말라붙은 오아시스의 뼈
“그레그! 사샤! 모두 내 지시를 따르십시오! 사구의 능선을 넘는 순간, 대열을 북서쪽 사면 아래로 밀어 넣어야 합니다!”
한태오의 갈라진 목소리가 거친 사막 바람에 찢겨 나갔다. 마검의 화살에 꿰뚫렸던 왼쪽 어깨는 움직일 때마다 불덩이를 얹은 듯한 극통을 뿜어댔고, 감전되어 마비된 오른팔은 아무런 감각 없이 허공에 흔들렸다. 전신의 진액이 다 빠져나간 듯한 탈수 상태였지만, 태오는 흐려지는 의식을 이성으로 붙잡으며 품 안의 컴퍼스를 움켜쥐었다.
뒤편 지평선에서는 이단 심문관 크로이츠가 이끄는 교단 정찰 기병대의 말발굽 소리가 지동(地動)이 되어 대지를 뒤흔들고 있었다. 120명의 노약자와 피난 노예들이 기병대의 기동력을 사막 한가운데서 따돌리는 것은 물리적으로 불가능했다.
하지만 태오의 머릿속에는 이미 이 지형을 이용할 물리적 계산이 끝나 있었다.
“사구의 풍상측(Windward)은 바람이 직접 부딪치며 기압이 상승하지만, 반대편인 풍하측(Leeward)은 기압이 급감하면서 강한 하강 기류와 함께 저기압 와류가 발생합니다! 한스, 압축 공기 수조의 밸브를 개방해 모래 먼지를 허공으로 쏘아 올려라!”
“예, 대장!”
조수 한스가 다급히 간이 기압 장치의 밸브를 비틀었다. 슈우우우욱—! 강력한 고압 공기가 사구 능선의 바람막이 지점에 분사되며 엄청난 양의 적색 모래가 허공으로 뿜어졌다.
동시에 능선을 타고 넘어온 북서풍이 사면 뒤편의 저기압 구역과 충돌했다. 태오가 계산한 열역학적 기압 차가 작동하는 순간이었다. 순식간에 사구 배후에서 거대한 적색 모래 장막이 소용돌이치며 솟구쳐 올랐다.
“눈을 가려라! 사각지대로 진입한다!”
사샤가 전사들을 이끌며 대열의 후방을 감쌌다. 들이닥치던 크로이츠의 정찰 기병들은 갑자기 눈앞을 가로막은 거대한 모래 와류 장막 앞에 군마의 고삐를 잡아당기며 비명을 질렀다. 단 10초의 시야 차단. 그 짧은 틈을 타 태오 일행은 사구 능선 아래 숨겨진 깊은 바위 협곡의 틈새로 신속하게 몸을 숨겼다.
뜨거운 모래바람을 뚫고 한참을 기어 들어간 끝에, 대열은 마침내 사방이 깎아지른 절벽으로 둘러싸인 기이한 분지에 도달했다.
그곳은 과거의 번영이 무색하게 말라붙은 ‘메마른 오아시스 벨트’였다.
“이곳이…… 전설 속의 풍요의 샘이었단 말인가.”
역사학자였으나 이단 누명을 쓰고 소금 광산으로 유배되었던 늙은 노예, 니콜라가 하얀 수염을 떨며 주위를 둘러보았다.
분지 전체는 하얗게 풍화된 돌덩이들과 뼈대만 남은 대추야자나무들의 잔해로 가득했다. 한때 맑은 물이 고여 있었을 호수 자리는 거북이 등껍질처럼 쩍쩍 갈라져 소금기 섞인 먼지만을 날리고 있었다. 분지 중앙에는 고대 제국의 양식으로 지어진 비의 신 신전이 반쯤 무너진 채 황량하게 솟아 있었다. 그 비주얼은 마치 거대한 사막 야수의 뼈대와도 같았다.
“모두 이곳에서 휴식을 취하십시오. 가죽 마차 휠로 짜낸 점토의 수분을 한 사람당 한 모금씩만 우선 배분합니다.”
태오는 지몬의 부축을 받아 무너진 신전의 그늘 아래 주저앉았다. 의사 렌이 다가와 벌어진 어깨 상처에 사막 약초를 덧대고 단단히 지혈 붕대를 감았다. 쓰라린 고통에 턱관절이 떨렸지만, 태오는 쉴 틈이 없었다.
“대장! 이쪽입니다! 신전 구석 바닥에 고대 우물이 있습니다!”
전통 굴착 노예 출신의 라울이 무너진 석조 아치 아래에서 흙더미를 헤치며 소리쳤. 태오는 비틀거리는 몸을 일으켜 우물가로 다가갔. 직경 3미터에 달하는 거대한 석조 우물이었다. 바닥을 내려다보았지만, 깊은 어둠 속에는 오직 마른 모래와 깨진 석판 조각들만이 뒹굴고 있을 뿐이었다.
