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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철 더미의 천재 낙제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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코를 찌르는 매캐한 엔진오일 냄새와 눅눅한 오존 향. 그것이 고철 쓰레기 행성, 데브리스-7(Debris-7)의 아침을 알리는 유일한 신호였다.


하늘에서는 수시로 산성 성분이 섞인 공업 폐기물 비가 내렸다. 찌그러진 전함의 장갑판 조각들이 엮여 만들어진 간이 지붕 위로 후두둑, 기분 나쁜 소리를 내며 빗방울이 부딪쳤다. 이곳은 은하 연합의 사법 통제마저 비껴간 외곽의 무법천지. 버려진 난파선의 잔해와 거대 기업들이 무단으로 투기한 기계 쓰레기들이 거대한 산맥을 이루고 있는 무덤이었다.


백시우는 녹이 슬어 붉게 바스러지는 해치 격벽에 등을 기대고 앉아 있었다. 그의 손에는 때 묻은 양자 볼트 렌치가 쥐어져 있었고, 한쪽 눈에는 사관학교 시절의 전술 고글을 개조한 투박한 단안 렌즈가 걸려 있었다.


‘최하층 낙제생.’


현재 시우의 공식적인 신분이었다. 불과 반년 전만 해도 그는 베가 사관학교에서 ‘백 년에 한 번 나올 천재 파일럿’이라 불리던 수석 생도였다. 기계의 미세한 오작동 소리나 진동만으로 시스템 내부의 물리적 균열을 즉각 파악해 내는 선천적인 ‘기계 직관’ 능력. 그리고 남들이 기절할 만한 중력 가속도를 웃으며 견뎌내는 괴물 같은 신경 동조율.


하지만 그 모든 재능은 발할라 중공업의 후계자, 레온 발할라의 비열한 음모 앞에서 종이조각처럼 찢겨 나갔다. 군사 기밀 유출이라는 억울한 누명을 쓰고 파일럿 라이센스를 박탈당한 채 퇴학당하던 날, 시우를 바라보던 동기들의 차가운 시선과 레온의 오만한 비웃음은 여전히 그의 가슴 깊은 곳에 지울 수 없는 상처로 박혀 있었다.


“빌어먹을 놈들…….”


시우는 나직하게 읊조리며 바닥에 굴러다니는 구리 칩을 발끝으로 툭 찼다. 데브리스-7에서 통용되는 유일한 실물 화폐, ‘스크랩(Scrap)’이었다. 겨우 산소 캡슐과 합성 식량을 교환할 수 있을 만큼의 푼돈. 사관학교에서 은하의 하늘을 호령하겠다던 소년은 이제 하루하루 폐선 더미를 뒤지며 연명하는 고철 도둑으로 전락해 있었다.


그때였다.


지하 아지트 ‘그레이브 야드’의 무거운 수동 해치 밖에서 불규칙한 발소리가 들려왔다. 쇳소리가 섞인 둔탁한 발걸음. 절뚝이는 한쪽 다리.


시우는 반사적으로 허리춤에 찬 단분자 커터 ‘러스트 블레이드’의 손잡이를 움켜쥐었다. 이곳 데브리스-7에서 경계를 늦추는 것은 곧 죽음을 의미했다. 팽팽한 긴장감 속에서 해치가 서서히 열리고, 기름때 묻은 작업복을 입은 노인이 모습을 드러냈다.


“……강 아저씨?”


시우가 긴장을 풀며 커터에서 손을 떼었다. 노인의 정체는 강도윤. 과거 시우의 아버지이자 발할라 중공업의 수석 양자 물리학자였던 백현우 박사의 전직 연구 조수였다. 아버지가 사법 살인을 당한 후, 정체를 숨기고 이곳 데브리스-7에서 고철상으로 살아가며 시우를 남몰래 돌봐준 유일한 은인이었다.


하지만 오늘 강도윤의 얼굴은 평소와 달랐다. 땀과 기름때로 범벅이 된 얼굴은 하얗게 질려 있었고, 숨을 거칠게 몰아쉬고 있었다.


“시우야, 시간이 없다. 당장 여기서 도망쳐야 해.”


도윤이 덜덜 떨리는 손으로 품속을 뒤적였다. 이윽고 그가 꺼내놓은 것은 낡고 투박한 은색 금속 디스크였다. 언뜻 보기에는 평범한 폐기용 데이터 스토리지처럼 보였지만, 그 중심부에서는 기묘할 정도로 정교한 양자 회로가 푸른빛을 미세하게 내뿜고 있었다.


“이건…….”


시우의 눈동자가 흔들렸다. 그의 타고난 기계 직관 능력이 디스크를 향해 경보를 울리고 있었다. 평범한 물건이 아니었다. 상상을 초월할 정도의 고밀도 양자 연산 소자가 내부에서 살아 숨 쉬는 듯한 진동을 토해내고 있었다.


