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대의 잠든 용
감옥 문이 삼중으로 열리는 순간, 자욱한 화약 연기와 탄소 타는 냄새 너머로 강도윤의 마른 체구가 드러났다. 모진 고문의 흔적으로 전신이 피투성이가 된 노인은 쇠사슬에 묶인 채 간신히 숨만 쉬고 있었다. 시우는 단분자 커터 ‘러스트 블레이드’를 거두고 도윤에게 달려가 쇠사슬의 결합부를 단숨에 베어내었다. 둔탁한 금속음과 함께 사슬이 풀리자 도윤의 몸이 무너지듯 시우의 어깨로 기울어졌다.
“강 아저씨, 정신 차려요. 나예요, 시우.”
도윤은 피가 섞인 기침을 토해내며 간신히 눈을 떴다. 그의 시선이 시우의 목덜미에서 퍼져 나오는 은은한 청색 광막과 기이하게 붉은빛 홀로그램 안개가 낀 시우의 왼쪽 안구에 머물렀다. 노인의 눈동자가 경악과 비장함으로 잘게 흔들렸다.
“아레스…… 결국 그 금기의 힘을 깨웠구나. 네 아버지가 그렇게 숨기려 했던 것을…….”
도윤은 떨리는 손으로 시우의 낡은 파일럿 슈트 깃을 움켜쥐었다. 요새의 원자로가 붕괴하는 진동이 지하 감옥 벽면을 타고 쿠구구궁 소리를 내며 울려 퍼졌다. 천장에서 흙먼지가 비 오듯 쏟아지고 있었다.
“시간이 없다, 시우야. 카일의 사냥개들이 무너지기 전에 이 요새를 탈출해야 해. 그리고…… 데브리스-7의 지하 수천 미터 깊은 곳으로 가라. 그곳에 네 아버지가 숨겨둔 고대 전술함 ‘아르고 호’의 은폐 격납고가 있다. 좌표는…….”
도윤은 품속에서 찌그러진 양자 패드를 꺼내 시우의 단말기에 접촉시켰다. 찌리릿하는 양자 전하 마찰음과 함께 시우의 단안 렌즈 ‘크로노스’ 너머로 복잡한 다차원 지하 맵과 붉게 빛나는 좌표 하나가 투사되었다.
[알림: 미확인 고대 시스템 좌표 수신 완료. 아르고 호 비밀 도크로 경로를 재구성합니다.]
뇌리에서 울리는 아레스의 기계적인 음성이 차갑게 내려앉았다. 시우는 도윤을 부축해 일으켰다. 옆을 보니 고르크가 잘려 나간 기계 어깨 관절을 움켜쥔 채 신음하고 있었다. 기계 의체 팔이 통째로 뜯겨 나간 상처 부위에서 녹색 유압 오일이 쉴 새 없이 바닥으로 뚝뚝 떨어졌다.
“고르크, 버틸 수 있겠어?”
“이깟 고철 팔 하나 날아간 거로 엄살 부릴 줄 알았냐? 어서 나가자고, 사관학교 도련님. 요새 천장이 통째로 우리 대가리 위로 떨어지기 전에.”
고르크는 이빨을 악물며 툴툴거렸다. 세 사람은 무너져 내리는 콘크리트 잔해를 피해 하수구 배수관로에 주차해 두었던 마개조 장갑차로 달렸다. 고르크가 한 손으로 운전대를 잡으려 하자, 시우가 그를 조종석에서 밀쳐내고 직접 운전석에 앉았다.
“내가 몬다. 꽉 잡아.”
장갑차의 급조된 하이브리드 엔진이 포효를 지르며 지하 터널을 박차고 나갔다. 지상으로 이어지는 경사로를 타고 올라갈수록, 매캐한 고철 냄새 대신 데브리스-7 특유의 산성비 냄새와 축축한 대기압이 밀려들었다. 마침내 요새 외부의 철문을 부수고 지상으로 탈출한 순간, 쏟아지는 장대비 너머로 눈이 멀 것 같은 백색 서치라이트 불빛들이 일제히 장갑차의 전면 유리를 강타했다.
삐이이이이이—!
귀를 찢는 고출력 사이렌 소리와 함께 사방을 가로막은 강철 바리케이드가 눈에 들어왔다. 그 뒤편으로 대기업 발할라 중공업의 로고가 선명하게 박힌 대형 보안 순찰정 3척이 공중에서 포탑을 번뜩이며 하강하고 있었다. 바리케이드 앞에는 정복을 헐렁하게 입은 뚱뚱한 사내가 확성기를 들고 서 있었다. 데브리스-7의 치안을 담당하는 부패한 연합 보안관, 밀러였다.
