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금 사막에 흐르는 생명
콰르르릉—!
지하 공동 전체를 흔드는 지동(地動)은 단순한 진동이 아니었다. 그것은 수백 년 동안 단단한 화강암반 아래에 갇혀 있던 거대한 자연의 맥박이었다. 단테가 내리친 마지막 해머 타격으로 인해 대지에 균열이 가며, 묵직하고 서늘한 물소리가 어둠 속에서 파도처럼 밀려왔다.
“대장! 물입니다! 진짜 물줄기가 터졌어요!”
한스가 머리 위로 떨어지는 소금 먼지를 뒤집어쓴 채 비명을 질렀다. 암흑 속에서 대원들의 숨소리가 일시에 멎었다.
하지만 수자원공학자인 한태오의 머릿속은 승리감에 취할 여유가 없었다. 수맥이 터졌다는 것은 곧 엄청난 고압의 지하수가 분출된다는 뜻이었다. 제어하지 못한 수압은 축복이 아니라 아지트 전체를 수사(水死)시키는 재앙이 될 터였다.
게다가 그의 오른쪽 눈가에 얹힌 ‘지반 투시 마력 안경’이 한계를 호소하고 있었다.
지이이이잉— 툭.
우측 마석 렌즈와 구리 프레임의 연결부에서 불길한 마력 누출음이 울렸다. 안경 너머로 투사되던 청색 격자망 화면이 지독한 노이즈와 함께 흔들렸다. 렌즈 안쪽에 미세하게 번져가던 머리카락 같은 균열이 진동을 견디지 못하고 더욱 선명하게 갈라지고 있었다. 시야가 붉은색 경고등으로 물들며 뇌를 찌르는 듯한 극심한 편두통이 밀려왔다.
‘안 돼, 안경이 완전히 파손되기 전에 수압을 잡고 여과 계통을 연결해야 해!’
태오는 피가 흐르는 왼쪽 어깨의 통증을 악물며 소리쳤다.
“세라! 브론! 다들 멍하니 있지 마라! 정수용 활성탄 다중 필터를 시추관 토출구에 결합해라! 주드, 송진 접착제 끊기지 않게 계속 부어!”
“예, 예! 대장!”
여과 조장 세라가 대원들을 이끌고 다급히 움직였다. 브론이 미리 깎아둔 거대한 나무 원통형 필터가 시추 파이프 끝단에 정렬되었다.
화강암반을 뚫고 솟구쳐 오르는 첫 물줄기는 소금 먼지와 진흙이 뒤섞여 노랗고 탁한 흙탕물이었다. 게다가 지층 상부의 암염 성분이 녹아들어 짠맛이 강했다. 이대로는 마실 수 없었다.
“세라, 활성탄 다중 필터 내부 적층 상태 확인해!”
“자갈과 고운 모래, 1단계 여과망 배치 완료했습니다! 이제 핵심 흡착층입니다!”
세라가 자신감 넘치는 목소리로 외치며 숯가루 포대를 들어 올렸다. 그것은 태오의 지시에 따라 수용소 주방에서 땔감으로 쓰고 남은 참나무 숯을 밀폐된 진흙 가마에서 고온으로 한 번 더 구워내 기공을 극대화한 ‘활성탄 정화용 참나무 숯’이었다.
일반 숯과 달리 초고온 가열 과정을 거쳐 미세 기공이 수백 배로 늘어난 활성탄은 물속의 유기 오염 물질과 미세한 염분 분자를 끌어당겨 가두는 경이로운 물리적 흡착(Adsorption)력을 발휘한다.
“참나무 활성탄 투입! 양모 천으로 최종 밀폐합니다!”
세라의 손놀림은 한 치의 망설임도 없었다. 그녀는 태오가 가르쳐 준 정밀 배합 비율을 완벽히 준수하며 필터 내부를 5단계(자갈-고운 모래-활성탄-세사-양모 천)로 촘촘히 채워 넣었다.
주드가 이음새에 뜨거운 송진 접착제를 두껍게 발라 압력이 새어나가지 않도록 밀폐를 마쳤다.
