붉은 무덤의 행진
덜컹거리는 마차의 진동이 어깨의 상처를 사정없이 후벼 팠다.
"윽……!"
한태오는 비명 섞인 신음을 삼키며 가쁜 숨을 몰아쉬었다. 왼쪽 어깨에 박혔던 마법 화살의 관통상은 카일 남작의 밀사 펠릭스가 급히 찢어 감싼 천 쪼가리 너머로 여전히 붉은 피를 토해내고 있었다. 마력 접지의 역류로 감전된 오른팔은 감각이 완전히 죽어 허공에 무력하게 덜렁거렸다. 몸을 가누는 것조차 기적에 가까운 상태였다.
"오빠! 제발 움직이지 마. 피가 아직 안 멈췄어……!"
눈이 먼 여동생 리나가 울먹이며 태오의 피 묻은 왼손을 꼭 쥐었다. 앞이 보이지 않는 리나였지만, 그녀의 초감각적 청각은 오빠의 가쁜 호흡과 옷자락이 피로 젖어 드는 미세한 소리까지 전부 읽어내고 있었다. 태오는 억지로 입꼬리를 올리며 리나의 머리를 쓸어내렸다.
"괜찮아, 리나. 거의 다 왔어. 게헤나를 탈출했으니 이제……."
말을 끝맺기도 전에 마차가 거칠게 요동치며 급정거했다. 마차 적재함 뒤편에 빽빽하게 들어차 있던 탈출 노예들의 신음이 사방에서 터져 나왔다. 펠릭스가 적재함 가죽 가림막을 젖히며 새하얗게 질린 얼굴로 속삭였다.
"제이드, 큰일났소. 말이 더는 못 버티오. 게다가…… 우리가 들어선 곳이 하필이면 그곳이오."
태오는 지몬의 부축을 받아 비틀거리며 마차 밖으로 기어 나왔다. 마차 문을 열자마자 숨을 턱 막히게 하는 살인적인 열기가 전신을 덮쳤.
눈앞에 펼쳐진 것은 끝이 보이지 않는 붉은 모래의 바다였다. 낮 기온이 섭씨 50도에 육박하는 극한의 죽음의 지대, '붉은 모래 사구 지대'였다. 대지 전체가 아지랑이로 이글거리며 불타오르고 있었고, 발을 디딜 때마다 뜨거운 유동 사구가 발목을 덥석 잡고 모래 속으로 끌어내리는 기괴한 감각이 전해졌다. 수많은 탈출 노예들의 뼈가 묻혀 있어 '붉은 무덤'이라 불리는 광활한 사막의 한가운데였다.
"대장……."
강철 삽날대장 그레그가 갈라진 목소리로 태오에게 다가왔다. 그의 입술은 이미 하얗게 터져 있었고, 눈빛은 초점을 잃어가고 있었다.
"식수가…… 식수 가죽 주머니가 완전히 말라붙었습니다. 아이들과 노약자들이 벌써 열사병으로 쓰러지기 시작했습니다. 이대로 몇 시간만 더 지체되면, 120명 모두 국경을 넘기도 전에 이 모래밭에 묻힐 겁니다."
수용소 급수탑을 폭파하고 국경을 돌파하느라 비상 식수를 챙길 여유가 전혀 없었던 대가였다. 120명의 피난 대열 전체가 집단 탈수사 위기에 직면해 있었다.
‘침착해라, 한태오. 여기서 무너지면 끝이다.’
태오는 자신을 채찍질하며 흐려지는 정신을 고쳐잡았다. 무력은 제로였고 몸은 망가졌지만, 그에게는 현대 수자원공학의 지식과 대지의 눈이 있었다.
태오는 왼손을 뻗어 오른쪽 눈에 장착된 '지반 투시 마력 안경'의 측면 구리 다이얼을 돌렸다.
지르르르— 비프, 비프!
