블랙아웃
치익, 치지직.
매캐한 냄새가 함교의 차가운 정적을 찢어발겼다. 단백질이 고열에 타들어 가고 합성 수지가 녹아내릴 때 풍기는 비린내였다. 조종석 콘솔 위로 고꾸라진 백시우의 목덜미, 그 제4경추에 매립된 ‘양자 감응형 신경 커넥터 v4’에서 은백색 나노 스팀이 비명처럼 뿜어져 나왔다.
"시우야! 정신 차려! 야, 백시우!"
유리가 비명을 지르며 쓰러진 시우의 어깨를 붙잡았다. 하지만 시우의 몸은 이미 실 끊긴 인형처럼 무력하게 조종석 시트 아래로 흘러내릴 뿐이었다. 퀀텀 버스트의 파괴적인 방전 반동. 아르고 호의 주 배터리에서 역류한 수만 볼트의 양자 전류가 시우의 뇌 시냅스를 정면으로 강타한 결과였다.
시우의 왼쪽 안구에서는 붉은 피가 눈물처럼 흘러내려 콘솔의 가죽 표면에 뚝뚝 떨어졌다. 이중으로 번뜩이던 그의 눈동자에서 빛이 완전히 사라진 그 순간, 머릿속 깊은 곳에서 사형수 AI 아레스의 기계적인 음성이 왜곡된 노이즈를 그리며 울려 퍼졌다.
- 경고. 파일럿의 뇌세포 온도 42.3도 돌파. 시냅스 영구 괴사율 급상승. 자아 붕괴 임계점 도달.
- 파일럿 보호 프로토콜, ‘신경 과부하 강제 차단 절차’를 승인합니다. 파일럿의 의식을 강제 수면 상태로 전환합니다.
그 전술적 선언과 동시에 시우의 목덜미 포트에서 뿜어지던 푸른 전하가 순식간에 차가운 은빛 냉기로 변했다. 뇌 속에서 불타오르던 시냅스의 열기를 얼려버리기 위한 아레스의 비상 조치였다. 시우의 의식은 그 차가운 어둠 속으로 가차 없이 내던져졌다.
웅—.
방전의 여파로 완전히 멈춰 섰던 아르고 호의 비상 발전기가 거친 가쁜 숨을 몰아쉬며 재가동되었다. 함교 내부를 짓누르던 칠흑 같은 암흑 위로 비상용 붉은 조명이 어지럽게 깜빡이기 시작했다. 그러나 주 실드 배터리는 여전히 방전 상태였고, 함선은 사일런트 존의 붉은 가스 성운 한구석에 무력하게 표류하고 있었다.
"전력이…… 전력이 안 올라와!"
유리가 자신의 단말기 ‘판도라’를 미친 듯이 두들겼지만, 화면에는 [메인 시스템 전력 대기 상태]라는 경고등만 깜빡일 뿐이었다.
그때였다.
끼이이이이이익—!
아르고 호의 후방 구역에서 고막을 긁어대는 듯한 날카로운 금속 마찰음이 울려 퍼졌다. 단순한 폭풍의 노이즈가 아니었다. 무언가 초고주파로 회전하는 칼날이 함선의 에어록 장갑판을 물리적으로 찢어발기는 소리였다.
"에어록 침투 경보……?"
유리의 얼굴이 하얗게 질렸다. 판도라의 서브 스크린에 후방 에어록 격벽의 나노 합금이 초록색에서 서서히 붉은색으로 변해가는 그래픽이 투사되었다. 누군가 밖에서 에어록 해치를 단분자 날로 녹여내며 침투하고 있었다.
- 보고. 침입자의 물리적 접속 감지. 제레드 대장이 파견한 기업 정예 암살자 ‘고스트-2’로 식별됩니다. 무장은 손목 이식형 고출력 단분자 커터. 목표는 파일럿의 사살 및 양자 코어 회수.
아레스의 경고는 차분했으나, 함교에 남은 이들에게는 사형 선고나 다름없었다. 시우는 의식을 잃었고, 함선의 무장 제어권은 완전히 정지된 상태였다.
"젠장, 유다 그 개자식이 심어둔 비콘 때문에 결국 사냥개가 이 안까지 기어 들어왔군!"
함교 입구에서 묵직한 발소리가 울렸다. 거구의 보안 요원 렉스가 한 손에는 낡은 수동 산탄총을 쥔 채 복도를 가로막아 섰다. 그의 온몸에 새겨진 거친 흉터 위로 비상 조명의 붉은빛이 흘러내려 흉포한 분위기를 풍겼다.
그 옆에는 수석 기관장 고르크가 잘려 나간 기계 어깨 관절을 움켜쥔 채 서 있었다. 지혈 젤을 잔뜩 발라두었지만, 격렬한 진동에 상처가 벌어졌는지 녹색 유압 오일이 그의 작업복을 적시고 있었다. 고르크는 남은 왼손으로 낡은 단분자 커터 ‘러스트 블레이드’를 쥐어 잡았다. 손잡이의 스위치를 누르자, 칼날 표면에 보라색 초고주파 진동 광막이 희미하게 피어올랐다.
