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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막의 바람, 사샤의 밀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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위장 점토벽의 균열 틈새로 마수의 피 흘리는 이빨이 우두둑 소리를 내며 들이밀어졌다.


“크르르르……!”


지독한 염화수소 가스에 후각 점막이 타들어 가면서도, 피비린내를 풍기는 알파 마수 그레이 하운드는 광기에 눈이 뒤집힌 채 점토벽을 찢어발기고 있었다. 날카로운 발톱이 바위틈을 긁어낼 때마다 황토와 석회 가루가 사방으로 튕겨 나갔다. 이대로 두면 간수들이 만들어 둔 밀폐벽이 완전히 허물어지고, 지하 공동 폐광 구역 내부의 진짜 시추 시설과 120명의 노예들이 숨겨진 아지트가 경비대에게 무방비로 노출될 판이었다.


“대장! 점토벽이 무너집니다! 제가 곡괭이로 머리통을 날려버리겠습니다!”


행동대장 라울이 거친 숨을 몰아쉬며 흑철 곡괭이를 치켜들었다. 대원들도 연장을 쥔 손에 힘을 주며 일촉즉발의 전투를 준비했다. 하지만 한태오는 피가 흐르는 왼쪽 어깨를 움켜쥔 채 단호하게 고개를 저었다.


“안 됩니다! 피비린내가 진동하면 외부의 마수 무리가 더 날뛸 겁니다. 무력 충돌은 최후의 수단입니다.”


태오는 가쁜 숨을 내쉬며 오른쪽 눈가로 손을 가져갔다.


지리리릿, 지직.


지반 투시 마력 안경의 우측 렌즈와 구리 프레임 연결부에서 뿜어 나오는 미세한 마력 누출음이 뇌막을 찌르는 듯한 극심한 편두통을 유발했다. 렌즈 중앙을 길게 가로지른 미세 균열이 붉은색 경고 노이즈와 함께 진동하고 있었다. 가동할 수 있는 시간이 얼마 남지 않았다. 태오는 안경의 수압 분석 모드를 켜고, 시추 파이프 끝단에 연결된 황동 방출 밸브의 압력 게이지를 노려보았다.


[경고: 대수층 정수압 15기압 도달. 바이패스 라인 수밀 한계 임박.]


‘15기압…… 충분해.’


15기압은 소방 호스에서 뿜어져 나오는 고압 수류의 두 배에 달하는 강력한 물리적 충격량이다. 화학 가스로 놈의 감각을 마비시켰다면, 이번에는 물리학의 법칙으로 놈을 밀쳐낼 차례였다.


“단테, 주드! 내 지시에 맞춰 밸브 지지대를 단단히 붙잡아라! 라울은 점토 반죽과 송진 접착제를 들고 대기해!”


“예, 대장!”


태오는 절연 가죽 장갑을 낀 손으로 황동 방출 밸브의 핸들을 잡았다. 상처 입은 왼쪽 어깨가 비명을 질렀지만 이가 부러져라 악물며 버텼다. 틈새 너머로 마수의 시뻘건 눈동자가 들이닥치는 순간, 태오는 밸브를 급격히 개방했다.


콰아아아앙—!


시추공 내부에서 잠자고 있던 고압의 지하수가 좁은 황동 노즐을 통과하며 거대한 포효와 함께 폭출했다. 백색의 물줄기가 대포알처럼 뿜어져 나와, 점토벽 틈새로 대가리를 밀어 넣던 알파 마수의 안면을 정면으로 강타했다.


“깨갱! 깽!”


강력한 유체의 충격량(Impulse)을 안면에 직격당한 마수는 비명조차 제대로 지르지 못한 채 뒤로 날아가 갱도 바닥에 처박혔다. 섭씨 15도의 차가운 청정수가 고압으로 뿜어지며 놈의 눈과 코를 물리적으로 짓밟았고, 가스 통증에 더해진 수압의 폭력 앞에 알파 마수는 꼬리를 내린 채 어둠 속으로 도망쳤다.


“지금이다! 라울, 주드! 막아라!”


태오의 외침과 동시에 라울이 황토와 석회 배합 점토를 틈새에 사정없이 밀어 넣었고, 주드가 뜨겁게 달구어진 송진 밀폐 접착제를 부어 바위 파편들을 단단히 고정했다. 침엽수의 매운 향이 진동하며 굳어가는 접착제 장벽은 단 1분 만에 입구를 완벽한 화강암 벽처럼 위장했다. 물 흐르는 소리도, 가스의 흔적도 점토벽 너머로 철저히 격리되었다.


“하아…… 하아……”


태오는 밸브를 잠그고 바닥에 주저앉았다. 왼쪽 어깨의 채찍 상처가 다시 터져 붉은 피가 남루한 양가죽 누더기를 적셨다. 안경의 가동을 중단하자 푸른 안광이 사라지며 극심한 탈진과 안구 건조증이 몰려왔다.


의사 렌이 다급히 다가와 치료용 약초를 상처에 덧대며 속삭였다.


