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부의 밀고자
“시우야, 우리 좌표가…… 우리 아르고 호의 실시간 위치 정보가 무선 릴레이를 타고 외부로 새어 나가고 있어! 내부의 누군가가 송신기를 열어둔 거야!”
유리의 비명이 함교의 둔탁한 진동을 찢어발겼다. 분홍색 머리칼을 쥐어뜯으며 단말기 ‘판도라’의 홀로그램 스크린을 두드리는 그녀의 손끝이 미세하게 떨리고 있었다. 붉은색 데이터 스트림이 폭포처럼 흘러내리며 조종석 전면 창을 온통 붉은빛으로 물들였다.
백시우는 조종간을 움켜쥔 손가락 끝에 힘을 주었다. 목덜미에 매립된 ‘싱크 포트 v4’는 이미 벌겋게 달아올라 치익 소리와 함께 미세한 나노 스팀을 토해내고 있었다. 척추뼈를 타고 뇌세포로 직접 침투하는 과열된 신경통에 이빨이 절로 사려 물렸다. 감각이 완전히 죽어버린 왼쪽 다리는 조종석 바닥에 무겁게 얹혀 있을 뿐, 미동조차 하지 않았다. 왼쪽 눈은 아레스의 붉은색 양자광으로, 오른쪽 눈은 아르고 호의 푸른빛으로 물든 채 떨리고 있는 이중 변색의 시야 너머로, 붉은 가스 안개가 기분 나쁘게 소용돌이쳤다.
“내부 유출이라고? 이 배 안에 쥐새끼가 타고 있다는 소리냐?”
엔진실 통신 화면 너머로 고르크가 일그러진 얼굴을 들이밀었다. 그의 이마에는 방금 전 플라즈마 불꽃이 튀어 생긴 선명한 붉은 화상 흉터가 새겨져 있었고, 잘려 나간 기계 어깨 관절에서는 여전히 지혈 젤 사이로 스파크가 튀고 있었다. 그 뒤편에서 소년 민우가 나노 열기에 벌겋게 부어오른 손가락 끝을 붕대로 감은 채 불안한 눈빛으로 시우를 바라보고 있었다. 에어록 구석에 기대어 있던 벤 역시 찌그러진 산소 탱크를 부여잡은 채 거친 숨을 내쉬었다. 산소 잔량 경고등이 그의 얼굴을 주기적으로 붉게 비추었다.
“아니, 인적 신호가 아니야.”
유리가 이빨로 사탕을 부수며 판도라의 모니터를 시우의 전면 스크린으로 전송했다.
“아르고 호 내부의 서브 릴레이 장치 중 하나가 강제로 활성화됐어. 데브리스-7의 고철 조합 무선 주파수 대역을 쓰고 있어. 이건…… 외부에서 주파수를 열어둔 게 아니라, 내부에서 사전에 심어둔 물리적 비콘이 작동한 거야!”
“주파수 서명을 분석해 봐, 유리.”
시우의 목소리는 차갑다 못해 서늘했다. 머릿속에서 사형수 AI 아레스의 기계적인 음성이 뇌파를 흔들었다.
- 분석을 지원합니다. 해당 송신 신호의 암호화 키는 데브리스-7 고철 수거 조합의 4등급 표준 보안 규격입니다. 등록된 사용자 이름은…… ‘유다(Judas)’입니다.
“유다……?”
고르크가 엔진실 콘솔을 주먹으로 쾅 내리쳤다. 스파크가 튀며 그의 일그러진 화상 흉터가 더욱 붉게 타올랐다.
“그 비열한 개자식이 결국 사고를 쳤군! 카일 일당의 현상금에 눈이 멀어 우리 지하 도크 좌표를 밀고한 것도 모자라, 아르고 호 내부에 스파이 비콘까지 심어뒀단 말이야?”
유다. 데브리스-7에서 함께 고철을 주우며 형 동생 하던 조합원 중 한 명이었다. 시우의 아버지가 남긴 유산이자 아르고 호가 숨겨진 지하 격납고의 비밀 좌표를 밀고해 기지를 조기에 탄로 나게 만든 만악의 근원. 그가 아르고 호의 수리 부품을 나르는 척하며 선내 깊숙한 배관 틈새에 초소형 양자 송신기를 숨겨두었던 것이 분명했다.
- 제레드 대장의 정예 선발 강습함 3척이 사일런트 존의 외곽 경계를 돌파했습니다. 유출된 양자 릴레이 신호를 역추적하여 아르고 호의 현재 좌표를 완벽히 짚어내고 고속 접근 중입니다. 도달 시간은 1분 40초.
아레스의 차가운 연산 보고가 시우의 시각 피질 위에 붉은색 타이머로 깜빡이기 시작했다.
“젠장, 양자 통신 교란 장치 ‘블랙아웃’을 다시 켤 수는 없어?”
시우가 묻자 유리가 고개를 저었다.
