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단분자의 약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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똥물과 기름이 뒤섞인 하수구의 비린내가 사정없이 코를 찔렀다. 백시우는 고르크의 물음에 대답하는 대신, 허리춤에 찬 단분자 커터 ‘러스트 블레이드’의 손잡이를 고쳐 잡는 것으로 대답을 대신했다. 좁고 축축한 배수관로의 벽면을 타고 붉은색 비상등 불빛이 기분 나쁘게 일렁이고 있었다. 요새 전체의 보조 전력이 차단되면서 사방에서 기계적인 경보음이 낮게 메아리쳤다.


“가자, 고르크. 쥐새끼들이 냄새를 맡고 몰려오기 전에.”


시우가 먼저 해치를 박차고 밖으로 뛰어내렸다. 장화 바닥이 걸쭉한 오수 오물에 닿으며 둔탁한 소리를 냈다. 뒤이어 고르크가 육중한 체구를 이끌고 하수구 바닥으로 내려섰다. 그의 한쪽 팔을 대체한 투박한 기계 의체 팔이 붉은 조명 아래서 차갑게 빛났다. 배터리가 전소된 장갑차는 이제 쓸모없는 고철 덩어리에 불과했다. 탈출할 때는 맨몸으로 이 지옥을 돌파해야 했다.


- 전방 45미터, 두 개의 격벽 너머에 고밀도 생체 신호와 강력한 양자 에너지원이 감지됩니다. 주의하십시오, 파일럿. 현재 동조율은 22%로 안정적이나, 과도한 신경 자극은 싱크 포트 v4의 오작동을 유발할 수 있습니다.


머릿속에서 울리는 아레스의 서늘하고 오만한 목소리. 시우는 목덜미를 만졌다. 제4경추 뼈 사이에 이식된 은빛 포트가 미세하게 뜨거워지고 있었다. 레이첼의 무허가 진료소에서 겪었던 수술의 여파로 관자놀이가 찌릿하게 과열되는 신경통이 몰려왔지만, 시우는 이빨을 악물며 통증을 억눌렀다. 지금 멈추면 모든 것이 끝이었다.


지하 B2 구역의 차가운 금속 복도로 진입하자마자 저 멀리서 다가오는 발소리가 들렸다. 카일의 사설 경비대원들이 총기를 장전하는 소리였다. 시우는 고르크에게 수동 연막탄을 터뜨릴 것을 지시했다. 자욱한 회색 연기가 복도를 가득 채운 틈을 타, 두 사람은 유령처럼 조용히 경비원들의 감시망을 우회했다. 시우의 머릿속에는 아레스가 실시간으로 그려내는 요새 내부의 최적 이동 경로가 3D 홀로그램처럼 펼쳐져 있었다.


마침내 도달한 곳은 요새의 최심부, 삼중 강화 철문으로 굳게 닫힌 감옥실 앞이었다.


하지만 그곳에는 그들이 넘어야 할 가장 거대한 장벽이 버티고 서 있었다.


“쥐새끼들이 여기까지 기어들어 왔군.”


쇳소리가 섞인 거친 목소리가 복도를 울렸다. 그곳에 서 있는 것은 인간의 형상을 한 괴물이었다. 신체의 60% 이상이 조잡하고 육중한 군용 장갑으로 개조된 거구의 사이보그, 카일의 행동대장 ‘도끼(Axe)’였다. 그의 오른손에는 고출력 플라즈마가 이글거리는 거대한 단분자 도끼가 들려 있었다. 도끼의 날 표면에서 뿜어져 나오는 열기가 공기를 일그러뜨렸다.


“비켜라, 고철 덩어리.”


시우가 러스트 블레이드를 뽑아 들며 차갑게 뱉었다. 스위치를 누르자 칼날 표면에 초고주파 진동이 일며 보라색 광막이 돋아났다.


“하하하! 사관학교에서 쫓겨난 도련님이 제법이구나!”


도끼가 광기 어린 폭소를 터뜨리며 거대한 플라즈마 도끼를 수평으로 내휘둘렀다. 공기를 가르는 파괴적인 열풍이 시우의 얼굴을 스쳤다.


