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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둠을 가르는 푸른 검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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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하 밀실의 무겁고 축축한 공기를 뒤로한 채, 심청언은 서둘러 무경전 침실로 복귀했다. 갈의원과의 은밀한 접선은 성공적이었으나 여유를 부릴 시간 따위는 없었다. 침실 문 너머로 백장로의 묵직하고도 위압적인 발자국 소리가 서서히 복도를 울리며 다가오고 있었기 때문이다.


청언은 굳어버린 하반신을 연기하며 흑단목 특제 휠체어에 몸을 깊숙이 묻었다. 창백한 안색 위로 마교의 소교주 ‘무경’의 차갑고도 오만한 가면을 덧씌우는 찰나, 단전 내부에서 다시금 격렬한 격통이 치밀어 올랐다. 황실의 정종 내공인 진무신결(眞武神訣)의 웅장한 양기와 소교주의 신분을 유지하기 위해 억지로 연마한 역천마공(逆天魔功)의 포악한 마기가 서로를 밀어내며 경맥을 찢어발기는 듯한 고통이었다.


‘쿨럭……!’


청언은 소매로 입을 틀어막으며 새어 나오려는 피를 삼켰다. 매 순간이 칼날 위를 걷는 지옥이었으나, 동창의 손아귀에 인질로 잡혀 있는 여동생 심아란과 대역죄인의 누명을 쓰고 처참하게 몰락한 가문의 복수를 생각하면 이 정도 고통은 아무것도 아니었다. 그는 품속에 숨겨둔 아란의 옥비녀를 손끝으로 매만지며 이성을 칼날처럼 벼렸다.


그때였다. 백장로의 발자국 소리가 침실 문턱에 다다르기 직전, 청언의 초감각 무공인 풍청이청(風淸耳聽)이 전혀 다른 기이한 기척을 감지했다.


복도 쪽에서 들려오는 백장로 일파의 둔중한 발걸음 소리가 아니었다. 전각 뒤편, 굳게 닫힌 창문 너머의 어둠 속에서 아주 미세하게 공기를 가르는 예리하고 차가운 바람 소리가 들려왔다. 그것은 깃털보다 가벼운 경공을 구사하는 고수의 기척이었으며, 그 기운 끝에는 숨길 수 없는 서슬 퍼런 살기가 서려 있었다.


‘자객인가?’


청언의 눈동자가 어둠 속에서 가라앉았다. 백장로가 보낸 자객이라기엔 살기의 성질이 너무도 맑고 고결했다. 사파의 탁하고 음산한 기운이 아닌, 정파(正派) 명문대파의 정순한 검기였다.


창문이 소리 없이 열리는가 싶더니, 장막을 찢고 눈이 시릴 정도로 푸른 검광이 침실 안으로 들이닥쳤다. 어둠을 가르고 날아든 것은 백색 도포를 걸친 청초한 형체의 여검사, 청송파(靑松派)의 후기지수 유설아(劉雪雅)였다.


“사악한 마두 무경! 정파의 무고한 제자들을 학살한 죄, 오늘 이 자리에서 청송검(靑松劍)으로 단죄하겠다!”


유설아의 목소리는 분노로 가득 차 있었고, 그녀의 손에 쥔 검 끝에서는 푸른 청송검기가 폭발하듯 뿜어져 나왔다. 그녀는 소교주 무경이 정파 제자들을 학살했다는 위선적인 소문을 철석같이 믿고, 마교의 심장부인 이곳까지 혈혈단신으로 침투한 것이었다.


검 끝이 청언의 목덜미를 향해 번개처럼 쇄도했다.


절체절명의 위기였다. 청언은 다리가 멀쩡하다는 사실을 절대 들켜서는 안 되었고, 동시에 금의위의 진무신결이나 마교의 역천마공 같은 진짜 무공을 드러내서도 안 되었다. 만약 정파의 여협을 상대로 자신의 진짜 정체를 드러낸다면, 이중첩자로서의 모든 계획이 물거품이 될 터였다.


청언은 찰나의 순간에 결단을 내렸다. 그는 휠체어에 앉은 채 단전의 내력을 수직 하방으로 강하게 내리누르는 도가 무공, 천근추(千斤墜)를 시전했다.


쿵!


