요새 침투와 은인
러스트 시티의 밤은 언제나 지독한 산성비와 고철 타는 냄새로 가득했다. 레이첼의 지하 진료소를 나선 백시우의 목덜미가 서늘하게 박동했다. 방금 이식받은 ‘싱크 포트 v4’가 제4경추 뼈 사이에서 은은한 은빛 전하를 내뿜으며 세포 하나하나를 자극하고 있었다. 마취 없이 척추를 뚫어낸 수술의 여파로 전신이 욱신거렸지만, 뇌리를 짓누르던 전자기 소음은 씻은 듯이 사라진 상태였다. 오히려 그 어느 때보다 머릿속이 맑았다.
- 동조율 22%. 신경망 정렬 안정. 생체 신호가 정상 범주로 회복되었습니다, 파일럿.
머릿속에서 울리는 아레스의 서늘하고 오만한 목소리. 시우는 빗물에 섞인 핏물을 훔쳐내며 가볍게 실소를 터뜨렸다.
“조용히 해, 아레스. 지금부터가 진짜 시작이니까.”
시우가 허리춤에 찬 단분자 커터 ‘러스트 블레이드’의 손잡이를 단단히 쥐었다. 카일의 금융 요새 깊은 곳에 갇혀 있을 은인, 강도윤 아저씨를 구해야 했다. 아버지가 남긴 디스크를 전해주기 위해 평생을 바친 노인을 이대로 죽게 내버려 둘 순 없었다.
어두운 골목길 모퉁이로 들어서자, 칠흑 같은 어둠 속에서 거대한 쇳덩이 장갑차 한 대가 육중한 자태를 드러냈다. 낡은 채굴용 장갑판을 덕지덕지 용접해 만든, 고철 수거용 마개조 차량이었다. 운전석의 해치가 거칠게 열리며 회색 피부를 가진 거구의 사내가 고개를 내밀었다. 시우의 오랜 친구이자 하프 브리드 기계공인 고르크였다.
“늦었잖아, 사관학교 도련님. 목덜미에 구멍 하나 뚫는 데 하루 종일 걸린 거냐?”
고르크가 투박한 기계 의체 팔을 삐걱거리며 퉁명스레 말했다. 말은 거칠었지만, 그의 눈빛에는 시우를 향한 깊은 걱정이 서려 있었다.
“기다리게 해서 미안하다. 장갑차 상태는 어때?”
시우가 보조석에 올라타며 묻자, 고르크가 엔진 스타트 버튼을 거칠게 눌렀다. 털털거리는 중저음의 디젤 하이브리드 엔진이 매캐한 매연을 토해내며 숨을 쉬기 시작했다.
“카일 놈의 금융 요새 하부 하수구까지는 이 녀석으로 밀어붙일 수 있어. 배터리를 억지로 직렬 연결해 둬서 출력 하나는 끝내주지. 하지만 요새 내부 경비 시스템은 장난이 아니야. 자동 포탑에 양자 락까지 걸려 있어서 맨몸으로 뚫는 건 자살행위라고.”
“내가 길을 열 테니까, 너는 운전이나 제대로 해.”
시우가 싱긋 웃으며 목덜미의 포트에 손을 얹었다. 손끝을 통해 아레스의 차가운 연산 신호가 실시간으로 흘러들어왔다.
장갑차는 러스트 시티의 젖은 진흙탕을 박차고 어두운 지하 하수구 보이드 터널로 미끄러져 들어갔다. 금융 요새 하부로 연결되는 폐쇄된 배수관로였다. 사방이 썩은 기름과 녹슨 쇳물로 가득해 가시거리는 1미터도 되지 않았다. 오직 장갑차의 헤드라이트 불빛만이 붉은 하수구를 희미하게 비출 뿐이었다.
얼마나 달렸을까. 장갑차가 거대한 수직 격벽 앞에서 급제동했다. 금융 요새의 최하단 진입로였다.
“여기서부터는 요새의 자동 보안 구역이야.”