"고르크 아저씨, 렉스 아저씨……."
조종석 구석에서 민우가 화상 입은 손가락 끝을 감싼 채 덜덜 떨고 있었다. 고르크는 민우를 향해 이빨을 드러내며 씩 웃어 보였다. 이마의 붉은 화상 흉터가 기괴하게 일그러졌다.
"꼬맹아, 조종석 구석에 딱 붙어서 대가리 박고 있어라. 저 안개 속에서 기어 들어온 쥐새끼 대가리를 이 늙은 기계공이 어떻게 깨부수나 똑똑히 구경하라고."
"하지만 고르크 아저씨, 팔이……."
"팔 하나 없어도 저딴 기업 암살자 놈 목뼈 하나는 수동으로 꺾어버릴 수 있어."
고르크의 말투는 평소처럼 툴툴거렸지만, 렉스를 바라보는 그의 눈빛은 극도로 가라앉아 있었다. 렉스 역시 산탄총의 노리쇠를 당기며 고개를 끄덕였다. 전직 사이보그 용병과 베테랑 기계공. 두 사람은 자신들의 무력이 기업의 최정상급 암살자에게 미치지 못함을 본능적으로 알고 있었다.
그럼에도 그들이 선택할 수 있는 전술은 단 하나뿐이었다. 좁은 함교 복도 길목을 몸으로 막아서서, 조종석에 누워있는 천재 파일럿이 깨어날 최소한의 시간을 버는 지연 전술.
푸슈우우우우—!
복도 저편에서 자욱한 백색 스팀과 함께 후방 에어록 해치가 마침내 뜯겨 나갔다.
붉은 비상 조명 아래, 아무것도 보이지 않는 허공에서 미세한 굴절 현상이 일어났다. 광학 클로킹을 켠 고스트-2가 은밀하게 침투한 것이었다. 공기 중의 미세한 먼지들이 기묘한 형태로 갈라지며 다가오는 발소리조차 내지 않는 유령의 움직임.
"유리! 함내 방어 위성 제어권은 어떻게 됐어?"
렉스가 전방을 주시하며 소리쳤다. 함교 콘솔 앞에서 키보드를 미친 듯이 두들기던 유리가 비명을 질렀다.
"안 돼! 저 암살자 놈이 휴대용 전자기 교란기를 켜고 들어왔어! 아르고 호 내부 보안망이 통째로 먹통이야! 위성 제어 프로그램에 접속이 안 돼!"
- 경고. 함내 국소 EMP 교란 감지. 서브 방어 시스템 가동 불가.
결국 순수한 물리적 힘으로 막아내야 했다.
스윽.
공기 중의 굴절이 렉스의 코앞 3미터 지점까지 좁혀진 순간, 렉스의 눈동자가 번뜩였다. 수많은 전장을 겪어온 용병의 직관이 허공의 미세한 온도 변화를 포착했다.
"뒤져라, 기업의 개자식아!"
쾅—!
렉스가 산탄총의 트리거를 당겼다. 좁은 복도 전체를 가득 메우는 폭음과 함께 수십 발의 납탄 파편과 붉은 화염이 전방으로 사정없이 뿜어져 나갔다. 사일런트 존의 가스 안개가 산탄의 폭압에 찢겨 나갔다.
카가강!
허공에서 투명한 불꽃이 튀었다. 고스트-2가 전개한 초소형 은신 척력막에 산탄 파편들이 가로막힌 것이었다. 하지만 폭압의 충격까지 완전히 상쇄할 수는 없었는지, 허공을 부유하던 클로킹 장막이 지지직거리며 깨어졌다.
탄소 섬유로 제작된 칠흑 같은 밀착 슈트를 입은 고스트-2의 날렵한 신체가 붉은 조명 아래 모습을 드러냈다. 그의 바이저 너머에서 차가운 안광이 빛났다.
고스트-2는 산탄의 반동으로 거리가 벌어지자마자, 인간의 한계를 초월한 속도로 바닥을 박차고 도약했다. 지그재그로 벽면을 차며 좁은 복도를 가로지르는 속도는 렉스의 조준 속도보다 빨랐다.
"이 빠른 녀석이—!"
렉스가 두 번째 사격을 가하려 총구를 돌린 순간, 고스트-2의 손목에서 30센티미터 길이의 단분자 커터가 슈우욱 소리를 내며 튀어나왔다. 초고주파 진동이 가해진 칼날은 붉은 비상등 불빛을 받아 기분 나쁜 광막을 그리며 사선으로 그어졌다.
서걱!
"윽……!"
렉스가 신음하며 뒤로 물러섰다. 그의 중장갑 전투용 전신 슈트의 가슴 장갑판이 두부 베이듯 깔끔하게 찢겨 나갔다. 그 틈새로 붉은 선혈이 사정없이 뿜어져 나와 복도 바닥을 적셨다. 단 한 번의 교차만으로 렉스의 거구는 무력하게 무릎을 꿇었다.
"렉스!"
고르크가 울부짖으며 앞으로 돌진했다. 그의 왼손에 쥔 단분자 커터 ‘러스트 블레이드’가 보라색 진동을 토해내며 고스트-2의 목덜미를 향해 수평으로 그어졌다.
