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휠체어 위의 비무, 보이지 않는 칼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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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둠이 짙게 깔린 만복약방의 문을 열고 나선 심청언의 신형이 밤안개 속으로 소리 없이 사라졌다.


흑월곡으로 돌아가는 길은 험난했다. 삼음고의 약효가 점차 소멸해 가면서, 억지로 열어젖혔던 하반신의 경맥이 다시 얼어붙듯 굳어갔다. 다리가 납덩이처럼 무거워지고 기혈이 막히는 가혹한 감각이 밀려왔다. 청언은 입술을 깨물며 신형을 날렸다. 무경전의 지하실로 통하는 비밀 통로에 도달했을 때, 그의 이마는 이미 식은땀으로 젖어 있었다.


지하실의 어둠 속에서 대기하고 있던 아묵이 신속하게 다가와 청언의 몸을 부축했다. 아묵의 손가락이 기민하게 움직이며 수화를 그려냈다.


‘백무흔이 장로들을 거느리고 무경전 앞마당을 점거했습니다. 소교주의 자질을 검증하겠다며 비공식 비무를 요구하고 있습니다. 거절할 시 교주 후보 탄핵을 결의하겠다고 협박 중입니다.’


청언의 눈빛이 얼음처럼 차갑게 가라앉았다. 동창의 조정필에게 협박을 당하고 돌아오자마자, 이번에는 마교 내부의 정적들이 이빨을 드러내고 있었다. 청언은 침상 위에서 소교주 대역을 하고 있던 무영에게 눈짓을 보냈다. 무영은 신속하게 인피가면을 벗고 그림자 속으로 물러났고, 청언은 다시 창백한 얼굴의 병약한 소교주 무경으로 돌아가 흑단목 특제 휠체어에 몸을 얹었다.


“아묵, 나가자.”


문이 열리고, 휠체어 바퀴가 무경전 앞마당의 차가운 대리석 바닥을 굴러갔다. 밤바람이 흑색 비단 도포를 거칠게 흔들었다.


마당에는 이미 백장로와 그의 아들 백무흔, 그리고 계율당주 형무극을 비롯한 여러 원로들이 삼엄한 기세를 풍기며 대기하고 있었다. 호랑이 가죽 망토를 걸친 백장로의 눈빛에는 음험한 독기가 서려 있었고, 그 옆에 선 백무흔은 붉은 비단 옷을 입은 채 오만한 미소를 짓고 있었다. 그의 허리에는 상대의 피를 빨아들이는 사악한 명검, 혈령검(血靈검)이 매달려 있었다.


“소교주께서 드디어 몸을 보여주시는군.”


백무흔이 한 걸음 걸어 나오며 비웃음을 흘렸다.


“교단 내부가 분열되고 정파 놈들이 남하하는 이때, 다리도 쓰지 못하는 병약한 분이 교주 자리를 지키고 있는 것은 마교의 수치요. 오늘 이 자리에서 소교주의 자질을 검증하고자 하니, 부디 거절치 마시오.”


명백한 도발이었다. 청언이 만약 비무를 거절한다면, 백장로는 기다렸다는 듯 마교 계율총서를 들이밀며 ‘무능하고 병약한 자는 교주가 될 수 없다’는 조항을 내세워 탄핵을 결의할 터였다. 반대로 비무에 응했다가 다리가 멀쩡하다는 사실이 탄로나거나, 황실 금의위의 진무신결 내력을 조금이라도 흘린다면 그 즉시 첩자임이 밝혀져 사지가 찢길 위기였다.


청언은 휠체어 손잡이를 가볍게 짚은 채, 차갑고 오만한 목소리로 대꾸했다.


“감히 무경전의 마당을 더럽히는 개들이 짖는구나. 백무흔, 마교 계율총서에 따르면 소교주에게 도전하는 자는 목숨을 걸어야 하거늘, 그 가벼운 목숨을 버릴 각오는 되어 있느냐?”


백무흔의 얼굴이 분노로 일그러졌다. 그는 혈령검을 천천히 뽑아 들었다. 검신에서 음산하고 붉은 살기가 피어올랐다.


“말은 청산유수구려. 그 오만이 진짜 무력에서 나오는 것인지 확인해 보겠소!”


스스슥!


백무흔의 신형이 붉은 안개처럼 흔들리더니, 사파 비전인 혈무보(血霧步)를 전개하며 기습적으로 쇄도했다. 그의 혈령검이 붉은 궤적을 그리며 청언의 흉부를 향해 매섭게 찔러왔다.


청언은 미동조차 하지 않았다. 그의 손가락이 휠체어 오른쪽 바퀴 손잡이를 미세하게 비틀었다.


철컥!


정교한 기계 장치가 맞물리는 소리와 함께, 휠체어 전면의 보이지 않는 구멍에서 소의 털처럼 가늘고 정교한 암기침, 우모침(牛毛針) 수백 발이 부채꼴로 폭발하듯 뿜어져 나갔다. 짙은 어둠 속에서 소리 없이 날아가는 은빛 침들의 비가 백무흔의 전면을 뒤덮었다.


“비열한 암기 장치 따위로 나를 막을 수 없다!”


백무흔은 경악하면서도 쾌검을 휘둘러 날아오는 침들을 강하게 튕겨냈다. 챙강강강! 붉은 검기가 허공을 가르며 은침들을 격파했으나, 그 여파로 그의 진격 속도가 찰나적으로 지체되었다.


