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하의 비밀 기지
태오가 가리킨 바위 벽면 틈새를 향해 라울의 곡괭이가 무섭게 내리꽂히며, 굳게 닫혀 있던 청동 성문의 빗장이 요란한 소리를 내며 흔들리기 시작했다.
깡—! 깡—!
라울의 억센 팔근육이 터질 듯이 부풀어 올랐다. 평생을 굴착수로 살아온 그의 완력은 무시무시했다. 게다가 방금 전 붕괴 사고에서 자신과 대원들의 목숨을 구해준 제이드—한태오를 향한 경외심과 부채감이 그의 곡괭이질에 무서운 기세를 더하고 있었다. 몇 번의 타격이 더 가해지자, 수천 년 동안 소금 먼지와 바위 틈새에 파묻혀 있던 고대 청동 입구의 빗장이 마침내 비명 같은 마찰음을 내며 부러져 나갔다.
쿠구구구—!
바위 벽면이 갈라지며 성인 한 명이 겨우 기어들어 갈 만한 어두운 틈새가 열렸다. 그 안에서 수용소의 매캐한 황 냄새와는 완전히 다른, 서늘하고 축축한 냉기가 뿜어져 나왔.
“하아…… 하아…… 제이드, 열었다!”
라울이 이마의 땀을 훔치며 헉헉거렸다.
태오는 거친 기침을 터뜨리며 어깨를 움켜쥐었다. 왼쪽 어깨의 채찍 상처가 다시 파열되어 가죽 누더기 사이로 붉은 피가 배어 나오고 있었다. 설상가상으로 오른쪽 눈가에 굳은 피눈물 자국 때문에 안구 건조증과 극심한 편두통이 뇌리를 찔렀다. 하지만 쉴 틈이 없었다. 지하 2층 갱도 입구 너머에서 간수들의 다급한 군화 소리가 점점 더 크게 울려 퍼지고 있었다.
“이쪽이다! 소음이 여기서 났다! 서둘러라!”
철제 흉갑이 부딪치는 소리가 귓가를 때렸다. 남은 시간은 길어야 1분.
“그레그, 대원들을 안으로 들여보내십시오. 브론이 주조한 기계 부품들부터 먼저 챙겨야 합니다.”
태오가 쇳소리 섞인 목소리로 지시하자, 굴착대장 그레그가 기민하게 움직였다.
“모두 서둘러라! 짐을 안으로 밀어 넣고 한 명씩 신속하게 진입해라!”
120명의 노예 대열이 일사불란하게 움직였다. 평소라면 통제되지 않았을 인파였지만, 방금 전 붕괴를 예측하고 자신들을 살려낸 태오의 공학적 권위 앞에 그들은 완벽히 군대처럼 움직이고 있었다. 브론이 비밀리에 제련해 둔 묵직한 흑철 기어들과 삼각대 목재들, 밧줄 타래가 좁은 청동 입구 너머로 빠르게 사라졌다. 마지막 노예까지 안으로 밀어 넣은 라울이 태오를 부축했다.
“제이드, 가자.”
“잠깐만요.”
태오는 흔들리는 시야를 바로잡으며 지면에 무릎을 꿇었다. 그는 갱도 바닥에 흩어진 굴착 흔적과 발자국들을 응시했다. 이대로 들어가 버리면 간수들이 무너진 남쪽 벽면이 아닌 이 북동쪽 청동 입구를 즉각 발견할 터였다.
“한스 2세, 주드. 나와서 도와라.”
태오의 호출에 점토 다짐 전문가 한스 2세와 배관 보수원 주드가 틈새 밖으로 머리를 내밀었다. 태오는 찢어지는 어깨 통증을 참아내며 지시했다.
“여기에 남아 있는 황토와 소금 석회 가루를 섞으십시오. 함수율을 15% 정도로 맞추고, 저 무너진 남쪽 벽면에서 흘러나오는 황산 오염수 진흙을 겉면에 덧칠해야 합니다. 주드, 주변의 깨진 화강암 파편들을 이 청동 입구 틈새에 끼워 맞추고 송진 접착제로 고정하십시오.”
“아! 붕괴로 인해 자연스럽게 입구가 막힌 것처럼 위장하려는 거군요!”
한스 2세가 무릎을 치며 즉시 바닥의 황토와 석회를 배합하기 시작했다. 주드는 송진 밀폐 접착제를 가열해 바위 파편들을 청동 입구의 외벽에 정밀하게 붙여 나갔. 단 30초 만에, 청동 입구는 무너진 바위 더미와 오염된 진흙 속에 완벽히 은닉되었다. 겉보기에는 그저 지독한 유황 냄새를 풍기며 무너져 내린 폐갱도의 일부처럼 보일 뿐이었다.
