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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면의 심장, 휠체어의 지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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음습한 피비린내와 썩은 이끼 냄새가 진동하는 흑월곡(黑月谷)의 밤은 깊고도 잔혹했다. 기괴하게 솟구친 검은 절벽들 사이로 붉은 달빛이 스며들 때마다, 마교(魔敎)의 총단 무경전(無境殿)은 거대한 괴수의 아가리처럼 어둠을 집어삼켰다.


그 깊고 어두운 침실 한가운데, 심청언(沈淸言)은 정교하게 제작된 흑단목 특제 휠체어에 몸을 묻고 있었다. 그의 얼굴은 창백했고, 걸친 검은 비단 모피 도포는 밤바람에 가볍게 흔들렸다. 겉보기에는 영락없이 병약하고 잔혹한 마교의 소교주, '무경'의 모습이었다.


하지만 그의 도포 자락 아래 숨겨진 두 다리는 멀쩡했다. 아니, 멀쩡하다 못해 언제든 대지를 박차고 날아오를 수 있는 강력한 힘이 깃들어 있었다. 다만, 지금은 그 다리를 쓸 수 없어야만 했다. 그것이 이 지옥 같은 마교 총단에서 그가 살아남기 위해 스스로에게 채운 첫 번째 쇠사슬이었다.


‘아란아.’


청언은 품속 깊은 곳에 닿는 차가운 감촉을 느끼며 입술을 지그시 깨물었다. 황실 비밀 정보기관 동창(東廠)의 제독 위충현의 손에 인질로 잡혀 있는 여동생, 심아란. 그리고 대역죄인의 누명을 쓰고 처참하게 멸문당한 가문의 피눈물. 그 모든 원한을 갚고 동생을 구하기 위해, 청언은 황실의 가장 충직한 사냥개이자 금의위(錦衣衛) 포교라는 신분을 버리고 사악한 마교의 소교주 가면을 썼다.


스르륵.


침실의 무거운 목문이 열리며, 단정한 머리를 높게 묶은 시녀 소설(小雪)이 고개를 숙인 채 걸어 들어왔다. 그녀의 손에는 김이 모락모락 피어오르는 칠흑색 약탕기가 들려 있었다. 은은하게 풍기는 약향(藥香) 속에, 청언의 예리하게 단련된 후각이 미세한 이질감을 포착했다.


풍청이청(風淸耳聽).


눈을 감지 않아도 공기의 흐름과 미세한 입자의 흔들림이 청언의 감각망에 걸려들었다. 약탕기에서 피어오르는 수증기 끝자락, 평범한 한약재의 쓴맛 뒤에 숨겨진 쇠비린내와 미세한 주사(朱砂)의 독기.


‘주사독(朱砂毒)이군.’


청언의 눈빛이 차갑게 가라앉았다. 백장로(白長老) 일파의 짓이 분명했다. 실권을 장악하기 위해 병약한 소교주를 서서히 말려 죽이려는 독살 시도. 그들은 매일 아침과 밤, 소교주의 기혈을 완전히 굳혀 영구적인 하반신 마비와 뇌 손상을 유발하는 이 만성 독약을 보약으로 위장해 올리고 있었다.


소설이 떨리는 손으로 약발을 탁자 위에 올려놓았다. 그녀의 눈동자가 미세하게 흔들리는 것을 청언은 놓치지 않았다. 그녀 역시 백장로에게 매수되었거나, 혹은 협박당하고 있는 장기말에 불과하리라.


“소교주님, 갈의원(葛醫師)께서 특별히 조제하신 기혈 보양탕이옵니다. 따뜻할 때 드셔야 약효가 몸 구석구석까지 전해진다 하셨습니다.”


“두고 가거라.”


청언은 감정을 지운 차가운 목소리로 읊조렸다. 소설은 조아리며 뒤걸음질 쳐 방을 나갔다. 문이 완전히 닫히는 소리가 들리자마자, 청언은 휠체어 바퀴를 가볍게 굴려 탁자 앞으로 다가갔다.


