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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 지붕 아래의 사천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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무너지는 돌더미 속에서, 도진은 두 여인의 눈빛 속에서 살아남기 위한 유일한 열쇠를 발견했다.


쿠구구궁—!


대도서관 지하 심연 구역의 천장이 무자비하게 붕괴하며 거대한 석판들이 비가 내리듯 쏟아졌다. 8성 검성의 경지에 이른 성기사단장 서은하와 마왕군 사천왕 아샤조차도 뒤틀리는 고대 결계와 사방을 짓누르는 낙석 앞에서는 온전히 힘을 쓰지 못하고 비틀거렸다.


하지만 가장 위태로운 것은 그들이 아니었다. 마력도, 신성력도 없는 나약한 필멸자이자, 소울링크의 중심으로 묶여버린 최하급 서기 이도진이었다. 발목을 심하게 접질린 채 바닥에 쓰러진 도진은 숨을 쉴 때마다 전신 경맥이 불타는 듯한 마찰열에 신음했다.


“여기서 무너지면 셋 다 개매장이다. 은하, 아샤! 내 말 들어!”


도진은 전신이 저릿하게 마비되는 감각 속에서도 ‘통각 차단’ 능력을 한계까지 쥐어짜며 이성을 유지했다. 그의 목소리에는 평범한 서기라고는 믿을 수 없는 기묘한 지배력과 확신이 서려 있었다. 심장 박동 동기화 호흡법으로 맥박이 강제로 묶인 두 여인은 자신들의 의지와 상관없이 도진의 목소리에 귀를 기울일 수밖에 없었다.


“오른쪽 석벽 뒤의 수로 통로로 뛰어라! 그곳의 고대 제국식 배수로는 낙석의 압력을 견디도록 설계되어 있어!”


도진의 지시에 은하는 본능적으로 입술을 깨물었다. 평생을 적으로 여겨온 마족 사천왕과 나란히 달아나야 한다는 사실이 굴욕적이었지만, 가슴을 옥죄는 소울링크의 통증이 그녀의 지체를 허락하지 않았다.


“치앗……!”


은하는 바닥에 떨어졌던 성검 천광을 거두어 도진의 허리를 거칠게 안아 올렸다. 동시에 아샤 역시 짜증 서린 실소를 터뜨리며 도진의 반대편 어깨를 부축했다. 대륙 최강의 두 여성이 한 명의 병약한 소년을 사이에 두고 어깨를 나란히 한 채 질주하는, 역사상 유례없는 기괴한 광경이 연출되는 순간이었다.


콰콰콰쾅—!


그들이 수로 통로로 몸을 던짐과 동시에, 방금 전까지 서 있던 고대 제단이 거대한 바위더미에 깔려 흔적도 없이 완벽하게 함몰되었다. 짙은 흙먼지와 메케한 마력의 잔재를 뒤로하고, 세 사람은 대도서관 지하 깊숙한 수로 구석에 도달했다.


그곳은 오래전 고대 인부들이 자재를 보관하다 방치해 둔 버려진 창고였다. 도진은 오래전 금서를 뒤적이며 이 지하 수로의 도면을 머릿속에 완벽히 암기해 두었기에, 이 숨겨진 공간의 존재를 알고 있었다. 습하고 퀴퀴한 냄새가 풍기는 곳이었지만, 두꺼운 철제 문이 달려 있어 외부의 추적과 낙석을 피하기에는 최적의 ‘안식처’였다.


“하아…… 하아……”


창고 안쪽의 낡은 나무 침대에 눕혀진 도진은 거친 숨을 몰아쉬었다. 전신 경맥이 뒤틀리는 통증은 가라앉았지만, 육체적 피로와 발목의 통증이 몰려왔다.


그때, 삐걱거리는 철문이 조심스럽게 열리며 낡은 수녀 두건을 쓴 늙은 여성이 안으로 들어섰다. 대도서관의 청소부이자, 도진을 고아원 시절부터 친손자처럼 걱정해 주던 메리 할멈이었다.