“완벽합니다. 안으로 들어갑니다.”
태오가 마지막으로 좁은 틈새를 통과하자, 라울과 주드가 내부에서 거대한 청동 빗장을 다시 걸어 잠갔다.
쿵.
묵직한 금속음이 차단되는 순간, 외부의 소음이 거짓말처럼 사라졌다.
* * *
지하 공동 폐광 구역.
그곳은 수백 년 전 고대 붕괴 사고로 인해 완전히 잊힌 심연의 공간이었다. 태오가 손에 쥔 미세한 마력석 광원에 불을 밝히자, 지하 공동의 웅장한 실루엣이 드러났다. 사방을 둘러싼 거대한 화강암 아치들이 천장의 엄청난 하중을 완벽하게 받쳐내고 있었다. 고대 제국의 건축 공학이 남긴 위대한 유산이었다.
비록 사방에 굳어버린 소금 결정과 먼지가 가득했지만, 지반은 극도로 안정적이었고 공기는 차갑고 맑았다. 수용소의 가혹한 감시와 소금 분진에서 완전히 해방된, 그들만의 완벽한 은신처이자 비밀 아지트였다.
“세상에…… 지하에 이런 거대한 공간이 숨겨져 있었다니.”
라울이 천장의 아치 구조를 올려다보며 경탄을 금치 못했다. 평생 땅을 파왔지만 이런 정밀한 구조물은 처음 보았기 때문이다.
“여기는 고대 제국의 방수로 지선 중 하나입니다. 지반 지지력이 완벽해서 경비대가 지상에서 아무리 발파 작업을 해도 이 공동은 무너지지 않습니다.”
태오가 숨을 고르며 설명했다. 그의 만성 기침이 서늘하고 맑은 공기 덕분에 조금씩 진정되고 있었다.
“제이드, 이제 무엇을 하면 되지? 사흘의 유예 시간 중 이미 하루가 저물어가고 있다. 루퍼스 놈들이 지상에서 수색을 끝내고 나면 진짜 우리를 찾아 나설 거다.”
그레그가 긴장된 얼굴로 물었다. 태오는 고개를 끄덕이며 아지트 중앙의 평평한 화강암 바닥을 가리켰다.
“시추기를 조립해야 합니다.”
태오의 지시에 브론과 대원들이 짊어지고 온 보따리들을 풀었다. 묵직한 흑철 프레임, 거대한 고정용 나사산, 두꺼운 밧줄과 청동 도르래 기어들이 바닥에 정렬되었다.
“브론, 부품들의 공차는 완벽합니까?”
“흥, 나를 뭘로 보고. 자네가 준 도면의 눈금 그대로 주조하고 단조해냈네. 0.1밀리미터도 틀리지 않아.”
브론이 그을린 얼굴로 자신만만하게 콧방귀를 꼈다.
“좋습니다. 한스, 도면을 바닥에 펼쳐라. 조립을 시작한다.”
영리한 소년 조수 한스가 품 안에서 숯필로 그린 조립 도면을 꺼내 화강암 지면에 펼쳤다. 태오는 어깨의 통증 때문에 직접 무거운 쇠붙이를 들 수는 없었지만, 그의 뇌는 그 어느 때보다 명석하게 작동하고 있었다.
“라울, 그레그. 굵은 삼각대 목재들을 지면에 주향 각도 45도로 교차시켜 세우십시오. 하부 지지점에는 주드가 도마뱀 가죽 패킹을 덧대어 지반의 미세 진동이 바닥으로 전도되는 것을 막아야 합니다. 그렇지 않으면 경비대의 마력 탐사 추에 진동 주파수가 걸립니다.”
“알았다!”
대원들이 일사불란하게 움직였다. 지반 투시 안경의 우측 렌즈에 미세한 균열이 가 있어 태오는 안경을 자주 켤 수 없었지만, 이미 머릿속에 지하 500m까지의 지층 격자망이 완벽하게 렌더링되어 있었다. 사선 시추의 최적 각도는 북동쪽 18도 방향. 황산염 오염수층을 완벽히 우회하여 지하 300m 아래의 청정 대수층으로 진입하는 정밀한 궤적이었다.
몇 시간의 사투 끝에, 아지트 중앙에 거대한 목제 삼각대와 청동 도르래 기어, 그리고 밧줄에 매달린 150킬로그램짜리 흑철 해머가 위용을 드러냈다.
현대 수자원공학의 지혜와 이세계의 장인 기술이 결합한 최초의 아날로그 기계, ‘수동식 충격 시추기(Cable-tool Drilling Rig)’였다.
“이 조잡해 보이는 쇠망치 덩어리가 정말로 지하 300미터의 바위를 뚫는단 말인가?”
