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지의 예언과 구원자
머리 위의 거대한 소금 바위들이 쩍쩍 갈라지는 불길한 소리가 어두운 동굴 내벽을 타고 요란하게 울려 퍼졌다.
“대장! 천장이 완전히 내려앉습니다! 서둘러야 합니다!”
한스의 비명 섞인 외침이 가죽 방독 마스크의 필터를 통과하며 둔탁하게 울렸다. 천장 틈새로 쏟아지는 화강암 파편과 소금 결정들이 태오의 등 가죽을 사정없이 때렸다. 왼쪽 어깨의 채찍 상처가 다시금 찢어지는 듯한 극통을 토해냈지만, 태오는 이빨이 부러져라 악물며 정신을 집중했다.
지금 물러서면 안 된다. 이 동굴이 영구히 무너지기 전에 ‘마력 석영 결정’을 충분히 확보하지 못한다면, 지반 투시 마력 안경의 업그레이드도, 고압을 버텨낼 양수 펌프의 제작도 모두 수포로 돌아간다.
“브론! 망치질은 끝났습니다! 더 이상 타격하지 마십시오! 진동이 붕괴를 가속화합니다!”
태오는 피눈물이 고여 흐릿해진 오른쪽 눈으로 안경 너머의 지층 3D 격자망을 응시했다. 수압 진동과 기압 제어로 인해 안경 우측 렌즈와 구리 프레임 연결부에 발생한 미세한 균열이 지르르하는 소름 끼치는 소음을 내며 더 넓어지고 있었다. 가용 에너지가 한계에 달했다는 경고 수치가 붉은색으로 깜빡였다.
“한스! 바닥에 떨어진 파편들을 주워라! 맑고 푸른빛을 내뿜는 것들만 골라 담아!”
“예, 예! 대장!”
한스가 가죽 주머니를 벌린 채 바닥을 기었다. 1차 붕괴와 환기 타격 과정에서 천장 광맥으로부터 떨어져 나온 영롱한 마력 석영 결정들이 소금 먼지 속에서 푸르게 빛나고 있었다. 한스는 손끝이 날카로운 결정에 베여 피가 흐르는 것도 잊은 채, 바닥에 떨어진 마석들을 닥치는 대로 쓸어 담았다.
쿠구구구궁—!
머리 위에서 집채만 한 화강암 슬래브가 기괴한 마찰음을 내며 수 밀리미터 아래로 내려앉았다. 동굴 내벽을 지탱하던 소금 기둥들이 수십 톤의 하중을 버티지 못하고 유리가 깨지듯 산산조각 나며 튀어 올랐다.
“제이드! 이제 한계다! 이 이상 머물면 뼈도 못 추리고 묻힌다!”
가스 중독 후유증으로 몸을 제대로 가누지 못하던 브론이 태오의 덜덜 떨리는 어깨를 억센 손으로 움켜쥐며 소리쳤다. 태오는 한스의 가죽 주머니를 확인했다. 이미 확보한 세 개에 더해, 새로 수습한 결정들이 주머니 속에서 짤랑거리며 묵직한 존재감을 드러내고 있었다. 총 여덟 개. 안경의 렌즈를 교체하고 펌프의 핵심 은 합금 밸브를 고정하기에 충분한 수량이었다.
“탈출합니다! 환기 구멍 방향으로 기어가십시오!”
태오의 지시와 동시에 세 사람은 바닥을 기어 방금 전 뚫어낸 좁은 주상절리 균열 구멍을 향해 몸을 던졌다. 차갑고 신선한 사막의 밤바람이 구멍을 타고 휘몰아치며 가스로 가득했던 허파를 정화해주었지만, 그 바람의 이면에는 지각 붕괴의 무시무시한 진동이 함께 실려 있었다.
콰아아아앙—!
마지막으로 한스의 발목이 균열 구멍을 빠져나오는 순간, 등 뒤에서 거대한 폭음이 대지를 흔들었다. 소금 결정 지옥 동굴의 천장이 완전히 주저앉으며, 수천 년 동안 잠들어 있던 마력 석영 광맥이 수만 톤의 화강암과 소금 바위 더미 속에 영구히 파묻혔다.
“콜록! 쿨럭! 하아…… 하아……”
세 사람은 차가운 사막의 모래바닥에 엎드린 채 격렬한 기침을 토해냈다. 방독 마스크의 참나무 활성탄 필터는 이미 포화 한계를 넘어 매운 유황 가스 탄내가 진동하고 있었다. 태오는 얼굴을 조이고 있던 가죽 마스크를 벗어 던졌다. 차가운 사막 밤공기가 땀과 피로 얼룩진 뺨을 식혀주었다.
