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동력실의 이명, 시한폭탄의 고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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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옥의 고동 소리가 동력실 깊은 곳에서부터 새벽호를 향해 서서히 다가오고 있었다.


제1항해 관측실의 차가운 금속 바닥에 주저앉은 신이준은 거친 숨을 몰아쉬었다. 방금 전 드론 누리를 한도윤의 선실로 침투시켜 녀석이 제국 정보부와 내통하던 양자 주파수의 흔적을 가로채는 과정에서 대뇌 피질에 가해진 충격이 여전히 가시지 않았다. 왼쪽 관자놀이는 불로 지지는 것처럼 뜨겁게 달아올랐고, 이미 마비가 시작된 왼쪽 뺨은 감각이 완전히 죽어 뻣뻣하게 굳어 있었다. 입술을 움직일 때마다 피비린내 나는 침이 허옇게 새어 나왔다.


딸깍, 딸깍, 딸깍.


그때, 콘솔 위에 놓여 있던 청동 나침반이 기괴한 소리를 내며 요동치기 시작했다. 침묵을 지키던 나침반의 청동 바늘이 미친 듯이 회전하며 사방으로 푸른 스파크를 튀겼다. 단순한 오작동이 아니었다. 나침반 내부의 시공간 기어들이 비명을 지르며 가리키는 방향은 단 하나, 함선의 심장부가 위치한 하부의 제3동력실이었다.


‘이상 중력 왜곡 파동……?’


이준은 보이지 않는 눈을 가늘게 뜨며 머릿속에 개방된 ‘심안(心眼)’의 감각을 집중했다. 미세 중력 균열 감지 능력이 뇌리를 스쳤다. 새벽호의 강철 격벽 너머, 수백 미터 아래에 위치한 메인 하이퍼드라이브 반응로 주변의 공간 인장 선이 마치 팽팽하게 당겨진 활시위처럼 기괴하게 비틀리고 있었다. 그것은 자연적인 전자기 폭풍의 노이즈가 아니었다. 공간의 축을 인위적으로 비틀어 붕괴시키려는 파괴적인 에너지가 서서히 고개를 들고 있었다.


“아르고, 당장 함교에 비상 연락을 취해라. 제3동력실의 반응로 주변에서 이상 시공간 왜곡이 감지되었다. 사보타주 테러의 징후다!”


이준이 목을 긁어내리는 소리로 외쳤다. 그러나 아르고의 푸른 구체 홀로그램은 붉은색 노이즈를 뿜어내며 격렬하게 깜빡일 뿐이었다.


[치이익…… 경고. 항해사 신이준. 함교와의 메인 전산 통신 채널이 강제로 차단되었습니다. 외부 해킹 혹은 내부 보안 코드에 의한 물리적 락다운 상태입니다. 현재 관측실의 격리 무선 신호는 함교에 도달하지 못합니다.]


“한도윤……!”


이준은 이를 악물었다. 녀석은 자신이 꼬리를 밟혔음을 직감하고, 함대의 발을 묶기 위해 기함의 하이퍼드라이브를 통째로 날려버릴 작정인 것이 분명했다. 함교의 통신망을 마비시킨 채 은밀히 사보타주 기술자 카엘을 동력실로 보내 폭탄을 장착하게 만든 것이다. 이대로 놔두면 24시간 뒤가 아니라, 지금 당장 함대 전체가 우주의 먼지로 증발할 터였다.


이준은 비틀거리며 벽을 짚고 일어섰다. 지팡이를 쥔 손이 덜덜 떨렸다. 공식적인 군사 권한도, 함교의 통신망도 없는 지금, 녀석을 막을 수 있는 것은 자신뿐이었다.


“아르고, 정비고의 마르쿠스에게 직접 연결되는 예비 유선 주파수를 열어라. 군용 통신망이 아닌 기계실 전용 유지보수 회선이다. 그것만큼은 한도윤의 권한으로도 쉽게 막지 못해.”


[알겠습니다. 유선 아날로그 회선 연결을 시도합니다…… 치이익…… 연결되었습니다.]


“마르쿠스 형씨! 내 목소리 들려요? 당장 내 말 들어!”


이준이 수화기에 대고 소리쳤다. 통신 너머로 윙윙거리는 기계 소음과 함께 마르쿠스의 퉁명스러운 목소리가 흘러나왔다.


-어이, 이준이냐? 갑자기 이 낡은 유선 회선은 왜 건드리는 거야? 지금 동력실 전력 그리드가 이상하게 흔들려서 정신없단 말이다.


