너무나 가혹했다. 그의 오장육부 경맥은 마치 칼로 갈가리 찢어발겨진 것처럼 엉망으로 뒤틀려 있었다. 일반적인 의원이라면 이미 손을 놓고 상례를 준비했을 터였다.
하지만 제갈진아는 남옥곡의 곡주이자 천하에 손꼽히는 의선(醫仙)이었다. 그녀는 입술을 깨물며 단전의 맑은 의가 내력인 옥녀심경의 기운을 끌어올렸다.
‘남옥 비전 의경(南옥 비전 의경), 제구장 맥박 조율 비술.’
진아는 은침 통에서 비취빛 광택이 흐르는 가장 얇은 침을 꺼내 들었다. 그녀의 안광이 예리하게 빛나며 태현의 가슴팍에 위치한 기해혈과 인당혈, 그리고 기맥이 꼬여 있는 우회 혈도들을 정확하게 관통했다. 은침 끝에서 에메랄드빛 미세한 서기가 피어오르며 태현의 뒤틀린 경맥으로 스며들었다. 막혀 있던 기혈이 억지로 정렬되며 태현의 창백한 이마에 식은땀이 흘러내렸다.
‘이 남자는 살아야 해. 나를 구하기 위해 그 험난한 사지에서 자신의 피를 바쳐 결계를 움직였던 사람이야. 내 목숨을 깎아서라도 결코 이대로 보내지 않겠어.’
진아의 마음속 깊은 곳에서 태현을 향한 애틋함과 집착이 끓어올랐다. 평생 남을 의심하고 독을 다루며 살아온 그녀였지만, 태현의 헌신 앞에서는 그 단단한 빗장이 완전히 부서져 내린 지 오래였다.
그때, 닫혀 있던 내실의 문이 급박하게 열리며 시종 길동이 눈물이 범벅이 된 얼굴로 뛰어들어왔다.
“곡주님! 큰일 났습니다! 지금 안채 밖이 난리가 났습니다!”
“조용히 하거라! 서방님의 침술 치료 중에는 미세한 소음도 치명적일 수 있다고 하지 않았느냐!”
진아가 차갑게 일갈하자, 길동은 급히 입을 틀어막으면서도 다급하게 속삭였다.
“그, 그게 아니라…… 관부의 부관 놈이 움직였습니다! 송대인 지방관께서 황실 세무 보고를 위해 잠시 자리를 비운 틈을 타서, 그 배신자 부관 놈이 관인을 도용했습니다!”
“관인을 도용해? 그자가 무슨 짓을 꾸민단 말이냐?”
진아의 눈매가 날카롭게 굳어졌다.
“부관 놈이 이건 대감의 사주를 받아 가짜 공문서를 작성했습니다! 천신 영석광산을 ‘황실에 반역을 도모하는 불법 마교 거점’으로 규정하고, 광산을 무력으로 강점하라는 군령을 내렸습니다! 지금 청룡성 방비대의 젊은 대장 조무현과 200여 명의 정예 관군이 광산으로 진격하고 있습니다!”
“뭐라구?”
진아의 손에 쥐여 있던 은침이 하마터면 태현의 혈도를 벗어날 뻔했다.
관부의 배신 부관. 황실 칙사 이건의 사냥개를 자처하던 그 교활한 자가 송대인의 부재를 틈타 청룡령의 심장인 영석 광산을 강탈하려 드는 것이다. 만약 광산이 황실의 손에 넘어가고 광부들이 반역죄로 체포된다면, 세 가문의 동맹은 물론이고 소공작 가문 역시 대역죄인의 누명을 쓰고 멸문당할 터였다. 이건은 무력 충돌을 유도하여 황실의 대규모 토벌군을 불러들일 완벽한 명분을 만들려 하고 있었다.
“으윽…… 쿨럭, 쿨럭!”
그 순간, 침상 위의 태현이 격렬한 기침과 함께 검붉은 피를 토해내며 서서히 눈을 떴다. 그의 눈동자는 여전히 창백하고 흐릿했지만, 그 깊은 심연 속에는 얼음처럼 차가운 지혜의 빛이 고스란히 살아있었다.
“서방님! 깨어나셨군요! 아직 움직이시면 안 됩니다!”
진아가 급히 그의 상체를 부축하려 했으나, 태현은 가느다란 손을 들어 그녀를 제지했다. 그는 입가에 묻은 피를 닦아내며 길동을 응시했다.
“길동아…… 방금 한 말, 사실이냐?”
“예, 도련님! 지금 조무현의 관군들이 이미 광산으로 향하는 청룡산 안개 계곡 입구까지 다다랐다고 합니다! 북무관의 무사들이 막아서려 했으나, 부관 놈이 위조된 관인이 찍힌 군령을 들이밀며 반역죄로 다스리겠다고 협박하여 대치 중이라 합니다!”
태현은 가쁜 숨을 몰아쉬며 머릿속으로 빠르게 판세를 읽어내려갔다.
‘이건이 결국 얄팍한 수를 썼군. 관부의 명분을 도용해 우리를 반역자로 몰아세우려는 속셈이다. 여기서 북무관이나 적련교가 관군과 무력으로 충돌하는 순간, 황실은 기다렸다는 듯이 대군을 파견해 청룡령을 초토화할 것이다. 정면 충돌은 곧 파멸이다. 무혈(無血)로 저들의 손발을 묶어야 한다.’
태현은 떨리는 몸을 일으켜 침상 옆에 놓인 목재 휠체어로 시선을 돌렸다. 철무기의 공방에서 임시로 수리해 바퀴 축만 고정해 둔 초라한 휠체어였다. 정밀한 암기 기믹은 파손되어 작동하지 않았지만, 지금은 그것이 문제가 아니었다.