“해냈군…… 진짜로 해냈어.”
브론이 거구를 모래에 눕힌 채 가쁜 숨을 몰아쉬며 가죽 주머니를 들어 올렸다. 주머니 틈새로 흘러나오는 영롱한 푸른 안광이 세 사람의 지친 얼굴을 비추었다. 가스 중독과 질식의 공포를 이겨내고 얻어낸 공학적 승리의 전리품이었다.
* * *
지하 공동 폐광 구역의 비밀 아지트로 복귀한 태오의 안색은 어두웠.
동쪽 구역에서 발생한 가짜 도면 함정의 대폭발로 인해 수용소 전체에 비상 경계령이 내려진 상태였다. 바르토 수용소장과 경비대의 수색망이 언제 서쪽 폐광 구역까지 들이닥칠지 모르는 일촉즉발의 위기였다. 지상 보급로가 완전히 차단되기 전에, 대탈출을 위한 확실한 우군을 확보해야 했다.
“제이드.”
어둠 속에서 사샤가 검붉은 사막 로브를 걸친 채 그림자처럼 나타났다. 그녀의 날카로운 안광이 태오의 상처 입은 왼쪽 어깨와 피눈물이 말라붙은 오른쪽 눈가를 훑었다.
“약속한 마력 석영은 구해왔나?”
“여기 있습니다.”
태오가 탁상 위에 푸른 마석 결정들을 내려놓자, 사샤의 눈동자가 미세하게 흔들렸다. 교단조차 함부로 접근하지 못하는 독성 금역에서 물건을 진짜로 캐내 온 노예들의 집념에 장인으로서, 그리고 전사로서 경외감을 느낀 것이 분명했다.
“좋아. 내 눈으로 직접 확인했으니 약속을 이행하지. 하지만 수용소 내부의 감시가 너무 삼엄해졌어. 바르토가 미쳐 날뛰며 제3노역동의 노예들을 샅샅이 뒤지고 있다. 네 여동생 리나의 신변이 위험해.”
태오는 주먹을 꽉 쥐었다. 리나. 영양실조로 눈이 멀어가면서도 자신을 위해 식수 코인을 아끼던 소중한 혈육. 그녀를 이 지옥 같은 수용소에 단 하루도 더 둘러둘 수 없었다.
“사샤, 부탁이 있습니다. 제 여동생 리나와 노역동의 어린 아동 노예들을 먼저 빼돌려 주십시오. 아샤족의 은밀한 경로라면 경비대의 감시망을 피해 야영지까지 안전하게 데려갈 수 있을 겁니다.”
사샤는 잠시 침묵하더니 고개를 끄덕였다.
“쉬운 일은 아니지만, 카림의 밀수 마차 이중 벽면을 이용하면 불가능하진 않다. 하지만 대가가 필요해. 우리 부족은 지금 죽어가고 있다. 비의 신 교단이 가동한 가뭄 마법진 때문에 야영지의 우물이 완전히 말라붙었어. 말들과 아이들이 먼저 쓰러지고 있다. 네가 우리 야영지에 진짜 우물을 파주지 않는다면, 우리 부족도 도망 노예들을 더 이상 숨겨줄 여력이 없다.”
“가겠습니다. 리나를 먼저 안전하게 데려가 주십시오. 아지트의 위치 정보를 일부 공유하고, 리나를 부족의 손님이자 인질로 임시 위탁하겠습니다. 제가 직접 야영지로 가서 지하 300미터 아래의 대수층을 뚫어 부족 전체를 가뭄에서 구원해 보이지요.”
태오는 망설임 없이 결단을 내렸다. 그것은 단순한 타협이 아닌, 아샤족의 강력한 사막 기동 무력을 완벽한 우군으로 포섭하기 위한 철저한 공학적 계산의 일환이었다.
몇 시간 뒤, 깊은 밤의 정막을 틈타 리나와 미미를 비롯한 아동 노예 몇 명이 사샤의 인도 아래 비밀 통로를 통해 카림의 마차에 탑승했다.
출발 직전, 앞이 보이지 않는 리나가 태오의 옷자락을 꼭 쥐었다. 그녀의 밝은 귀가 오빠의 가쁜 호흡과 상처에서 나는 피 냄새를 감지한 듯했다.
“오빠…… 꼭 가야 해? 나 오빠 없이 무서워……”
“걱정하지 마라, 리나.”
태오는 리나의 마른 손을 따뜻하게 감싸 쥐었다.