쿠우우우웅—!
시추관을 타고 올라온 고압의 지하수가 다중 필터의 하부 유입구로 들이쳤다. 필터 내부의 여과재들이 압착되며 기계적인 비명이 흘러나왔다. 황동 압력계의 바늘이 12기압을 가리키며 가쁘게 떨렸다. 수압이 너무 강하면 필터 내부의 모래층이 뒤틀려 여과가 실패할 수 있었다.
“태오 형, 압력이 너무 높아요! 필터가 터질 것 같습니다!”
한스가 비틀거리며 외쳤다. 태오는 차분하게 황동 방출 밸브의 개폐 각도를 응시했다.
“우회 밸브를 15도만 열어라. 유량을 미세하게 분산시켜서 필터 내부의 통과 속도를 제어해야 해. 급속 여과 속도가 초당 2센티미터를 넘지 않게 조율해!”
한스가 다급히 밸브를 조절하자, 필터가 내던 거친 진동이 서서히 가라앉았다. 수류가 다공질 활성탄 층을 통과하며 미세한 불순물과 소금기, 유독 가스의 잔향을 완벽하게 흡착해 나가기 시작했다.
그리고 마침내.
필터의 최종 토출구 가죽관 끝에서 물방울이 떨어지기 시작했다.
뚝…… 뚝…… 콸콸콸콸!
처음에는 탁했던 물줄기가 순식간에 맑아지더니, 이내 크리스탈처럼 투명하고 깨끗한 청정수가 되어 쏟아져 내렸다. 지하 공동의 어두운 바닥 위로 푸른빛을 띠는 맑은 물이 호수를 이루며 퍼져나갔다.
태오는 가죽 바가지를 들고 쏟아지는 물을 가득 담았다. 차가운 한기가 손끝을 타고 올라왔다. 그는 떨리는 걸음으로 아지트 구석에 누워 있는 여동생 리나에게 다가갔.
“리나야. 물 마시자.”
영양실조로 눈이 멀어가던 소년 리나는 오빠의 목소리에 마른 입술을 바르르 떨었다. 태오가 리나의 머리를 조심스럽게 부축하고 바가지를 입술에 대주었다.
꿀꺽, 꿀꺽…….
목울대를 울리며 맑은 물을 삼키던 리나의 눈이 크게 떠졌다. 소금기라고는 단 한 방울도 섞이지 않은, 믿을 수 없을 정도로 차갑고 단맛이 도는 순수한 물이었다.
“오빠…… 물이…… 물이 너무 달아…….”
리나의 흐릿한 연갈색 눈동자에서 눈물이 주르륵 흘러내렸다. 평생 짠내 나는 소금물 배급수만 마시며 목을 태우던 아이였다. 리나가 눈물을 흘리며 미소를 짓자, 이를 지켜보던 지몬과 강철 삽날대 대원들의 눈시울도 붉어졌다.
“세상에…… 진짜 짠맛이 하나도 안 나잖아!”
“신들이여, 이게 정녕 우리가 판 땅에서 나온 물이란 말입니까!”
노예들이 차례로 물을 들이켜며 통곡하기 시작했다. 그들은 흙먼지가 묻은 바닥에 무릎을 꿇고 태오를 향해 절을 올렸다.
“제이드 님…… 물을 부르는 자여……!”
그 광경을 묵묵히 지켜보던 수용소 의사 렌(Len)이 떨리는 손으로 물을 받아 맛보았다. 그의 온화한 얼굴이 경탄과 충격으로 굳어졌다.
“이건 기적입니다, 제이드. 소금기도 없고, 부패한 늪지의 독성도 전혀 없어요. 이 물만 있으면 수용소 내 노예들을 죽여가던 지독한 수인성 이질과 전염병을 완전히 퇴치할 수 있습니다! 교단의 신성 치유 기적조차 이보다 깨끗할 수는 없어요.”
렌의 눈에 서린 깊은 감명은 신앙에 가까운 신뢰로 변해 있었다. 그는 태오의 손을 잡으며 조용히 속삭였다.