그 틈을 놓치지 않고, 백무흔은 소교주가 다리를 쓰지 못해 회피 기동이 불가능하다는 약점을 물고 늘어졌다. 그는 허공으로 높게 솟구쳐 오르며, 혈령검에 강맹한 혈마공의 기운을 실어 내리찍었다.


“그 잘난 의자와 함께 다리를 박살 내 주마!”


붉은 도강이 휠체어의 지지대를 노리고 수직으로 내리꽂혔다. 충격파가 청언의 머리 위를 짓눌렀다.


청언은 단전의 기운을 수직 하방으로 내리누르는 도가 무공, 천근추(千斤墜)를 극도로 끌어올렸다. 그의 정순한 내력이 휠체어 바퀴를 타고 대지로 뻗어 나갔다.


쿵!


육중한 진동과 함께 흑단목 휠체어의 바퀴가 대리석 바닥을 수 인치나 파고들며 단단히 고정되었다. 그와 동시에, 청언은 허리춤에 장식처럼 걸려 있던 검은 명검, 무경검(無境劍)을 뽑아 들었다. 검신에서 마교의 음산한 기운을 가장한 검은 검기가 뿜어져 나와 혈령검의 붉은 도강을 정면으로 받아냈다.


쾅—!


두 무기가 부딪치며 발생한 폭풍이 무경전 마당의 먼지를 사방으로 쓸어냈다. 대리석 바닥이 거미줄처럼 갈라졌으나, 청언의 휠체어는 천근추의 힘으로 고정되어 단 한 치도 뒤로 밀려나지 않았다.


“이, 이럴 수가……!”


백무흔은 자신의 강맹한 혈마공 일격이 휠체어에 앉은 병약한 자에게 완벽히 막히자 눈을 부릅떴다.


청언은 그의 경악을 놓치지 않았다. 그는 검을 잡은 손목을 미세하게 떨며 기만 검술인 허실환검(虛實幻劍)을 전개했다. 허공의 빛이 굴절되며, 백무흔의 눈앞에 수십 자루의 검은 무경검이 동시에 날아드는 듯한 환상이 펼쳐졌다. 실체와 가짜가 뒤섞인 혼란스러운 검의 궤적들이 백무흔의 사방을 포위했다.


“가, 가짜다! 환술에 속지 않는다!”


백무흔은 광기를 부리며 혈령검을 휘둘러 잔상들을 베어내려 했다. 그러나 허실환검의 진정한 묘리는 상대가 잔상을 베려 할 때 생기는 허점을 파고드는 데 있었다. 백무흔의 방어 자세가 흐트러지는 찰나, 청언의 진짜 무경검이 그의 검을 비껴가며 손목 혈도를 향해 파고들었다.


하지만 백무흔 역시 마교 젊은 세대의 최고수답게 만만치 않았다. 그는 자신의 패배를 직감하자, 광기에 사로잡혀 혈령검의 모든 살기를 폭발시켰다. 붉은 검기가 청언의 머리 위로 쏟아져 내렸다.


바로 그 찰나, 청언은 휠체어 바퀴의 축을 중심으로 삼아 상체를 미세하게 회전시켰다. 휠체어가 제자리에서 팽이처럼 돌며 백무흔의 치명적인 검강을 간발의 차이로 흘려보냈다.


스쳐 지나가는 붉은 광망 속에서, 청언의 소매 속 반지가 미세하게 튕겨 나갔다. 눈에 보이지 않는 은빛 실, 백은사(白銀絲)가 허공을 갈랐다.


슈우욱!


보이지 않는 은사가 백무흔의 오른쪽 손목을 단단히 휘감았다. 청언이 내력을 주입하여 실을 팽팽하게 잡아당기자, 백무흔의 손목 혈도가 소리 없이 막히며 뼈마디를 깎는 듯한 고통이 전해졌다.


“아악……!”


백무흔이 비명을 지르며 손에 힘을 잃었고, 그의 사악한 명검 혈령검이 대리석 바닥으로 쨍그랑 소리를 내며 떨어졌다.


청언은 휠체어에 앉은 채, 왼손으로 떨어지는 혈령검을 가볍게 낚아채어 백무흔의 목덜미에 차갑게 겨누었다. 무경검의 검은 검기가 백무흔의 목 피부를 미세하게 베어 들어가며 붉은 핏방울이 맺혔다.


마당은 쥐 죽은 듯한 침묵에 휩싸였다.


백장로의 얼굴은 흙빛으로 변했고, 계율당주 형무극을 비롯한 원로들은 휠체어에 앉은 채 일류 고수를 완벽하게 제압한 소교주의 무서운 지략과 무공에 경외심을 품은 눈빛으로 고개를 숙였다.


“감히 소교주의 권위에 도전한 대가다.”


청언은 차가운 목소리로 읊조리며 혈령검을 바닥에 내던졌다. 백무흔은 굴욕감과 공포에 몸을 떨며 바닥에 주저앉았다.


비무는 소교주의 완벽한 승리로 끝났으나, 청언은 가슴 깊은 곳에서 치솟는 뜨거운 혈기를 느꼈다. 억지로 마공을 흉내 내며 내력을 무리하게 전개한 탓에, 체내에서 억누르고 있던 진무신결의 정기가 반발하며 심장 경맥을 사정없이 뒤흔들고 있었다. 목구멍까지 차오르는 붉은 선혈을, 그는 이빨을 악물며 깊은 어둠 속으로 삼켜냈다.

HẾT CHƯƠNG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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