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공학과 직관의 격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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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물 파는 장인의 구역에 허락도 없이 발을 들이는 쥐새끼들이 누구냐 했더니, 제이드 너였군. 그 눈에 참 해괴한 장난감을 얹고서 어디를 기어들어 가려는 거지?”


라울의 목소리는 낮고 무거웠다. 그의 손에 들린 무쇠 곡괭이가 횃불도 없는 어둠 속에서 차가운 광택을 뿜어냈다. 수용소에서 평생을 굴착 노역으로 다져온 그의 어깨는 바위처럼 단단했고, 가죽 가운 깃 사이로 드러난 굵은 목줄기에는 거친 삶의 흔적이 고스란히 박혀 있었다.


한태오—아니, 제이드의 몸을 한 태오는 마른침을 삼켰다. 왼쪽 어깨의 채찍 상처가 다시금 비명을 지르듯 욱신거렸고, 오른쪽 눈가에는 아까 기동한 안경의 반동으로 흘러내린 피눈물이 딱딱하게 굳어 있었다. 몸 상태는 최악이었지만, 태오는 안경 너머로 라울의 신체를 스캔했다.


안경의 파란 격자망 너머로 라울의 근육 분포와 무게중심이 비춰졌다. 무력 대결은 자살행위였다. 저 곡괭이가 한 번 휘둘러지면 마르고 영양실조에 걸린 태오의 몸은 단숨에 바스러질 것이 분명했다. 게다가 사흘이라는 유예 시간 중 이미 하루 반이 날아간 시점이었다. 시간도, 체력도 없었다.


태오는 차분하게 호흡을 고르며 안경 측면의 구리 테두리를 가볍게 만졌다.


“라울 조장님. 쥐새끼처럼 기어들어 온 게 아닙니다. 진짜 물을 찾기 위해 이 지반의 최적 수맥점을 찾으러 온 겁니다.”


“진짜 물?”


라울이 코방귀를 꼈다. 그는 곡괭이 자루를 어깨에 툭 걸치며 태오의 코앞까지 다가왔다. 소금 먼지가 가득한 그의 몸에서 매캐한 땀 냄새가 풍겼다.


“제이드, 네 아비 아르센이 왜 죽었는지 벌써 잊었나 보군. 땅속을 멋대로 헤집고 다니다가 천장이 무너져 깔려 죽었지. 우물 파는 일은 말이다, 이런 해괴한 구리 장난감이나 도면 따위로 하는 게 아니야. 평생 흙을 만지며 굳어진 손끝의 감각, 바위가 숨을 쉬는 미세한 떨림을 읽는 ‘직관’으로 하는 거지.”


라울은 태오의 발밑에 그려진 기하학적 수치들과 사선 굴착 도면을 군화로 거칠게 문질러 지워버렸다.


“글자나 몇 자 읽는다고 땅을 지배할 수 있을 것 같나? 네놈의 그 사술 같은 계산은 이 가혹한 게헤나의 대지 앞에서는 아무짝에도 쓸모없는 쓰레기다.”


태오는 지워진 도면을 내려다보며 차갑게 미소 지었다. 직관. 경험주의적 감각. 물론 그것은 오랜 시간 축적된 훌륭한 데이터베이스다. 하지만 과학적 실증과 정밀한 물리 법칙이 배제된 직관은, 지반 구조가 왜곡된 게헤나의 광산에서는 치명적인 오판을 낳을 뿐이었다.


특히 이 소금 광산 지하 2층의 갱도는 상층부의 무분별한 발파와 황산염 오염수층의 압력 때문에 지반이 극도로 취약해진 상태였다. 라울의 그 ‘감’은 머지않아 그 자신을 파멸로 이끌 터였다.


“그렇다면 내기를 하시겠습니까?”


태오가 안경 너머의 푸른 안광을 빛내며 제안했다.


“내기?”


“예. 조장님의 그 위대한 직관과, 제 공학적 계산 중 어느 쪽이 진짜 물에 도달하는 길을 정확히 짚어내는지 말입니다. 제한 시간은 한 시간. 이 폐광 구역에서 어느 쪽이 먼저 ‘축축한 점토층’을 찾아내는지 겨루는 겁니다.”