“이 의술과 기술을 위해서라면, 기꺼이 당신의 탈출 계획에 목숨을 바치겠습니다.”
태오는 렌의 손을 마주 잡으며 고개를 끄덕였다. 그의 이성은 이미 다음 단계를 향한 정밀한 계산을 끝마친 상태였다.
“렌 선생님, 그리고 지몬. 지금 당장 이 물을 가죽 주머니에 가득 담아 제3노역동의 모든 노예들에게 무상으로 분배하십시오.”
태오의 단호한 지시에 지몬이 깜짝 놀라 물었다.
“무상 분배라니요? 대장, 이 물은 우리의 목숨줄이자 가장 강력한 무기입니다. 간수들에게 식수 배급 코인을 받고 팔아도 모자랄 판에 공짜로 나누어 주다니요?”
태오는 안경 너머의 푸른 안광을 서늘하게 빛내며 차갑게 미소 지었다.
“지몬, 자원의 독점이 지배를 낳는다면, 자원의 과잉 공급은 독점 체제를 단숨에 무너뜨리는 법입니다. 수용소장 바르토와 간수들이 우리를 지배하는 원동력이 무엇입니까?”
“그야…… 물을 통제하는 권력이지요.”
“그렇습니다. 그리고 그 통제권의 가치를 유지해 주는 기축 통화가 바로 ‘식수 배급 코인’입니다. 노예들은 물 반 컵을 얻기 위해 하루 14시간씩 소금을 캐고 코인을 모읍니다. 하지만…… 누구나 원할 때 마실 수 있는 깨끗한 물이 무상으로 사방에 흘러넘친다면 어떻게 될까요?”
지몬의 눈이 서서히 넓어졌다. 태오의 입에서 흘러나오는 현대 경제학적 원리가 그의 뇌리를 강타했다.
“아…… 코인의 가치가…….”
“폭락하겠지. 쓰레기 구리 조각이 될 겁니다.”
태오는 단호하게 쐐기를 박았다.
“코인의 가치가 사라지는 순간, 간수들의 지배 경제 시스템은 근간부터 흔들릴 겁니다. 물을 무기로 삼던 자들의 목을 부러뜨리는 것은 무력이 아닙니다. 철저한 계산과 공급의 법칙이지요. 당장 실행하십시오.”
* * *
다음 날 아침, 제3노역동.
평소라면 간수들이 가죽 주전자를 흔들며 식수 코인을 요구하고, 노예들이 물 한 모금을 구걸하기 위해 비굴하게 기어 다녀야 할 시간이었다.
하지만 노역동 내부의 분위기는 기이할 정도로 고요했다. 노예들의 눈빛에는 평소의 절망과 탈수 증세로 인한 초점 흐림이 존재하지 않았다. 그들의 입술은 촉촉하게 젖어 있었고, 몸에는 생기가 돌고 있었다. 이미 야간을 틈타 지몬과 대원들이 무상으로 분배한 청정수를 배불리 마신 덕분이었다.
철컥, 철컥.
감시조장 루퍼스의 부하 간수들이 거만하게 채찍을 휘두르며 노역동 문을 열었다.
“더러운 쥐새끼들아! 물 배급 시간이다! 코인을 가진 놈들만 앞으로 나와라!”
간수가 짠물이 섞인 누런 배급수 통을 흔들었다. 평소라면 코인을 쥔 노예들이 서로 먼저 마시겠다고 아수라장을 이루었을 터였다.
하지만 아무도 움직이지 않았다. 노예들은 바닥에 편안히 누워 간수들을 차가운 눈으로 올려다볼 뿐이었다.
“이것들이 미쳤나? 물을 안 마시겠다는 거냐?”
간수가 당황해 소리치며 한 노예의 어깨를 채찍 끝으로 툭툭 쳤다.
“어이, 너! 코인 내놔! 물 안 마셔?”
그 노예는 말없이 자신의 주머니에서 구리 재질의 식수 배급 코인을 꺼내들었다. 그리고는 간수의 얼굴을 빤히 바라보며, 코인을 바닥의 진흙 더미 속으로 툭 던져버렸다.
