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금 먼지 속의 각성
콜록, 콜록!
폐부를 찢는 듯한 격렬한 기침과 함께 눈이 떠졌다. 비명처럼 터져 나온 기침 끝에 입안 가득 텁텁하고 비린 소금 먼지가 씹혔다. 따갑다 못해 타들어 가는 것 같은 감각이 목구멍을 타고 흘러내렸다.
“오빠? 제이드 오빠! 정신이 들어?”
귓가에 서린 떨리는 목소리에 한태오는 간신히 눈풀린 눈꺼풀을 들어 올렸다. 눈앞에 가장 먼저 들어온 것은 먼지구덩이 속에서도 유난히 창백하게 빛나는 어린 소녀의 얼굴이었다. 남루한 양가죽 누더기를 걸친 마른 체구의 소녀. 먼지와 때로 얼룩진 찌푸린 얼굴 사이로, 초점이 흐릿한 연갈색 눈동자가 태오를 향해 있었다.
여동생, 리나였다.
‘리나…….’
그 이름을 소리 내어 부르려 했으나, 목구멍에서는 쉭쉭거리는 건조한 바람 소리만 새어 나왔다. 물 한 모금 마시지 못해 바짝 말라붙은 혀는 입천장에 달라붙어 떨어질 줄 몰랐다. 동시에 머릿속을 사정없이 뒤흔드는 이질적인 기억의 파편들이 태오의 이성을 난도질했다.
대한민국 수자원공학자, 서른두 살의 한태오.
그리고 이곳, 제국 동부 변경의 지옥 같은 소금 사막, 게헤나 광산 지하에 묶인 열여덟 살의 우물 파는 노예, 제이드.
두 존재의 영혼이 급격하게 뒤틀리며 하나로 맞물렸다. 지독한 동기화의 통증 속에서 태오는 자신이 처한 지옥 같은 현실을 명확히 인지했다.
빙의였다. 그것도 하필이면 물 한 방울조차 교단의 허락 없이는 마실 수 없는, 철저하게 통제된 노예 수용소의 최하층 굴착 노예의 몸이라니.
“오빠, 몸이 너무 뜨거워……. 조금만 참아. 오늘 배급 코인으로 바꾼 물이 아주 조금 남아 있어.”
Rina는 보이지 않는 눈을 더듬거리며 품 안에서 작은 구리 조각 하나를 꺼내려 했다. 그것은 수용소에서 물 반 컵을 교환할 수 있는 유일한 통화이자 노예들의 목숨줄인 ‘식수 배급 코인’이었다. 영양실조로 인해 눈이 멀어가면서도 오빠를 위해 제 몫의 물을 마시지 않고 코인으로 남겨둔 것이 분명했다. 가슴속 깊은 곳에서 전대 주인인 제이드의 깊은 죄책감과 애틋함이 울컥 솟구쳐 올랐다.
태오는 제이드의 마르고 흉터투성이인 손을 움직여 리나의 손을 조심스럽게 감싸 안았다.
“……아니야, 리나. 난 괜찮아. 네가 마셔야 해.”
간신히 쥐어짜 낸 목소리는 쇳소리가 섞여 거칠었다. 태오는 욱신거리는 몸을 일으켜 주위를 둘러보았다. 사방이 거칠고 축축한 소금 바위로 둘러싸인 비좁고 어두운 돌방. 사슬에 묶인 노예들이 가쁜 숨을 몰아쉬며 쓰러져 있는 이곳은 게헤나 수용소 제3노역동이었다. 천장 틈새로 미세하게 떨어지는 소금 가루들이 공기 중에 부유하며 노예들의 상처 입은 피부를 끊임없이 자극하고 있었다.
철저한 수직적 지배 피라미드. 물 한 모금으로 생사가 갈리는 변경 최하층 사회의 민낯이 바로 눈앞에 있었다.
철컥, 철컥.
그때, 갱도 깊은 곳에서부터 묵직한 철제 장화 소리가 울려 퍼졌다. 노역동 내부를 가득 채우고 있던 노예들의 가쁜 숨소리가 순식간에 멎었다. 절망적인 침묵이 방 안을 지배하기 시작했다.
쿵!
