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밀실의 포로와 가짜 대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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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교주님, 백장로이옵니다. 밤이 깊었으나 소교주님의 옥체 상태를 직접 확인하고자 왔사옵니다.”


문고리가 쇠사슬 긁히는 듯한 소리를 내며 천천히 돌아가기 시작했다. 문 너머에서 들려오는 백장로의 음산한 목소리는 단순한 문안인사가 아니었다. 그것은 소교주의 침실에서 방금 전 일어난 은밀한 사투의 흔적을 잡아내려는 굶주린 야수의 으르렁거림에 가까웠다.


청언의 품에 안긴 유설아의 눈동자가 세차게 흔들렸다. 전신의 기혈이 백은사(白銀絲)에 묶여 손가락 하나 움직일 수 없는 처지였으나, 그녀의 눈빛만큼은 당장이라도 청언의 목덜미를 물어뜯을 듯한 살기로 가득 차 있었다. 정파의 명문 대파인 청송파의 천재 여협이 마교의 심장부에서 사파의 마두에게 붙잡혔으니, 그 수치심과 공포는 이루 말할 수 없을 터였다.


‘조금이라도 소리를 내면 네 목숨은 물론, 네 사문까지 무사하지 못할 것이다.’


청언은 소리 없는 입모양과 얼음처럼 차가운 눈빛으로 유설아에게 무언의 경고를 보냈다. 그리고 망설임 없이 행동을 개시했다. 일각의 지체도 허용되지 않는 절체절명의 순간이었다.


청언은 휠체어 등받이 뒤편의 음밀한 문양을 강하게 내리눌렀다. 침상 머리맡의 대리석 바닥이 소리 없이 갈라지며 무경전 지하 비밀 밀실로 통하는 수직 통로가 열렸다. 청언은 품에 안고 있던 유설아의 가녀린 신형을 통로 아래로 신속하게 밀어 넣었다. 기혈이 막힌 그녀는 비명조차 지르지 못한 채 어둠 속으로 스르륵 사라졌다. 바닥의 돌판이 다시 맞물려 닫히는 것과 동시에, 청언은 침상 밑 그림자 속을 향해 은밀한 수신호를 보냈다.


스스스슥.


소리도 없이 어둠을 뚫고 나타난 자는 청언과 체형, 머리모양이 소름 끼치도록 닮은 청년이었다. 소교주의 진짜 대역이자 그림자 무사인 무영(無影)이었다. 무영은 품속에서 청언의 얼굴을 완벽히 복제한 정교한 인피가면을 꺼내 쓰며 신속하게 침상 위로 기어 올라갔다. 그리고 화려한 비단 이불을 뒤집어쓴 채, 병약한 소교주 특유의 가냘픈 기침 소리를 내기 시작했다.


“콜록, 쿨럭…….”


그 사이 청언은 침실 바닥을 매서운 눈빛으로 훑었다. 유설아와의 격렬한 격투 과정에서 바닥에 흩어진 우모침(牛毛針) 수백 발과 찢어진 장막 조각들, 그리고 떨어진 청송검이 눈에 들어왔다. 청언은 도포 자락을 넓게 휘두르며 바닥에 내력을 가볍게 쓸어내렸다. 보이지 않는 바람이 일며 흩어진 침들과 장막 파편들을 침상 밑 깊숙한 사각지대로 밀어 넣었다. 그리고 바닥에 떨어진 유설아의 푸른 은비녀를 신속하게 주워 품속 깊은 곳에 숨겼다.


문이 완전히 열리기 직전, 청언은 단전의 정기와 마기를 숨기며 신형을 띄웠다. 마교의 고급 은형 신법인 묵양보(墨影步)가 전개되었다. 그의 신형은 연기처럼 흔들리더니, 순식간에 천장의 가장 어두운 대들보 위 어둠 속으로 녹아들어 사라졌다. 기척도, 소리도, 온도조차 남지 않은 완벽한 은신이었다.


끼이이익—.


침실의 두꺼운 목조 문이 마침내 활짝 열렸다. 은은한 등불 불빛을 등지고 들어선 자는 화려한 호랑이 가죽 망토를 걸친 백장로, 백무현이었다. 그의 뒤로는 백장로의 사주를 받고 소교주의 일거수일투족을 감시하는 첩자 시녀 소설과, 청언의 협박에 굴복해 땀을 흘리고 있는 마교의 전담 의원 갈의원이 따르고 있었다.