“그깟 더러운 구리 조각, 너나 가지쇼. 우린 이제 그 짠물 안 마시니까.”
“뭐, 뭐라고?!”
간수들의 얼굴이 경악으로 물들었다. 사방에서 노예들이 비웃음 섞인 콧방귀를 뀌며 자신들이 모아둔 식수 코인들을 바닥에 무차별적으로 던지기 시작했다. 짤랑거리는 소리와 함께 수백 개의 코인이 소금 먼지 속에 쓰레기처럼 뒹굴었다.
식수 코인의 가치가 단 하룻밤 사이에 완전한 제로로 폭락한 순간이었다.
지배의 화폐가 무력화되자, 노예들은 일제히 굴착 곡괭이를 바닥에 던져두고 태업을 선언했다. 물을 얻기 위해 목숨 걸고 소금을 캘 이유가 사라진 것이다. 수용소의 핵심 생산 라인이 단숨에 마비되었다.
* * *
“이게 무슨 소리냐!”
수용소장 집무실.
바르토 수용소장은 부하 간수들이 가져온 텅 빈 소금 생산 장부와 바닥에 버려진 식수 코인 더미를 보며 광분해 포효했다. 그의 뚱뚱한 얼굴이 분노로 시뻘겋게 달아올라 부르르 떨렸다.
“동쪽 구역의 사설 우물이 자폭한 것도 모자라, 노예 놈들이 물 코인을 버리고 태업을 해? 대체 어디서 물이 나는 거냐! 사막 한가운데서 물이 하늘에서 떨어지기라도 한단 말이냐!”
루퍼스가 붕대를 감은 눈을 부르르 떨며 바르토의 책상 앞으로 기어왔다.
“소장님…… 분명 제이드 놈입니다. 그 약골 놈이 서쪽 폐광 구역에서 기어이 사고를 친 게 분명합니다. 그렇지 않고서야 노예들이 이 가혹한 가뭄 속에서 저렇게 기고만장할 리가 없습니다!”
바르토는 주먹으로 책상을 내리쳤다. 쿵 하는 소리와 함께 집무실 유리가 흔들렸다.
그는 노예들이 물의 자급자족 체제를 완성했다는 사실이 무엇을 의미하는지 정확히 알고 있었다. 그것은 수용소 지배 체제의 완전한 붕괴이자, 자신의 권력 파멸을 뜻했다.
“제이드…… 더러운 노예 놈이 내 목줄을 쥐려 하는구나.”
바르토의 눈에 잔혹하고 살기 어린 안광이 서렸다. 그는 벽에 걸린 제국 제식 철제 장검을 거칠게 뽑아 들었다.
“급수 통제과와 경비대 전원에게 완전 무장을 명령한다! 마력 탐사 추를 가동해 서쪽 폐광 구역의 모든 틈새를 뒤져라!”
바르토가 장검을 허공에 휘두르며 광기 서린 목소리로 포효했다.
“소금 광산 지하 전체에 대한 ‘대대적인 비상 징벌 수색령’을 선포한다! 물이 나오는 구멍을 찾아내면 그 즉시 돌과 흙으로 메워버려라! 배후에 있는 제이드 놈과 강철 삽날대 놈들은 발견 즉시 사지를 잘라 소금 벽에 매장하겠다! 당장 진군해라!”
철컥, 철컥, 철컥!
수용소장의 서슬 퍼런 명령과 함께, 무거운 철갑옷을 입은 정예 경비병들이 제식 장검과 횃불을 들고 지하 갱도를 향해 어둠을 뚫고 행진하기 시작했다. 수백 개의 철제 장화 소리가 어두운 광산 벽면에 불길한 반사음을 내며 웅장하게 메아리쳤다.
비밀 아지트 입구 너머로 조여오는 파멸의 발소리.
태오와 강철 삽날대원들이 이룩한 생명의 물줄기가, 수용소 지배자들의 무자비한 철갑 군화 아래 무참히 짓밟힐 절체절명의 대형 위기가 소금 사막 지하 깊은 곳으로 빠르게 다가오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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