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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일런트 존의 사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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붉은 가스 구름이 요동치는 사일런트 존(Silent Zone)의 입구는 거대한 맹수의 아가리처럼 아르고 호를 집어삼켰다.


대기권을 돌파하자마자 감행한 무모한 비행의 대가는 가혹했다. 함교를 감싸고 있던 비상등이 적색으로 거칠게 점멸하며 고막을 찢는 경보음을 토해냈다.


[위험: 보조 에너지 실드 배터리 잔량 0%. 실드 기능이 완전히 정지되었습니다.]


[경고: 외부 전자기 노이즈가 임계치를 초과했습니다. 양자 통신 및 자동 항법 제어 장치가 차단됩니다. 수동 조종으로 전환하십시오.]


“조용히 좀 해봐, 기계 놈들아!”


백시우는 이빨을 악물며 조종간을 움켜쥐었다. 목덜미에 이식된 ‘싱크 포트 v4’에서 치이익 소리와 함께 매캐한 나노 스팀이 뿜어져 나왔다. 척추뼈 깊숙이 박힌 금속 단자가 타들어 가는 듯한 신경통이 뇌리를 사정없이 찔렀다. 왼쪽 다리는 이미 완전히 마비되어 감각이 죽어 있었고, 그 저릿한 통증은 허리춤을 타고 올라와 심장박동마저 옥죄고 있었다.


그의 눈동자는 기괴하게 빛나고 있었다. 아레스의 살상 연산과 공명하는 왼쪽 눈은 붉은색 양자광으로, 아르고 호의 고대 제어망과 연결된 오른쪽 눈은 푸른빛으로 물든 이중 변색 기믹이 어두운 함교 안을 스산하게 비추었다.


- 파일럿, 현재 사일런트 존의 양자 폭풍 밀도는 평소보다 140% 높습니다. 실드가 없는 상태에서 직경 10미터 이상의 소행성 파편과 충돌할 경우, 아르고 호의 외장 장갑이 물리적으로 관통될 확률은 98.7%입니다. 수동 제어만으로는 생존이 불가능합니다.


뇌 속에서 울리는 아레스의 음성은 얼음처럼 차가웠다.


“시끄러워, 아레스. 내가 안 죽으면 너도 안 죽어. 그러니까 쓸데없는 경고 대신 길이나 찾아!”


시우는 마비된 왼쪽 다리를 오른손으로 짓누르며, 오른발 끝으로만 수동 가속 패달을 미세하게 조율했다.


쿠구구구궁—!


창밖은 지옥이었다. 사일런트 존 내부의 붉은 가스 성운은 강력한 양자 폭풍에 휩쓸려 거대한 소용돌이를 그리며 아르고 호를 사정없이 때려댔다. 레이더 화면은 전자기 노이즈로 인해 하얗게 지워진 지 오래였다. 오직 전면 창을 통해 들어오는 육안 시야와 시우의 타고난 감각만이 유일한 나침반이었다.


타당! 탕!


주먹만 한 소행성 파편들이 아르고 호의 나노 합금 장갑을 때릴 때마다 날카로운 금속성 비명이 함내를 뒤흔들었다. 실드가 없는 아르고 호의 맨살이 찢겨 나가고 있었다.


“유리! 아레스의 자동 복구 기능은 어떻게 됐어?”


시우가 소리치자, 함교 중앙 콘솔에 자신의 양자 단말기 ‘판도라’를 연결한 채 서 있던 천재 해커 유리가 분홍색 머리를 쥐어뜯으며 소리쳤다.


“안 돼! 아레스가 나노 기계들을 가동해서 장갑을 치료하려고 하면, 이 양자 폭풍의 미친 노이즈 때문에 나노 입자들이 자가 분열을 일으켜! 오히려 장갑을 갉아먹는 괴물로 변한다고! 방금 전에도 복구 시퀀스가 강제로 리셋됐어!”


자동 복구라는 최첨단 시스템마저 무용지물인 상황. 이대로 가다간 폭풍의 압박에 선체가 완전히 분해될 터였다.


그때, 시우의 뇌파가 미세하게 진동했다. 그의 선천적 재능인 ‘기계 직관’이 폭풍 속에서 울리는 기묘한 진동 주파수를 포착했다. 전자기 노이즈가 가득한 붉은 안개 저편, 거대한 그림자들이 웅크리고 있는 공간이 있었다.


“……폐선 묘지인가?”


시우가 눈을 가늘게 뜨며 말했다.