“그게 바로 사보타주예요! 제3동력실 메인 반응로 뒤쪽, 하이퍼드라이브 코어 주변에서 시공간 왜곡 파동이 감지되고 있어요. 누군가 반응로를 폭파하려 시공간 붕괴 폭탄을 설치 중이라고요! 당장 야간 근무 조장인 박지훈과 대원들을 대피시키고, 반응로 주변의 수동 격벽을 차단해요!”


-뭐라고? 폭탄이라니, 그게 무슨 미친 소리야! 아르고 시스템에는 아무런 경보도 안 떴어!


“한도윤이 함교 전산망을 해킹해서 경보를 강제로 누락시킨 거예요! 내 말을 믿어요, 마르쿠스 형씨! 1초가 급해요. 나도 지금 그쪽으로 가고 있으니까, 제발!”


이준의 처절한 외침에 수화기 너머의 마르쿠스가 침묵했다. 투박하고 거친 정비장치였지만, 그는 이 눈먼 청년이 가졌던 기괴할 정도로 정확한 예지 능력을 이미 목격한 바 있었다. 마르쿠스의 거친 욕설이 수화기를 때렸다.


-제기랄, 네 녀석이 그렇게까지 말한다면 가만히 있을 순 없지! 지훈이 녀석한테 연락해서 수동 격벽 레버를 당기라고 하겠다. 너도 조심해라, 이준아!


뚝.


통신이 끊겼다. 이준은 지팡이를 단단히 움켜쥐고 관측실 문을 박차고 나섰다.


새벽호의 하부 데크로 향하는 복도는 어둡고 길었다. 비상등의 붉은 불빛만이 일정한 간격으로 회색빛 금속 벽면을 비추고 있었다. 눈이 보이지 않는 이준에게는 그 붉은 빛조차 무의미했다. 오직 뇌리에 그려지는 푸른빛의 양자 잔상, 그리고 지팡이가 바닥을 때릴 때마다 울려 퍼지는 둔탁한 반사음만이 그의 유일한 이정표였다.


‘더 빨리 달려야 해. 동력로가 터지면 모든 루프가 끝장난다.’


이준은 비틀거리는 다리를 억지로 움직이며 어두운 복도를 질주했다. 하지만 계단을 내려가 하부 구역 통로로 접어드는 순간, 그의 뇌 신경망이 비명을 질렀다.


콰아아아아!


귀가 먹먹해지는 고주파 이명이 그의 머릿속을 사정없이 짓밟았다. 나침반과의 무리한 정신 동조, 그리고 드론 누리를 기동하며 쌓였던 대뇌 피질의 괴사 부작용이 마침내 임계점에 도달한 것이다. 머릿속의 신경 세포들이 양자 마찰로 인해 문자 그대로 타들어 가기 시작했다.


“아, 으윽……!”


이준은 질주하던 걸음을 멈추고 차가운 금속 벽면에 몸을 부딪쳤다. 다리의 힘이 스르륵 풀리며 바닥으로 쓰러졌다. 심안으로 간신히 유지하고 있던 푸른색 입체 잔상들이 유리창이 깨지듯 산산조각 나며 사라졌다. 완벽한 암흑. 그 어떤 소리도, 형태도 감지되지 않는 끔찍한 고독의 심연이 그를 덮쳤다.


동시에 환청이 들이쳤다. 이전 루프에서 제국군의 폭격에 기함이 반파당할 때 지르던 수만 명의 비명소리, 불길에 휩싸여 살려달라고 울부짖던 동료들의 목소리가 귓가를 찢을 듯이 울려 퍼졌다.


‘정신 차려, 신이준. 여기서 쓰러지면 이번 회차는 끝이다. 모두가 죽어.’


그는 어금니를 짓씹었다. 입안 가득 비린 피 맛이 퍼졌다. 이준은 떨리는 손으로 제복 안주머니를 뒤져 낡은 청동 오르골을 꺼냈다. 손가락 끝의 감각이 마비되어 태엽을 감는 것조차 뜻대로 되지 않았다. 그는 어깨로 벽을 지탱한 채, 이빨로 오르골의 태엽 기어를 물고 억지로 돌렸다.


끼리릭, 리릭.


태엽이 감기고, 이윽고 아날로그의 맑은 멜로디가 차가운 복도 바닥에 잔잔하게 흐르기 시작했다. 아르카디아의 전통 자장가 ‘은빛 항로’의 음파가 그의 귀를 타고 뇌 신경으로 전해졌다.