소설의 예리한 눈동자가 침실 내부를 집요하게 훑었다. 그녀는 방금 전 무경전 내부에서 흘러나왔던 미세한 파공음과 쇠붙이가 부딪히는 소리를 분명히 들었기에, 방 안의 미세한 흐트러짐도 놓치지 않겠다는 듯 찻잔의 상태와 바닥의 먼지까지 살폈다.


“소교주님, 한밤중에 무례를 무릅쓰고 찾아와 송구하옵니다.”


백장로가 음산한 미소를 지으며 침상 앞으로 다가갔다. 그의 목소리에는 상대가 정말로 병들어 누워 있는지, 아니면 다른 꿍꿍이가 있는지 확인하려는 집요한 의심이 서려 있었다. 이불 속의 무영은 등을 돌린 채 어깨를 가늘게 떨며 가쁜 숨을 몰아쉬었다.


“쿨럭…… 밤이 깊었거늘, 장로가 이리도 무경전에 무단으로 난입하는 법이 어디 있소? 내 아직 살아있거늘, 벌써부터 이 늙은 여우가 내 침소까지 넘보는 것인가…….”


무영의 목소리는 청언의 목소리와 한 치의 오차도 없이 똑같았다. 겉보기엔 완벽한 소교주의 기품과 병약함이 묻어나는 연기였다. 하지만 백장로는 쉽게 물러설 위인이 아니었다. 그는 소설에게 눈짓을 보냈다. 소설은 조심스럽게 침상 옆 탁자로 다가가 벽안주가 부착된 찻잔의 냄새를 맡고, 바닥에 혹시 모를 핏자국이 없는지 발끝으로 은밀히 더듬었다.


“소교주님의 기침 소리가 날로 깊어지시니, 노부의 마음이 찢어지는 듯하옵니다. 마침 갈의원을 대동하였으니, 즉각 옥체를 진맥하여 기혈의 흐름을 바로잡아야 마땅할 줄 아옵니다.”


백장로가 손을 뻗어 무영의 손목을 강제로 잡아끌려 했다. 그 손끝에는 상대의 내력 반응을 탐지하려는 흉포한 마기가 서려 있었다. 만약 무영의 손목에 백장로의 손이 닿는 순간, 소교주가 아닌 이류 무사의 얕은 내공이 흐르고 있음이 즉각 들통날 판이었다. 천장 대들보 위에서 이를 지켜보던 청언의 눈빛이 칼날처럼 차갑게 빛났다. 그의 손가락 끝에 감긴 백은사가 미세하게 팽팽해졌다. 여차하면 백장로의 목덜미를 꿰뚫어 이곳을 피바다로 만들 각오였다.


바로 그 순간, 뒤에 서 있던 갈의원이 다급하게 앞으로 나서며 백장로의 앞을 가로막았다.


“장로님, 안 되옵니다! 지금 소교주님의 태음경맥은 주사독의 약효와 충돌하여 극도로 팽팽하게 굳어 있는 상태이옵니다. 외부의 강맹한 마기가 조금이라도 유입된다면, 역천마공의 기운이 역류하여 심맥이 완전히 파열될 수 있사옵니다!”


갈의원의 목소리에는 실제 공포가 가득 차 있었다. 물론 그 공포는 백장로가 아닌, 자신과 가문의 목숨줄을 쥐고 천장에서 내려다보고 있을 진짜 소교주, 심청언을 향한 것이었다. 갈의원은 소교주가 사전에 지시한 대로 위조된 기혈 진맥 기록이 담긴 장부를 백장로의 눈앞에 들이밀었다.


“이것을 보십시오. 맥박이 분당 사십 회 이하로 떨어졌으며, 기혈의 순환이 완전히 마비되었습니다. 지금은 그 어떤 진맥도, 외부의 자극도 절대적으로 금해야 하는 절체절명의 시기이옵니다!”


백장로의 눈동자가 갈의원의 장부와 이불 속 무영의 등을 번갈아 살폈다. 갈의원의 다급하고 진실된 공포에 찬 태도는 백장로의 의심 많은 성정을 자극하기에 충분했다. 의원의 말이 거짓이라기엔, 갈의원의 이마에서 흘러내리는 식은땀과 바르르 떨리는 손끝이 너무도 생생했다.