무거운 철문이 비명 같은 소리를 내며 거칠게 열렸다. 문틀을 가로막고 선 거대한 그림자. 이 빠진 철제 흉갑을 대충 걸치고, 한 손에는 굵은 가죽 채찍을 쥔 사내였다. 제3노역동의 직접적인 감시자이자 노예들의 저승사자로 불리는 감시조장, 루퍼스였다.
루퍼스는 코를 찡그리며 노역동 내부를 훑어보더니, 들고 있던 가죽 주전자를 흔들었다. 찰랑거리는 맑은 물소리가 고요한 방 안에 잔인하게 울려 퍼졌다. 노예들의 마른 침 넘어가는 소리가 사방에서 들렸다.
“더러운 쥐새끼들아. 아주 편하게 누워 자빠져 있군.”
루퍼스가 비열한 미소를 지으며 채찍 끝으로 바닥을 툭툭 쳤다.
“수용소장 바르토 님께서 전하시는 명령이다. 이번 주 제3노역동의 소금 채굴 할당량이 기준치에 미달했다. 따라서, 오늘부터 제3노역동의 식수 배급 코인은 전원 회수한다.”
“……!”
방 안이 순간 얼어붙었다. 노예들의 얼굴에서 핏기가 완전히 가셔 나갔다. 할당량 미달을 구실로 한 식수 통제. 그것은 곧 서서히 말라 죽으라는 사형 선고나 다름없었다.
루퍼스는 아랑곳하지 않고 성큼성큼 걸어와 노예들의 품을 뒤지며 식수 코인을 강탈하기 시작했다. 거친 손길에 노예들이 힘없이 쓰러졌지만, 그 누구도 감히 저항할 엄두를 내지 못했다. 수용소를 무력으로 지배하는 게헤나 광산 경비대의 힘은 압도적이었기 때문이다.
이윽고 루퍼스의 시선이 구석에 주저앉아 있는 태오와 리나에게 닿았다. 그의 탐욕스러운 눈빛이 리나가 손에 꼭 쥐고 있던 구리 코인을 포착했다.
“어이, 우물 파는 꼬맹이 녀석들. 좋은 걸 가지고 있군. 내놔.”
루퍼스가 손을 뻗자, 리나가 겁에 질려 코인을 품에 안으며 뒤로 물러섰. 태오는 본능적으로 리나의 앞을 가로막아 섰다. 머릿속에서 제이드의 기억이 번뜩였다. 제국 법률과 수용소 공식 규정.
“……잠깐만 기다려 주십시오, 조장님.”
태오는 최대한 차분하게 이성을 유지하며 목소리를 높였다.
“제국 치수 사법 규정 제14조와 수용소 관리령에 따르면, 노역 노예에게는 하루 최소 두 컵의 공식 배급수가 보장되어야 합니다. 광물 할당량 미달을 이유로 식수 배급을 전면 중단하는 것은 명백한 규정 위반입니다. 소장님께 보고된 정식 절차가 맞습니까?”
순간, 루퍼스의 움직임이 멈췄다. 그의 흉측한 상처가 가득한 얼굴이 기괴하게 일그러졌다. 노역동의 다른 노예들 역시 경악한 눈으로 태오를 바라보았다. 감히 노예가 제국의 규정을 들먹이며 감시조장에게 반발하다니, 이전의 제이드라면 상상도 할 수 없는 일이었다.
“규정……? 이 쥐새끼가 지금 뭐라고 주절거리는 거냐?”
루퍼스의 눈빛이 잔혹한 살기로 번들거렸다.
“이곳의 규정은 곧 내 채찍이고, 바르토 소장님의 말씀이 곧 제국의 법이다!”
쉭!
공기를 가르는 날카로운 파공음과 함께 루퍼스의 가죽 채찍이 태오를 향해 사정없이 날아왔. 태오는 제이드의 기억을 바탕으로 몸을 피하려 했으나, 영양실조로 극도로 마르고 쇠약해진 육체는 그의 현대적 이성만큼 빠르게 반응하지 못했다.
퍽!
“윽!”
