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둠 속의 가스 폭발 위기
“쉬이이이이이—!”
그것은 지옥의 문틈으로 비어져 나오는 파멸의 숨결이었다.
진짜 시추 파이프 끝단에서 뿜어져 나오는 보이지 않는 기체의 압력이 결합부를 뜯어낼 듯 요동치기 시작했다. 오염수 레이어를 이중관 시추 케이싱으로 완벽하게 격리 차단했다는 기쁨은 단 1초도 가지 못했다. 파이프 내부에서 흘러나오는 것은 차가운 지하수가 아니었다. 코를 찌르는 시큼하고 매캐한 가스 냄새가 차가운 지하 공동의 공기 속으로 무섭게 퍼져나갔다.
“대장! 진동이 멈추지 않습니다! 파이프가 흔들리다 못해 쪼개지려고 해요!”
한스가 시추 파이프를 붙잡은 채 비명을 질렀다. 그의 손끝이 파이프의 기이한 고주파 진동 때문에 덜덜 떨리고 있었다.
태오는 오른손으로 지반 투시 마력 안경을 고정했다. 우측 렌즈와 구리 프레임 연결부에서 지르르 하는 미세한 마력 누출음이 울리며 편두통이 관자놀이를 찌르고 들어왔다. 하지만 지금은 눈가에서 흘러내리는 피눈물을 닦을 시간조차 없었다. 안경 너머로 투사되는 3D 지층 격자망이 붉은색으로 깜빡이며 경고 수치를 띄웠다.
[위험: 고압 메탄가스 포켓 관통. 누출 기압 18기압. 산소 농도 급감 중.]
‘메탄가스다. 대수층 바로 윗자락에 거대한 가스 포켓이 갇혀 있었던 거야!’
머릿속에서 현대 수자원공학의 지식들이 경종을 울렸다. 메탄가스의 공기 중 폭발 한계 농도는 5%에서 15% 사이. 지금처럼 밀폐된 지하 공동 폐광 구역에서는 불꽃 하나, 혹은 쇠붙이가 부딪쳐 발생하는 미세한 마찰 정전기 스파크 하나만으로도 이 공간 전체가 거대한 폭탄으로 돌변할 수 있었다.
“횃불 꺼! 당장 전부 꺼라!”
태오가 왼쪽 어깨의 찢어지는 듯한 채찍 통증을 억누르며 목이 터져라 호통쳤다.
“하지만 제이드, 불을 끄면 아무것도 안 보인—”
“말대꾸하지 말고 꺼! 쇠망치도 바닥에 내려놓아라! 부딪쳐서 불꽃이 튀는 순간 우리 모두 흔적도 없이 증발한다!”
태오의 서슬 퍼런 외침에 브론과 제나가 허겁지겁 횃불을 바닥의 진흙 더미에 처박았다.
치이익.
마지막 불씨가 꺼지자, 아지트는 순식간에 완전한 암흑 속으로 가라앉았다. 보이지 않는 어둠은 공포를 배가시켰다. 사방에서 대원들의 거친 호흡 소리와 가스 특유의 매캐한 냄새만이 사방을 가득 채웠다. 쉭쉭거리며 고압으로 분출되는 가스 소리가 어둠 속에서 거대한 괴물의 울음소리처럼 메아리쳤다.
“읍, 으흑……!”
그때, 한스가 짧은 신음과 함께 바닥으로 쓰러지는 소리가 들렸다. 밀폐된 공간 하부로 가스가 가라앉으며 산소가 급격히 결핍되기 시작한 것이다. 가스 중독과 질식의 전조였다.
“한스! 정신 차려라!”
태오는 어둠 속에서 가슴을 쥐어짜며 숨을 들이쉬었다. 폐부 깊숙이 들어오는 공기가 뜨겁고 매캐했다. 이대로 두면 가스가 폭발하기 전에 모두가 질식사할 판이었다.
‘침착해라, 한태오. 가스 누출 압력 방출 공법(Gas Venting)을 써야 한다. 가스의 압력을 제어하면서 외부로 흘려보내야 해.’