소설이 침상 옆에서 바닥을 살피다가, 침상 밑 어둠 속에서 미세하게 빛나는 은빛 실 자락을 발견하고 눈을 가늘게 떴다. 그녀가 허리를 숙여 그것을 만지려 손가락을 뻗는 찰나였다.


“장로…… 정녕 내가 이 자리에서 피를 토하고 죽는 모습을 보아야 직성이 풀리겠소? 내 다리가 이리 굳어 움직이지 못한다 하여, 내 목숨마저 우습게 보는 모양이군……!”


침상 위의 무영이 억지로 몸을 돌리며 소리쳤고, 그 순간 그의 입가에서 붉은 선혈이 이불 위로 울컥 쏟아져 내렸다. 갈의원이 사전에 준비해 둔 기혈 조작 침술의 효과였다. 붉은 피가 하얀 비단 이불을 붉게 물들이자, 침실 안의 공기가 순식간에 얼어붙었다.


“소교주님!”


갈의원이 비명을 지르며 즉각 무영의 가슴팍에 침을 꽂는 시늉을 했다. 백장로는 쏟아진 선혈과 소교주의 발작에 흠칫 놀라며 뻗었던 손을 거두어들였다. 소설 역시 소교주의 갑작스러운 각혈에 놀라 침상 밑을 살피던 행동을 멈추고 뒤로 물러섰다.


“백장로님, 더 이상의 자극은 소교주님의 즉사로 이어집니다! 물러나셔야 합니다!”


갈의원의 필사적인 경고에 백장로는 이를 갈았다. 소교주가 이 자리에서 허망하게 죽어버린다면, 교단을 찬탈하려는 자신의 명분 역시 어그러질 터였다. 그는 아직 소교주의 세력을 완벽히 숙청하지 못한 상태였다.


“……노부의 충정이 과하여 소교주님의 옥체에 무리를 드렸구려. 갈의원, 소교주님의 치료에 한 치의 소홀함도 없도록 하라.”


백장로는 차가운 눈빛으로 소설을 거두어들이며 천천히 침실 밖으로 발걸음을 옮겼다. 소설은 밖으로 나가면서도 마지막까지 침실 구석구석을 의심스러운 눈초리로 흘겨보았다. 그녀의 직감은 이 방 안에 여전히 보이지 않는 무언가가 숨어있음을 경고하고 있었다.


탁—.


침실 문이 마침내 굳게 닫히고, 그들의 발자국 소리가 복도 저편으로 완전히 사라졌다.


스스슥.


천장 대들보 위에서 심청언이 소리도 없이 바닥으로 내려앉았다. 그의 얼굴은 창백했으나, 눈빛만큼은 밤안개 속에 벼려진 비수처럼 날카롭게 번뜩이고 있었다. 아묵이 문앞에서 경계를 서는 동안, 청언은 침상 위의 무영을 바라보았다.


“수고했다, 무영. 상처는 괜찮으냐.”


“소교주님을 위해서라면 이 정도 피는 아무것도 아니옵니다.”


무영은 입가의 피를 닦아내며 휠체어에서 내려와 조용히 조아렸다. 비록 위기는 넘겼으나, 소설의 예리한 의심과 백장로의 집요함은 극에 달해 있었다. 청언은 품속에서 유설아의 푸른 은비녀를 꺼내어 가만히 내려다보았다. 은비녀의 차가운 감촉이 그의 손가락 끝을 타고 내리며, 기만으로 가득 찬 이중첩자의 삶이 지닌 무거운 무게를 다시금 일깨워 주었다.


바로 그 순간, 무경전 외곽의 어두운 그림자 속에서 아묵이 다급하게 손가락을 튕겨 신호를 보냈다. 틱, 틱. 특유의 기밀 통신음이었다.


황실 동창(東廠)의 비밀 전령이 무경전의 삼엄한 감시망을 뚫고 외곽 경계선에 도달하여, 심청언에게 즉각적인 접선을 요구하는 붉은 신호탄을 은밀히 쏘아 올린 것이었다.

HẾT CHƯƠNG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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