데드 글라이딩
“……살고 싶나, 애송이?”
머릿속을 지배하는 기계의 목소리는 서늘했다. 그것은 고막을 거치지 않고, 목덜미에 이식된 ‘싱크 포트 v4’를 통해 시우의 뇌 시냅스에 직접 내리꽂히는 양자 신호였다.
“윽……!”
시우는 신음하며 조종간을 움켜쥐었다. 왼쪽 눈이 핏발로 붉게 물들다 못해, 기이한 청적색 양자 홀로그램 빛을 내뿜으며 미세하게 떨리고 있었다. 코끝으로 비린 혈향이 훅 끼쳤다. 아레스의 자아와 동조하는 대가는 뇌세포가 분자 단위로 지져지는 듯한 극통이었다.
삐이이이이익—!
조종석 전면의 낡은 홀로그램 스크린이 비명을 지르듯 붉은색 경고등을 점멸했다.
[경고: 적 기체 3척 록온 완료. 표적 추적 미사일 발사 감지.]
[도달 시간: 12초.]
“카일의 사냥개 놈들, 벌써 냄새를 맡고 따라붙었군.”
이중 아크릴 창 너머로 데브리스-7의 사나운 가스 폭풍이 몰아치고 있었다. 그 불길한 붉은 안개 속에서, 날렵한 실루엣을 한 카일 일당의 정예 요격기 세 척이 스타 브리즈호의 꼬리를 물고 무서운 속도로 쇄도하고 있었다. 수송선의 후방 감시 카메라에는 요격기들의 포구에서 뿜어져 나오는 푸른 플라즈마 불꽃과 함께, 궤적을 그리며 날아오는 유도 미사일 세 발이 선명하게 포착되었다.
5등급 구형 고철 수송선.
그것이 지금 시우가 타고 있는 스타 브리즈호의 냉혹한 현실이었다. 폐선 더미에서 뜯어낸 고철 판떼기를 용접해 만든 이 깡통 배는 장갑이라고 부를 만한 것도 없었다. 미사일 한 발만 스쳐도 그대로 우주의 먼지로 산산조각 날 터였다.
- 현재 기체 성능 기준, 정면 회피 확률 0.03%.
아레스의 차가운 목소리가 뇌리를 때렸다.
- 파일럿의 생체 신호 불안정. 심박수 분당 142회. 뇌 시냅스 열폭주 위험 감지. 연산 결과, 이대로 비행할 시 12초 후 격침율 99.97%.
“닥쳐! 나도 알아!”
시우가 이빨을 악물며 조종석 우측의 수동 레버를 거칠게 당겼다.
“스크랩 배리어, 전개!”
쿠우우웅!
수송선 하부에 조잡하게 조립해 둔 ‘스크랩 배리어 발전기’가 요란한 소음을 내며 가동되었다. 고철 부품들을 엮어 임시로 만든 전자기 왜곡 왜곡막이 기체 전면에 흐릿한 푸른 장벽을 형성했다.
그 순간, 선두에 선 적 요격기가 고출력 레이저 포격을 가했다.
콰아아앙—!
번쩍이는 백색 광선이 스크랩 배리어를 직격했다. 충격파가 조종석을 사정없이 흔들었다. 콘솔 벽면에서 스파크가 튀었고, 배리어 발전기의 온도 게이지가 순식간에 임계점을 돌파하며 붉은색 경고음이 울렸다.
[경고: 스크랩 배리어 발전기 과열. 폭발 위험.]
“젠장, 일회용이라더니 겨우 한 발 버틴 거야?”
시우는 발전기가 조종실을 통째로 날려버리기 전에 비상 사출 레버를 당겼다.
철컥, 슈우우웅!
수제 배리어 장치가 불꽃을 뿜으며 기체 외부로 떨어져 나갔다. 이제 무방비 상태였다. 미사일 도달 시간은 단 7초.
- 제안한다, 애송이.
아레스의 홀로그램 인격이 시우의 시각 피질 위에 가상의 궤적을 투사했다. 그것은 회피 경로가 아니었다. 행성의 지면을 향해 거의 수직으로 내리꽂히는, 미친 자살 비행 경로였다.