우측 렌즈 내부에서 가혹한 경고음이 울렸다. 국경 돌파 시 가해진 충격으로 렌즈의 균열율은 이미 45%를 넘어선 상태였다. 렌즈 가장자리를 따라 파란 마력 스파크가 튀며 우측 안구에 유리 조각으로 찌르는 듯한 극통이 밀려왔다. 피눈물이 뺨을 타고 흘러내렸지만, 태오는 안경의 가동을 멈추지 않았다.
"미세 수기 공명 감각(Fine Moisture Resonance Sensation)…… 가동."
손끝을 뜨거운 모래바닥에 대고 미세한 수분 분자의 흐름과 정신력을 동조시켰다. 하지만 사방에서 이글거리는 고열의 열기가 수기 신호를 왜곡시켰고, 바람에 끊임없이 흘러내리는 모래의 유동성 때문에 시각 격자망의 투시 각도가 사정없이 흔들렸다. 화면이 노란 노이즈로 가득 차며 수맥의 정확한 깊이를 렌더링하는 데 실패했다.
"안 돼…… 모래의 굴절율이 너무 높아 투시가 빗나간다……!"
한스가 절망적인 목소리로 태오를 바라보았다. 안경의 힘만으로는 무작정 깊은 모래 구덩이를 파낼 수 없었다. 모래는 파내는 족족 흘러내려 구멍을 메워버릴 것이 뻔했다.
태오는 이빨을 악물었다. 감각이 왜곡된다면, 남은 것은 철저한 물리적 계산뿐이었다.
"한스, 내 가죽 주머니에서 컴퍼스를 꺼내라!"
한스가 급히 태오의 품에서 낡은 구리제 '정밀 지질 컴퍼스'를 꺼내 태오의 왼손에 쥐여주었다. 태오는 오른팔의 마비를 무시하고 왼손만으로 컴퍼스를 모래 지면에 수평으로 얹었다.
"그레그! 사구의 경사면 경사각을 측정해라! 주상절리의 발달 방향과 바람의 주향을 읽어야 한다!"
태오는 눈앞의 유동 사구의 경사면 각도를 컴퍼스로 측정했다. 사막의 모래 언덕이 무너지지 않고 버틸 수 있는 한계 각도, 즉 '휴식각(Angle of Repose)'을 역산하려는 목적이었다.
"휴식각 32도…… 풍상측 사면 경사 15도, 풍하측 사면 경사 34도!"
태오의 뇌리가 현대 토질역학 공식으로 빠르게 회전하기 시작했다.
모래 사막에서 수직 투시가 굴절된다면, 사구의 사면 경사각을 계산해 중력에 의해 물이 흘러들어 고일 수밖에 없는 불투수성 점토층의 종착지, 즉 '요형(凹) 지형'의 최저점을 기하학적으로 역산해내면 되었다.
"지반 함수율 측정 공식(Soil Moisture Measurement Formula) 대입…… 수평 거리 25미터, 사구 골짜기 하부 4.5미터 지점이다!"
태오가 푸른 안광을 빛내며 사구의 움푹 팬 골짜기 한가운데를 왼손 손가락으로 정확히 가리켰.
"그레그! 강철 삽날대원들을 저곳으로 정렬시켜라! 수직으로 파면 모래가 무너지니, 사각 방어벽을 세우며 사선 35도 각도로 경사지게 파내려 가야 한다! 4.5미터 아래에 불투수성 점토층이 잠들어 있다!"
"알겠습니다, 대장! 강철 삽날대, 움직여라!"
그레그의 호령과 함께 120명의 노예 중 가장 건장한 굴착수들이 삽과 곡괭이를 들고 사구 골짜기로 뛰어들었다. 그들은 태오가 지시한 사선 35도 각도를 철저히 유지하며, 모래가 흘러내리지 않도록 가죽 마차 판자를 양옆에 덧대어 방어벽을 세우며 파 내려갔다.