“도진아! 아이고, 이 꼴이 이게 무슨 일란 말이냐!”


메리 할멈은 도진의 핏기 없는 얼굴과 찢어진 서기복을 보고 가슴을 치며 눈물을 흘렸다. 그녀는 기사단과 마족의 위압적인 기세에 몸을 떨면서도, 품속에서 정성스럽게 싸 온 따뜻한 채소 수프 그릇을 꺼내 도진의 침대 옆 탁자에 내려놓았다.


“성당의 무서운 이단 심문관들이 도서관 상층부를 이 잡듯 뒤지고 있단다. 내가 지하실 청소를 핑계로 감시자들의 눈을 돌려놓았으니, 어서 이 따뜻한 수프라도 먹고 기운을 차려야 한다, 알겠지?”


“감사해요, 메리 할머니. 조금만 쉬면 괜찮아질 거예요. 어서 위로 올라가세요. 할머니까지 위험해지면 안 돼요.”


도진은 메리 할멈의 손을 따뜻하게 맞잡으며 안심시켰다. 할멈은 불안한 눈빛으로 은하와 아샤를 번갈아 바라본 뒤, 빗자루를 꼭 쥔 채 서둘러 지하 수로 너머로 사라졌다. 방 안에 남은 것은 따뜻한 수프의 온기와, 그 온기를 단숨에 얼려버릴 듯한 서늘한 살기뿐이었다.


탁, 스르릉.


메리 할멈이 나가자마자 서은하가 성검 천광의 가드를 잡으며 아샤를 향해 검끝을 겨누었다. 황금빛 신성 투기가 좁은 창고 내부의 대기를 팽팽하게 긴장시켰다.


“숨돌릴 시간은 끝났다, 마족. 비록 이 괴상한 사슬 때문에 네년의 목을 당장 베지는 못하지만, 성당의 기사로서 이단과 마족을 이대로 방치할 수는 없다. 순순히 무릎을 꿇고 포박을 받아라.”


아샤는 코방귀를 뀌며 손가락 끝에 검붉은 심연의 불꽃을 피워 올렸다.


“하, 하찮은 빛의 사냥개 녀석이 제 처지도 모르고 짖어대는구나. 네 잘난 성검으로 나를 베어보아라. 그 순간 네 가슴에 박힌 사슬이 네 심장도 함께 찢어발길 테니. 원한다면 그 잘난 황금빛 머리칼부터 검게 태워줄 수도 있다만?”


두 여인의 기세가 부딪치자, 도진의 목덜미에 새겨진 붉은 사슬 문양이 불길하게 요동치기 시작했다. 소울링크의 마력 반발이 일어나며 도진의 가슴팍에 날카로운 흉통이 들이쳤다.


‘Verbal 협상은 불가능하다. 천 년간 쌓인 종족적 증오가 말 몇 마디로 풀릴 리가 없지.’


도진은 침착하게 상황을 분석했다. 두 여인은 압도적인 무력을 가졌지만, 소울링크의 규칙에 묶여 있다. 그리고 그 규칙의 중심이자 통제권은 오직 자신에게 있었다. 도진은 가슴의 사슬 낙인을 손으로 움켜쥐며, 은하를 향해 매서운 눈빛을 던졌다.


“서은하 단장. 성기사단의 신념 조항 제4조를 기억하고 있나?”


은하는 갑작스러운 도진의 질문에 짐짓 당황하며 검을 쥔 손에 힘을 주었다.


“그걸 네가 어찌…….”


“‘약자를 보호하고, 무고한 필멸자의 생명 보존을 기사단의 명예보다 우선시한다.’ 맞나? 지금 이 좁은 창고에서 네가 성검의 투기를 조금이라도 방출하면, 마력도 없는 내 육체는 그 여파만으로도 경맥이 파열되어 즉사한다. 내가 죽는 순간, 너와 아샤 역시 소울링크의 반동으로 심장이 터져 죽겠지. 대답해 봐라, 서은하. 무고한 나를 죽음으로 몰아넣는 것이 네가 말하는 신의 정의인가?”


