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르고 호의 심장소리
“으윽……!”
무너지는 바위 틈새를 기어 나오는 백시우의 입에서 밭은 신음이 터져 나왔다.
등 뒤에서는 부보안관 클락이 쏘아 올린 전자기 스파크의 잔해가 여전히 지하 통로를 푸르게 태우고 있었다. 하지만 더 큰 문제는 시우 자신의 육체였다. 동조율을 강제로 35%까지 끌어올려 ‘크로노스 비전’을 가동한 대가는 너무나도 가혹했다. 목덜미에 이식된 ‘싱크 포트 v4’는 불타는 석탄을 얹어놓은 것처럼 뜨겁게 달아오르며 매캐한 나노 스팀을 뿜어냈고, 척추를 타고 내려가는 마비감은 왼쪽 다리를 거의 무감각한 통나무처럼 만들어 버렸다.
“정신 차려, 도련님! 여기서 쓰러지면 다 같이 돌가루가 되는 거야!”
한쪽 기계 팔이 통째로 뜯겨 나간 고르크가 남은 왼손으로 시우의 허리를 부축하며 소리쳤다. 그의 어깨 관절에서는 여전히 녹색 유압 오일이 끈적하게 흘러내려 시우의 낡은 파일럿 슈트를 적시고 있었다. 그들의 등 뒤에는 전신이 피투성이가 된 채 간신히 숨만 쉬고 있는 강도윤 아저씨가 고르크의 등에 업혀 있었다.
쿠구구구궁—!
지하 전자기 공명 분지의 천장이 버티지 못하고 거대한 낙석들을 토해내기 시작했다. 굉음이 고막을 찢을 듯 울릴 때마다, 시우의 왼쪽 눈동자는 붉은색 양자 홀로그램 빛으로 격렬하게 점멸했다. 아레스의 초연산 주파수가 뇌 신경망을 헤집을 때마다 머리가 반으로 갈라지는 듯한 두통이 밀려왔다.
- 파일럿, 뇌세포 온도가 41.8도에 육박하고 있습니다. 생물학적 자아 보존을 위해 우회 경로로의 고속 이동을 권장합니다. 도크 입구까지 남은 거리, 120미터.
뇌리에서 울리는 아레스의 서늘한 기계음이 시우의 흐려지는 정신줄을 억지로 붙잡았다. 시우는 한 손으로 벽을 짚으며, 마비된 왼쪽 다리를 질질 끌었다.
마지막 철문을 부수고 진입한 순간, 그들의 눈앞에 믿을 수 없는 광경이 펼쳐졌다.
“이건…….”
고르크의 입이 떡 벌어졌다.
그곳은 데브리스-7 지하 수천 미터 아래에 숨겨진 거대한 공동이었다. 외부의 어떤 전자기 레이더망도 차단하도록 설계된 나노 합금 격벽들이 사방을 감싸고 있었고, 그 중심부에 거대한 검은색 전함 한 척이 웅크리고 있었다.
‘규격 외: 고대 전술함 아르고 호’.
현대의 둔탁한 장갑 전함들과는 차원을 달리하는 날렵하고 포식자 같은 실루엣. 표면은 칠흑 같은 나노 합금으로 덮여 있어 빛을 삼키는 것처럼 어두웠지만, 선체를 따라 흐르는 양자 라인들은 마치 잠든 용의 미세한 혈관처럼 아주 희미한 푸른빛을 흘리고 있었다. 100년이 넘는 세월 동안 방치되었음에도 먼지 하나 앉지 않은 고결한 자태였다.
“도윤 아저씨가 말한 게…… 진짜였어.”
시우는 전율을 느끼며 아르고 호의 하부 해치로 향했다. 그 순간, 허공에서 눈부신 은하수 형태의 홀로그램 인격이 스르륵 나타났다. 부드러운 여성의 음성이 공동 전체를 울렸다.
[보안 시스템 가동. 침입자의 생체 신호를 스캔합니다…… 스캔 완료. 양자 뇌파 코드 일치. 오리온 프로젝트의 오리진 유전자 확인. 가문 전용 마스터 권한을 인계합니다. 환영합니다, 백시우 도련님.]
“마더 베가……?”
아버지가 개인 연구소에 구축해 두었다던 가문 수호 AI였다. 마더 베가의 홀로그램이 아르고 호의 진입 해치를 열어젖히며 황금빛 안내선을 투사했다.
