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장벽을 부수는 물줄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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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달려라! 지금이다! 국경을 향해 달려라!”


지몬의 포효가 대홍수의 굉음을 뚫고 울려 퍼지자, 120명의 노예 대열이 굳게 닫힌 최종 국경 장벽을 향해 소금 먼지를 일으키며 질주하기 시작했다. 등 뒤에서는 수용소 중앙 급수탑이 무너지며 토해낸 거대한 흙탕물이 온 광장을 삼키고 있었고, 그 혼란을 틈타 쇠사슬을 끊어낸 노예들은 오직 앞만을 바라보며 달렸다.


하지만 그들의 희망은 게헤나 사막의 마지막 경계선인 거대한 협곡 장벽 앞에서 무참히 가로막혔다.


게헤나 국경 장벽 초소.


양옆으로 깎아지른 듯한 붉은 바위 절벽 사이에 가로놓인 거대한 강철 성문은 굳게 닫혀 있었다. 성문 위, 웅장한 석조 성벽 위에는 은빛 철갑옷을 번뜩이는 군세가 삼엄하게 대기하고 있었다. 그 중심에 선 사내, 교단 소속의 철혈의 기사단장 가르시아가 거대한 대검 ‘단죄의 이빨’을 성벽 바닥에 쿵 내려찍었다.


“어리석은 도망자 노예들아, 멈춰라!”


가르시아의 목소리가 협곡 전체를 뒤흔들었다. 그의 몸에서 뿜어져 나오는 백색의 신성 투기가 성벽 위에서 파도처럼 출렁였다. 그 거대한 무력의 압박감 앞에, 질주하던 노예들이 비틀거리며 멈춰 섰다. 가르시아의 눈빛에는 자비라곤 찾아볼 수 없었다.


“이곳은 제국의 경계이자 신성한 교단의 영토다. 무기를 버리고 무릎을 꿇어라. 투항한다면 채찍형으로 끝날 것이나, 한 걸음이라도 더 내딛는다면 이 성벽 위에서 단죄의 화살이 너희의 숨통을 모두 끊어놓을 것이다.”


가르시아의 말이 끝나기 무섭게, 그의 곁에 서 있던 정예 저격수 레오가 차가운 안광을 빛내며 마력 활을 들어 올렸다. 성벽을 가득 메운 성기사들과 저격수들이 일제히 활시위를 당기자, 붉은 사막의 태양광 아래서 푸른 마력의 빛이 불길하게 일렁였다.


“제이드, 정면 돌파는 불가능해. 저자의 투기는 우리 전사들이 감당할 수준이 아니야.”


대열의 선두에 서 있던 사샤가 이빨을 악물며 태오의 곁으로 다가왔다. 그녀의 검은 머리칼이 사막의 건조한 바람에 휘날렸다. 사샤는 품 안에서 날카로운 사막 단검 두 자루를 꺼내 쥐며 가르시아를 똑바로 응시했다.


“내가 저자의 시선을 끌 테니, 그사이에 퇴로를 찾아봐.”


사샤는 대답을 듣기도 전에 바람처럼 몸을 날렸다. 아샤족 전승의 ‘바람 걸음’ 기법을 극한으로 끌어올린 그녀의 신형이 붉은 사구 위를 가볍게 스치며 성문 앞으로 쇄도했다.


“가르시아! 사막의 전사가 일대일 결투를 청한다!”


사샤가 허공으로 도약하며 가르시아의 목덜미를 향해 단검을 내리쳤다. 그러나 가르시아는 눈 하나 깜짝하지 않았다. 그가 굳건히 쥐고 있던 대검을 가볍게 휘두르자, 은빛의 신성 투기가 거대한 장벽처럼 허공에 전개되었다.


콰아앙—!


“윽!”


압도적인 신성 마력의 충격파가 사샤의 단검을 튕겨내고 그녀의 전신을 덮쳤다. 물리적인 타격을 초월한 신성 투기의 압박에 사샤는 가슴을 움켜쥐며 뒤로 밀려났다. 그녀의 검붉은 로브가 찢어지며 경미한 마력 피폭을 입은 듯 뺨에 붉은 반점이 돋아났다. 사샤는 비틀거리며 태오의 옆으로 낙하해 신음했다.


“하아…… 하아…… 정면으로는…… 0.1초도 버티기 힘들어.”


“사샤, 물러서십시오. 무력으로는 저 성문을 열 수 없습니다.”


태오가 피 흘리는 왼쪽 어깨를 움켜쥐며 차갑게 말했다. 그의 목소리는 지독한 통증 속에서도 소름 끼칠 정도로 이성적이었다. 수용소 급수탑 폭사 당시의 충격으로 그의 왼쪽 어깨 채찍 상처는 완전히 벌어져 붉은 피가 남루한 양가죽 옷을 적시고 있었고, 마력 접지의 역류로 감전된 오른팔은 여전히 감각을 잃은 채 허공에 무력하게 늘어져 있었다. 신체 능력은 최악이었고, 무력은 제로였다.