“블랙아웃 장치는 방금 전 용병단을 기만하느라 주 배터리가 방전됐어. 강제로 재가동하면 내 단말기 판도라의 회로가 통째로 타버려. 게다가 적들은 이미 아날로그 광학 센서까지 켜고 진입 중이라 단순 전파 교란은 통하지 않아!”
막다른 길이었다. 아르고 호의 보조 실드 배터리는 완전히 방전되어 물리 장갑으로만 버텨야 하는 상태였고, 하부 프레임에는 방금 전 고속 제동의 여파로 미세한 균열이 가 있었다. 주포 ‘궁극의 창’을 쏘아 길을 열려 해도 주포의 궤적이 사일런트 존의 양자 폭풍에 휘둘려 빗나갈 확률이 높았다.
“적들이 우리가 도망칠 경로를 완벽히 예측하고 있다면…….”
시우가 이중 변색된 눈동자를 가늘게 뜨며 입꼬리를 비틀어 올렸다. 뇌 속에서 아레스의 서늘한 지능이 그의 직관과 공명하기 시작했다.
“그 예측을 역이용해 주지. 유리, 유다가 심어둔 릴레이 송신기의 주파수를 완전히 차단하지 마.”
“뭐? 미쳤어? 계속 신호를 내보내겠다고?”
“아니, 차단하는 대신 해킹해. 그 송신기의 출력을 아르고 호의 서브 도약 엔진 잔류 전하와 동조시켜서, 우리가 반대 방향인 제3구역 폐선 분지 너머로 도약한 것처럼 가짜 양자 신호를 방출해.”
유리의 눈이 크게 떠졌다. 그녀는 사탕을 질겅질겅 씹으며 키보드를 미친 듯이 두들겼다.
“가짜 좌표 방출 기만 전술……! 제레드의 연산 장치가 그 신호에 속아 넘어가기만 한다면 선발대의 진로를 순간적으로 흐트러뜨릴 수 있어!”
- 흥미로운 전술이군요, 파일럿. 적들의 정예 강습선들은 기만 신호에 순간적인 혼선을 겪겠지만, 결국 물리적 거리의 한계로 인해 아르고 호의 진짜 위치를 광학 센서로 포착할 것입니다. 돌입을 허용하게 됩니다.
“알아, 아레스. 어차피 저 붉은 가스 안개 속에서 주포를 쏘아봤자 빗나가기만 해. 그러니까 적들이 아르고 호의 코앞까지 오도록 내버려 둔다.”
“시우야, 미쳤어? 실드도 없는 상태에서 강습선들이 외벽에 접촉하기라도 하면 백병전이야! 내 기계 팔도 박살 났는데 함내 전투는 무리라고!”
고르크가 비명을 질렀지만, 시우의 시선은 흔들리지 않았다.
“적들이 아르고 호의 표면에 도킹하기 위해 전자기 실드를 끄고 물리적 클램프를 채우는 그 순간…… 기체 표면에 남아 있는 모든 전하를 일시에 방출하는 ‘퀀텀 버스트’를 터뜨린다. 적들을 우리 반경 내로 완전히 끌어들여 한 번에 구워버리는 거야.”
- 퀀텀 버스트(Quantum Burst)의 가동 확률을 계산합니다. 적 강습선들의 제어 회로를 완전히 전소시킬 확률 98.7%. 단, 방전의 반동으로 아르고 호의 보조 전력이 10초간 완전히 정지되며, 역전류가 파일럿의 목덜미 신경 포트를 강타할 확률 100%입니다. 파일럿의 자아 붕괴 위험성이 존재합니다.
“그전에 내가 저놈들을 격추하지 못하면 우린 다 제레드의 감옥에 처박혀. 유리, 준비해!”
“알았어! 가짜 좌표 송출 시퀀스 가동!”
유리가 판도라 단말기의 마스터 엔터 키를 강하게 내리쳤다.
우웅—!
아르고 호의 우측 릴레이 안테나에서 미세한 황금빛 양자 펄스가 성운 가스 너머 반대 방향으로 쏘아졌다. 유다가 심어둔 불법 송신기가 역해킹되어 가짜 도약 신호를 은하망에 뿌리기 시작한 것이다.
저 멀리 가스 안개 속에서 백색 서치라이트를 번뜩이며 고속 전진하던 제레드의 선발 강습선 3척의 항로가 순간적으로 크게 일그러졌다. 가짜 신호가 가리키는 제3구역 방향으로 기수를 틀려던 강습선들은, 이내 아르고 호의 거대한 물리적 동체를 광학 센서로 포착하고 다시 기수를 바로잡았다.
하지만 그 짧은 3초의 혼선은 시우가 원하는 대로 적들의 대열을 완전히 흐트러뜨려 놓았다. 그들은 아르고 호가 엔진 고장으로 도약에 실패해 표류하고 있다고 확신한 듯, 무방비 상태로 고속 돌입을 감행했다.