“고르크, 아저씨를 데리고 빨리 타!”
세 사람은 아르고 호의 내부 복도를 달려 함교 조종실로 들이닥쳤다. 고대의 조종석은 투박하면서도 세련된 양자 콘솔들로 가득 차 있었다. 시우는 비틀거리며 메인 파일럿 시트에 주저앉았다. 왼쪽 다리는 이미 완전히 감각이 죽어 움직이지 않았다.
시우는 품속에서 은색 ‘오리온 양자 코어 디스크’를 꺼내 콘솔 중앙의 주 슬롯에 밀어 넣었다.
철컥!
디스크가 맞물리는 순간, 아르고 호의 메인프레임이 깨어나며 함교 전체에 짙은 푸른빛 조명이 켜졌다.
- 아르고 호 메인프레임 접속 완료. 시스템 동조율 35% 유지 중. 파일럿, 고대 전술함의 주 엔진 기동을 시작합니다.
아레스의 목소리가 아르고 호의 스피커를 통해 웅장하게 울려 퍼졌다. 시우는 콘솔 오른쪽의 엔진 점화 레버를 힘껏 당겼다.
윙잉잉— 틱, 틱.
그러나 돌아온 것은 힘없는 기계음과 불길한 적색 경고등뿐이었다.
[에러: 주 엔진 플라즈마 점화기 기동 실패. 하드웨어적 경색 감지.]
“뭐라고? 왜 안 움직여!”
시우가 콘솔을 두드리며 외쳤다. 아레스의 연산 텍스트가 시야를 가득 채웠다.
- 100년 이상의 장기 방치로 인해 주 엔진 내부의 ‘고출력 플라즈마 점화기’ 코어가 방전되었습니다. 플라즈마 스파크가 튀지 않아 주 엔진의 양자 도약로가 깨어나지 못하고 있습니다. 시스템 명령을 통한 강제 재시동 실패율 100%.
“젠장, 다 왔는데 기계가 굳어버렸단 말이야?”
고르크가 파손된 어깨를 움켜쥔 채 조종석 뒤편의 엔진 모니터를 바라보았다.
“내가 가볼게. 어깨는 아프지만 왼손은 살아있으니까. 플라즈마 노즐을 직접 때려서라도 스파크를 튀겨야 해.”
“혼자는 무리야, 고르크 아저씨!”
그때, 조종실 구석의 예비 부품 크레이트 뚜껑이 덜컹거리며 열리더니, 헝클어진 머리에 기름때가 묻은 꼬마의 얼굴이 쏙 튀어나왔다.
“민우……? 네가 왜 여기 있어!”
시우의 눈이 경악으로 커졌다. 데브리스-7의 빈민가에서 시우를 형처럼 따르며 고철 줍기를 돕던 소년 민우였다. 민우는 겁에 질린 표정으로 눈물을 글썽이면서도 수동 공구 키트를 꼭 쥐고 있었다.
“형을 도우려고 장갑차 뒷자리에 몰래 숨어 있었어…… 나, 나도 기계 고칠 줄 알잖아! 배관이 좁으면 내가 들어가서 만질 수 있어!”
쿵! 콰르릉!
그 순간, 도크 외부에서 강력한 지상 중장비의 포격 진동이 전해졌다. 밀러 보안관이 이끄는 사설 보안대의 장갑 전차들이 격납고 천장을 파괴하며 하강하기 시작한 것이었다. 시간이 없었다.
“좋아, 민우야. 고르크 아저씨를 도와서 엔진룸으로 가. 아레스, 엔진 내부 설계도를 민우의 안경에 전송해!”
- 전송 완료. 소년 파일럿 후보생, 엔진룸 제4구역의 미세 배관 틈새로 침투하십시오.
고르크와 민우는 즉각 함교 하부의 주 엔진룸으로 달려 내려갔다.
엔진룸은 100년 동안 축적된 매캐한 매연과 뜨거운 스팀으로 가득 차 있었다. 고르크는 파손된 어깨의 극통을 이겨내며, 남은 왼손으로 용접기를 쥐고 뜨겁게 달아오른 엔진 배관에 티타늄 프레임을 억지로 용접하기 시작했다. 파카캉! 눈이 멀 것 같은 플라즈마 불꽃이 튀며 고르크의 이마에 붉은 화상 흔적을 남겼다.
“민우야! 저 안쪽에 붉은색 밸브 보여? 점화 코어 압력이 새고 있어! 그걸 잠가야 해!”