태오는 왼손을 뻗어 오른쪽 눈의 ‘지반 투시 마력 안경’의 구리 다이얼을 돌렸다.
지르르르— 비프, 비프!
안경 가장자리의 균열이 미세하게 진동하며 우측 안구에 찌르는 듯한 통증을 유발했다. 피눈물이 다시 뺨을 타고 흘러내렸지만, 태오는 이빨을 악물고 지하 100미터까지의 지층 구조를 투시했다.
안경의 푸른 렌즈 너머로 청색의 지층 격자망이 3차원 CAD 도면처럼 가상 렌더링되기 시작했다. 지반 함수율 투시 모드를 가동하자, 우물 바닥 아래 깊은 곳에서 영롱하게 빛나는 짙은 청색의 거대 대수층이 포착되었다.
‘수맥은 살아 있어. 이 깊이와 유량이라면 이 고원 전체를 적시고도 남을 규모다. 그런데 왜 지상으로는 단 한 방울의 물도 올라오지 못하는 거지?’
태오는 투시의 초점을 우물 내벽을 따라 아래로 더 깊이 들이밀었다. 그리고 지하 15미터 지점에서 부자연스러울 정도로 매끄러운 금속성 물체를 포착했다.
그것은 우물 내벽 전체를 가로막고 있는 거대한 청동 원판이었다.
단순한 바위 붕괴나 자연적인 가뭄이 아니었다. 지하 대수층에서 솟구쳐 오르는 물줄기를 물리적으로 틀어막고 있는 거대한 인위적 차단막— 즉, 교단이 설치한 ‘수로 차단막’이었다.
“……이럴 수가.”
태오의 입에서 서늘한 실소가 흘러나왔다.
“제이드, 무엇을 본 것인가?”
옆에서 초조하게 기다리던 니콜라가 물었다. 태오는 안경을 가리키며 나지막이 속삭였다.
“니콜라, 이 오아시스는 자연적으로 말라죽은 게 아닙니다. 교단이 인위적으로 지하 수맥을 차단한 겁니다. 저 아래에 거대한 청동 수막 차단막이 설치되어 있어요.”
“뭐라구?! 그게 무슨 소린가!”
니콜라의 눈이 경악으로 크게 떠졌다. 평생 제국의 역사를 기록하며 교단이 행하는 ‘비의 축복’과 ‘가뭄의 형벌’을 신성한 영역으로 믿어왔던 늙은 학자에게, 그것은 세계관이 붕괴하는 충격이었다.
“교단이 신도들 앞에서 보여주던 비의 기적은 사기극이었습니다. 원래 번성하던 오아시스의 목줄을 이 청동 차단막으로 틀어막아 가뭄을 조장하고, 자신들에게 굴복하고 신앙세를 바치는 영지에만 이 차단막을 열어 물을 베푸는 척했던 겁니다. ‘비의 신 기적의 기술적 실체’가 바로 이겁니다.”
태오의 차가운 분석에 니콜라의 주먹이 부르르 떨렸다. 그의 지적인 자존심과 학자로서의 양심이 거대한 분노로 불타올랐다.
“이 사악한 사기꾼 놈들……! 신의 이름으로 인간의 목숨줄을 쥐고 가스라이팅을 해왔단 말인가! 기도가 아닌 청동 판때기 하나로 대륙 전체를 굶겨 죽이고 있었다니!”
“분노는 나중에 하십시오. 당장 저 장치를 해체해야 우리 모두가 살 수 있습니다. 라울, 단테! 밧줄을 준비해라. 우물 아래로 내려간다!”
태오의 지시에 따라 강철 삽날대원들이 신속하게 움직였다. 태오와 니콜라, 그리고 라울이 밧줄을 타고 우물 어둠 속으로 하강했다.
지하 15미터 바닥에 도달해 모래를 걷어내자, 마침내 찬란한 청동빛을 발하는 고대 제국의 수문 장치가 모습을 드러냈다. 장치 표면에는 교단의 성스러운 문양이 조잡하게 덧칠해져 있었고, 중앙에는 직경 50센티미터에 달하는 거대한 청동 밸브가 단단히 잠겨 있었다.
라울이 이빨을 갈며 아버지가 물려준 무쇠 곡괭이를 치켜들었다.
“비켜 서십시오, 대장! 이 사기꾼 놈들의 철판때기를 단숨에 깨부숴 버리겠습니다!”
라울이 온 힘을 다해 곡괭이를 청동 밸브 중앙에 내리쳤다.
깡—!
불꽃이 어두운 우물 안을 번쩍이며 튀었지만, 청동 밸브는 미세한 스크래치조차 나지 않았다. 오히려 곡괭이날이 뭉개지며 라울의 두 팔이 저릿하게 떨렸다.