- 분석합니다. 과거 성간 전쟁 당시 격침된 채 방치된 연합군 제7함대의 파괴 전함 잔해들입니다. 전방 12킬로미터 지점에 고밀도 폐선 지대가 형성되어 있습니다.


“거기로 간다.”


시우는 조종간을 앞으로 꺾었다. 아르고 호가 소행성 파편들의 파도를 뚫고 거대한 고철 전함들의 잔해 속으로 파고들었다. 수백 미터에 달하는 전함들의 잔해가 찢겨 나간 채 무중력 공간을 표류하고 있었다. 이곳은 소행성 폭풍을 막아줄 천연의 방패막이였다.


시우는 기계 직관 능력을 극한으로 끌어올렸다. 뇌가 과열되며 관자놀이가 찌릿하게 아파왔지만, 그의 머릿속에는 표류하는 폐선들의 단면도가 투사되기 시작했다. 어느 부분이 파손되었고, 어느 부분이 아직 쓸만한지 양자 흐름이 느껴졌다.


“찾았다.”


시우의 시선이 반쯤 쪼개진 연합군 구축함의 장갑판에 고정되었다.


“저 구축함의 이중 외장 장갑…… 저건 단순한 장갑판이 아니야. 강력한 전자기 충격을 분산시키는 ‘전자기 차폐 장갑판(Electromagnetic Shielding Armor Plate)’이야. 저걸 뜯어내서 우리 배 외벽에 덧대면 양자 폭풍의 노이즈를 차단할 수 있어.”


그의 말이 끝나기 무섭게, 함교 한구석에서 껌을 질겅질겅 씹고 있던 날렵한 체구의 사내가 한 걸음 걸어 나왔다. 온몸에 가죽 주머니를 주렁주렁 매달고 소형 제트팩을 등에 멘 부품 수거 전문가, 벤(Ben)이었다.


“돈 냄새 하나는 기가 막히게 맡는군, 파일럿.”


벤이 비열하면서도 대담한 미소를 지으며 제트팩의 안전고리를 점검했다.


“저 정도 두께의 차폐판이라면 암시장에서도 부르는 게 값이지. 내가 나가서 뜯어오겠어. 대신 내 수수료는 확실히 챙겨주는 거다?”


“살아서 나간다면 얼마든지 주지. 고르크, 준비해!”


시우가 외치자, 엔진룸에서 통신기로 고르크의 거친 목소리가 들려왔다.


- 이마에 화상 흉터가 아직도 따끔거리는데 또 노가다냐! 벤, 그 쇳덩어리 뜯어오면 내가 아르고 호 외벽에 대고 ‘나노 입자 복구 키트’로 강제 용접을 때려버릴 테니까 서둘러!


고르크는 툴툴거렸지만 이미 한 손으로 유압식 용접기를 움켜쥐고 있었다.


치이이익—!


하부 에어록이 열리고, 벤이 소형 제트팩을 가동하며 칠흑 같은 우주 공간으로 날아올랐다. 그의 몸이 붉은 가스 안개와 폐선 잔해 사이로 유연하게 미끄러졌다. 벤은 단분자 절단기를 꺼내 연합군 구축함의 차폐 장갑판 결합부에 대고 불꽃을 뿜어내기 시작했다.


서걱! 서거걱!


무중력 공간 속에서 은백색의 불꽃이 튀며 장갑판이 잘려 나갔다.


하지만 사일런트 존은 침입자를 쉽게 용서하지 않았다. 웅성거리는 전자기 소음과 함께, 거대한 소행성 파편 하나가 폭풍의 흐름을 타고 벤이 작업하고 있는 폐선을 향해 무서운 속도로 돌진하기 시작했다.


“벤! 뒤를 봐!”


유리가 모니터를 보며 비명을 질렀다.


벤이 고개를 돌렸을 때는 이미 늦어 있었다. 제트팩의 가속력만으로는 그 거대한 질량의 충격을 피할 수 없었다.


함교의 시우가 이빨을 깨물었다.


“아레스, 타이탄 그립 제어권을 내 뇌파로 직접 넘겨!”


- 위험합니다. 현재 동조율에서 타이탄 그립의 중력 제어를 수동으로 시도하면 뇌 시냅스 손상률이 15% 추가 상승합니다.


“닥치고 넘겨!”