그는 찻잔을 들어 올렸다. 그리고 찻잔 바닥 안쪽에 은밀히 부착되어 있는 푸른 구슬, 벽안주(碧眼珠)를 살폈다. 독극물에 반응하면 색이 변하는 황실 특제 보물. 찻잔 속 검은 약물이 닿자마자, 벽안주의 고결한 푸른빛이 순식간에 탁하고 검붉은 빛으로 변해갔다. 피처럼 붉고 음산한 빛깔이었다.


‘갈의원, 이 늙은 여우가 결국 백장로의 손을 잡았구나.’


청언의 눈가에 살기가 어렸다. 그는 약탕기를 들어 입가로 가져갔다. 마시는 시늉을 하며, 도포 소매 속에 숨겨둔 이중 흡수 천 자락으로 약물을 교묘하게 흘려보냈다. 단 한 방울도 목구멍으로 넘기지 않았지만, 그는 일부러 격렬하게 기침을 터뜨렸다.


“쿨럭! 쿨럭……!”


그가 기침을 할 때마다 휠체어가 미세하게 흔들렸고, 창백한 뺨에 붉은 홍조가 돌았다. 감시자들이 밖에서 들으라는 듯한 완벽한 병약자 연기였다. 하지만 연기가 끝난 후, 청언은 실제로 가슴을 부여잡고 신음해야 했다.


체내에서 요동치는 두 개의 기운 때문이었다. 금의위 정종 내공인 진무신결(眞武神訣)의 정기(正氣)와, 소교주 위장을 위해 억지로 연마한 역천마공(逆天魔功)의 마기(魔氣)가 단전에서 서로를 밀어내며 격렬하게 충돌하고 있었다. 태음경맥 마비 상태(太陰經脈麻痹狀態)의 실제 고통이 그의 하반신을 짓눌렀고, 뼈를 깎는 듯한 내상이 전신을 엄습했다.


그는 품속에서 은침을 꺼내 가슴의 대혈을 찔러 억지로 기운을 가라앉혔다. 이중첩자의 삶은 매 순간이 칼날 위를 걷는 지옥이었다.


밤이 깊어 삼경(三更)에 이르렀을 때, 무경전의 그림자 속에서 한 사내가 소리 없이 나타났다. 얼굴에 깊은 흉터가 가득하고 벙어리 행세를 하는 청언의 충직한 심복, 아묵(阿默)이었다. 아묵은 청언에게 다가와 조용히 수화를 건넸다.


[갈의원을 밀실로 유인해 두었습니다. 아무도 눈치채지 못했습니다.]


청언은 고개를 끄덕였다. 그는 휠체어 바퀴를 굴려 무경전 침실 뒤편의 책장을 밀었다. 육중한 돌문이 열리며 어둡고 축축한 지하 비밀실로 통하는 계단이 드러났다. 아묵이 소리 없이 휠체어를 밀어 계단 아래로 내려갔다.


지하 비밀실의 차가운 돌바닥 위에는 한 노인이 밧줄에 묶인 채 벌벌 떨고 있었다. 흰 수염을 기르고 약탕기 냄새를 풍기는 마교의 전담 의원, 갈의원이었다. 그는 갑작스러운 납치에 사지가 마비된 듯 숨을 헐떡이고 있었다.


휠체어가 어둠 속에서 천천히 모습을 드러내자, 갈의원의 눈동자가 경악으로 물들었다.


“소, 소교주님……! 이게 무슨 무례한 짓이옵니까! 노신은 소교주님의 건강을 위해 평생을 바친 의원이거늘, 어찌 이런 음침한 곳으로 저를……”


“건강을 위한 약이라.”


청언은 휠체어에 앉은 채 차갑게 웃었다. 그의 손가락 끝이 미세하게 움직였다. 소매 속 반지에 연결되어 있던 극도로 가늘고 질긴 은빛 실, 백은사(白銀絲)가 허공을 갈랐다.


스스스슥!


보이지 않는 은빛 실선이 어둠을 뚫고 날아가 갈의원의 목덜미를 정교하게 감싸 쥐었다. 무영사혈(無影絲穴)의 초식이었다. 갈의원은 목에 닿는 차갑고 예리한 감촉에 비명조차 지르지 못하고 온몸을 굳혔다. 실 끝에 깃든 청언의 내력이 갈의원의 통증 혈도를 미세하게 자극하자, 노의원의 얼굴이 순식간에 흙빛으로 변했다.