라울의 눈이 가늘어졌다. 그의 자존심이 자극당한 것이 분명했다.


“좋지. 약골 제이드 놈이 광산 먼지를 좀 마시더니 눈에 뵈는 게 없어진 모양이구나. 만약 네가 지면, 그 눈에 얹은 해괴한 안경을 내 손으로 부수고 널 당장 루퍼스 조장에게 넘기겠다.”


“제가 이기면, 조장님과 조장님의 인부들은 제가 지시하는 각도와 방향대로만 곡괭이질을 하셔야 합니다. 단 1인치의 오차도 없이.”


“흐흥, 감히 장인에게 일을 가르치려 들다니. 좋다! 거래 성립이다.”


라울은 망설임 없이 무쇠 곡괭이를 고쳐 잡고 남쪽 벽면으로 성큼성큼 걸어갔다. 그는 벽면에 손을 대고 눈을 감았다. 평생을 어둠 속에서 살아온 굴착수의 본능이 깨어나는 순간이었다.


“이 남쪽 벽면이다. 여기서 미세한 수기의 떨림이 느껴져. 소금 바위 너머로 물이 흐르는 소리가 내 손끝을 타고 흐른다.”


라울이 자신만만한 표정으로 곡괭이를 높이 치켜들었다. 그리고 맹렬한 기세로 남쪽 벽면을 타격하기 시작했다.


깡! 깡! 콰앙!


거구에서 뿜어져 나오는 힘은 엄청났다. 현무암과 소금 결정이 뒤섞인 단단한 벽면이 그의 곡괭이질 한 번에 쩍쩍 갈라지며 바위 파편을 토해냈다. 속도면에서는 압도적이었다. 라울의 전통 굴착조 인부들도 그의 뒤를 따라 일사불란하게 벽을 파내려 갔다.


‘대단한 완력과 속도군. 하지만…….’


태오는 동요하지 않고 오른쪽 눈의 안경 측면 태엽을 돌렸다.


‘지반 함수율 투시(Soil Moisture Visualization) 기동.’


지이이잉.


안경 렌즈 너머로 차가운 푸른빛의 스펙트럼이 펼쳐졌다. 태오는 고개를 돌려 북동쪽 벽면을 응시했다.


그의 시야에 지층의 단면이 색상 스펙트럼으로 나뉘어 표시되기 시작했다. 황색(건조)에서 시작해 포화도가 높아질수록 짙은 청색으로 변하는 시각적 데이터. 북동쪽 벽면 지하 3미터 지점에 조용하고 일정한 농도를 유지하고 있는 청색 격자망이 보였다.


태오는 주머니에서 흙 한 움큼을 쥐고 손가락 끝으로 문질렀다.


‘점토층 응집력 분석(Clay Cohesion Analysis).’


손가락 끝의 미세한 마력 흐름이 흙 입자 사이를 통과하며 뇌리에 수치를 각인시켰다.


‘점토 배합비 35%, 모래 45%. 응집력(c)은 24kPa. 내부 마찰각은 18도. 이 지반은 사선으로 굴착해도 붕괴 위험이 없는 극히 안정적인 전단 강도를 가지고 있다.’


태오는 한스와 브론에게 조용히 손짓했다.


“북동쪽의 이 지점이다. 경사각 42도 방향으로 사선 굴착을 시작한다. 서두르지 말고 지지대를 세워가며 안전율을 유지해라.”


“알았네, 제이드!”


브론과 한스가 태오의 지시에 따라 정밀하게 계산된 각도로 굴착을 시작했다. 태오는 ‘지반 함수율 측정 공식’을 머릿속으로 끊임없이 연산하며 굴착 깊이에 따른 함수율 변화를 모니터링했다.


굴착이 시작된 지 삼십 분이 흘렀을 때, 라울의 구역에서 거친 웃음소리가 터져 나왔다.


“하하하! 보아라, 제이드! 벌써 흙이 젖어 들기 시작했다! 내 손끝에 닿는 이 축축한 감각이 느껴지느냐? 역시 내 직관이 맞았어!”


라울이 파낸 남쪽 벽면 깊숙한 곳에서 정말로 검붉은 진흙이 배어 나오기 시작했다. 라울의 인부들은 환호하며 굴착 속도를 한층 더 올렸다.