시우의 목덜미 포트에서 불꽃이 튀었다. 그의 왼쪽 눈에서 흘러내린 피가 턱끝을 타고 콘솔 위로 뚝뚝 떨어졌다. 시우는 오른손으로 보조 무장 조종간을 틀어쥐며, 뇌 속으로 타이탄 그립(중력 견인 광선 방출기)의 주파수를 강제로 우회시켰다.


우웅—!


아르고 호 좌측 하부 포탑에서 황금빛 중력 견인 광선이 뿜어져 나와 날아오던 소행성을 정확히 움켜쥐었다. 중력의 쇠사슬이 허공에서 소행성을 강하게 끌어당겼다.


“으랴아아아!”


시우가 조종간을 옆으로 홱 꺾자, 소행성이 궤도를 크게 틀며 벤의 머리 위를 아슬아슬하게 스쳐 지나가 다른 폐선 잔해에 부딪쳐 산산조각이 났다. 충격풍이 벤의 제트팩을 흔들었지만, 벤은 그 틈을 놓치지 않고 잘려 나간 전자기 차폐 장갑판을 쇠사슬로 묶어 아르고 호를 향해 유영하기 시작했다.


“가져왔다! 고르크, 받아!”


에어록 입구에서 대기하고 있던 고르크가 파손된 기계 어깨 관절의 통증을 참아내며 장갑판을 끌어당겼다.


“민우야! 나노 입자 복구 키트 스프레이 가져와!”


엔진실 한구석에서 붕대를 감은 손가락 끝의 화상 통증을 참고 있던 소년 민우가 급히 은색 스프레이 캔을 고르크에게 건넸다.


“여기요, 아저씨!”


고르크는 전자기 차폐 장갑판을 아르고 호의 파손된 우측 외벽에 밀착시켰다. 그리고 나노 입자 복구 키트를 접합부에 사정없이 분사했다.


치이이이이익—!


분사된 은백색의 나노 젤이 고르크의 용접 불꽃과 만나며 스스로 금속 분자 구조를 재용접하기 시작했다. 이것이 바로 시우가 뇌파로 보정하고 아레스가 연산하는 ‘나노 입자 물질 재구성 시퀀스’였다. 전자기 폭풍의 노이즈가 용접 부위를 방해하려 했지만, 고르크의 투박하고 노련한 수동 용접 기술이 나노 입자들의 결합 주파수를 억지로 붙잡아 두었다.


함교의 시우는 뇌 신경 포트의 열감을 견뎌내며 아르고 호의 엔진 노즐을 아주 미세하게 조정했다. 폭풍이 불어오는 방향으로 엔진 추진력을 역분사하여, 기체가 받는 물리적 충격을 최소화하는 정밀한 조율 비행이었다.


철컥! 철컥!


마침내 전자기 차폐 장갑판이 아르고 호의 선체 외벽에 완벽히 결합되었다.


그 순간, 거짓말처럼 함교 내부를 가득 채우고 있던 전자기 노이즈와 지지직거리던 계기판의 화면들이 맑게 안정화되기 시작했다. 붉은색 경고등이 꺼지고 푸른색 시스템 라인들이 제 빛을 되찾았다.


“성공이야…….”


유리가 단말기 판도라의 모니터를 보며 안도의 한숨을 내쉬었다.


“선체 내부의 전자기 노이즈가 90% 이상 차단됐어. 이제 폭풍 속에서도 기체 제어가 완벽히 작동해.”


고르크가 에어록 안으로 들어와 용접 마스크를 벗으며 이마의 땀을 훔쳤다. 벤 역시 산소 탱크가 찌그러진 채 해치 안으로 굴러들어와 털썩 주저앉았다. 모두가 생사의 경계선에서 살아 돌아왔다는 안도감에 젖어드는 찰나였다.


그러나 평화는 사일런트 존의 가스 구름처럼 찰나에 불과했다.


삐비비비비빅—!


아르고 호의 복구된 단거리 광학 센서 화면에 불길한 붉은색 경고등이 다시 한번 켜졌다.


가시성 제로의 칠흑 같은 우주 가스 너머, 폐선들의 거대한 그림자 사이에서 기이하게 번뜩이는 붉은색 센서 광망이 아르고 호의 선체를 정면으로 비추기 시작했다. 하나가 아니었다. 둘, 셋, 그리고 무수히 많은 붉은 눈들이 어둠 속에서 서서히 다가오고 있었다.


- 경고. 사일런트 존 내부의 비공식 무장 세력 포착. 적 기체들의 무장 록온 신호가 감지됩니다.

HẾT CHƯƠNG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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