날카로운 가죽 채찍이 태오의 왼쪽 어깨를 사정없이 내리쳤다. 얇은 누더기가 찢어지며 붉은 선혈이 뿜어져 나왔다. 살점이 타들어 가는 듯한 극심한 고통에 태오는 비명을 지르며 바닥으로 쓰러졌다. 어깨뼈가 으스러질 것 같은 타박상이 전신을 엄습했다.
“오빠!”
리나가 비명을 지르며 태오의 품으로 파고들었다. 루퍼스는 비웃으며 리나의 손아귀에서 식수 배급 코인을 강제로 빼앗아 갔다.
“주제 파악을 해야지, 더러운 노예 새끼가. 규정 같은 소리 하고 자빠졌네.”
루퍼스는 빼앗은 코인을 주머니에 넣고 주전자를 흔들며 노역동 문 앞으로 걸어갔다. 문가에 선 그가 노역동 내부의 노예들을 차갑게 내려다보았다.
“똑똑히 들어라. 오늘부터 사흘 동안 제3노역동의 식수 공급은 전면 중단된다. 살고 싶다면 땅을 파서 소금을 더 바치든가, 아니면 무릎 꿇고 기도나 해라. 비의 신께서 물이라도 내려주실지 아나?”
쾅!
무거운 철문이 닫히고 자물쇠가 걸리는 쇳소리가 사방을 메웠다. 완벽한 어둠과 절망이 다시 한번 제3노역동을 짓눌렀. 사흘간의 식수 차단령. 그것은 120명의 노예 모두에게 집단 탈수사 위기가 선포된 것과 다름없었다. 사방에서 신음과 절망적인 흐느낌이 터져 나왔다.
태오는 왼쪽 어깨를 움켜쥔 채 거친 숨을 몰아쉬었다. 뜨거운 피가 손가락 사이로 흘러내렸다. 당장의 무력 대항은 자살행위였다. 저들은 무기를 쥐고 있고, 자신은 사슬에 묶인 나약한 인간일 뿐이다.
‘진정해라. 분노는 아무것도 해결해 주지 않는다. 나는 공학자다. 계산하고 분석해야 살아남는다.’
태오는 떨리는 숨을 고르며 바닥의 흙을 움켜쥐었다. 손가락 마디마디에 박힌 굳은살을 통해 거칠고 단단한 대지의 촉감이 전해졌다. 바로 그 순간, 제이드의 육체에 남아 있던 전대 우물 파는 장인 가문의 기이한 감각이 깨어났다.
‘견습 굴착수 (Apprentice)’ 단계의 감각.
손끝을 타고 대지의 미세한 습기와 진동이 뇌리로 직접 주입되기 시작했다. 눈을 감았음에도 불구하고, 머릿속에서 주변 지반의 형태가 어렴풋한 입체 격자망으로 그려지는 기분이 들었다.
태오는 흙을 코끝에 가져다 대고 냄새를 맡았다. 짜고 텁텁한 소금기 너머로, 아주 미세하게 차갑고 축축한 흙냄새가 섞여 있었다.
‘물이 있다.’
그것은 미신이 아니었다. 열역학적 법칙과 지질학적 데이터가 가리키는 명백한 진실이었다. 교단이 아무리 기상 이적 마법으로 지상의 수분을 통제하고 착취하려 해도, 땅 아래 깊숙한 곳에 존재하는 물리적 수맥까지 완벽히 말려버릴 수는 없다.
태오는 어둠 속에서 눈을 번쩍 떴다. 그의 눈빛은 더 이상 절망에 빠진 노예의 것이 아니었다. 차갑고 예리한 수자원공학자의 눈빛이었다.
루퍼스의 순찰 경로, 수용소의 급수 주기, 그리고 이 돌방 지하의 미세한 수기 흐름. 머릿속의 복잡한 공식들이 하나의 거대한 생존 방정식을 그리기 시작했다.
사흘. 그 유예 시간 동안 지하의 수맥을 찾아내지 못하면 자신도, 그리고 품 안에서 바르르 떨고 있는 리나도 모두 말라 죽는다.
태오는 깨진 소금 바닥을 굳게 짚으며 다짐했다. 땅 아래의 진실은 기도가 아닌 설계와 노동으로 증명하는 것이다. 생존을 위한 공학적 투쟁은 이제 시작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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