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철창 너머의 문답, 가해자의 가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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무경전(無境전) 지하 비밀 밀실의 공기는 얼음처럼 차갑고 축축했다. 붉은 석영 벽면을 타고 흘러내린 이슬이 바닥의 대리석을 적시는 소리가 규칙적으로 울려 퍼졌다.


스스스슥—.


어둠을 가르는 무거운 목조 바퀴 소리와 함께, 심청언은 천천히 휠체어를 굴려 지하로 내려갔다. 노회가 조제해 준 삼음고(三陰膏)의 약효는 이미 완전히 소멸해 있었다. 그의 두 다리는 감각을 잃은 채 휠체어 발판 위에 무겁게 얹혀 있었다. 태음경맥 마비 상태(태음경맥 마비 상태)가 주는 지독한 오한과 뼈를 깎는 듯한 통증이 다시금 척추를 타고 뇌수까지 밀려왔지만, 청언의 창백한 얼굴에는 먼지 한 톨만 한 동요도 일지 않았다.


칙, 치익.


그가 손가락을 가볍게 튕겨 벽면에 걸린 촛대에 불을 붙였다. 희미한 황색 불빛이 어둠을 밀어내며 철창 너머에 갇혀 있는 여인을 비추었다.


청송파(靑松派)의 후기지수, 유설아(劉雪雅)였다.


그녀는 온몸의 기혈이 백은사(白銀絲)에 묶여 제압당한 채, 철창 구석에 차가운 벽에 기대어 앉아 있었다. 백색 도포는 흙먼지로 더러워져 있었고, 이마에는 식은땀이 송골송골 맺혀 있었으나, 그녀의 맑고 고결한 눈동자만큼은 여전히 검날처럼 매섭게 빛나고 있었다.


하지만 그 눈빛 속에는 이전의 맹목적인 적개심만이 가득하지 않았다. 그 자리에는 낮 동안 무경전 앞마당의 환기구를 통해 흘러들어왔던 소리들이 남긴, 지독하고 처절한 혼란이 똬리를 틀고 있었다.


청언은 휠체어를 철창 앞 삼 장 거리에 멈추어 세웠다. 그리고 무릎 위에 놓인 검은 명검, 무경검(無境劍)의 자루를 손가락 끝으로 가만히 쓸어내렸다. 그의 소매 안쪽 깊은 곳에는 낮에 수거했던 유설아의 은비녀(유설아의 은비녀)가 묵직한 무게감으로 숨겨져 있었다.


“낮의 소란 때문에 잠을 설쳤나 보군, 청송파의 여협.”


청언이 입을 열었다. 그의 목소리는 평소 사파의 미치광이 소교주 ‘무경’을 연기할 때처럼 차갑고 오만했으며, 가느다란 쇠붙이가 긁히는 듯한 비정함이 섞여 있었다.


유설아는 천천히 고개를 들어 그를 응시했다. 그녀의 입술이 미세하게 떨렸다.


“……다 들었다.”


그녀의 목소리는 갈라져 있었지만, 쇠창살을 뚫고 나올 만큼 단단했다.


“네놈이 낮에 무경전 앞마당에서 벌인 짓을…… 이 지하 감옥의 환기구를 통해 전부 들었다. 부패한 감독관들의 목을 베어 계율을 세우고, 굶주린 하가 구역의 광부들에게 식량과 은화를 나누어주었다더군.”


“그래서?”


청언은 차갑게 반문하며 입꼬리를 비틀어 올렸다. 가해자의 가면을 쓴 자 특유의 비열한 미소였다.


“희대의 악마라 불리던 무경교의 소교주가 백성들을 구휼하는 선인(善人) 행세라도 하니, 평생 정(正)과 사(邪)의 경계만을 쫓던 네 머릿속이 뒤틀리기라도 한 모양이군.”


“왜 그랬지?”


유설아가 철창을 붙잡으며 몸을 앞으로 일으켰다. 기혈이 막힌 탓에 쇠사슬이 짤랑거리는 무거운 소리를 냈다. 그녀의 눈동자가 청언의 얼굴을 집요하게 파고들었다.