“응! 할 수 있어!”
야윈 체구의 민우는 비좁고 뜨거운 배관 틈새로 기어 들어갔다. 고열의 나노 열기가 소년의 옷자락을 태우고 손가락 끝을 빨갛게 잠식해 들어갔지만, 민우는 이빨을 악물고 수동 렌즈를 돌려 미세 누출 밸브를 온몸으로 막아냈다.
“형! 밸브 잠갔어! 지금이야!”
민우의 다급한 외침이 통신망을 타고 함교로 전해졌다.
하지만 여전히 점화기는 반응하지 않았다. 하드웨어의 전하가 완전히 방전된 탓이었다.
[경고: 도크 상부 천장 균열율 84%. 적 전차대의 포격 진입 임박.]
“아레스, 다른 방법은 없어?”
시우가 조종간을 움켜쥐며 외쳤다. 아레스의 붉은 눈동자가 시우의 시야 속에서 번뜩였다.
- 제안합니다, 파일럿. 당신의 목덜미에 이식된 ‘싱크 포트 v4’는 양자 에너지를 무손실로 변환하는 바이오 매개체입니다. 당신의 선천적 ‘양자 감응형 뇌’가 뿜어내는 생체 전기 신호를 함선의 전력망에 다이렉트로 방출하십시오.
“내 뇌파를 직접 점화 스파크로 쓰겠다는 건가?”
- 그렇습니다. 뇌 시냅스에 극심한 열폭주가 발생하겠지만, 아르고 호를 깨울 유일한 물리적 방법입니다. 마더 베가가 시스템 자폭 전, 고출력 점화기의 주파수를 제 연산 코어와 동조시켜 줄 것입니다.
마더 베가의 온화한 목소리가 마지막 작별을 고하듯 콘솔에서 흘러나왔다.
[도련님, 백 박사님의 마지막 유산을 부탁드립니다. 주파수 동조율 100% 일치 완료. 생체 점화 시퀀스를 허용합니다.]
“해보자고…… 기계 놈아!”
시우는 양자 콘솔에 양손을 얹고 눈을 감았다.
우우우웅—!
목덜미의 싱크 포트 v4가 터질 것처럼 가열되며 은빛 전하가 뇌 신경망을 타고 폭포수처럼 역류했다. 시우의 전신이 활처럼 팽팽하게 굳어졌다. 뇌 세포가 통째로 끓어오르는 듯한 극통 속에서, 시우는 자신의 생체 전류를 아르고 호의 동력선으로 밀어 넣었다.
[경고: 뇌 신경 동조율 임계점 도달. 양자 도약 엔진 예열 시뮬레이션 가동.]
시우의 뇌파가 아르고 호의 잠들어 있던 엔진 코어를 때렸다.
엔진룸 최심부에서 침묵하고 있던 고출력 플라즈마 점화기가 시우의 생체 전류 스파크를 받아들이는 순간—
콰아아아앙—!
거대한 굉음과 함께 아르고 호 하부의 양자 도약 엔진이 황금빛 고리를 그리며 초고속으로 회전하기 시작했다.
쿠구구구구궁!
그것은 단순한 기계의 진동이 아니었다. 100년의 깊은 침면에서 깨어난 고대 전설함의 거대한 심장 소리였다. 웅장하고 묵직한 진동이 함교 바닥을 타고 시우의 온몸으로 전해졌다. 시우의 감겨있던 두 눈이 번쩍 떠졌다. 그의 왼쪽 안구는 아레스의 붉은빛으로, 오른쪽 안구는 아르고 호의 푸른빛 양자광으로 물들어 있었다.
“엔진…… 가동 성공!”
고르크가 엔진룸에서 그을린 얼굴로 환호성을 질렀다.
그러나 기쁨도 잠시, 도크의 천장이 거대한 비명과 함께 완전히 무너져 내리기 시작했다. 수십만 톤의 바위 더미와 흙먼지가 아르고 호의 조종석 전면 창을 완전히 덮쳐왔고, 무너지는 틈새 너머로 밀러 보안관의 정예 전차들이 일제히 주포를 조준하는 실루엣이 비쳤다.
흙먼지가 조종석을 완전히 뒤덮는 절체절명의 찰나, 아르고 호 하부의 엔진은 더욱 거대한 심장 소리를 토해내며 황금빛 플라즈마 제트를 뿜기 시작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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