“사샤 언니를 따라가면 시원한 바람이 부는 안전한 야영지가 나올 거야. 오빠가 너를 위해 만든 이 구리선 펜던트를 꼭 쥐고 있어라. 오빠도 금방 뒤따라가서, 네가 마음껏 마실 수 있는 가장 맑고 차가운 우물을 파줄 테니까.”
리나는 눈물을 흘리며 고개를 끄덕였다. 마차가 어둠 속으로 소리 없이 사라지는 모습을 보며, 태오는 아지트의 청동 입구를 점토와 바위 파편으로 덮어 일시 봉쇄했다. 겉보기에는 무너진 폐갱도의 일부처럼 보이도록 완벽히 위장한 후, 그는 단독으로 사막의 밤을 가로질러 아샤족 비밀 야영지를 향해 발걸음을 옮겼.
* * *
도보로 이틀 거리에 위치한 아샤족 비밀 야영지에 도달했을 때, 태오를 맞이한 것은 사막의 참혹한 몰락이었다.
거대한 모래 언덕 사이에 숨겨진 야영지는 뜨겁고 메마른 사막 바람에 말라죽어가고 있었다. 부족의 젖줄이었던 중앙 오아시스는 바닥이 거북이 등껍질처럼 갈라진 채 하얀 소금기만 드러내고 있었고, 뼈만 앙상하게 남은 사막 말들이 거친 숨을 몰아쉬며 쓰러져 있었다. 천막 그늘 아래 누워 있는 아이들의 입술은 피가 흘러내릴 정도로 바짝 말라 있었다.
교단이 가동한 가뭄 마법진의 위력은 이토록 가혹하고 무자비했다. 기도가 아닌 인위적인 기후 조작으로 인간의 생명줄을 쥐고 흔드는 종교적 가스라이팅의 생생한 현장이었다.
태오가 야영지 중앙으로 걸어 들어가자, 사막 로브를 걸친 아샤족 전사들이 적대적인 눈빛으로 그를 에워쌌다. 그들의 손에 쥔 사막 장도와 활시위가 팽팽하게 당겨졌다. 외지인이자 남루한 노예 옷을 입은 태오의 등장은 오랜 가뭄으로 극도로 예민해진 전사들에게 좋은 먹잇감이었다.
“멈춰라, 외지인 노예 놈!”
그때, 전사들 사이를 헤치고 거구의 사내가 걸어 나왔다. 깊은 주름과 사막의 흉터가 가득한 얼굴, 사자 갈기 같은 백발을 지닌 위엄 있는 사내. 아샤족의 최고 지도자이자 대족장, 타릭이었다. 타릭은 청동 늑대가 새겨진 족장 지팡이를 모래바닥에 쿵 내리찍으며 태오를 매섭게 내려다보았다.
“사샤가 데려온 자가 고작 이딴 약골 노예 놈이었단 말이냐? 부족의 성역인 야영지에 발을 들인 대가가 얼마나 무거운지 모르는 모양이군.”
타릭의 몸에서 뿜어져 나오는 살벌한 기세와 제국 군부 장성을 연상케 하는 압도적인 무력이 태오의 숨통을 조여왔다. 사샤가 다급히 나서서 타릭을 제지하려 했다.
“아버지! 이 자는 평범한 노예가 아닙니다. 수용소 지하에서 진짜 청정수를 찾아내 분배한 공학자입니다. 우리 부족을 살릴 수 있는 유일한—”
“닥쳐라, 사샤!”
타릭이 호통을 쳤다.
“우리의 우물은 비의 신이 노해 말려버린 것이다! 이것은 신의 징벌이다! 그런데 일개 인간 노예가, 그것도 교단의 사슬에 묶여 기어 다니는 애송이가 어떻게 신의 뜻을 거스르고 물을 찾겠다는 말이냐!”
전사들이 동조하며 무기를 바짝 들이밀었다. 칼날의 서늘한 기운이 태오의 목덜미에 닿았다. 일촉즉발의 순간이었다.
“그만두어라, 타릭.”
그때, 야영지 가장 깊숙한 돌집 천막에서 나지막하지만 묘한 공명을 가진 목소리가 울려 퍼졌다.
전사들이 모세의 기적처럼 갈라지며 일제히 무릎을 꿇었다. 천막 문을 열고 걸어 나오는 늙은 여성. 온몸에 사막의 점토 문신을 새기고, 백발의 머리칼을 길게 늘어뜨린 아샤족의 정신적 지주, 대무녀 자밀라였다.