라울의 인부 중 하나가 반신반의하며 중얼거렸다. 태오는 말없이 대열 뒤쪽에 서 있던 거구의 노예를 바라보았다.
민머리에 울퉁불퉁한 근육, 온몸에 광산 노역으로 다져진 굳센 힘줄이 돋아난 사내. 충격 시추조의 조장을 맡은 ‘단테’였다.
“단테, 시추기의 작동 원리는 간단합니다. 도르래에 연결된 밧줄을 당겼다 놓으며, 저 무거운 흑철 해머를 바닥의 시추공 안으로 주기적으로 낙하시키는 겁니다. 힘으로만 당기는 것이 아닙니다. 해머가 떨어지는 중력 가속도와 밧줄의 탄성을 이용해 일정한 리듬을 타야 합니다. 이해하겠습니까?”
단테가 덥수룩한 턱수염을 만지며 낙천적인 미소를 지었다.
“리듬이라…… 대장, 걱정 마십시오. 해머 다루는 것만큼은 수용소에서 내가 제일이니까요.”
단테가 굵은 밧줄을 양손으로 움켜쥐었다. 그의 등 근육이 활처럼 팽팽하게 당겨졌다.
“좋습니다. 시추를 개시합니다. 한스, 소음 방지용 점토 흡음벽을 가동해라.”
한스가 시추기 주변에 황토와 짚을 섞어 만든 두꺼운 차단막을 둘러쳤다.
“흐읍—!”
단테가 기합 소리와 함께 밧줄을 강하게 잡아당겼다. 청동 도르래 기어가 정밀하게 맞물려 돌아가며 묵직한 체인 소리를 냈다. 150킬로그램의 흑철 해머가 삼각대 꼭대기까지 솟구쳤다가, 단테가 손을 놓는 순간 중력의 법칙에 따라 수직으로 내리꽂혔.
쿵—!
묵직한 타격음이 아지트 바닥을 울렸다. 화강암 지면에 단 1인치의 정밀한 균열이 가기 시작했다. 주드가 고안한 도마뱀 가죽 패킹 덕분에, 그 거대한 타격 진동은 바닥 전체로 퍼지지 않고 시추공 내부로만 집중되었다.
쿵—! 쿵—! 쿵—!
단테는 태오가 일러준 대로 일정한 주파수의 리듬을 타며 해머를 낙하시켰다. 흑철 비트가 바위를 짓이겨 가루로 만드는 둔탁한 파쇄음이 둥근 아치형 천장에 메아리쳤다. 화강암 가루가 비산하자, 한스가 물을 뿌려 먼지를 가라앉히고 시추 구멍 내부의 슬러지를 바가지로 퍼냈다.
공학적 계산이 완벽히 들어맞는 정밀한 작업이었다. 라울과 그의 인부들은 밧줄과 도르래의 마찰, 중력의 낙하 에너지만으로 단단한 화강암반에 정밀한 구멍이 뚫려 들어가는 광경을 넋을 잃고 바라보았다.
하지만 태오의 마음은 완전히 놓이지 않았다.
그는 아지트 구석의 어두운 바위 그늘을 힐끗 응시했다. 무언가 불길한 시선이 그들의 뒷덜미를 찌르고 있었다.
* * *
시추가 시작된 지 수 시간째.
아지트 내부의 열기가 고조되던 중, 태오는 안경의 미세 수기 감지 모드를 일시적으로 켰다. 우측 렌즈의 미세한 균열이 지이잉 소리를 내며 불꽃을 튀겼지만, 지하 50m 지층까지의 수기 흐름이 청색 선으로 시야에 들어왔.
그 청색 격자망 너머로, 붉은색의 이질적인 열원 하나가 포착되었다.
인간의 체온이었다.
태오는 안경을 끄고 차분하게 한스를 불렀다.
“한스, 아지트 남쪽 환기구 틈새와 바위 잔해 구석을 순찰해라. 쥐새끼 한 마리가 냄새를 맡고 기어들어 온 것 같구나.”
한스가 푸른 눈을 빛내며 고개를 끄덕였다. 그는 허리춤의 숯필과 양필지 조각을 내려두고, 다람쥐처럼 은밀한 보법으로 어둠 속으로 스며들었다.
잠시 후, 아지트 서쪽의 어두운 단층 균열 틈새에서 미세한 마찰음이 들렸다. 누군가 수용소 경비대에게 포상으로 받은 구리 동전 몇 개를 만지작거리며, 틈새 사이로 마력 손전등의 빛을 은밀히 비추고 있었다.
기름진 머리를 뒤로 넘긴 비열한 인상의 소년 노예. 배신자 ‘잭’이었다.