그 순간, 고르크가 시우의 앞을 가로막으며 자신의 중장비 유압식 기계 팔을 뻗었다. 도끼의 참격을 정면으로 받아내려는 무모한 행동이었다.


콰아아앙—!


플라즈마 불꽃이 사방으로 튀었다. 그러나 사이보그의 압도적인 완력과 고온의 플라즈마 화력은 고르크의 기계 팔이 버텨낼 수 있는 수준을 아득히 초월해 있었다. 끔찍한 파쇄음과 함께 고르크의 소중한 정비용 기계 팔이 통째로 뜯겨 나갔다. 내부 유압 오일과 불꽃이 복도 바닥에 사정없이 흩뿌려졌다.


“으아아악!”


고르크가 짧은 비명을 지르며 바닥으로 쓰러졌다.


“고르크!”


시우의 눈동자가 분노로 뒤흔들렸다. 그의 왼쪽 안구가 아레스의 연산 회로와 강하게 공명하며 순식간에 붉은색 양자 홀로그램 빛으로 물들기 시작했다. 시우는 몸을 날려 러스트 블레이드로 도끼의 가슴 장갑판을 정면으로 찔러 들어갔다.


키이이이잉—!


초고주파 진동 칼날이 도끼의 장갑판에 닿았지만, 둔탁한 금속성 마찰음만 낼 뿐 단단한 나노 합금 장갑을 뚫지 못하고 미끄러졌다. 장갑의 밀도가 너무 높았다.


“애송이, 간지럽지도 않다!”


도끼가 비웃으며 왼손으로 시우의 가슴을 쳐냈다. 육중한 강철 주먹이 시우의 흉부를 강타했다. 둔탁한 물리적 타격감과 함께 시우의 몸이 허공으로 붕괴하듯 날아가 강화 콘크리트 벽면에 처박혔다.


쿵! 하는 소리와 함께 등 뒤에서 극심한 충격이 전해졌다. 시우의 입에서 붉은 피가 울컥 쏟아졌다. 충격의 여파로 목덜미의 싱크 포트 v4가 미친 듯이 스파크를 일으키며 척추 신경망에 과전류를 흘려보냈다. 머리가 깨질 듯한 편두통과 고열이 뇌세포를 지배했다. 왼쪽 팔다리의 감각이 일시적으로 저릿하게 마비되는 전조 증상이 찾아왔다. 시우는 숨을 헐떡이며 조종석에서 배운 호흡법을 억지로 유지하려 애썼다.


도끼가 거대한 플라즈마 도끼를 치켜들며 시우를 향해 성큼성큼 다가왔다.


- 파일럿, 생체 신호 위급. 뇌 시냅스 온도 40.5도 돌파. 정면 승부 시 생존 확률 4.2%입니다. 무리한 공격은 자살행위입니다.


아레스의 경고가 뇌리를 때렸지만, 시우는 물러서지 않았다. 그는 오히려 눈을 감았다. 사관학교 시절 한성태 교관이 했던 말이 뇌리를 스쳤다.


‘기계는 완벽하지 않다. 아무리 두꺼운 장갑을 둘렀어도, 그것을 움직이는 관절과 회로에는 반드시 미세한 균열이 존재한다. 기계의 소리를 들어라, 시우야.’


시우의 선천적 천재성인 ‘기계 직관(Machine Intuition)’이 분노 속에서 극도로 각성하기 시작했다.


그는 눈을 감은 채 도끼의 의체가 뿜어내는 미세한 기계 진동과 전자기 주파수에 귀를 기울였다. 머릿속에 도끼의 내부 구조도가 반투명한 푸른색 설계도로 그려졌다. 복잡한 유압 배관과 전기 신호가 흐르는 경로가 한눈에 들어왔다.


그리고 마침내 포착했다.


도끼의 전신 중장갑을 수호하는 미세한 전자기 쉴드가, 그의 관절 결합부가 움직일 때마다 0.1초 동안 미세하게 꺼졌다 켜지는 동기화 균열을 찾아낸 것이다. 유압 밸브가 작동하는 바로 그 찰나의 순간이 약점이었다.