“이, 이 빌어먹을 쇳덩어리가 꿈쩍도 안 합니다! 이빨도 안 들어갑니다!”
“멈추십시오, 라울. 힘으로 풀 수 있는 물건이 아닙니다.”
태오는 안경의 3D 렌더링 화면을 통해 밸브 내부의 기계적 구조를 정밀하게 해부하고 있었다.
“이 잠금장치는 수압의 비대칭성을 이용해 빗장을 고정하는 비대칭 내압 잠금 구조입니다. 저 너머 대수층의 고압 지하수가 이 청동 판을 밀어붙이는 정수압(Hydrostatic Pressure) 자체가 이 빗장을 단단히 물고 있는 겁니다. 힘으로 잡아당기려 할수록 내부의 압축 스프링이 역방향으로 더 강하게 저항하도록 설계되어 있습니다.”
“그럼 영영 열 수 없단 말인가?”
니콜라가 절망적인 목소리로 물었다. 그때, 니콜라의 시선이 청동 장치를 둘러싸고 있는 석조 아치의 가장자리에 닿았다. 그곳에는 흙먼지에 가려진 미세한 고대 명문들이 새겨져 있었다.
“제이드, 이쪽을 보게! 고대 제국의 치수 사법 공식이 음각되어 있네. ‘대기의 숨결과 대지의 무게가 평형을 이룰 때, 닫힌 문이 스스로 열릴 것이다’라고 적혀 있군!”
태오는 니콜라가 읽어낸 공식을 현대 물리학의 언어로 빠르게 번역했다.
“대기의 숨결은 대기압, 대지의 무게는 수맥의 정수압입니다. 즉, 차단막 내부와 외부의 압력 차이(Delta P)를 제로로 만들어야 내부의 압축 스프링이 힘을 잃고 잠금이 풀린다는 뜻입니다.”
“하지만 저 너머의 고압을 어떻게 맞춘단 말입니까? 우리에겐 펌프도 없는데!”
라울이 답답한 듯 소리쳤다. 태오는 차가운 이성으로 미소를 지었다.
“펌프는 필요 없습니다. 우리에겐 아까 사구 지대에서 점토를 짜서 얻은 마중물이 있습니다. ‘역류 차단 사이펀 법칙’을 역대입하는 겁니다.”
태오는 한스에게 지시해 마차에 보관 중이던 가죽 주머니의 물을 우물 아래로 내리게 했다. 그리고 밸브 상부에 위치한 미세한 공기 흡입 구멍(Air Vent)과 예비 수실(Water Chamber)의 위치를 안경으로 특정했다.
“한스, 깔때기를 대고 물을 부어라! 관로 내부를 물로 가득 채워 공기를 완벽히 배출해야 한다. U자형 관로의 원리를 이용해 대기압이 예비 수실의 가죽 막을 밀어붙이게 만들면, 저 너머 대수층의 수압과 완벽한 평형 상태를 이룰 수 있습니다.”
졸졸졸—.
차가운 마중물이 고대 청동 장치의 예비 챔버 속으로 흘러 들어갔다. 태오는 왼손으로 압력 조율 나사를 미세하게 조절하며, 수압 측정기의 지침이 서서히 영점(Zero)을 향해 내려가는 것을 감시했다.
기압과 수압의 저울이 완벽한 수평을 이루는 순간.
스르륵…… 탁!
수십 톤의 고압 수압에 물려 꼼짝도 하지 않던 거대한 청동 빗장 핀들이 내부의 압력 평형에 의해 스스로 뒤로 미끄러지며 풀리는 소리가 어두운 우물 벽면을 타고 맑게 울려 퍼졌다.
“풀렸다! 진짜로 빗장이 풀렸어!”
라울이 경탄하며 소리쳤다. 니콜라 역시 공학이 보여주는 이성적인 역학 제어 앞에 온몸에 소름이 돋는 듯한 전율을 느꼈다.
태오는 미소를 지으며 해방된 청동 메인 밸브를 잡고 시계 반대 방향으로 천천히 돌리기 시작했다. 수천 년 동안 닫혀 있던 대수층의 문이 마침내 열리려 하고 있었다.
바로 그 순간이었다.
청동 밸브 표면에 깊게 음각되어 있던 기괴한 고대 마법 문양들이 갑자기 불길한 핏빛으로 붉게 맥동하기 시작했다.
우우웅————!
“……앗!”
우물 지하 전체를 진동시키는 불길한 마력 파동과 함께, 붉은 경보 마력이 하늘을 향해 기둥처럼 뿜어 오르기 시작했다. 침입자를 감지한 교단의 비상 경보 트랩이 작동한 것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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