설상가상으로 성벽 위에서 태오의 움직임을 포착한 저격수 레오가 마법 활을 조준했다.


“이단 기술자 제이드, 네놈의 사술도 여기까지다.”


피잉—!


음속을 돌파하는 속도로 날아온 마법 화살이 태오의 왼쪽 어깨를 그대로 관통했다.


“윽……!”


태오는 짧은 비명과 함께 바닥에 한쪽 무릎을 꿇었다. 이미 찢어져 있던 어깨에 마법 화살의 관통상까지 더해지자, 불길로 지지는 듯한 극통이 전신을 지배했다. 상처 부위에서 뜨거운 피가 울컥 솟구쳐 나왔다. 의식이 흐려지려 했지만, 태오는 왼손을 뻗어 한쪽 눈에 착용하고 있던 지반 투시 마력 안경을 굳게 고정했다.


지르르르— 비프, 비프, 비프.


안경의 우측 렌즈 내부에서 경고 비프음이 요란하게 울렸다. 수밀 압력 측정과 제단 폭발의 과부하로 인해 렌즈의 균열율은 이미 45%를 넘어서 있었다. 시야의 절반이 노란 노이즈로 깜빡였지만, 태오는 안경의 3D 지층 구조화 렌더링 모드를 끄지 않았다. 아니, 오히려 출력을 최대로 끌어올렸다.


‘보여라…… 땅속의 진실이여.’


태오의 한쪽 눈 고글 너머로 서늘하고 강렬한 푸른 안광이 뿜어져 나왔다. 그의 머릿속에 성문 하부와 장벽 전체의 3차원 입체 격자망이 렌더링되기 시작했다.


성벽 바닥 아래 5미터 지점.


그곳에는 게헤나의 중앙 저수조와 국경 초소를 연결하는 직경 1.5미터의 고압 급수 파이프 라인이 혈맥처럼 흐르고 있었다. 현재 수용소 내부의 급수탑 자폭 여파로 인해, 상류의 압력이 비정상적으로 역류하며 관로 내부의 내압이 가쁘게 상승하고 있었다.


[현재 관로 내압 28기압. 유속 5.2m/s. 수격 유발 임계점 근접.]


태오의 입꼬리가 비틀려 올라갔다. 피투성이가 된 얼굴로 그가 차갑게 웃었다.


“가장 단단한 강철 성문이라도…… 빗장이 걸린 힌지(Hinge) 부분에 순간적인 충격량(Impulse)을 집중시키면 모멘트 균형이 깨져 박살 날 수밖에 없습니다.”


태오는 고개를 돌려 뒤에서 자신을 비호하고 있던 그레그와 단테를 바라보았다.


“그레그, 단테! 나를 엄호하십시오. 저 성문 바로 아래에 있는 황동 급수 제어실로 가야 합니다. 저 밸브를 조작해야 성문을 열 수 있습니다!”


“대장! 저들의 화살 세례를 뚫는 것은 자살행위입니다!”


그레그가 경악하며 소리쳤다. 성벽 위에서는 레오의 지시에 따라 수십 발의 마법 화살이 비 오듯 쏟아지고 있었다.


“나를 믿으십시오! 내 계산은 단 한 번도 틀린 적이 없습니다!”


태오의 확신에 찬 눈빛을 본 단테가 흑철 해머를 고쳐 잡았다. 그의 양손바닥은 지난 시추 작업의 반동으로 가죽이 찢어져 피가 흐르고 있었지만, 그는 망설임 없이 태오의 앞을 막아섰.


“대장, 가자! 내 몸이 부서져도 대장을 저 방으로 들여보내 주겠어!”


단테와 그레그가 부서진 철판과 굴착용 삽을 방패 삼아 태오의 좌우를 엄호하며 전진하기 시작했다.


깡! 깡! 피잉! 콰앙!


성벽 위에서 쏟아지는 마법 화살들이 단테의 철판 방패에 부딪혀 폭발했다. 단테의 팔뚝에 화살 파편이 스쳐 붉은 피가 튀었고, 그레그의 허벅지에도 가벼운 자상이 생겼지만 두 사람은 이빨을 악물고 한 걸음씩 나아갔다. 태오는 피를 흘리며 그들의 비호 아래 마침내 성문 하부의 좁은 석조 밸브실 입구로 몸을 던졌다.


밸브실 내부에는 거대한 황동 제어 밸브와 수격 방출용 바이패스 관로가 복잡하게 얽혀 있었다.


태오는 마비된 오른팔을 쓸 수 없었기에, 왼손으로 황동 실린더 내압계를 가리켰다. 바늘이 32기압을 돌파하며 팽팽하게 진동하고 있었다. 관로 내부를 흐르는 유체의 질량과 속도가 최고조에 달한 순간이었다.


“그레그! 저 황동 차단 레버를 잡으십시오! 단테, 너도 같이 힘을 보태라!”