- 엔진의 전력을 완전히 차단하고 자유 낙하하라.
“뭐라고? 엔진을 끄라고? 이 고도에서 자유 낙하를 하면 중력 때문에 기체가 찢어질 거다!”
- 적의 미사일은 엔진의 플라즈마 열원 신호를 추적한다. 엔진 OFF 시 록온 해제 확률 94.2%.
아레스의 목소리에는 단 한 줌의 망설임도 없었다. 오직 철저한 효율과 연산만이 존재할 뿐이었다.
- 내 연산은 완벽하다. 네 생물학적 육체가 가속도를 견뎌낼 수만 있다면.
“미친 기계 놈…….”
시우는 욕설을 내뱉었지만, 조종간을 잡은 손끝은 떨리고 있었다.
그 순간, 뇌리의 가장 깊은 구석에서 낡은 제복을 입은 엄격한 노신사의 목소리가 메아리쳤다. 사관학교 시절, 자신을 유일하게 믿어주었던 한성태 전 수석 교관의 목소리였다.
‘시우야, 기계의 센서에만 의존하지 마라. 때로는 엔진을 끄고 행성의 거대한 숨결에 몸을 맡겨야 할 때가 있다. 중력 가속도 역이용 법칙…… 그것이 가장 거대한 엔진을 얻는 비법이다.’
스승의 가르침과 사형수 AI의 연산이 머릿속에서 완벽하게 하나로 맞물렸다.
시우의 입꼬리가 비틀려 올라갔다.
“좋아. 한번 굴러보자고.”
시우는 거침없이 메인 전원 브레이커를 향해 손을 뻗었다. 그리고 망설임 없이 아래로 꺾었다.
철컥!
수송선의 모든 전력이 일시에 차단되었다. 계기판의 불빛이 꺼지고, 굉음을 토해내던 하이브리드 엔진이 숨을 죽였다. 조종석을 채우던 소음이 사라진 자리에, 오직 기체 외벽을 스치는 사나운 대기의 바람 소리만이 기괴하게 울려 퍼졌다.
동시에 스타 브리즈호 후방으로 뿜어지던 황금빛 플라즈마 흔적이 신기루처럼 사라졌다.
슈우우우웅—!
열원 신호를 잃어버린 세 발의 유도 미사일이 허공에서 갈팡질팡하며 궤적을 일그러뜨렸다. 록온이 해제된 것이다.
하지만 위기는 이제부터였다.
엔진이 꺼진 수송선은 데브리스-7의 가혹한 중력에 이끌려 대기권 하부로 무섭게 추락하기 시작했다. 수직 강하. 시속 수천 킬로미터로 가속되는 자유 낙하의 지옥이었다.
“아으으윽……!”
엄청난 중력 압박(G-force)이 시우의 전신을 짓눌렀다. 가슴이 납작하게 조여들고, 폐 내부의 산소가 강제로 짜내어지는 듯한 고통이 밀려왔다. 시야의 가장자리가 서서히 어두워지는 블랙아웃 현상이 시작되었다.
- 동조율 18%. 파일럿의 시각 신경망 임시 보정 중.
아레스의 연산이 시우의 흐려지는 시야를 억지로 붙잡았다. 붉은색 양자 광막이 그의 왼쪽 눈을 덮으며, 어두운 대기 속에서도 저 멀리 거대한 고철 산맥의 날카로운 암벽들이 실시간 윤곽선으로 선명하게 보이기 시작했다.
시우의 선천적인 재능인 ‘기계 직관’이 깨어났다. 엔진의 침묵 속에서도 기체 장갑판이 공기 저항으로 인해 미세하게 비틀리는 진동, 볼트가 헐거워지는 소리가 뼈저리게 느껴졌다. 이대로 가다간 지면에 부딪히기 전에 기체가 공중 분해될 터였다.
뒤를 돌아본 카일의 요격기들은 갑작스러운 수송선의 추락에 당황한 듯했지만, 이내 시각 추적으로 전환하여 아르고 호의 꽁무니를 바짝 뒤쫓아 강하하기 시작했다.