“다가온다! 500미터! 300미터!”
유리가 비명을 질렀다.
전면 창 너머로 거대한 송곳 같은 도킹 클램프를 장착한 정예 강습선 3척이 사일런트 존의 붉은 가스를 찢으며 돌진해 왔다. 그들은 아르고 호를 파괴하는 대신, 고대 전함을 온전한 상태로 나포하기 위해 함선 외벽에 물리적 강습 브릿지를 장착하려 하고 있었다.
철컥! 쾅! 쾅!
육중한 티타늄 클램프가 아르고 호의 상부와 측면 장갑에 사정없이 박히며 거대한 금속성 충격음이 함교 전체를 뒤흔들었다. 선체가 격렬하게 요동쳤고, 천장에서 흙먼지와 미세한 스파크가 쏟아졌다.
“도킹 완료 확인! 적 보병 대원들이 에어록 용접을 시작했습니다!”
민우가 조종석 구석에서 머리를 감싸 쥐며 외쳤다.
“가까이 와라…… 더 가까이.”
시우는 마비된 다리를 딛고 일어설 수 없었기에, 오른손으로 조종간의 비상 방전 다이얼을 꽉 움켜쥐었다. 그의 이중 변색된 안구가 광기 어린 투지로 번뜩였다. 목덜미의 싱크 포트 v4가 터질 듯한 고열을 토해내며 주변 피부를 벌겋게 침식해 들어갔다.
적 강습선들이 도킹 통로의 압력을 조율하며 전자기 실드를 완전히 끄는 그 찰나의 순간.
“지금이다! 아레스, 전력 전하 방출!”
시우가 다이얼을 한계치까지 돌리며 트리거를 당겼다.
“퀀텀 버스트(Quantum Burst)!!!”
콰아아아아아아앙—!
아르고 호의 칠흑 같은 외장 장갑 표면에서 눈을 멀게 할 정도의 눈부신 푸른빛 양자 파동이 구형으로 폭발하듯 사방으로 번져나갔다.
그것은 단순한 충격파가 아니었다. 아르고 호의 고대 양자 에너지가 실시간으로 변조되어 방출된 거대한 전자기 폭풍의 파도였다. 도킹해 있던 적 강습선들의 표면을 타고 푸른 전류가 사나운 뱀처럼 휘감아 흘렀다.
“아아악! 제어 불능! 실드가 타버린다!”
적 강습선 내부의 조종사들이 내지르는 단명 비명이 주파수를 타고 짧게 메아리쳤다. 퀀텀 버스트의 파괴적인 양자 에너지는 강습선들의 에너지 실드를 양자 단위로 분해해 버린 뒤, 내부의 전자 제어 회로와 발전기 코어를 순식간에 시커멓게 태워버렸다.
투두두둑! 쾅!
접착되어 있던 적의 강습선들이 발전기 폭발의 반동으로 사방으로 튕겨 나가며 사일런트 존의 소행성 파편들과 충돌해 붉은 불꽃으로 산산조각이 났다. 아르고 호에 물리적으로 침투하려던 제레드의 정예 대원들은 함선 내부로 발 한 짝 들이밀지 못한 채 우주의 먼지로 소멸했다.
통쾌한 승리였다. 적의 기만 전술과 압도적인 물량을 완벽히 무력화시킨 천재 파일럿의 변칙 전술이 빛을 발한 순간이었다.
하지만 그 대가는 가혹했다.
“……윽!”
퀀텀 버스트의 가공할 역전류가 아르고 호의 구리 도선을 역류하여 시우의 목덜미 신경 포트를 직격했다.
지지지지직!
“아아아아아악!”
시우가 머리를 감싸 쥐며 비명을 질렀다. 목덜미의 싱크 포트 v4에서 백색 스파크가 튀며 타들어 가는 매캐한 냄새가 함교를 가득 채웠다. 그의 뇌 세포 시냅스가 고압 전류에 직접 구워지는 듯한 극심한 신경 열폭주가 그의 자아를 사정없이 짓밟았다.
그의 왼쪽 눈에서 붉은 피가 눈물처럼 흘러내려 뺨을 타고 흘렀다. 시야가 온통 하얗게 번쩍이더니, 이내 칠흑 같은 암흑으로 변해갔다.
“시우야! 정신 차려! 시우야!”
유리가 단말기를 내팽개치고 조종석으로 달려와 시우의 어깨를 붙잡았지만, 시우의 손가락은 이미 조종간을 놓친 채 허공에서 경련하고 있었다. 아르고 호의 보조 전력이 방전의 반동으로 완전히 정지되며, 함교의 모든 조명이 꺼지고 비상용 붉은 전등마저 침묵 속에 잠겨들었다.
차가운 어둠이 내려앉은 함교 안에서, 시우의 고개가 꺾이며 조종석 콘솔 위로 쓰러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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