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암흑 속의 사투, 불타는 절단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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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3동력실의 공기는 무겁고 축축했다. 고온의 증기가 파열된 파이프 사이로 뿜어져 나와 사방을 뿌연 안개로 채웠고, 타들어 가는 오존과 기계유 냄새가 코를 찔렀다. 기함 아르카디아의 새벽호 깊은 곳에 위치한 이 방은 함대의 심장부이자, 동시에 언제 터질지 모르는 화약고와 같았다.


쿠우우우웅.


바닥을 울리는 하이퍼드라이브 반응로의 묵직한 진동 속에서, 신이준은 지팡이를 짚은 채 벽에 몸을 기대고 있었다. 그의 왼쪽 관자놀이는 불로 지지는 것처럼 뜨거웠고, 이미 마비가 시작된 왼쪽 뺨은 완전히 감각이 죽어 뻣뻣하게 굳어 있었다. 말을 하려고 입술을 움직일 때마다 피비린내 나는 침이 입가로 흘러내렸다. 머리카락 절반은 이미 탈색된 것처럼 하얗게 새어 있었고, 그의 은빛 눈동자는 허공을 응시한 채 아무것도 비추지 못했다.


하지만 이준의 머릿속에 개방된 ‘심안(心眼)’은 전혀 다른 세상을 보고 있었다. 나침반의 청동 기어들이 그의 심장박동과 동조하여 째깍거릴 때마다, 동력실 내부의 차가운 금속 프레임과 복잡한 전선들이 푸른빛의 반투명한 양자 잔상으로 그의 뇌리에 입체적으로 그려졌다.


그리고 그 푸른 안개 너머, 반응로 하부 냉각 파이프 뒤편에 도사린 살기가 있었다.


‘카엘…….’


한도윤의 사주를 받은 사보타주 기술자. 그는 정비병 제복을 훔쳐 입은 채, 한 손에 군용 플라즈마 나이프를 쥐고 숨을 죽이고 있었다. 그가 숨어 있는 파이프 바로 옆에는 낯선 은색 단말기가 붉은색 광원을 깜빡이며 냉각선에 도킹되어 있었다. 시공간 붕괴 폭탄. 액정 위에서 줄어들고 있는 숫자는 이제 단 4분만을 가리키고 있었다.


“이준아, 놈이 어디 있느냐?”


마르쿠스가 기계 의수 ‘마이더스 핑거’를 웅웅거리며 낮게 물었다. 그의 그을린 금속 손가락 끝에서 미세한 스파크가 튀었다.


“반응로 제2 냉각 배관 뒤편…… 배기 밸브 바로 아래예요. 형씨, 놈이 움직여요!”


이준의 경고가 떨어짐과 동시에, 어둠 속에서 푸른 불꽃이 들이쳤다.


쉬이이익!


카엘이 어둠을 찢고 도약했다. 그가 쥔 군용 플라즈마 나이프가 주황색 열선을 내뿜으며 이준의 목덜미를 향해 호선을 그렸다. 시각이 먼 맹인 항해사는 도저히 피할 수 없을 것이라 확신한, 냉혹하고 가차 없는 살수였다.


하지만 이준의 뇌리에 각인된 푸른 잔상은 카엘의 도약 궤적을 소름 끼치도록 정확하게 추적하고 있었다. 이준은 칼날이 닿기 직전, 지팡이를 바닥에 짚으며 몸을 비틀었다.


스쳐 지나가는 초고온의 열기가 뺨의 피부를 태울 듯이 스쳐 지나갔다. 플라즈마 날이 공기를 가르는 날카로운 파열음이 이준의 귀를 때렸다. 카엘의 칼날은 이준의 군청색 항해사 제복 깃만을 찢어발겼을 뿐, 허공을 갈랐다.


“뭐지? 어떻게 피한 거냐!”


카엘의 목소리에 경악이 섞여 들었다. 완전한 맹인이 자신의 은밀한 기습을 종이 한 장 차이로 피해낸 것을 도저히 믿을 수 없다는 어조였다. 카엘은 즉각 자세를 다잡고 다시 칼날을 겨누려 했다.


“이 쥐새끼가 어디서 감히!”


그 순간, 마르쿠스가 거구의 신체를 던져 카엘의 앞을 가로막았다. 마르쿠스의 오른쪽 기계 의수가 굉음을 내며 회전했고, 그는 카엘을 엄호하려던 사설 경비병들을 향해 몸을 날렸다.


“이준아! 내 정비 도구를 써라!”


마르쿠스가 소리치며 자신의 허리춤에 차고 있던 묵직한 장비를 이준을 향해 던졌다. 이준은 심안의 잔상으로 날아오는 물체의 궤적을 포착하고 왼손을 뻗어 그것을 움켜쥐었다.


묵직한 금속 손잡이. 마르쿠스가 엔진 격벽 수리용으로 사용하던 고출력 산업용 플라즈마 절단기, ‘스파크’였다.


이준이 손잡이의 안전 트리거를 당기자, 웅웅거리는 진동음과 함께 길이 1미터에 달하는 청백색 플라즈마 칼날이 거칠게 뿜어져 나왔. 섭씨 5,000도에 달하는 초고온의 에너지가 주변의 수증기를 순식간에 증발시키며 백색 김을 피워 올렸다.


“눈먼 애송이가 감히 절단기 따위로 나를 상대하겠다고?”


카엘이 이빨을 드러내며 비웃었다. 그는 가볍게 발을 놀리며 이준의 측면으로 우회했다.