“네 아버지가 목숨을 걸고 발할라의 손아귀에서 빼내어 숨겨둔 유산이다. ‘오리온 양자 코어 디스크’…….”


도윤은 시우의 손에 디스크를 쥐여주며 떨리는 목소리로 말했다.


“이 안에는 기업의 지배 질서 자체를 뒤흔들 수 있는 금기된 고대 전술 AI, ‘아레스’가 잠들어 있다. 발할라 중공업 본사 놈들이 평생을 바쳐 추적해 온 물건이지. 절대로, 절대로 그놈들의 손에 넘어가서는 안 된다.”


“아버지의 유산…….”


시우가 디스크를 움켜쥐는 순간, 그의 뇌 신경 포트가 이식된 목덜미 척추 부근이 찌릿하게 달아올랐다. 머릿속에서 웅웅거리는 미세한 양자 노이즈가 발생했다. 아직 AI가 깨어나지 않았음에도, 시우의 선천적인 ‘양자 감응형 뇌’가 디스크 내부의 연산 코어와 공명을 일으키기 시작한 것이었다.


“하지만 아저씨, 이걸 활성화하면…….”


“그래, 작동하는 순간 엄청난 밀도의 양자 파동이 방출된다. 데브리스-7을 장악하고 있는 사채업자 카일 일당의 광역 스캐너에 즉각 감지될 거야. 그놈들은 발할라의 하청을 받아 이 디스크를 찾기 위해 온 행성을 뒤지고 있으니까.”


도윤이 시우의 어깨를 강하게 움켜쥐었다. 그의 주름진 눈에 절박함이 가득했다.


“그러니 당장 도망쳐라. 이 행성 지하 깊은 곳에 네 아버지가 숨겨둔 진짜 유산으로 갈 수 있는 단서가 이 디스크에 들어 있다. 나는 어떻게든 그놈들의 시선을 끌 테니, 너는 뒤도 돌아보지 말고…….”


콰아아아앙!


도윤의 말이 끝나기도 전에, 지상에서부터 전해진 거대한 충격파가 지하 아지트 전체를 뒤흔들었다. 천장에서 고철 가루와 흙더미가 비 오듯 쏟아져 내렸다. 간이 지붕을 지탱하던 쇠파이프들이 비명을 지르며 휘어졌다.


“치익…… 탐지 완료. 제3구역 지하 공동에서 고밀도 양자 파동 감지. 목표물 확보를 개시한다.”


아지트 외부 통신망을 통해 조잡하게 변조된 목소리가 흘러나왔다. 카일 일당의 무전이었다. 디스크가 시우의 손에 닿아 미세하게 공명한 순간의 파동을 놈들의 고성능 양자 스캐너가 포착한 것이 분명했다.


“벌써 온 건가……!”


도윤의 얼굴이 절망으로 일그러졌다.


“시우야, 가라! 폐선 환기구로 들어가!”


시우는 입술을 깨물었다. 분노와 억울함이 가슴속에서 불길처럼 치솟았지만, 지금은 싸울 무기도, 라이센스도 없는 낙제생에 불과했다. 그는 도윤의 등 뒤로 밀쳐지며 수동 해치를 열고 벽면의 비좁은 배관 잔해 속으로 몸을 밀어 넣었다.


바스락거리는 고철 파편 소리를 죽이며 좁고 어두운 환기구를 기어가는 동안, 지상에서 무거운 군화 발소리가 아지트 내부로 들이닥치는 소리가 들렸다. 카일이 보낸 사냥개들이었다.


위잉, 위잉.


환기구 내부로 붉은색 광학 센서 불빛이 스며들었다. 순찰 드론 한 기가 좁은 배관 틈새로 대가리를 들이밀며 시우의 위치를 스캔하려 하고 있었다. 붉은 레이저 격자가 시우의 어깨너머로 뻗어 나가는 일촉즉발의 상황.


시우는 숨을 멈추고 손에 쥔 볼트 렌치를 꽉 쥐었다. 기계 직관 능력이 드론의 하부 센서 돔의 얇은 결합부를 짚어냈다. 시우는 가속도가 붙은 미세한 틈을 타, 렌치의 단단한 금속 모서리로 드론의 광학 렌즈를 내리쳤.


파창!


날카로운 파열음과 함께 드론의 센서가 불꽃을 튀기며 먹통이 되었다. 붉은 탐지 광선이 꺼지는 순간, 시우는 아지트 바닥에 흘려두고 온 아끼던 정비 도구들과 힘들게 모은 스크랩 화폐 주머니를 힐끗 바라보았다. 밑바닥 삶의 전부였던 자산들을 포기해야만 하는 가혹한 대가였지만, 지금은 목숨이 우선이었다.


그는 어둠 속으로 몸을 더 깊이 숨기며 기어갔다.


하지만 도윤이 남긴 경고를 곱씹을 새도 없이, 시우의 아지트 방향으로 카일 일당의 장갑차 엔진 소리가 울려 퍼진다.

HẾT CHƯƠNG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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