“끝까지 물고 늘어지는군, 끈질긴 사냥개 자식들.”
지면까지 남은 거리 1,500미터.
1,000미터.
500미터.
날카로운 고철 파편들이 침엽수림처럼 솟아 있는 데브리스-7의 죽음의 산맥이 조종석 창문을 가득 채웠다. 죽음이 눈앞으로 쇄도하고 있었다.
- 지상 충돌까지 3초.
아레스의 목소리가 카운트다운을 시작했다.
- 2초.
“지금이야!”
시우는 마비되어 가는 오른손으로 메인 전원 레버를 다시 거칠게 밀어 올렸다. 동시에 수동 점화 스위치를 끝까지 내리눌렀다.
쿠구구구구궁—!
스타 브리즈호의 하이브리드 엔진이 찢어지는 듯한 비명을 지르며 다시 깨어났다. 과열된 플라즈마 노즐이 한계 출력을 토해내며 역분사 제트 불꽃을 지면을 향해 미친 듯이 뿜어댔다.
끼이이이이이익!
수송선의 하부 장갑판이 중력 가속도와 역분사 추진력의 충돌을 견디지 못하고 날카로운 금속음을 지르며 찢겨 나갔다. 조종석 유리에 미세한 균열이 거미줄처럼 번졌다.
하지만 시우는 물러서지 않았다. 기계 직관으로 엔진 노즐의 미세한 진동 주파수를 조절하며, 기체의 자세 제어 노즐을 좌측으로 90도 꺾었다.
중력 가속도를 고스란히 추진력으로 전환하는 신들린 듯한 직각 선회 기동.
스타 브리즈호는 지면에서 불과 수 미터 상공을 스치듯 지나치며, 거대한 고철 암벽의 사각지대로 유려한 곡선을 그리며 미끄러져 들어갔다. 엄청난 먼지 폭풍과 스파크가 기체 뒤편으로 폭발하듯 피어올랐다.
그 뒤를 맹렬히 추격하던 카일의 요격기들은 미처 예상하지 못한 수송선의 극단적인 Vector 전환에 반응하지 못했다.
“어, 어?! 제동이 안 돼—!”
적 파일럿들의 절규가 통신망을 찢고 흘러나왔다.
엄청난 속도로 수직 강하하던 요격기들은 관성을 제어하지 못하고, 아르고 호가 빠져나간 날카로운 고철 산맥의 암벽에 그대로 들이받았다.
콰콰콰쾅—!
세 차례의 거대한 화염이 붉은 안개 속에서 장엄하게 피어올랐다. 적 기체들은 형체를 알아볼 수 없는 고철 파편이 되어 사방으로 비산했다. 완벽한 섬멸이었다.
“하아, 하아……!”
시우는 조종간에 머리를 기댄 채 거친 숨을 몰아쉬었다. 왼쪽 눈에서 흘러내린 붉은 피가 그의 하얀 뺨을 타고 콘솔 위로 뚝뚝 떨어졌다. 전신이 마비된 듯 움직이지 않았다.
치이이이익—
그때, 엔진실 방향에서 불길한 백색 연기와 함께 지독한 타는 냄새가 조종석 내부 환기구를 타고 스며들기 시작했다. 기계 직관 능력이 다시 한번 그의 머릿속에 붉은색 경고등을 켰다. 역분사의 무리한 충격으로 인해 수송선의 주 엔진 노즐이 완전히 녹아내려 가동을 멈춘 상태였다.
기체는 추진력을 완전히 잃은 채, 연기를 뿜으며 허공에서 서서히 고도를 잃고 추락하기 시작했다. 저 멀리 데브리스-7의 가장 어둡고 위험한 무법 구역, 붉은 네온사인이 일렁이는 ‘러스트 시티’ 외곽의 암시장 구역이 시야에 들어왔다.
스르륵, 조종석 스크린이 노이즈와 함께 꺼져갔다. 기체가 통제력을 잃고 어둠을 향해 불시착을 시작하는 순간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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