고르크가 긴장한 목소리로 속삭였다.
어두운 배수관 천장에 매달린 원통형의 자동 감지 포탑이 스르륵 기동했다. 포탑 전면의 붉은색 센서 렌즈가 사방을 스캔하며 다가오고 있었다. 한 치의 침입도 허용하지 않겠다는 듯, 일정한 주기로 붉은 광선을 뿜어내는 기계식 사냥개였다.
- 요새 메인프레임 접속 감지. 해킹 프로토콜 가동을 제안합니다. 방화벽 무력화 확률 87%.
아레스가 뇌 속에서 즉각적인 사이버 침투 경로를 제시했다. 하지만 시우는 고개를 저었다.
“안 돼. 카일 놈들 뒤에는 발할라 중공업의 보안팀이 있어. 여기서 무선 해킹 툴을 쓰면 메인프레임의 이중 방화벽이 양자 노이즈를 역추적할 거야. 아날로그로 간다.”
시우가 눈을 감고 장갑차 대시보드 너머의 차가운 철판에 손을 대었다.
그의 선천적 천재성인 ‘기계 직관’이 깨어났다.
웅웅거리는 미세한 진동을 통해, 포탑 내부의 양자 회로와 전력 공급선 설계도가 머릿속에 반투명한 푸른색 홀로그램 단면도로 선명하게 그려지기 시작했다. 복잡하게 얽힌 전선들 사이에서 포탑의 작동을 제어하는 핵심 케이블의 물리적 위치가 붉게 깜빡였다. 저것만 끊으면 경보를 울리지 않고 포탑을 완전히 침묵시킬 수 있었다.
“고르크, 해치 열어.”
시우가 몸을 날려 장갑차 위로 올라섰다. 붉은 센서 광선이 아슬아슬하게 그의 어깨를 비껴갔다. 0.1초의 오차도 허용되지 않는 타이밍. 시우는 허리춤에서 단분자 커터 ‘러스트 블레이드’를 뽑아 들었다. 스위치를 누르자 칼날 표면에 초고주파 진동이 일며 보라색 광막이 돋아났다.
서걱—!
소리도 없었다. 초고주파 진동 칼날이 포탑 하부의 두꺼운 장갑을 뚫고 들어가 제어 케이블을 단숨에 그어 내렸다. 스파크조차 튀지 않는 정밀한 절단이었다. 붉은 센서 렌즈가 빛을 잃으며 포탑이 힘없이 아래로 꺾였다.
“지금이야, 고르크!”
고르크가 대기하고 있던 우회 전력 케이블을 포탑 잘려 나간 단자에 접합했다. 수동으로 바이패스 회로를 연결해 요새 메인프레임에는 포탑이 여전히 정상 작동 중인 것처럼 가짜 양자 신호를 송신한 것이다. 보안 양자 락이 일시적으로 해제되며 지하 진입로의 무거운 수동 격벽이 스르륵 열렸다.
“성공이다! 사관학교에서 조종만 배운 줄 알았더니, 기계 뜯는 솜씨가 제법이군.”
고르크가 감탄하며 장갑차를 안쪽으로 밀어 넣었다. 하지만 그 순간, 장갑차 하부에서 지직거리는 불길한 소리와 함께 매캐한 타는 냄새가 진동했다. 과부하를 견디지 못한 보조 배터리가 완전히 타버린 것이었다.
“쳇, 배터리가 나가버렸어. 탈출할 때는 이 녀석을 버려야겠는데.”
고르크가 혀를 차며 조종간에서 손을 떼었다. 이제부터는 오직 자신들의 두 발과 단분자 커터 하나에만 의지해야 하는 상황이었다.
요새 지하 2층의 차가운 금속 벽면이 어둠 속에서 차갑게 빛나고 있었다. 사방이 적들의 영지였고, 전력이 차단된 통로는 기묘한 침묵에 잠겨 있었다. 강도윤 아저씨가 갇힌 최심부 감옥까지는 아직 갈 길이 멀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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