잭은 제3노역동에서 제이드 일행이 사라진 것을 수상히 여기고, 간수들의 눈을 피해 폐광 구역의 흔적을 쫓아 여기까지 기어들어 온 것이다. 그는 단테가 조작하는 거대한 충격 시추기와 바닥의 정밀 도면들을 보며 침을 흘리고 있었다.
‘대박이다……! 이 사실을 바르토 소장님께 밀고하면, 나는 이 지옥 같은 소금 광산에서 영구 해방되어 제국 중앙으로 갈 수 있어!’
잭이 흥분으로 숨을 헐떡이며 품 안에서 마법석을 꺼내 굴착기의 실루엣을 기록하려 했다.
그때, 한스가 잭의 등 뒤 바위 그늘에서 그림자처럼 솟구쳐 올랐다. 한스의 날카로운 손끝이 잭의 목덜미를 움켜쥐려던 찰나, 태오가 나지막이 수신호를 보냈다.
‘멈춰라, 한스.’
한스의 손이 잭의 피부 턱밑 1센티미터 앞에서 멈췄다. 한스는 의아한 눈빛으로 태오를 바라보았으나, 태오의 눈빛은 극도로 차갑고 계산적이었다.
태오는 가죽 작업대 위에 일부러 잉크가 번진 커다란 양필지 도면 한 장을 올려놓았다. 그리고 대원들에게 들릴 정도로 큰 목소리로 외쳤다.
“모두 잠시 작업을 멈추고 쉬십시오! 수맥의 정확한 좌표를 도면에 최종 기록해 두었으니, 이 도면의 수치대로만 뚫으면 사흘 뒤엔 엄청난 지하수가 수용소 동쪽 구역에서 분출될 겁니다!”
태오의 뜬금없는 외침에 라울과 브론은 어리둥절했으나, 태오가 눈짓으로 작업대 위의 도면을 가리키자 즉시 의도를 눈치채고 맞장구를 쳤다.
“오, 오냐! 이 도면이 바로 그 대수층으로 가는 마스터 키로군! 아주 소중히 보관해야겠어!”
브론이 과장되게 외치며 태오와 함께 대원들을 이끌고 아지트 뒤편의 식수 저장고 방향으로 자리를 비웠다. 아지트 중앙의 작업대 위에는 오직 그 ‘도면’만이 무방비하게 남겨졌다.
바위 틈새에 숨어 이 모든 대화를 도청한 잭의 눈에 탐욕의 광기가 서렸다.
‘수용소 동쪽 구역……! 저 도면만 있으면 내가 물을 부르는 자가 될 수 있어!’
잭은 태오 일행이 완전히 사라진 것을 확인하자마자, 쥐새끼처럼 바위 틈새를 기어 나와 작업대로 돌진했다. 그는 잉크가 채 마르지 않은 양필지 도면을 낚아채 품 안 깊숙이 찔러 넣었다.
그 도면의 하부 배관 설계에는 수격 현상(Water Hammering)을 강제로 역류시켜 고압의 산성 오염수를 시추기 본체로 폭발시키는 치명적인 설계 결함이 심어져 있다는 사실은 꿈에도 모른 채.
잭은 비열한 미소를 지으며, 자신이 엄청난 비밀을 가로챘다고 확신한 채 왔던 길을 되돌아 황급히 도망치기 시작했다.
어둠 속에서 그 모습을 묵묵히 지켜보던 한스가 태오의 곁으로 다가왔다.
“제이드 형, 왜 저 쥐새끼를 그냥 보내준 거야? 당장 잡아서 광산 벽에 묻어버릴 수도 있었는데.”
태오는 깨진 안경 프레임을 손끝으로 쓸어내리며 차갑게 미소 지었다. 그의 눈동자에 서늘한 푸른 안광이 스쳐 지나갔다.
“배신자를 억지로 처단하면, 바르토 소장은 대대적인 실종 수색을 시작해 이 아지트를 찾아낼 거다. 하지만 저 쥐새끼가 가짜 정보를 들고 제 발로 걸어가면…… 경비대 스스로 우리를 위한 자멸의 구덩이를 파게 만들 수 있지.”
태오의 철저한 인과관계 기반의 공학적 계산이었다. 적들의 탐욕을 이용해 그들의 통제 체제를 아래서부터 붕괴시키는 완벽한 역정보 함정(Bait Trap)이었다.
하지만 잭의 뒤를 쫓아 환기구 틈새를 바라보던 한스의 표정이 순식간에 굳어졌다.
“형…… 저기 봐.”
한스가 가리킨 좁은 환기구 틈새 너머, 잭이 품에 도면을 안고 포상을 받기 위해 수용소장 바르토의 집무실이 위치한 중앙 급수탑 방향으로 은밀하고 황급히 뛰어가는 뒷모습이 선명하게 포착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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