“보인다…….”


시우가 눈을 번쩍 떴다. 그의 왼쪽 눈은 이미 붉은 안개가 낀 것처럼 기이한 양자광을 내뿜고 있었다.


도끼가 플라즈마 도끼를 내리찍는 절체절명의 순간, 시우는 품속에서 구스타프가 만들어 준 수제 ‘일회용 전자기 왜곡 폭탄(펄스 밤)’을 꺼내 도끼의 발밑으로 던졌다.


콰앙!


강력한 국소적 EMP 충격파가 연구실 전체를 휩쓸었다. 도끼의 전신 장갑 표면에서 보라색 전자기 스파크가 격렬하게 튀었다. 순간적으로 그의 중장갑 의체 제어 시스템이 과부하를 일으키며 0.5초 동안 딱딱하게 경직되었다. 전자기 쉴드가 완전히 꺼진 순간이었다.


시우는 마비되어 가는 왼쪽 다리를 힘겹게 딛으며 앞으로 돌진했다. 그의 오른손에 쥔 러스트 블레이드가 초고주파 진동을 극대화하며 빛을 발했다.


스스슥—!


시우는 기계 직관으로 포착한 도끼의 목덜미와 shoulder 연결부의 가장 연약한 유압 관절 틈새를 향해 칼날을 정밀하게 밀어 넣었다. 어떠한 저항도 없었다. 단분자 커터는 도끼의 두꺼운 장갑 사이를 지나 내부의 유압 배관과 신경 신호선들을 두부 베듯 정확히 잘라내었다.


“커헉……!”


도끼의 입에서 기계적인 파열음과 함께 검은 기름이 튀었다. 그의 거대한 몸체에서 뿜어지던 플라즈마 불꽃이 힘없이 사그라들었다. 지이잉 하는 오작동 소음과 함께, 사이보그 거구는 바닥을 향해 거꾸러졌다. 육중한 금속체가 콘크리트 바닥을 때리는 거대한 소음이 감옥실 복도에 무겁게 내려앉았다.


시우는 벽을 짚고 서서 거칠게 숨을 몰아쉬었다. 목덜미의 싱크 포트 v4가 차갑게 식어가며 이명이 서서히 가라앉았다. 옆을 보니 고르크가 잘려 나간 기계 어깨를 움켜쥔 채 고통스럽게 신음하고 있었다. 시우는 그에게 다가가 상처 부위를 지혈 젤로 응급 처치한 뒤, 감옥실의 제어 콘솔로 다가갔다.


도끼의 품에서 획득한 고성능 양자 보안 카드를 콘솔 슬롯에 밀어 넣었다. 기계식 마찰음과 함께 무겁고 삼중으로 닫혀 있던 감옥 문이 서서히 위로 열리기 시작했다.


자욱한 먼지와 붉은 네온사인의 실루엣 너머로, 쇠사슬에 묶인 채 피투성이가 된 노인이 모습을 드러냈다. 가혹한 고문의 흔적이 가득한 강도윤이었다. 노인은 희미하게 눈을 뜨고 시우를 바라보았다.


“시우야…….”


도윤의 갈라진 목소리가 흔들렸다. 그는 시우의 목덜미에서 빛나는 싱크 포트와 붉게 물든 눈동자를 보며 모든 상황을 직감한 듯, 피 묻은 입술을 파르르 떨었다.


“아레스와 동조했구나…… 결국 그 힘을 깨웠어.”


도윤이 쇠사슬을 절렁이며 시우의 옷자락을 힘겹게 움켜쥐었다. 그의 눈빛에는 슬픔과 비장함이 공존하고 있었다.


“망설일 시간이 없다. 카일 일당의 본대가 오고 있어…… 시우야, 데브리스-7 지하 깊은 곳으로 가라. 아르고 호로 가야 한다. 그곳에 네 아버지의 진짜 유산이 잠들어 있다…….”

HẾT CHƯƠNG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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