“제이드, 정말 대단하군요. 기도가 아닌 계산으로 마수를 퇴치하고 오염까지 막아내다니…… 이 물은 정말로 우리 노예들의 전염병을 치료하고 살려낼 의학적 청정수가 분명합니다. 교단이 베푸는 가짜 비와는 비교조차 되지 않아요. 난 이제 당신의 탈출 계획에 내 목숨을 걸겠습니다.”


태오는 렌의 굳건한 눈빛을 보며 고개를 끄덕였다. 마침내 수용소 내부의 완벽한 지지 기반과 정수 시스템을 갖춘 셈이었다. 하지만 안도할 시간은 없었다. 이번 가스 트랩으로 브루노의 추격대와 마수 무리를 일시적으로 퇴각시켰지만, 수용소장 바르토는 곧 더 삼엄한 군사 포위망을 가동할 것이 뻔했다.


이 좁고 축축한 지하 아지트에서 평생 숨어 살 수는 없다. 탈출해야 했다.


‘게헤나 사막을 무사히 건너려면 지상 가이드가 필수적이다. 사막의 가혹한 일교차와 모래폭풍을 꿰뚫고 있는 원주민, 아샤족의 무력이 필요해.’


태오는 아지트 한구석에서 숯필을 쥐고 양필지 조각에 기압 변화와 유동 제어 데이터를 꼼꼼히 기록했다. 이번 가스 포켓 제어 과정에서 실측한 수치들은 향후 지상에서 추격대를 소탕할 ‘기압식 모래 폭발 장치’의 기하학적 공식으로 사용될 귀중한 데이터였다. 기록을 마친 태오는 한스를 불렀다.


“한스, 아샤족 상인 카림을 접촉해라. 그가 가진 밀수 마차를 이용해 아샤족의 정찰대장과 은밀한 회동을 잡아야겠다. 우리가 가진 청정수를 미끼로 던지면, 그들도 거부하지 못할 거다.”


* * *


그날 밤, 소금 광산 외곽의 버려진 광물 적재 구역.


칠흑 같은 어둠 속에서 삐걱거리는 마차 소리가 나지막이 울렸다. 배가 조금 나온 유쾌한 인상의 아샤족 상인 카림이 모는 밀수 마차였다. 카림은 평소 간수들의 눈을 피해 담배와 술을 밀반입하던 은밀한 통로를 통해 마차를 폐광 구역 배후에 주차했다.


태오는 경비대의 야간 순찰 주기를 피해 은밀히 마차 뒷벽의 이중 적재함 틈새로 기어 들어갔다. 좁고 퀴퀴한 나무 냄새가 나는 마차 내부로 들어서는 순간, 등 뒤에서 서늘한 금속의 촉감이 목덜미를 강하게 압박했다.


“외지인 노예 놈이 겁도 없이 아샤족을 불러냈군.”


차가우면서도 날카로운 여성의 목소리였다.


태오는 천천히 고개를 돌렸다. 검붉은 사막 로브를 걸친 채, 바람에 흩날리는 검은 머리칼 사이로 날카로운 안광을 빛내는 20대 초반의 여전사, 사샤였다. 그녀의 손에 쥔 사막 단검이 태오의 목울대를 살짝 누르고 있었다. 조금만 움직여도 목숨이 날아갈 일촉즉발의 대치 상황이었다.


태오는 무력 제로의 몸이었지만, 눈 하나 깜짝하지 않고 냉철한 이성을 유지했다.


“아샤족의 상급 정찰수 사샤 제자라. 소문대로 날렵하군. 하지만 그 칼을 거두는 게 좋을 겁니다. 당신들의 목숨줄이 내 손에 달려 있으니까.”


“허튼소리를 하면 이 자리에서 목을 긋겠다. 노예 주제에 무슨 수로 아샤족의 생사를 논하겠다는 거냐?”


사샤의 칼날에 힘이 실리며 태오의 목덜미에 붉은 핏방울이 맺혔다. 어깨의 채찍 상처 통증이 다시 자극받았지만, 태오는 말없이 품 안에서 아껴둔 가죽 수조 한 통을 꺼내 그녀의 발밑에 내려놓았다.


“이걸 마셔보십시오. 교단이 신성한 기적이라 사기 치며 파는 성수보다 백 배는 맑은 물입니다.”


사샤는 눈살을 찌푸리며 한 손으로 가죽 수조를 집어 들어 마개를 열었다. 미세하게 풍겨 나오는 참나무 활성탄의 신선하고 깨끗한 나무 냄새에 그녀의 콧망울이 실룩였다. 사샤는 의심스러운 눈빛으로 물을 한 모금 머금었다.


“……!!”


사샤의 날카로운 안광이 경악으로 물들었다.


사막의 물은 대개 염분과 진흙이 섞여 쓰고 탁하기 마련이다. 하지만 이 물은 이물질이 단 1%도 섞이지 않은, 극도로 부드럽고 차가운 청정수였다. 교단의 비의 사도들이 신앙세를 갈취하며 조금씩 배급하던 그 어떤 물보다도 순수했다.


