붉은 사슬의 폭발
쿠구구구궁—!
지하 석실 전체가 무너져 내릴 듯 격렬하게 요동쳤다. 머리 위쪽에서 백색 성기사단의 단장, 서은하가 내뿜는 황금빛 신성 투기가 계단 아래로 폭포처럼 밀려들고 있었다. 성검 ‘천광’의 빛은 어두운 수로를 하얗게 태워버릴 기세로 도진의 숨통을 조여왔다. 발목의 극심한 통증과 심장의 내상으로 인해 도진은 벽에 기대어 거친 숨을 몰아쉴 뿐이었다. 입가에 묻은 피가 차가운 바닥으로 뚝뚝 떨어졌다.
‘이대로 잡히면 끝장이다. 이단 심문소로 끌려가는 순간 내 목숨은 물론이고 고아원의 아이들까지 무사하지 못해.’
도진은 필사적으로 머리를 굴렸다. 그의 손목에 그려진 고대 은폐 기호가 희미하게 붉은 빛을 발하고 있었지만, 대륙 최강의 무력 중 하나인 8성 검성의 직감을 완전히 속이기에는 역부족이었다. 서은하의 발걸음 소리가 석실 입구에 도달하기 직전, 도진이 짚고 있던 벽면이 완전히 갈라지며 드러난 고대 조율자의 제단이 기이한 고동을 치기 시작했다.
하지만 위기는 그것뿐이 아니었다.
콰아아아앙—!
돌연 제단 뒤편의 칠흑 같은 어둠 속에서 공간을 찢는 듯한 폭음이 터져 나왔다. 서은하가 내려오던 계단의 반대편, 그림자가 짙게 깔린 수로 구석에서 서늘하고도 파괴적인 마기(魔氣)의 폭풍이 솟구쳤다. 붉은색과 검은색이 뒤섞인 불꽃이 대기를 잠식하며 석실의 온도를 급격히 떨어뜨렸다.
“성당의 개들이 여기까지 냄새를 맡고 기어들어 왔군.”
어둠 속에서 걸어 나온 것은 믿을 수 없을 정도로 아름답고, 동시에 오싹할 정도로 잔혹한 존재였다. 밤하늘을 녹여낸 듯한 칠흑의 머리칼 사이로 돋아난 검은 산양의 뿔. 심연을 담은 듯한 자줏빛 눈동자가 오만하게 빛나고 있었다. 마왕군 사천왕 중 한 명이자 태초의 마성을 계승한 자, 아샤였다.
“마족의 사천왕 아샤……! 네년이 감히 성도의 지하 깊은 곳까지 침입하다니.”
석실 입구에 도달한 서은하의 눈동자가 차갑게 가라앉았다. 그녀가 성검 천광을 비스듬히 치켜들자, 눈부신 황금빛 신성력이 파도처럼 일렁이며 아샤의 검은 불꽃과 대치했다. 대륙 최강의 두 여성이 뿜어내는 기세만으로도 석실 내부의 공기가 진공 상태처럼 희박해졌다.
그들의 한가운데, 제단 구석에 쓰러져 있는 하급 서기 이도진은 그저 바람 앞의 등불에 불과했다. 무력이 전혀 없는 도진의 육체는 두 최강자가 격돌하기 직전에 뿜어내는 여파만으로도 뼈가 으스러질 듯한 압박감을 느끼고 있었다. 전신 경맥이 뒤틀리는 극통에 도진은 간신히 신음을 삼키며 ‘통각 차단’ 능력을 한계까지 끌어올렸다.
“성당의 위선자들에게 흘릴 피가 있다면, 이곳에 전부 뿌려주마.”
아샤가 냉소하며 손가락을 튕겼다. 그녀의 등 뒤에서 심연의 마력이 응축된 검은 화염 구체들이 소리 없이 떠올랐다.
“신의 이름 아래, 더러운 마족의 피를 이곳에 정화하겠다.”
서은하의 성검 천광이 반호의 궤적을 그리며 찬란한 황금빛 검기를 방출했다.
콰콰콰콰콰—!
마침내 두 최강자의 에너지가 제단 중앙에서 정면으로 충돌했다. 성스러운 빛의 폭풍과 심연의 어둠이 뒤섞이며 발생한 충격파는 상상을 초월했다. 석실의 천장이 무너져 내리고, 사방의 대리석 벽면이 가루가 되어 휘날렸다.
“윽……!”
그 파괴적인 충격파의 직격타가 제단 옆에 누워 있던 도진을 덮쳤다. 도진의 약한 육체는 종이 인형처럼 허공으로 떠밀려 제단 중앙의 회색 석판 위로 팽개쳐졌다. 거친 충격에 그의 가슴팍이 찢어지며 선홍색 피가 울컥 쏟아져 나왔다.
도진의 상처에서 흘러나온 붉은 피가 제단 중앙에 음각된 사슬 모양의 홈을 따라 빠르게 흘러내렸다. 그 피는 평범한 인간의 것과 달랐다. 상극의 힘을 조화시키는 ‘공명하는 심장’의 정수가 담긴, 천 년 전 최초의 조율자의 피였다.