그러나 태오는 안경 너머로 그 광경을 바라보며 미간을 찌푸렸다.


그의 시야에 투사된 남쪽 벽면의 색상은 단순한 청색이 아니었다. 그것은 불길한 핏빛에 가까운 노란색과 청색이 기괴하게 뒤섞인 과포화 상태의 스펙트럼이었다.


‘아냐, 저건 청정 수맥이 흐르는 점토층이 아니다.’


태오는 안경의 수치 분석 모드를 극대로 가동했다.


‘함수율(w)이 45%를 초과했어. 이 지반의 액성한계(Liquid Limit)를 한참 넘어섰다. 게다가 이 수온과 전도율 수치는…… 황산염 오염수(黃酸鹽 汚染水)의 스며듦이다!’


라울이 파내려 가고 있는 남쪽 벽면 바로 너머에는, 이전에 감독관 고르도가 무리하게 발파 작업을 감행해 균열이 가 있던 취약 단층 지대가 존재하고 있었다. 그 균열을 타고 상층부의 강산성 황산 오염수가 지하 250m 레이어에서 미세하게 누출되어 점토층을 완전히 적시고 있었던 것이다.


흙 입자 사이의 유효 응력(Effective Stress)이 제로에 수렴하고 있었다. 흙이 고체로서의 지지력을 잃고 액체처럼 흘러내리는 ‘지반 액상화(Soil Liquefaction)’ 현상이 시작되기 직전이었다.


더 끔찍한 것은 그 상부의 천장이었다. 천장을 지탱하는 화강암 단층이 오염수의 윤활 작용과 압력으로 인해 미끄러지기 직전의 응력 한계에 도달해 있었다.


“라울 조장님! 당장 멈추십시오! 그 벽을 더 파면 안 됩니다!”


태오가 다급하게 소리치며 라울의 앞을 가로막으려 했다. 하지만 라울의 체구에 밀려 뒤로 서너 걸음 밀려나고 말았다. 왼쪽 어깨의 상처가 요동치며 식은땀이 비 오듯 흘렀다.


“하! 패배를 인정하기 싫어서 헛소리를 지르는구나, 제이드!”


라울은 태오의 경고를 비웃으며 코를 찡긋했다.


“이 흙의 냄새와 수기를 봐라! 진짜 물이 바로 코앞에 있다! 내 평생의 감각이 이 벽 너머에 생명이 있다고 말하고 있단 말이다!”


“그건 물이 아니라 황산 오염수입니다! 수분 함량이 임계치를 넘어서 전단 강도가 완전히 붕괴했어요! 천장이 무너지기 일보 직전입니다!”


태오는 피눈물이 마른 오른쪽 눈을 부릅뜨고 외쳤다. 안경의 3D 격자망 화면에서는 천장의 화강암 단층선들이 붉은색 경고등처럼 미친 듯이 깜빡이고 있었다. 붕괴 임계점까지 남은 하중 지지력은 고작 5% 미만이었다.


“시끄럽다! 장인의 직관을 모욕하지 마라!”


라울은 광기에 젖은 눈으로 외치며, 마지막 승리를 장식하듯 무쇠 곡괭이를 머리 위로 높이 치켜들었다. 그의 온 근육이 팽팽하게 긴장했다.


“멈춰—!”


태오의 처절한 비명이 어두운 갱도 내벽에 메아리쳤다.


그러나 라울의 손에 쥔 무쇠 곡괭이는 멈추지 않았다. 거대한 궤적을 그리며 떨어진 곡괭이날이, 축축하게 젖어 들던 현무암 단층의 정중앙을 강하게 내리쳤.


콰아앙—!


육중한 타격음이 폐광 구역 전체를 흔들었다.


그 순간, 공기의 흐름이 멈춘 듯한 기괴한 정적이 일었다.


그리고.


지이이이익— 콰르릉!


라울의 곡괭이가 박힌 균열을 중심으로, 천장의 거대한 화강암 단층이 무시무시한 마찰음을 내며 갈라지기 시작했다. 갱도 천장에서 주먹만 한 소금 바위들과 흙더미가 비 오듯 쏟아져 내리기 시작했다.

HẾT CHƯƠNG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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