“이 약탕기에 섞인 주사독이 내 다리를 마비시키고 뇌를 썩히는 데 얼마나 걸릴 것 같으냐, 갈의원?”


청언의 목소리는 낮고 낮았으나, 지하 밀실의 얼어붙은 공기보다 더 예리하게 갈의원의 심장을 찔렀다.


“소, 소교주님…… 그것이 무슨 말씀이신지 노신은 도저히……”


“네가 양주 관아의 부패 관료들과 짜고 약재 값을 부풀려 착취한 장부, 그리고 네 숨겨진 첩과 자식들이 머무는 강남의 거처까지 내가 모를 거라 생각했더냐.”


청언이 손가락을 가볍게 튕겼다. 백은사가 갈의원의 목 가죽을 파고들며 얇은 피선이 맺혔다. 뼈를 깎는 통증이 갈의원의 전신 경맥을 타고 흐르자, 노인은 마침내 이성을 잃고 울부짖었다.


“살려주십시오! 소교주님! 제발 살려주십시오! 백장로…… 백장로가 시킨 짓입니다! 그자의 명령을 거부하면 제 가족들의 목을 모조리 베어 흑수 늪지대에 던지겠다고 협박했습니다! 노신은 그저 시키는 대로 했을 뿐입니다!”


갈의원은 바닥에 머리를 찧으며 맹렬히 울부짖었다. 그의 눈물과 콧물이 돌바닥을 적셨다. 청언은 그 비참한 모습을 차가운 눈빛으로 내려다보았다.


그는 갈의원을 즉각 죽일 수도 있었다. 하지만 이 늙은 의원을 죽이면, 백장로는 더욱 의심이 많고 잔혹한 다른 의원을 보낼 것이 분명했다. 첩자의 길에서 가장 중요한 것은 정보의 대칭성을 유지하고 적을 안심시키는 기만이었다. 이 늙은 여우를 살려두어 자신의 공범으로 만드는 것만이 백장로의 눈을 가릴 유일한 방패막이였다.


청언은 천천히 손가락을 거두었다. 목을 조이던 백은사가 소리 없이 그의 소매 속으로 회수되었다. 갈의원은 목을 움켜쥐고 거친 숨을 몰아쉬었다.


“살고 싶으냐?”


청언의 나지막한 질문에 갈의원은 미친 듯이 고개를 끄덕였다.


“살려만 주신다면, 소교주님의 개가 되어 무엇이든 하겠습니다! 제발 목숨만은……!”


“그렇다면 내일부터 백장로에게 올릴 내 건강 기록을 조작하거라.”


청언은 휠체어 등받이에 몸을 기대며 비스듬히 갈의원을 내려다보았다. 그의 입꼬리가 차갑게 호선을 그리며 올라갔다.


“내가 주사독에 중독되어 하반신이 완전히 굳어가고 있으며, 이성마저 흐려져 곧 그들의 완벽한 허수아비 인형이 될 것이라고 보고해라. 진맥 결과 역시 그렇게 위조하거라. 만약 단 한 글자라도 어긋남이 있다면, 네 강남의 가족들은 흔적도 없이 사라질 것이다.”


갈의원은 공포와 안도감이 뒤섞인 눈빛으로 청언을 바라보며 연신 바닥에 절을 올렸다. 그가 알던 병약하고 나약한 소교주 무경은 존재하지 않았다. 그 눈앞에 서 있는 자는 어둠보다 더 깊은 지략을 지닌 괴물이었다.


그때였다.


지하 밀실 위층, 무경전 본당 방향에서 침입자를 알리는 기괴한 파공음과 함께 삼엄한 기운이 내려앉았다. 아묵의 눈빛이 순식간에 날카로워졌고, 청언의 귀가 미세하게 떨렸다.


백장로가 소교주의 상태를 직접 확인하기 위해 무경전으로 향하고 있다는 긴급한 기척이었다.

HẾT CHƯƠNG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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