“진아 부인…… 나를 휠체어에 태워주시오.”
“서방님! 미쳤습니까? 지금 온몸의 경맥이 찢어지기 일보 직전입니다! 한 걸음만 움직여도 기맥이 역류해 목숨이 위험해요!”
진아가 눈물을 흘리며 그의 앞을 가로막았다. 하지만 태현은 그녀의 따뜻한 손을 지그시 맞잡으며 온화하지만 거역할 수 없는 군주의 눈빛으로 응시했다.
“내가 가지 않으면 가문도, 광산의 백성들도, 그리고 나와 맹세한 아내들도 모두 대역죄인의 사슬에 묶이게 되오. 내 몸이 부서지더라도 저들의 발걸음을 멈춰 세워야 하오. 진아 부인, 나를 믿어주시오.”
태현의 확고한 진심에 진아는 결국 입술을 깨물며 고개를 끄덕였다. 그녀는 태현을 조심스럽게 안아 휠체어에 앉히고, 그의 소매 속에 비상용 은침 통을 단단히 쥐여주었다.
“길동아, 백룡 형님께 은밀히 전령을 보내라. 용병단을 이끌고 청룡산 안개 계곡의 배후 절벽과 퇴로를 소리 없이 포위하게 하라. 단, 내가 신호를 주기 전까진 절대로 관군과 칼을 섞어서는 안 된다.”
“예, 도련님! 즉시 움직이겠습니다!”
길동이 서당 밖으로 바람처럼 뛰어 나갔다. 태현은 휠체어 바퀴를 움켜쥐며 차가운 오한을 견뎌냈다. 전신이 얼어붙는 듯한 고통이 밀려왔지만, 그의 머릿속은 오직 관군의 진격을 멈출 법적 허점과 심리적 덫을 설계하는 계산으로 가득 차 있었다.
***
험준하고 기괴한 소나무들이 늘어선 청룡산 안개 계곡 입구.
자욱한 백색 안개가 계곡 전체를 휘감아 한 치 앞도 내다보기 힘든 음산한 기운이 감돌고 있었다. 그 계곡의 외길을 따라, 붉은색 방비대 장수 갑옷을 입은 조무현이 관군 200여 명을 이끌고 삼엄하게 진격하고 있었다. 철갑옷이 부딪히는 차가운 쇳소리가 협곡의 정적을 사정없이 찢어발겼다.
“대장! 진격 속도를 더 올리십시오! 광산의 마교 무리들이 도망치거나 방어선을 구축하기 전에 단숨에 들이쳐 압수해야 합니다!”
조무현의 옆에서 말을 타고 달리는 사내가 교활하게 눈을 번뜩이며 윽박질렀다. 지방관 송대인의 밑에서 일하던 배신자 부관이었다. 그의 품속에는 송대인의 직인을 도용해 위조한 시커먼 군령장이 단단히 보관되어 있었다.
조무현은 고삐를 쥔 손에 힘을 주며 미간을 찌푸렸다.
“부관 대감, 아무리 생각해도 이 군령은 너무 갑작스럽습니다. 송대인 대감께서 직접 내리신 명령이 맞습니까? 자치 광산을 무력으로 강점하는 것은 황실 법률상 영지 자치법 조항에 위배될 위험이 있습니다.”
“오만하구나, 조 대장!” 부관이 버럭 소리를 질렀다. “지방관부의 공식 관인이 찍힌 군령장이다! 게다가 이 명령의 배후에는 황실에서 파견된 이건 대감의 비호가 있음을 잊었느냐? 감히 황실의 명을 의심하여 반역의 길을 걷겠다는 게냐!”
이건의 이름이 나오자, 젊은 무장 조무현의 안색이 미세하게 굳어졌다. 황족 이건의 잔혹함과 권세는 제국 전역에 자자했다. 일개 변방의 방비대장인 자신이 거스를 수 있는 존재가 아니었다.
“……알겠습니다. 진격하라!”
조무현이 칼을 치켜들며 군사들을 재촉하려던 바로 그 순간이었다.
스으으으…….
안개 계곡의 좁은 일방통행로 저편에서, 차가운 바람을 타고 자욱한 백색 서기가 소용돌이치며 밀려왔다. 기묘하리만치 무거운 침묵이 관군들의 발걸음을 멈추게 만들었다.
“대장! 전방에…… 누군가 있습니다!”
보초병의 다급한 목소리에 조무현은 급히 말의 고삐를 당겨 세웠다.
안개 너머로 흐릿한 실루엣이 서서히 모습을 드러냈다.
그것은 웅장한 기마 대열도, 무장한 세 가문의 무사들도 아니었다. 낡고 소박한 청색 학자 도포를 헐렁하게 걸친 창백한 안색의 사내. 바퀴가 달린 목재 휠체어에 위태롭게 앉아 끊임없이 가벼운 기침을 토해내는 사내였다.
강태현.
공작가의 병약한 서자이자 청룡령의 실질적인 맹주가, 홀로 휠체어를 탄 채 200여 명의 무장한 관군 대열 앞을 가로막고 서 있었다.
“콜록, 콜록…… 조 대장, 이 험준한 안개 계곡까지 군사들을 이끌고 오시느라 노고가 많으십니다.”
태현이 하얀 비단 손수건으로 입가를 훔치며 온화하게 미소 지었다. 손수건 위로 붉은 선혈이 미세하게 묻어났지만, 그의 깊고 맑은 눈빛만큼은 관군 전체의 기세를 압도할 정도로 차갑게 빛나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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