태오는 품 안에서 도마뱀 가죽으로 만든 ‘절연 가죽 장갑’을 꺼내 들었다. 정전기 방지 즙을 먹여 만든 이 장갑은 마력 전류뿐만 아니라, 미세한 금속 마찰로 인한 정전기 스파크를 방지하는 데도 탁월했다. 장갑을 다급히 끼워 넣은 태오는 안경의 기압 분석 모드를 최소 전력으로 가동했다.
징—.
안경의 우측 렌즈가 파란 잔광을 내뿜으며 어둠 속에서 태오의 한쪽 눈가를 푸르게 물들였다. 그 희미한 빛에 의지해 태오는 시추 파이프 끝단으로 기어갔다. 수압 측정기의 황동 실린더 내부 지침이 위험 한계선을 가리키며 가쁘게 떨리고 있었다.
“브론, 내 목소리가 들리는 방향으로 기어와라! 네 주머니에 있는 간이 방출 황동 밸브를 꺼내!”
“여기…… 여기 있네, 제이드!”
브론이 어둠 속에서 더듬거리며 황동 밸브를 건넸다. 태오는 절연 가죽 장갑을 낀 손으로 시추 파이프 끝단에 황동 밸브를 정렬했다. 금속과 금속이 맞닿을 때 미세한 마찰음이 날 때마다 심장이 쪼그라드는 것 같았다. 조금이라도 엇갈려 스파크가 튀면 끝장이다.
서늘한 구리선의 전도율을 느끼며, 태오는 정밀한 손놀림으로 밸브의 나사산을 파이프 끝단에 맞물려 돌렸다.
끼이익, 찰칵.
“연결 성공이다. 주드, 송진 접착제를 밸브 이음새에 발라! 가스가 틈새로 새어 나오지 않게 밀폐해라!”
배관 보수원 주드가 어둠 속에서 뜨거운 송진 주머니를 더듬거리며 밸브 결합부에 두껍게 덧발랐다. 매운 침엽수 향이 유황 냄새와 섞이며 빠르게 굳어갔다.
이제 가스를 밖으로 빼내야 했다. 태오는 안경의 기압 게이지를 모니터링하며 황동 밸브를 아주 미세하게 개방했다.
쉬이이이익—!
밸브 끝에서 고압의 메탄가스가 가느다란 아지랑이를 그리며 뿜어져 나오기 시작했다. 기압 수치가 18기압에서 15기압으로 서서히 내려앉는 것이 보였다.
“한스, 환기구 플랩을 열어라! 외부 대류를 유도해야 해!”
태오의 지시에 한스가 비틀거리며 벽면 상부의 목제 환기구 플랩을 밧줄로 잡아당겼다. 차가운 바람이 들어오는 소리가 들렸다.
그러나 그 순간, 예상치 못한 공기의 역습이 시작되었다.
콰아아아—!
수용소 외곽의 황량한 ‘통곡의 협곡’에서 불어온 가혹한 역풍이 환기구를 타고 내부로 거세게 밀려 들어온 것이다. 기압 차로 인해 발생한 역풍은 뿜어져 나오던 메탄가스를 아지트 내부로 다시 세차게 밀어 넣었다.
“콜록! 쿨럭! 컥……!”
“숨이…… 숨이 안 쉬어집니다!”
대원들이 집단으로 기침을 터뜨리며 바닥을 뒹굴었다. 가스의 농도가 순간적으로 폭발 범위인 10% 선까지 치솟았다. 지반 안경의 경고음이 귓전을 찢을 듯이 울려 퍼졌다.
[위험! 가스 농도 12.8% 도달. 인화 가연성 극대화.]
‘안 돼! 환기구를 한 번에 급격히 열면 기압 차 때문에 역풍이 불 수밖에 없어! 메탄의 비중은 공기 대비 0.55다. 아주 가볍단 말이다!’