“윽……!”


은하의 안색이 하얗게 질렸다. 기사단의 교리와 규율을 목숨보다 소중히 여겨온 그녀에게, 도진이 제시한 신념 조항의 모순은 그 어떤 물리적 방패보다 강력한 논리적 타격이었다. 검끝이 미세하게 흔들리는 사이, 아샤가 요염한 미소를 지으며 한 걸음 다가섰다.


“깔깔! 역시 나약한 인간 기사 녀석은 말만 번지르르하구나. 하지만 인간 소년, 나는 네놈들의 그 한심한 규율 따위는 신경 쓰지 않는다. 내가 이 기사 년의 머리칼만 정밀하게 태워버린다면, 네놈은 죽지 않을 텐데?”


아샤의 손끝에서 타오르는 흑염이 점점 더 거대해지며 창고 천장을 그을리기 시작했다. 살기가 한계에 도달하는 순간이었다.


도진은 더 이상의 경고는 무의미함을 깨달았다. 그는 책상 위에 놓여 있던, 메리 할멈이 약초를 다듬을 때 쓰던 녹슨 무쇠 단검을 쥐어 잡았다.


“내가 경고했을 텐데. 내가 다치면 너희도 다친다고.”


“무슨……?!”


은하와 아샤의 눈동자가 동시에 커졌다.


스윽—!


망설임 없는 움직임이었다. 도진은 단검의 날카로운 칼날을 자신의 왼쪽 손목에 대고 깊숙하게 그어내렸다. 선홍색의 뜨거운 피가 뿜어져 나오며 바닥으로 뚝뚝 떨어졌다.


“아아악—!”


순간, 창고 내부에 날카로운 두 여성의 비명이 동시에 터져 나왔.


서은하는 성검을 바닥에 떨어뜨린 채 자신의 왼쪽 손목을 움켜쥐고 주저앉았다. 아샤 역시 손끝의 흑염을 잃어버린 채 가슴을 쥐어짜며 바닥으로 쓰러졌다. 소울링크의 대미지 25% 분산 규칙에 따라, 도진이 입은 손목의 자상과 육체적 통증이 그녀들의 영혼에 생생한 물리적 타격으로 이식된 것이다.


저릿하게 타들어 가는 듯한 극통과 함께, 도진의 생명력이 깎여나가는 감각이 그녀들의 심장을 직격했다. 그것은 단순한 아픔이 아니었다. 도진이 죽으면 자신들 역시 심장이 멈춰 어둠의 나락으로 떨어질 것이라는 본능적인 공포였다.


창고 내부에 삼엄하고 무거운 침묵이 흘렀.


도진은 피가 흐르는 손목을 짚은 채, 차갑고 고요한 눈빛으로 바닥에 무릎을 꿇은 두 여인을 내려다보았다.


“이것이 안연당 평화 유지 수칙이다. 내 아지트 내부에서는 그 어떤 마법도, 무기 사용도 금지한다. 한 번만 더 내 눈앞에서 칼을 뽑거나 마력을 흘린다면, 다음에는 손목이 아니라 내 심장을 찌를 것이다. 내 말이 농담으로 들리는지 시험해 보고 싶다면 마음대로 해라.”


은하는 손목의 통증과 함께 밀려오는 지독한 죄책감에 고개를 들지 못했다. 아샤 역시 핏발 선 눈으로 도진을 바라보며 부르르 떨었지만, 끝내 손가락 끝에 마력을 피워 올리지 못했다. 압도적인 무력을 지닌 두 사천왕이, 아무런 힘도 없는 서기 소년의 목숨이라는 단 하나의 인질 앞에 완벽하게 굴복한 순간이었다.


도진은 천천히 숨을 내쉬며 손목의 상처를 천으로 감싸 쥐었다. 기묘하고도 아슬아슬한, 한 지붕 아래의 동거가 시작되려 하고 있었다.

HẾT CHƯƠNG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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