“이, 이 물을 어디서 구한 거지? 제국 중부의 운하라도 털어온 거냐?”


“내가 뚫었습니다. 게헤나 지하 300m 아래에 흐르는 점토 대수층을 공학적 시추 공법으로 개척했지.”


태오는 사샤의 적대감이 누그러진 틈을 타, 아지트에서 가져온 아샤족 야영지 주변의 지질 지도를 펼쳤다.


“당신들의 비밀 야영지 지하에도 이와 똑같은 거대 대수층이 흐르고 있습니다. 교단의 가뭄 마법진 때문에 지상이 말라붙었을 뿐, 땅 아래의 진실은 기도가 아닌 드릴로 뚫는 겁니다. 나와 내 노예 120명이 수용소를 탈출할 수 있도록 지상 가이드와 무력 지원을 제공하십시오. 그 대가로, 당신들의 야영지에 무한한 식수를 공급할 대형 우물을 파주겠습니다.”


사샤는 지도를 내려다보며 태오가 제시한 지질 데이터와 기하학적 수치들의 정밀함에 압도당했다. 이 외지인 노예는 단순한 광인이 아니었다. 대지의 숨겨진 혈맥을 꿰뚫어 보는 이성적인 거장이었다. 부족민들이 가뭄으로 피눈물을 흘리며 죽어가는 상황에서, 이 제안은 거부할 수 없는 구원의 밧줄이었다.


“노예들의 대탈출이라…… 교단의 이단 심문관들과 성기사단 전체를 적으로 돌려야 하는 위험한 일이다.”


사샤는 단검을 거두며 태오를 깊은 눈으로 바라보았다.


“하지만 부족의 생존보다 귀한 것은 없지. 제이드, 당신의 그 공학적 실증을 믿어보겠다. 우리 아샤족이 당신들의 퇴로를 지키는 강력한 방패가 되어 주지.”


동맹이 성사되는 역사적인 순간이었다. 태오는 마음속으로 쾌재를 불렀다. 지상 탈출의 마지막 퍼즐 조각이 맞춰지는 듯했다.


바로 그때였다.


탁!


갑자기 마차가 거칠게 흔들리며 제자리에 멈춰 섰다.


마차 앞 좌석에 앉아 있던 카림의 다급한 목소리가 얇은 나무 벽을 타고 흘러들었다.


“어, 어이쿠! 경비대 나리들! 이 깊은 밤중에 폐광 구역 순찰이라니, 고생이 많으십니다!”


“시끄럽다, 카림!”


쇠붙이가 부딪치는 서늘한 소리와 함께 가혹한 간수들의 목소리가 마차 외벽을 때렸다. 야간 특별 순찰대였다.


“바르토 소장님의 특별 지시다. 서쪽 폐광 구역에서 기괴한 가스 냄새와 물도둑들의 낌새가 포착되었다. 이 구역을 드나드는 모든 마차를 철저히 수색해 이단 부역자들을 색출한다! 당장 마차에서 내려라!”


이중 적재함 내부의 공기가 순식간에 얼어붙었다.


사샤는 본능적으로 허리춤의 사막 단검을 고쳐 잡으며 태오를 매섭게 노려보았다. 칼끝이 다시 태오의 가슴을 향했다. 여기서 발각되어 전투가 벌어지면 아지트의 위치는 물론이고 탈출 계획 전체가 수포로 돌아간다.


태오는 사샤의 손목을 강하게 잡아 제지하며 침묵하라는 신호를 보냈다. 상처 입은 어깨의 통증으로 식은땀이 비 오듯 흘러내렸지만, 그의 머릿속은 기압과 수밀, 그리고 마차 내부의 체적 계산을 가쁘게 돌리고 있었다.


사각, 서걱!


마차 외부에서 경비병들의 거친 군화 소리가 가까워지더니, 이내 마차 천막의 가죽 시트가 거칠게 젖혀지는 소리가 들렸다.


“안에 아무것도 없는데 왜 이렇게 마차가 무거워? 뒷벽이 수상하군.”


“나리, 광산용 소금 자루를 실었던 흔적이라 그렇습니다요! 제발 자비를……”


카림이 말을 마치기도 전에, 서늘한 쇠붙이 소리가 정적을 깼다.


쉬이익! 푹!


경비병이 쥔 장검이 마차의 천막 가죽을 뚫고 이중 적재함 내부로 사정없이 내리꽂혔다. 날카로운 검날이 태오의 코앞 불과 수 센티미터 스쳐 지나가며 어둠 속에서 차가운 은빛 궤적을 그렸다.


사샤와 태오는 숨을 죽인 채, 서로의 체온만을 느끼며 좁은 공간에서 몸을 밀착했다. 검날이 캔버스를 찢는 소리가 이중 벽면을 타고 그들의 턱밑까지 조여오기 시작했다.

HẾT CHƯƠNG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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