이준은 스파크를 움켜쥐고 카엘의 열원 잔상을 향해 가로베기를 날렸다. 그러나 시각이 없는 상태에서 벌이는 근접 전투는 극도의 오차를 동반했다. 거리 감각의 미세한 왜곡으로 인해, 이준이 휘두른 플라즈마 날은 카엘의 가슴팍을 한 뼘 차이로 비껴갔다. 대신 뒤편에 있던 두꺼운 강철 지지대를 내리쳐 녹여버렸을 뿐이었다.


치이이이익!


붉게 녹아내린 쇳물이 바닥으로 흘러내렸다.


“하하! 역시 장님이군! 헛손질 한 번에 네 녀석의 목이 날아갈 거다!”


카엘이 그 틈을 놓치지 않고 플라즈마 나이프를 이준의 심장을 향해 찔러왔다. 이준은 지팡이로 바닥을 짚으며 뒤로 물러서려 했으나, 다리의 신경 마비가 순간적으로 도져 발걸음이 꼬였다.


‘안 돼……!’


칼날이 그의 가슴팍에 닿기 직전, 이준은 왼손에 쥔 청동 나침반을 꽉 움켜쥐었다. 그의 뇌 신경망이 나침반의 시간 회어 코어와 미친 듯이 공명하기 시작했다. 관자놀이의 고열이 뇌를 태워버릴 것처럼 폭증했다.


[정체 영역 - 3초의 찰나 가동]


콰아아아아!


머릿속에서 무언가 툭 끊어지는 기괴한 파열음과 함께, 주변의 소음이 완벽한 침묵 속으로 잠겨 들었다.


파이프에서 뿜어져 나오던 백색 증기가 허공에 멈춰 섰다. 마르쿠스와 경비병들이 뒤엉켜 싸우는 모습이 정지 화면처럼 고정되었고, 이준의 목덜미를 향해 날아오던 카엘의 플라즈마 칼날 끝에서 튀던 주황색 스파크들이 허공에 정지한 먼지처럼 매달려 있었다.


시간이 멈췄다. 오직 이준만이 이 정지된 3초의 세계 속에서 움직일 수 있었다.


“아, 으윽……!”


극심한 고통이 이준의 대뇌 피질을 사정없이 짓밟았다. 그의 코와 귀에서 붉은 피가 울컥 쏟아져 나와 바닥으로 떨어지려다 허공에 멈춰 섰다. 그의 검은 머리카락 몇 가닥이 눈에 보일 정도로 하얗게 탈색되며 새어버렸다. 대가로 지불되는 뇌세포의 괴사. 그러나 이준은 멈추지 않았다.


그는 자신을 겨누고 있는 카엘을 공격하는 대신, 몸을 돌려 하이퍼드라이브 반응로 뒤편에 장착된 시공간 붕괴 폭탄을 향해 스파크 절단기를 치켜들었다.


폭탄의 액정 위에 표시된 숫자는 단 10초를 가리키며 멈춰 있었다.


이준은 심안을 통해 폭탄을 감싸고 있는 제국제 전자기 보안 실드의 미세한 주파수 균열을 투시했다. 그리고 그 가장 취약한 틈새를 향해, 5,000도의 청백색 플라즈마 날을 일직선으로 찔러 넣었다.


서걱!


초고온의 칼날이 보안 실드를 관통하여 폭탄의 메인 기폭 장치와 제어 회로를 정확히 수직으로 관통했다. 금속이 녹아내리는 기괴한 마찰음조차 들리지 않는 고요한 세계 속에서, 은색 단말기의 내부 부품들이 푸른 불꽃을 일으키며 용해되었다.


그리고 3초가 끝났다.


퍼어어엉!


시간이 흐르기 시작함과 동시에, 기폭 장치가 파괴된 폭탄에서 둔탁한 폭음이 터져 나왔다. 반응로를 통째로 날려버릴 시공간 붕괴 폭발이 아닌, 회로가 합선되어 녹아내리는 국소적인 유폭이었다. 강한 충격파가 동력실 내부를 휩쓸었고, 그 여파로 카엘은 비명을 지르며 뒤로 날아가 파이프 더미에 처박혔다.


“으아아악! 내, 내 폭탄이……!”


카엘은 가슴팍에 심각한 화상을 입은 채 피를 토하며 쓰러졌다. 그가 쥔 플라즈마 나이프가 바닥으로 떨어져 뒹굴었다.


이준 역시 충격파를 이기지 못하고 무릎을 꿇었다. 손가락 끝이 푸른빛 양자 변이로 인해 차갑게 굳어 있었고, 왼쪽 얼굴은 이제 완전히 아무런 감각도 느껴지지 않았다. 하지만 그는 입가에 흐르는 피를 닦아내며 거칠게 웃었다.


카운트다운은 멈췄다. 함대의 파멸을 불러올 시한폭탄은 완벽하게 해체되었다.


동력실 구석에서 숨어 상황을 지켜보던 하급 엔진 기술자 요한이, 연기 속에서 피를 흘리며 서 있는 이준을 향해 경외감에 가득 찬 눈빛을 보냈다. 그것은 인간을 향한 신뢰를 넘어, 기적을 행한 존재를 향한 종교적인 경배에 가까웠다.


하지만 승리의 여운은 길지 않았다. 동력실 외부 통로에서 거칠고 무거운 군화 소리가 빠른 속도로 다가오기 시작했다.


철컥, 철컥!


수십 명의 무장 대원들이 동력실 입구를 포위하며 총구를 겨누었다. 그들의 제복에는 자치위원회의 문양이 선명하게 새겨져 있었다. 그리고 그 무장 군경들의 뒤편에서, 차가운 미소를 지은 한 남자가 걸어 나왔다.


자치위원장 고르돈의 사설 경비대장이었다.

HẾT CHƯƠNG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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