고스트-2는 상체를 극단적으로 뒤로 젖히며 고르크의 참격을 종이 한 장 차이로 피했다. 칼날이 허공을 가르는 날카로운 파동음이 복도를 울렸다. 고스트-2는 피하는 것과 동시에 오른발로 고르크의 잘려 나간 오른쪽 어깨 관절을 정확히 걷어찼다.
"끄아아아악!"
이미 파손되어 오일이 흐르던 결합부에 가해진 타격에 고르크가 극심한 비명을 지르며 중심을 잃었다. 단분자 커터를 쥔 왼손이 흔들리는 찰나, 고스트-2의 차가운 칼날이 역방향으로 휘둘러졌다.
하지만 고르크는 데브리스-7의 밑바닥에서 뼈가 굵은 베테랑 기계공이었다. 그는 자신의 죽음을 직감한 순간, 오히려 왼손의 커터를 내던지고 남은 기계 어깨와 전신 질량으로 고스트-2의 품속을 파고들었다.
"이…… 쥐새끼 놈이!"
고르크가 반파된 기계 팔의 유압 출력을 임계치인 150%까지 강제로 폭주시키며, 왼손으로 고스트-2의 목덜미를 움켜쥐었다. 기계 손가락의 유압 실린더가 비명을 지르며 조여들었다.
쿠우우웅!
고르크는 자신의 거구를 이용해 고스트-2를 아르고 호의 강철 복도 벽면에 그대로 들이받았다. 둔탁한 파쇄음과 함께 두꺼운 티타늄 벽면이 둥글게 찌그러져 들어갔다. 고스트-2의 바이저에 미세한 균열이 가며 차가운 안광이 흔들렸다.
"유리! 시우 데리고 도망쳐! 이놈은 내가 잡고 있는다!"
고르크가 입가로 피를 흘리며 소리쳤다. 그의 기계 손아귀에서 고스트-2의 목뼈가 으스러지는 소리가 들려오는 듯했다.
그러나 암살자는 인간의 감정이 거세된 살상 병기였다. 목이 조여오는 극한의 고통 속에서도 고스트-2의 안광은 흐려지지 않았다. 그의 오른손목에 장착된 단분자 커터가 기괴한 각도로 꺾이더니, 그대로 고르크의 왼쪽 기계 어깨 결합부를 깊숙이 찔러 들어갔다.
서가각!
초고주파 진동 칼날이 고르크의 마지막 기계 팔 유압 배선과 동력선을 사정없이 썰어버렸다. 찌릿한 고전압 스파크가 사방으로 튀며 유압 오일이 분수처럼 뿜어져 나왔다. 동력을 잃은 고르크의 기계 손가락이 무력하게 풀렸다.
"커헉……!"
고스트-2는 고르크의 가슴을 발로 차내며 그를 바닥으로 내팽개쳤다. 고르크는 찌그러진 철판 바닥 위로 쓰러져 신음하며 더 이상 움직이지 못했다. 복도는 온통 붉은 피와 녹색 유압 오일로 얼룩져 지옥의 참상을 방불케 했다.
이제 함교 조종실 앞을 가로막는 장벽은 아무것도 없었다.
고스트-2는 차가운 몸짓으로 옷에 묻은 오일을 털어낸 뒤, 천천히 함교 조종실의 해치 앞으로 걸어갔다. 그의 손목에서 뿜어지는 단분자 커터의 보라색 진동이 비상등의 붉은빛 속에서 기괴하게 일렁였다.
"안 돼…… 오지 마!"
유리가 시우의 조종석 앞을 온몸으로 가로막아서며 판도라 단말기를 무기처럼 치켜들었다. 그녀의 분홍색 머리칼이 공포로 사정없이 떨리고 있었다. 민우는 조종석 밑에서 눈물을 흘리며 시우의 차가운 오른손을 꼭 쥐었다.
"시우 형…… 제발 일어나…… 제발……."
고스트-2는 대답 대신 손목의 단분자 커터를 조종실 해치 잠금장치에 밀어 넣었다. 치이이익 소리와 함께 해치의 두꺼운 강철 걸쇠가 허무하게 녹아내리기 시작했다.
그 처절한 붕괴의 순간.
렉스가 찢겨 나간 가슴 장갑판을 움켜쥔 채, 바닥의 피웅덩이를 기어 고스트-2의 발목을 붙잡았다.
"내…… 내가 살아있는 한…… 한 발짝도 못 간다……."
고스트-2는 귀찮다는 듯 발목을 돌려 렉스의 머리를 사정없이 짓밟았다. 둔탁한 타격음과 함께 렉스의 고개가 꺾이며 쓰러졌다.
그가 쓰러지는 바로 그 찰나.
의식을 잃고 조종석 콘솔 위로 쓰러져 있던 백시우의 굳어 있던 오른손 손가락이 미세하게, 아주 미세하게 떨리기 시작했다.
시우의 닫혀 있던 눈꺼풀 아래로, 붉은색과 푸른색의 양자 주파수가 다시 한번 격렬하게 소용돌이치기 시작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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