사막의 살인적인 열기 속에서 대원들의 몸은 순식간에 땀으로 범벅이 되었고, 손바닥의 상처가 다시 터져 피가 흘렀지만 아무도 멈추지 않았다. 오직 태오의 계산만을 믿는 맹목적인 신뢰가 그들의 육체를 움직이고 있었다.
"대장! 3미터 돌파! 아직 모래만 나옵니다!"
단테가 땀을 닦으며 외쳤다. 정적들의 의심 어린 눈초리가 대열 뒤편에서 느껴졌지만, 태오는 흔들리지 않고 눈금을 응시했다.
"계산은 틀리지 않았다. 1.5미터 더 파라!"
정확히 15분 뒤, 굴착 구덩이 깊은 곳에서 그레그의 경악 섞인 외침이 터져 나왔다.
"바닥이…… 바닥이 단단해집니다! 붉은 진흙입니다! 젖은 점토층을 발견했습니다!"
군중들이 일제히 술렁였다. 그레그가 구덩이 바닥에서 한 움큼 끄집어 올린 흙은, 수분을 가득 머금어 축축하고 차가운 암적색의 불투수성 점토였다. 모래 사막 아래 깊숙이 숨겨진 수맥의 거울이 마침내 공학적 계산 앞에 모습을 드러낸 것이다.
"물이다…… 진짜 축축한 진흙이야!"
태오는 비틀거리며 흙더미 앞으로 다가갔다. 비록 마실 수 있는 깨끗한 샘물이 콸콸 솟구치는 우물은 아니었지만, 이 가혹한 50도의 사막 한가운데서 120명의 목숨을 일시적으로 살려내기에는 충분한 수분이었다.
"한스, 점토를 깨끗한 양모 천에 싸서 가죽 마차 휠 사이에 끼워라! 압착해서 흘러나오는 물을 가죽 주머니에 받아라! 1차로 흙탕물이 나오면 활성탄 필터에 통과시켜 정수한다!"
태오의 지시에 따라 대원들이 일사불란하게 움직였다. 축축한 붉은 점토가 양모 천에 싸여 마차 바퀴의 강력한 회전 압력으로 짜이자, 시원하고 맑은 물방울들이 뚝뚝 떨어져 가죽 주머니를 채우기 시작했다. 목말라 죽어가던 노예들과 아샤족 전사들이 정수된 물을 한 모금씩 나누어 마시며 갈증을 해소하자, 죽어가던 대열에 기적 같은 생기가 다시 돌기 시작했다.
"하아…… 하아……."
극도의 정신력 소모로 인해 태오는 시야가 흐려지며 바닥에 주저앉았다. 우측 안구는 피눈물로 범벅이 되어 있었고, 머리는 깨질 듯이 아파왔다. 하지만 사람들을 살려냈다는 안도감이 가슴을 채웠다.
그때였다.
옆에서 물을 배분하던 리나의 귀가 미세하게 쫑긋거렸다. 그녀의 얼굴이 순식간에 공포로 새하얗게 질렸다.
"……오빠."
리나가 태오의 옷자락을 다급하게 잡아당겼다.
"말발굽 소리야. 아주 많아…… 사막 바람 소리에 묻혀서 들려오고 있어. 서쪽 지평선 너머에서 오고 있어!"
태오는 심장이 덜컥 내려앉는 것을 느끼며 비틀거리며 일어섰다. 균열이 간 지반 투시 안경을 다시 가동해 멀리 지평선을 응시했다.
이글거리는 사막의 열지 가랑이 너머, 붉은 사구의 능선 끝자락에서 대규모 군마가 일으키는 거대한 모래 먼지 폭풍이 하늘을 뒤덮으며 이쪽을 향해 무서운 속도로 쇄도하고 있었다. 이단 심문관 크로이츠가 보낸 교단 정찰대의 전위 기병들이 이들의 발자국을 추적해 사정거리 안으로 들이닥치기 직전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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