“얌전히 투항해라, 백시우! 너는 은하 연합의 공식 수배범이자, 발할라 중공업의 일급 군사 기밀을 무단 탈취한 테러리스트다!”
밀러의 확성기 소리가 빗소리를 뚫고 울려 퍼졌다. 공권력이라는 허울을 좋은 핑계 삼아, 발할라 중공업의 사설 사냥개 노릇을 자처하는 부패한 공권력의 민낯이었다.
시우는 운전대를 잡은 손가락 끝에 힘을 주었다. 목덜미의 싱크 포트 v4가 다시금 뜨겁게 달아오르며 척추를 타고 차가운 분노가 치솟았다. 사관학교 시절, 자신에게 누명을 씌우고 인생을 나락으로 떨어뜨렸던 레온 발할라와 대기업의 부패한 카르텔이 이 황량한 쓰레기 행성에서도 똑같은 방식으로 자신을 옥죄어 오고 있었다.
“공권력의 이름으로 사익을 챙기는 꼴이라니, 여전하군.”
시우가 냉소적인 조소를 흘렸다.
- 파일럿, 저 비효율적인 지방 덩어리가 연합의 사법권을 참칭하고 있군요. 보안관실 통신망의 암호화 수준은 고작 3등급 표준 규격에 불과합니다. 해킹 프로토콜을 가동할까요?
뇌 속에서 들려오는 아레스의 건조하면서도 서늘한 제안에 시우는 짧게 고개를 끄덕였다.
“해킹해. 저 뚱뚱한 보안관 놈의 진짜 목소리를 모두에게 들려주자고.”
시우는 도끼에게서 노획한 고성능 양자 보안 카드를 장갑차의 통신 콘솔에 꽂아 넣었다. 아레스의 연산 능력이 포트를 타고 요새 통신망을 거쳐 밀러 보안관의 전용 무전 주파수로 침투했다. 단 2초 만에 보안관실의 비밀 통신 회선이 시우의 귀에 연결되었다. 빗소리 너머로 밀러와 카일 사채 조직 간의 은밀한 무전 대화가 흘러나왔다.
[……어이, 카일. 약속한 현상금 계좌는 제대로 입금된 거겠지? 백 박사 놈의 디스크만 확보하면 연합 의회 놈들도 입을 닫기로 했다. 쥐새끼 같은 생도 놈을 테러리스트로 묶어 처리하는 건 일도 아니니까.]
“유리, 이 주파수 신호를 러스트 시티 암시장과 고철 수거 조합 전체 공개 채널로 릴레이 송출해.”
시우의 지시에 유리의 핑거 해킹이 빛의 속도로 콘솔을 두드렸다. 몇 초 후, 데브리스-7 전역의 통신망과 보안관들의 무전기에서 밀러의 부패한 음성이 실시간으로 흘러나오기 시작했다. 바리케이드 뒤편에 대기하던 부보안관들과 대원들이 동요하며 서로를 바라보는 모습이 서치라이트 불빛 사이로 선명하게 보였다. 밀러의 얼굴이 순식간에 흙빛으로 변했다.
“이, 이건 조작이다! 당장 포격을 개시해라! 저 장갑차를 날려버려!”
당황한 밀러가 비명을 지르며 권총을 난사했다. 순찰정의 포탑이 불빛을 번뜩이며 플라즈마 탄환을 조준하는 찰나, 고르크가 한 손으로 장갑차 해치를 열고 수동 연막탄 세 발을 밖으로 내던졌다.
쉬이이이익—!
자욱한 회색 연막이 서치라이트 불빛을 집어삼키며 순식간에 요새 앞 광장을 가득 채웠다. 시우는 기회를 놓치지 않고 장갑차의 급조 엔진 출력 레버를 한계치인 150%까지 밀어 올렸다. 엔진룸에서 붉은 스파크가 튀며 장갑차가 비명을 지르듯 돌진했다.
쿠과과과광—!
장갑차는 보안 바리케이드를 정면으로 들이받았다. 쇳가루와 불꽃이 사방으로 흩날리며 장갑차의 전면 프레임이 끔찍하게 찌그러졌지만, 추진력은 멈추지 않았다. 시우는 운전대를 꺾어 강도윤이 가리킨 칠흑 같은 지하 광산 입구의 어둠 속으로 차체를 밀어 넣었다.
뒤편에서 밀러의 enrage한 목소리가 확성기를 타고 무겁게 메아리쳤다.
“얌전히 투항해라, 백시우! 너는 은하 연합의 공식 수배범이다!”
그 뒤편으로 대형 보안 순찰정의 포탑이 자욱한 연막을 뚫고 붉은 불빛을 번뜩이며 지하 통로 입구를 조준하기 시작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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