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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령의 승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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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레드 대장의 본대 함선들이 포문을 열며 무자비한 일제 사격을 개시했다.


우주 공간을 가득 메운 백자색 플라즈마 탄막과 초고속 레일건의 궤적이 암흑을 찢어발겼다. 아르고호의 전면 스크린은 경고 주파수로 인해 붉은 비명을 질러댔다. 보조 실드 배터리가 완전히 방전된 상태. 스치기만 해도 선체가 분해될 절대적인 위기 속에서 백시우는 마비된 왼쪽 다리의 감각을 억지로 무시하며 조종간을 움켜쥐었다.


“치이이이익—!”


목덜미에 이식된 ‘싱크 포트 v4’에서 나노 스팀이 뿜어져 나왔다. 척추를 타고 치솟는 극심한 고열과 두통에 머리가 깨질 것 같았다. 왼쪽 눈에서는 붉은 양자광과 함께 핏방울이 흘러내려 뺨을 적셨고, 오른쪽 눈은 아르고호의 시스템과 공명하며 푸른빛으로 물들어 있었다. 괴물 같은 이중 안구의 변색 기믹이 어두운 함교 안을 기괴하게 비추었다.


- 파일럿, 섀도우 편대의 요격기 4척이 우측 사각지대에서 록온을 시도하고 있습니다. 회피 확률 12% 미만.


아레스의 서늘한 기계음이 뇌리를 때렸다.


“입 닥쳐, 아레스! 내 몸이 가속도를 버티는 한 1%라도 뚫어낸다!”


시우는 오른발로 수동 보조 분사 패달을 짓밟으며 조종간을 직각으로 꺾었다. 아르고호가 관성을 무시하고 소행성 잔해의 틈새로 미끄러져 들어갔다. 바로 뒤편에서 레일건 탄환들이 소행성을 직격하며 거대한 암석 파편들이 폭풍처럼 쏟아졌다.


그 순간, 함교의 비상 통신망 콘솔이 미친 듯이 깜빡였다. 찌지직거리는 노이즈를 뚫고 날카롭고 다급한 소녀의 목소리가 흘러나왔다.


- 야! 거기 타는 고철 도둑놈들아! 해치 열어! 당장 열라고!


시우는 미간을 찌푸렸다. “누구지?”


- 데브리스-7의 천재 해커 유리다! 니들이 훔쳐 간 오리온 디스크의 보안을 해킹하려다가 발할라 본사 추격망에 내 탈출선까지 날아갔단 말이야! 지금 니들 우측 하부 외부 해치에 내 구형 캡슐이 강제 접착되어 있어! 30초 내로 안 열어주면 난 저 섀도우 편대 레이저에 가루가 된다고!


화면 한구석에 외부 화물 해치의 상태창이 떴다. 정말로 조잡하게 마개조된 소형 탈출 캡슐 하나가 아르고호의 외벽에 위태롭게 매달려 있었다.


- 분석 완료. 발신자의 데이터 단말기 ‘판도라’에서 흘러나오는 양자 신호가 카일의 금융 요새에서 노획한 양자 보안 카드의 주파수와 일치합니다. 그녀는 디스크의 비밀을 알고 있는 유일한 외부인입니다.


아레스의 연산 보고에 시우의 눈빛이 차갑게 가라앉았다.


“고철상 깡패 카드 주파수를 해킹한 쥐새끼라 이거지. 하지만 이 포화 속에서 해치를 열라고?”


- 꺄악! 미사일 날아오잖아! 야! 낙제생 파일럿! 너 사관학교 쫓겨난 누명 억울하지도 않아? 내가 그 디스크 안에 락 걸린 니네 아빠 기밀 데이터 전부 다 해독해 줄 테니까 당장 문 열어!


‘아빠의 기밀 데이터 해독’이라는 단어에 시우의 손가락이 굳었다. 마비된 왼쪽 다리에서부터 짜릿한 전율이 목덜미 포트까지 역류했다.


“고르크! 하부 화물 해치 수동 개방 시스템 준비해! 민우는 에어록 압력 조율하고!”


“미쳤어, 시우야! 이 속도에서 해치를 열면 기압 차 때문에 배가 터져!”


통신망 너머 엔진룸에서 고르크가 이마의 화상 흉터를 일그러뜨리며 소리쳤다.


“타이탄 그립의 잔류 자기장으로 에어록 주변에 국소 왜곡막을 치면 버틸 수 있어! 고르크, 날 믿어!”