“백성들을 도살하고 정파를 멸문시키려던 광신도가, 어째서 무고한 광부들을 위해 칼을 뽑고 식량을 나누어준단 말인가? 네놈이 벌인 참수와 구휼은…… 정파의 그 어떤 문주들도 쉽게 행하지 못할 공명정대한 처결이었다. 대명율(大明律)의 엄격함과 협객의 자비가 동시에 존재하더군. 대체 네놈의 진짜 정체가 무엇이냐!”


그 질문은 청언의 심장 가장 깊은 곳을 찔러왔다. 대명율 감찰지침(大明律 監察指針)을 평생의 신념으로 삼았던 황실 포교 심청언으로서의 자아가 내면에서 요동쳤다. 자신을 대협이라 믿고 칼을 겨누는 정파의 여협을 기만하고 있다는 죄책감이 가슴을 짓눌렀다.


하지만 그는 흔들려서는 안 되었다. 이곳은 적들의 이목이 도처에 깔린 무경전이었고, 자신은 여동생의 목숨을 쥐고 흔드는 동창의 사냥개이자 사파의 지배자여야 했다.


청언은 차가운 눈빛을 유지한 채 나지막이 비웃음을 흘렸다.


“어리석군, 유설아. 정파의 놈들은 언제나 눈앞의 자비에 눈이 멀어 대국을 보지 못하지.”


그는 휠체어 등받이에 몸을 깊숙이 기댔다.


“하가 구역의 광부들은 흑월곡의 수입원인 현철(玄鐵)을 채굴하는 소모품에 불과하다. 그 소모품들이 굶주려 죽어가면 광산이 멈추고, 광산이 멈추면 내 금고가 빈다. 백장로파의 개들이 내 금고를 털어 동창에 바치고 있었거늘, 내가 어찌 그들의 목을 베지 않고 버티겠느냐?”


그는 무경검의 검집을 툭툭 두드렸다.


“내가 행한 구휼은 선심이 아니다. 내 사냥개들이 굶주려 나를 물지 않도록 고기 한 덩이를 던져준 것에 불과하지. 철저한 계산과 이익의 결과물일 뿐이란 말이다.”


“거짓말.”


유설아의 단호한 일성이 밀실의 무거운 공기를 찢었다.


“네놈의 입은 잔혹한 사파의 언어를 뱉고 있지만, 네 눈빛은 그렇지 않다.”


그녀가 철창 사이로 손을 뻗어 청언의 얼굴을 가리켰다.


“내가 밤중에 네 침소에 잠입해 검을 겨누었을 때부터 느꼈다. 진짜 괴물의 눈에는 광기와 살기만이 가득할 뿐이지만, 네 눈동자 깊은 곳에는…… 지독한 고독과 슬픔이 서려 있다. 스스로 괴물의 가면을 쓰고 고통받는 자의 눈빛이란 말이다. 게다가 네 목소리 끝에 묻어나는 그 정순한 기운은 대체 무엇이지? 사악한 마공을 닦는 자가 어찌 그런 기운을 숨길 수 있단 말인가!”


청언의 손가락이 순간적으로 굳어졌다. 소매 속에서 유설아의 은비녀를 쥔 손끝에 땀이 배어 나왔다. 그녀의 직관은 너무나 날카로워 그의 위장을 꿰뚫어 보고 있었다. 이중첩자로서의 도덕적 피로감과 자괴감이 해일처럼 밀려왔다. 당장이라도 가면을 벗어던지고 자신의 진짜 본명과 황실의 음모를 밝히고 싶다는 충동이 목구멍까지 차올랐다.


하지만 청언은 어금니를 지그시 깨물며 살기를 내뿜었다.


“살려두었더니 입이 거칠어졌군. 네년의 그 건방진 눈을 뽑아주어야 침묵하는 법을 배우겠느냐?”