태오는 질식해가는 와중에도 이성을 잃지 않고 열역학적 대류 공식을 계산했다. 메탄가스는 가볍기 때문에 아지트의 상층부로 모인다. 그렇다면 하부의 공기 유입은 최소화하고, 상부의 환기 플랩 각도를 좁혀 자연스러운 사이펀 효과를 유도해야 했다.
태오는 피를 흘리는 어깨의 통증을 악물며 환기구 밧줄을 쥔 한스의 손을 덮어 잡았다.
“한스, 밧줄을 조금 늦춰라! 플랩 각도를 15도만 열어! 한 번에 열지 말고 미세하게 유량 균형을 맞춰야 해!”
태오는 한스와 함께 밧줄을 조율하여 환기구 플랩을 좁게 닫았다. 그러자 통곡의 협곡에서 불어오던 역풍이 차단되고, 아지트 내부의 뜨거운 열기가 상부의 좁은 틈새로 빠져나가며 가벼운 메탄가스를 굴뚝처럼 빨아올리기 시작했다.
자연 대류가 시작된 것이다.
쉬이이이…….
보이지 않는 가스의 흐름이 상부 환기구를 통해 수용소 외곽의 넓은 통곡의 협곡 방향으로 서서히 방출되며 흩어졌다. 안경 화면의 기압 수치가 점차 하강하기 시작했다.
[안정: 가스 농도 4.2%로 하락. 폭발 한계선 이하 도달.]
“……하아, 하아.”
태오는 장갑을 낀 손으로 이마의 식은땀을 닦아냈다. 폐부로 스며드는 공기가 비로소 차갑고 맑게 느껴졌다. 대원들의 거친 기침 소리도 서서히 진정되어 갔다. 가스 폭발이라는 대재앙의 위기를 오직 기압 제어와 대류 분석이라는 공학적 실증으로 극복해낸 순간이었다.
그때, 아지트 구석의 좁은 환기구 틈새로 날랜 전령 소년 핀(Finn)이 미끄러지듯 들어왔.
“대장! 핀이에요. 방금 환기구 밖으로 빠져나간 가스가 협곡 바람을 타고 안전하게 흩어지는 걸 확인했어요. 하지만…….”
핀이 태오의 귀에 바짝 다가와 숨을 헐떡이며 속삭였다.
“우리가 가스를 방출하면서 생긴 미세한 기압 변화 때문에, 광산 상층부에 있는 경비대의 마력 탐사 추가 반응하기 시작했어요. 간수들이 서쪽 폐광 구역 방향으로 탐사 추를 들고 움직이고 있어요!”
태오의 눈빛이 차갑게 가라앉았다. 가스 폭발의 위기는 넘겼으나, 경비대의 포위망이 좁혀오는 새로운 압박이 시작된 것이다. 그들에게 진짜 시추공의 위치를 들키는 순간 모든 계획은 수포로 돌아간다.
“시간이 없다. 불은 켜지 마라. 안경의 파란 빛만 보고 움직인다.”
태오는 어둠 속에서 무쇠 곡괭이를 굳게 쥔 단테를 바라보았다. 안경 너머 푸른 광선이 단테의 굳건한 어깨를 비추었다. 가스 포켓 바로 아래, 이제 마지막 화강암 암반층만이 진짜 대수층을 가로막고 있었다.
“단테, 진짜 대수층까지 남은 거리는 단 50센티미터다. 모든 힘을 쏟아부어라. 마지막 한 타다.”
단테가 말없이 고개를 끄덕이며 밧줄을 움켜잡았다. 암흑 속에서, 오직 태오의 푸른 안광이 가리키는 지점을 향해 단테의 거대한 해머가 수직으로 내리꽂혔다.
콰아아앙—!
강철 비트가 화강암반의 심장을 직격하는 순간, 지하 공동 전체가 무시무시한 맥동으로 흔들렸다. 그리고 그 파쇄음 너머로, 수백 년 동안 갇혀 있던 거대한 지하 수맥이 꿈틀거리며 뿜어내는 청량하고 웅장한 물 흐르는 소리가 온 아지트에 맥박처럼 울려 퍼지기 시작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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