시우는 망설임 없이 조종간의 레버를 당겼다. 아르고호가 소행성 뒤편으로 급선회하며 적들의 조준선에서 순간적으로 벗어난 찰나의 10초.


치이이이익—!


하부 화물 해치가 거친 스팀을 토해내며 열렸다. 유리의 구형 캡슐이 에어록 내부로 거칠게 미끄러져 들어왔고, 쾅 소리와 함께 격벽이 다시 차단되었다.


몇 초 후, 함교의 자동문이 열리며 헝클어진 분홍색 머리를 한 소녀가 들이닥쳤다. 헐렁한 오버사이즈 후드티에 껌을 씹으며, 한 손에는 빛바랜 데이터 판독기와 양자 단말기 ‘판도라’를 쥐고 있었다. 유리는 숨을 헐떡이면서도 시우를 향해 까칠하게 쏘아붙였다.


“야! 조종을 이따위로 해? 캡슐 안에서 내 소중한 사탕들이 다 깨졌잖아!”


“살려줬더니 잔소리군. 해커 꼬맹이, 약속한 비장의 무기나 꺼내시지. 저기 뒤에 따라오는 전함들 안 보여?”


시우가 냉소적으로 대꾸하며 전방 스크린을 가리켰다. 제레드 대장의 본대 함선들이 포격을 지속하며 아르고호의 퇴로를 완전히 차단하고 있었다.


“하! 내 ‘판도라’를 우습게 보지 마.”


유리는 투덜거리며 함교 중앙 콘솔로 걸어가 자신의 단말기를 아르고호의 고대 양자 슬롯에 강제로 꽂아 넣었다.


[경고: 승인되지 않은 외부 디바이스 침입 감지. 방화벽 프로토콜 기동.]


아르고호의 자체 보안 시스템이 유리의 접속을 적으로 규정하며 붉은 광막을 띄웠다. 아레스의 연산 회로가 유리의 판도라 단말기를 압박하기 시작한 것이다. 유리의 단말기에서 고열로 인한 연기가 피어올랐다.


“앗, 뜨거! 이 배 컴퓨터 대체 정체가 뭐야? 내 해킹 바이러스를 역으로 씹어 먹고 있잖아!”


“아레스, 방화벽 해제해. 이 녀석은 아군이다.”


시우가 목덜미의 싱크 포트에 손을 얹으며 명령했다. 붉은 눈의 아레스 홀로그램이 유리의 단말기를 잠시 응시하더니, 이내 방화벽을 거두었다.


“좋아, 이제 내 차례야.”


유리가 단말기의 자판을 광속으로 두들기기 시작했다. 그녀가 준비해 온 ‘양자 통신 교란 장치 블랙아웃’의 소스 코드가 아르고호의 외부 송신기를 타고 사방으로 방출되었다.


웅—!


아르고호의 외부 장갑 표면에서 보라색 전자기 펄스 파동이 구형으로 폭발하듯 번져나갔다. 그 파동이 퍼지는 순간, 아르고호를 집요하게 쫓던 제레드 함대의 정밀 록온 레이더망이 일제히 노이즈로 가득 차며 갈 길을 잃었다. 적 요격기들이 서로의 위치를 잃고 대형이 흐트러졌다.


“지금이야! 저 무식한 대기업 놈들 레이더를 완전히 먹통으로 만들었어! 하지만 이 효과는 길어야 1분이야. 우리가 살려면 저기 전자기 폭풍이 휘몰아치는 사일런트 존으로 들어가야만 해!”


유리가 숨을 헐떡이며 조종석을 향해 외쳤다.


시우는 전방 스크린 너머, 거대한 전자기 스파크와 소행성 파편들이 소용돌이치고 있는 지옥 같은 무덤 ‘사일런트 존’의 입구를 바라보았다. 실드가 방전된 아르고호에게는 또 다른 자살행위나 다름없는 공간이었다.


하지만 시우의 입꼬리가 호선을 그렸다.


“사일런트 존이라…… 쥐새끼치고는 꽤 마음에 드는 퇴로를 가져왔네.”


시우는 마비된 다리의 통증을 비웃으며 조종간을 끝까지 밀어붙였다. 아르고호는 황금빛 도약 전하의 잔상을 우주 공간에 길게 남긴 채, 붉은 가스 구름이 요동치는 사일런트 존의 아가리 속으로 거침없이 돌진했다.

HẾT CHƯƠNG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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