자밀라는 비록 두 눈이 흐릿하게 멀어 있었지만, 대지의 흐름을 읽는 초감각적인 눈빛을 지니고 있었다. 그녀는 지팡이도 짚지 않은 채 정확히 태오의 코앞까지 걸어와 멈춰 섰다.
자밀라가 태오의 얼굴을 향해 주름진 손을 뻗었다. 그녀의 손끝이 태오의 오른쪽 눈가에 장착된 지반 투시 마력 안경의 구리 프레임을 천천히 쓸어내렸다. 그 순간, 안경의 마석 렌즈에서 뿜어져 나오는 미세한 푸른빛의 안광이 자밀라의 흐릿한 눈동자에 푸르게 반사되었다.
자밀라의 몸이 미세하게 떨리기 시작했다. 그녀는 태오의 몸을 감싸고 있는, 보이지 않는 차갑고 맑은 수기(水氣)와 이성의 아우라를 느낀 것이 분명했다.
“이 푸른 안광…… 대지의 맥동을 온전히 해독하는 차가운 이성의 빛이로구나.”
자밀라가 떨리는 목소리로 외쳤다. 그녀가 태오의 앞에 두 손을 모으며 대지를 향해 고개를 숙였다.
“대무녀의 눈은 속이지 못한다. 이 자는 미신과 거짓 기적으로 대지를 더럽히는 교단의 가짜 신념을 깨부수기 위해, 대지가 우리에게 보낸 위대한 이성의 인도자이자 구원자이시다! 대지의 예언이 드디어 실현되었구나!”
대무녀의 갑작스러운 종교적 공인과 예언에 야영지 전체가 깊은 충격에 휩싸였다. 전사들의 칼날이 흔들렸고, 부족민들은 반신반의하는 눈빛으로 태오를 바라보았다.
하지만 대족장 타릭의 눈빛만큼은 여전히 불신과 분노로 이글거리고 있었다. 타릭은 대무녀의 예언조차 용납할 수 없다는 듯, 성큼성큼 걸어와 태오의 남루한 양가죽 옷깃을 한 손으로 움켜잡고 허공으로 들어 올렸다.
“끄윽……!”
왼쪽 어깨의 채찍 상처가 타릭의 억센 악력에 눌려 찢어지는 듯한 고통이 밀려왔다. 태오의 발이 허공에 떴고, 타릭의 험악한 얼굴이 코앞까지 다가왔다. 타릭의 숨결에서 사막의 뜨겁고 건조한 열기가 뿜어져 나왔.
“대무녀의 예언이 어떻든 간에, 내 눈에는 그저 뼈만 남은 나약한 노예 놈으로 보일 뿐이다!”
타릭이 으르렁거리며 태오의 멱살을 거칠게 흔들었다.
“우리 부족의 절망을 가지고 장난치지 마라, 노예! 신의 징벌인 이 가뭄을, 하늘이 말려버린 이 대지를 일개 인간의 잔재주로 어떻게 해결하겠다는 말이냐! 대답해라! 네놈의 그 하찮은 목숨줄이 끊어지기 전에!”
목이 졸려 숨이 막히는 극한의 고통 속에서도, 한태오의 눈동자는 단 1%도 흔들리지 않았다. 그의 오른쪽 눈 고글 너머로 서늘하고 차가운 이성의 푸른 안광이 오히려 더 명징하게 빛났다.
태오는 피 흘리는 입술을 열어, 타릭의 눈을 똑바로 응시하며 차갑게 읊조렸다.
“……이것은 신의 징벌이 아닙니다. 열역학 법칙과 지질학적 왜곡이 만들어낸 인재(人災)일 뿐입니다.”
태오는 품 안에서 늙은 우물 파는 장인 노아가 물려준 유품이자, 대지의 자계와 경사각을 정밀 측정하는 ‘정밀 지질 컴퍼스’를 꺼내 들었다.
그는 타릭의 억센 손아귀를 뿌리치듯 내려놓으며, 부족의 가장 성성한 성역이자 완전히 말라붙은 우물의 한가운데 갈라진 흙바닥 위에 컴퍼스를 쿵 소리가 나도록 내려놓았다.
“기도로는 물을 단 한 방울도 얻지 못합니다. 하지만 이 도구와 공학적 계산이 있다면, 저는 대지의 뼈를 읽고 물을 찾아낼 수 있습니다.”
태오가 컴퍼스의 회정 다이얼을 돌리자, 나침반의 바늘이 미세한 지하의 주파수를 감지하듯 가쁘게 맥동하기 시작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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