소리 없는 묵직한 진동과 함께 흑단목 휠체어의 바퀴가 침실 바닥의 대리석 타일을 파고들며 단단히 고정되었다. 유설아의 매서운 검풍이 방 안의 모든 장막을 찢어발기며 청언의 흉부를 직격했다.


서걱!


예리한 파공음과 함께 청송검의 칼날이 청언의 가슴팍을 찔렀으나, 서늘한 쇠비린내와 함께 불꽃이 튈 뿐이었다. 청언이 걸치고 있던 흑야비단장포(黑夜비단장포) 내부에 촘촘히 엮인 만년한철 사슬 겉감이 청송검의 관통력을 완벽하게 흡수해 낸 것이다.


“앗……!”


자신의 일격이 마교 소교주의 얇은 도포 자락조차 뚫지 못하자 유설아의 아름다운 눈동자가 경악으로 크게 흔들렸다.


청언은 그녀가 기세를 회복할 틈을 주지 않았다. 그는 휠체어 우측 바퀴 손잡이에 장치된 비밀 레버를 뒤로 빠르게 두 번 비틀었다.


쉬이이익!


휠체어 바퀴 축과 전면 프레임 속에 숨겨져 있던 황실 금의위 특제 암기, 우모침(牛毛針) 수백 발이 소리 없이 폭발하듯 뿜어져 나왔다. 소의 털처럼 가늘고 정교한 은침들이 부채꼴 모양으로 은빛 장막을 형성하며 유설아의 전방 시야를 완전히 차단했다.


유설아는 과연 청송파 최고의 천재다웠다. 그녀는 기습적인 암기 폭풍 앞에서도 당황하지 않고, 신형을 가볍게 날리는 청송파 비전 낙엽경공(落葉輕功)을 전개했다. 그녀의 백색 신형이 허공에서 낙엽처럼 기묘하게 꺾이며 은침의 폭풍을 종이 한 장 차이로 피해냈다.


하지만 그것은 청언이 설계한 완벽한 함정이었다. 허공에 몸을 띄운 순간, 무인의 신형은 찰나 동안 궤적이 고정될 수밖에 없었다.


청언의 손가락 끝이 미세하게 튕겨졌다. 그의 손가락 반지에 은밀히 장착되어 있던 극도로 가늘고 질긴 은빛 실, 백은사(白銀絲)가 소리 없이 방출되었다.


스스스슥!


어둠 속에서 보이지 않는 은빛 실선이 유설아의 사각지대를 파고들었다. 청언은 손가락을 기민하게 조율하며 금의위 특제 은밀 제압술인 무영사혈(無影絲穴) 초식을 전개했다. 허공을 수놓은 백은사들이 유설아의 양 손목과 발목을 정교하게 옭아맸고, 실 끝에 실린 차가운 내력이 그녀의 주요 혈도를 정확히 타격했다.


“흐윽……!”


청송검을 쥐고 있던 유설아의 손에서 힘이 풀리며 검이 바닥으로 떨어졌다. 전신의 기혈이 완벽히 막힌 그녀의 몸이 허공에서 굳어버린 채 청언의 휠체어 앞으로 추락하듯 쏟아졌다.


청언은 소리 없이 왼손을 뻗어 그녀의 가녀린 어깨를 받아안았다. 유설아는 손가락 하나 움직이지 못하는 가사 상태가 되었음에도 불구하고, 청언을 향해 분노와 증오로 가득 찬 눈빛을 이글이글 불태웠다.


그 절체절명의 순간, 침실 문 바로 바깥에서 둔중한 발걸음 소리가 딱 멈춰 섰다.


똑, 똑, 똑.


심장을 죄어오는 듯한 묵직한 노크 소리가 침실 안의 무거운 침묵을 깨뜨렸다.


“소교주님, 백장로이옵니다. 밤이 깊었으나 소교주님의 옥체 상태를 직접 확인하고자 왔사옵니다.”


문 너머에서 들려오는 백장로의 음산한 목소리에, 청언의 품에 안긴 유설아의 눈동자가 미세하게 흔들렸다. 청언의 안광 역시 어둠 속에서 번뜩였다. 이제 유설아를 숨기고 백장로의 기습 진맥을 넘겨야 하는 가혹한 이중 기만의 시험대가 그를 기다리고 있었다.

HẾT CHƯƠNG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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