그가 역천마공(逆天魔功)의 검붉은 마기를 미세하게 뿜어내며 휠체어를 한 걸음 앞으로 전진시키려던 찰나였다.


두구두구두구—.


머리 위 천장 너머, 무경전의 환기구와 연결된 벽면에서 미세한 진동이 울렸다.


아주 미약하고 불규칙한 진동이었지만, 청언의 예리한 감각은 그것을 놓치지 않았다. 전각 외부의 사각지대에 대기하고 있던 독극물 탐지견 흑풍(흑풍)이 보내는 은밀한 경보 신호였다. 흑풍은 일정한 주기로 꼬리를 바닥에 쳐서 전각 내부의 청음관으로 신호를 보내도록 청언이 직접 훈련시킨 사냥개였다.


‘기습인가?’


청언의 눈빛이 순식간에 차갑게 얼어붙었다.


그는 즉각 풍청이청(風淸耳聽)의 초감각 능력을 전개했다. 눈을 지그시 감자, 주변의 미세한 소리들이 느려지며 입체적인 파동으로 뇌리에 그려지기 시작했다. 지하 밀실의 습한 공기 흐름, 유설아의 가쁜 호흡 소리 너머로— 무경전 지붕 기와 위를 소리 없이 기어 다니는 불길한 기척들이 잡혔다.


바스락, 사사삭.


무게를 완벽히 죽인 가벼운 신형법이었지만, 그들의 몸에서 미세하게 흘러나오는 쇠비린내와 지독한 독기의 잔향이 청언의 청각과 후각을 자극했다.


‘최소 열 명. 무게중심이 극도로 낮고, 발걸음 소리가 전혀 나지 않는다. 살수다.’


단순한 마교의 사병들이 아니었다. 백장로가 거액을 주고 고용했다던 사파 최고의 자객, 사마귀(사마귀)와 그의 정예 척살단이 분명했다. 그들은 소교주 무경이 낮의 소란으로 피로해져 침실에서 방심하고 있을 이 삼경(三更)의 밤을 노려 침투한 것이었다.


만약 살수들이 이 지하 밀실의 존재를 알아채거나, 유설아의 신변을 확보한다면 자신의 이중첩자 신분과 다리가 멀쩡하다는 비밀은 즉각 백장로와 동창의 육태풍에게 노출될 터였다. 여동생 심아란의 목숨은 물론, 자신과 아묵의 생사 역시 이 한밤중에 종말을 고하게 될 것이었다.


“……쯧.”


청언은 짧게 혀를 찼다. 그의 신형이 휠체어 위에서 팽팽하게 긴장했다.


“왜 그러지? 무슨 소리라도 들린 건가?”


유설아 역시 심상치 않은 분위기를 감지하고 주위를 둘러보며 다급하게 물었다.


청언은 대답하지 않았다. 그는 품속에서 묵직한 철제 열쇠를 꺼내어 유설아가 갇힌 철창의 빗장을 단단히 걸어 잠갔다. 철컥하는 무거운 쇳소리가 지하실을 울렸다.


“여기서 한 발짝도 움직이지 말고 숨죽이고 있어라. 쥐새끼들이 전각 내부로 기어들었으니.”


그는 휠체어 바퀴 손잡이를 비틀어 몸을 돌렸다.


우드득, 쾅—!


그 순간, 머리 위 침실 천장의 대들보가 무거운 충격과 함께 미세하게 갈라지는 소리가 지하 밀실까지 생생하게 전해졌다. 먼지와 흙가루가 환기구를 타고 흘러내렸다. 살수들이 마침내 침실 내부로 하강하기 시작한 것이었다.


청언은 무경검의 검손잡이를 꽉 쥔 채, 어둠이 짙게 깔린 지하 통로를 향해 휠체어를 급격히 기동했다. 가해자의 가면 뒤에 숨겨진 차갑고 비장한 옆모습이 촛불의 마지막 잔영과 함께 어둠 속으로 완전히 사라져 갔다.

HẾT CHƯƠNG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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