두 사내가 거대한 황동 레버를 양손으로 움켜쥐었다. 그들의 손끝이 수압의 무시무시한 진동으로 인해 덜덜 떨렸다.


“내 신호에 맞춰 단 0.1초 만에 저 레버를 끝까지 젖혀 밸브를 완벽히 차단해야 합니다! 준비하십시오!”


태오는 안경의 렌더링 화면을 응시했다. 수류의 압력 파동이 배관의 힌지 연결부와 일직선으로 정렬되는 순간. 수격 현상(Water Hammering)의 충격파를 성문의 빗장 힌지에 집중시킬 수 있는 오차 없는 기하학적 타이밍.


[내압 38기압 돌파. 유속 6.0m/s. 지금.]


“지금이다! 당겨라!!!”


태오의 비장한 외침과 동시에, 그레그와 단테가 온 체중을 실어 황동 레버를 아래로 급격히 젖혔.


철컥—!


흐르던 거대한 수류가 단숨에 차단되었다.


그 순간, 협곡 전체를 감싸고 있던 공기가 기이하게 정지하는 듯한 정적이 찾아왔다.


그리고 1초 뒤.


구구구구구구구구—!


대지 깊은 곳에서부터 거대한 대포가 발사되는 듯한 웅장한 폭음이 국경 장벽 전체를 뒤흔들었다. 흐름을 멈춘 수만 톤의 물줄기가 가진 운동 에너지가 순간적인 압력 상승으로 변환되며 배관 내벽을 물리적으로 강타했다.


쾅—!!!


수격 현상의 초고압 충격파가 태오가 설계한 바이패스 노즐을 타고 성문의 거대한 무쇠 빗장 힌지에 정확히 집중되었다. 인장 강도를 초과한 성문의 강철 빗장이 굉음과 함께 단숨에 찢겨 나갔다.


“크, 크아아악!”


성문 뒤편에서 방패 대열을 유지하고 있던 가르시아의 중장갑 보병들은 문이 찢어발겨지며 터져 나온 수십 기압의 물줄기에 직격당해 낙엽처럼 쓸려나갔다. 거대한 강철 성문이 물리적으로 산산조각 나며 파편이 사방으로 비산했고, 성벽 위에서 활을 당기던 저격수들도 장벽의 거대한 진동에 중심을 잃고 비명을 지르며 절벽 아래로 추락했다.


“이, 이게 무슨 신성모독적인 사술이냐……!”


가르시아 기사단장 역시 대검을 땅에 박으며 버텼으나, 발밑에서 폭출하는 수압 대포의 전단력 앞에 갑옷이 찌그러지며 협곡 바닥으로 휩쓸려 내려갔다. 단 한 번의 공학적 수격 대포가 교단이 자랑하던 철통같은 국경 방어선을 순식간에 물바다로 만들며 완벽히 붕괴시킨 것이다.


“성문이 열렸다! 탈출해라!”


지몬의 외침과 함께 120명의 노예 대열이 무너진 성문 틈새를 통과해 국경 장벽을 넘어 질주하기 시작했다. 마침내 게헤나 사막의 지옥 같은 소금 감옥에서 완전히 벗어나는 역사적인 순간이었다.


장벽 너머, 풀잎 냄새가 미세하게 풍겨오는 국경 지대 도로변.


사막 도적단의 수송 마차로 교묘하게 위장된 거대한 호송 마차 여러 대가 대기하고 있었다. 마차 앞자리에서 채찍을 쥐고 있던 날렵한 체구의 사내, 카일 남작의 정예 밀사 펠릭스가 마차에서 뛰어내리며 태오 일행을 맞이했다.


“제이드! 남작님께서 보내신 호송 마차요! 어서 타시오!”


태오는 피를 너무 흘려 의식이 가물거리는 상태였지만, 한스와 지몬의 부축을 받으며 마차 안으로 몸을 실었다. 뒤따라온 120명의 노예들이 수송 마차 내부로 일사불란하게 탑승했다.


“출발하시오, 펠릭스! 교단의 추격대가 오기 전에 벗어나야 합니다!”


태오가 흐려지는 정신을 다잡으며 나지막이 속삭였다.


펠릭스가 마차 채찍을 강하게 내리쳤다.


“이럇! 카르낙을 향해 달린다!”


거대한 마차 바퀴가 붉은 사막의 모래를 뒤로 밀어내며 맹렬한 속도로 달리기 시작했다. 태오는 마차 이중 창틀 너머로 서서히 멀어지는 게헤나 국경 장벽의 불타는 폐허를 바라보며, 마침내 자유를 찾았다는 깊은 안도감 속에서 고대 설계 원판을 가슴에 품은 채 조용히 눈을 감았다.


지옥 같은 수용소의 탈출기는 끝났다. 이제 그들 앞에는 물이 완전히 말라붙은 폐허이자, 새로운 문명을 건설해야 할 약속의 땅, 카르낙 영지가 잠들어 있었다.

HẾT CHƯƠNG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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