쿠우우우웅—!
도진의 피가 제단 홈의 중심부에 닿는 순간, 제단 전체가 미친 듯이 진동하며 반응했다.
[경고: 최초의 조율자의 혈통 반응 감지.]
[시스템 가동: 역명 소울링크(逆命 Soul Link) 마법진을 격발합니다.]
머릿속에서 기계적이고 차가운 안내음이 울려 퍼졌다. 제단 바닥에 새겨진 붉은 사슬 문양들이 황금빛과 붉은빛의 광채를 동시에 뿜어내며 공중으로 솟구쳤다.
“이건…… 무슨 마법이지?!”
검을 맞부딪치며 서로를 죽이려던 서은하와 아샤의 안색이 동시에 변했다. 그들이 내뿜던 강력한 신성력과 마력이 제단에서 흘러나온 기묘한 에너지 장막에 부딪쳐 한순간에 강제로 동결되어 버린 것이다. 대륙 최강의 여인들이 마치 보이지 않는 늪에 빠진 것처럼 손가락 하나 까딱하지 못하고 제자리에 묶였다.
스르릉, 철컥!
제단 중심부에서 실체화된 황금빛이 감도는 붉은색 사슬들이 뱀처럼 꿈틀거리며 뿜어져 나왔다. 사슬들은 믿을 수 없는 속도로 허공을 가르며 서은하와 아샤의 심장을 향해 날아갔다.
“감히 마족의 하찮은 주술 따위가……!”
서은하가 성검 천광에 깃든 성스러운 투기를 폭발시키며 사슬을 베어내려 했다. 그러나 그녀의 검격이 붉은 사슬에 닿는 순간, 사슬은 연기처럼 투명해지며 검날을 통과하더니 그대로 그녀의 왼쪽 가슴을 관통해 심장에 박혔다. 물리적 타격도, 신성력의 방어도 전혀 통하지 않는 영혼의 결속이었다.
“이 끈질긴 쇠사슬은 뭐냐!”
아샤 역시 경악하며 태초의 마성을 폭발시켜 검은 불꽃 장벽을 쳤지만, 사슬은 장벽을 비웃듯 통과해 그녀의 심장 한가운데를 꿰뚫었다.
“아아악……!”
동시에 두 사람의 입에서 억눌린 비명이 터져 나왔다. 영혼 깊숙한 곳이 강제로 결속되는 감각은 대륙 최강자들에게도 견디기 힘든 충격이었다.
그리고 그 두 여인의 심장을 꿰뚫은 붉은 사슬들의 끝은, 제단 중앙에서 피를 흘리며 쓰러져 있는 이도진의 목덜미를 향해 수렴되었다. 사슬들이 도진의 목을 감싸 쥐는 순간, 타들어 가는 듯한 극통과 함께 그의 피부 위에 선명한 붉은 사슬 문양이 새겨졌다.
[결속 완료: 동기화 1단계: 강제 결속.]
[규칙 적용: 다섯 명의 계약자 중 누구 하나가 피해를 입으면 이도진은 100%의 통증을 느끼고, 나머지 계약자들은 25%의 대미지를 공유합니다.]
“이런 미친 계약을……!”
아샤가 분노로 눈을 번뜩이며 자신의 심장에 박힌 사슬을 강제로 뜯어내려 했다. 그녀가 체내의 마성을 폭주시켜 계약을 강제로 파괴하려던 찰나, 소울링크의 역류 법칙이 가동되었다.
“쿨럭……!”
갑작스럽게 도진의 가슴이 뒤틀리며 입에서 한 바가지의 피가 쏟아져 나왔다. 전신 경맥이 문자 그대로 찢겨 나가는 듯한 극통이었다. 그리고 그와 동시에, 계약의 반동 통증의 25%가 사슬을 타고 서은하와 아샤의 심장으로 역류했다.
“아윽……!”
서은하가 가슴을 쥐어짜며 주저앉았다. 아샤 역시 심장을 부여잡고 피를 토하며 무릎을 꿇었다. 자신들이 힘을 쓰려 할수록, 그리고 상대방을 해치려 할수록 그 고통이 고스란히 이 나약한 인간 소년에게 집중되고, 그 여파가 다시 자신들에게 돌아오는 잔혹한 굴레였다.
“검을 휘두르지 마라…….”
도진이 피 묻은 입술을 간신히 열어 두 사람을 응시했다.
“너희가 서로를 죽이려 할수록…… 우리 셋 다 이 자리에서 심장이 터져 죽을 것이다.”
서로를 죽이려 안달이 나 있던 대륙 최강의 성기사단장과 마왕군의 사천왕이, 동시에 가슴을 움켜쥔 채 아무런 힘도 없는 최하급 서기 이도진을 경악과 불신이 가득한 눈으로 바라보았다. 도진의 목에 새겨진 붉은 사슬 문양이 어둠 속에서 불길하게 깜빡이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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