디지털의 전자기적 간섭을 받지 않는 순수한 아날로그의 진동. 그 부드러운 음파가 날뛰던 이준의 뇌파를 강제로 진정시켰다. 타오르던 대뇌 피질의 열기가 서서히 식어 내렸고, 끊어졌던 다리의 신경망이 미세하게 다시 맞춰지는 느낌이 들었다. 흐릿해졌던 심안의 시야 위에, 새벽호 하부 구역의 차가운 금속 프레임들이 다시금 푸른 잔상으로 어렴풋이 그려지기 시작했다.


이준은 피가 섞인 가래를 바닥에 뱉어내며 지팡이를 짚고 다시 일어섰다. 그의 이마에서 흘러내린 식은땀과 피눈물이 뺨을 타고 흘러내려 턱끝에서 툭툭 떨어졌다. 백발로 변한 그의 앞머리칼 몇 가닥이 이마에 끈적하게 달라붙었다.


그는 다시 달리기 시작했다. 이제 다리의 감각은 거의 느껴지지 않았지만, 오직 머릿속에 각인된 동력실의 물리적 좌표만을 향해 몸을 던졌다.


* * *


같은 시각, 제3동력실 내부.


수석 정비사 마르쿠스는 거구의 몸을 이끌고 하이퍼드라이브 메인 코어의 하부 통로를 바쁘게 움직이고 있었다. 그의 오른쪽 기계 의수 ‘마이더스 핑거’가 웅웅거리는 진동음을 내며 복잡한 전선 다발을 스캔했다.


“이준이 녀석의 예언이 틀린 적은 없었지…… 제기랄, 지훈아! 수동 격벽 통제기 상태는 어때?”


통로 상부에서 야간 근무 조장 박지훈이 땀을 뻘뻘 흘리며 수동 제어반의 레버를 움켜쥐고 소리쳤다. “정비장님! 네비게이션 시스템에는 이상이 없다고 나오는데, 실제 반응로의 유압이 급격히 떨어지고 있습니다! 누군가 비상 냉각 밸브를 강제로 우회해서 전력 선로를 조작한 게 분명합니다!”


“망할 쥐새끼 놈들!”


마르쿠스가 기계 의수로 코어 뒤쪽의 두꺼운 철판을 뜯어냈다. 그 안쪽, 원래는 존재하지 않아야 할 낯선 은색 단말기가 붉은색 스펙트럼 광원을 깜빡이며 메인 제어선에 직접 도킹되어 있었다. 단말기의 액정 스크린 위에는 기분 나쁜 숫자가 빠른 속도로 줄어들고 있었다.


[00:04:12]


시공간 붕괴 폭탄의 카운트다운이었다. 제국제 특수 사보타주 장비가 새벽호의 심장부에 기생해 동력을 좀먹고 있었던 것이다. 시스템 경보가 울리지 않았던 것은, 이 장치가 뿜어내는 미세한 중력 왜곡 파동이 아르고의 구형 센서를 완벽하게 기만하고 있었기 때문이었다.


“지훈아! 당장 야간 근무 대원들을 이 구역에서 철수시켜! 그리고 수동 격벽을 락다운해라! 폭발이 일어나더라도 피해를 이 격실 내부로 가둬야 해!”


마르쿠스가 소리치며 기계 의수로 폭탄의 도선을 분석하려 했다. 하지만 폭탄 외벽에 흐르는 전자기 실드가 그의 금속 손가락을 거칠게 밀어냈다. 스파크가 튀며 마르쿠스의 의수 손가락 끝이 검게 그을렸다.


“으윽, 제국의 최신 보안 실드인가? 내 정비 도구로는 뚫을 수 없어!”


그때, 동력실의 두꺼운 수동 철문이 거칠게 열리며 피투성이가 된 신이준이 안으로 들어섰다. 지팡이를 짚은 그의 전신은 땀과 피로 젖어 있었고, 그의 머리카락 절반은 이미 백발로 변해 기괴한 비장미를 풍기고 있었다.


“이준아!”


마르쿠스가 경악하며 그를 바라보았다. 이준은 흐릿한 은빛 눈동자로 허공을 응시한 채, 나침반의 침이 가리키는 방향을 향해 손가락을 뻗었다.


“마르쿠스 형씨…… 늦지 않았어요. 폭탄의 카운트다운이 시작되었죠?”


“그래, 망할 제국제 시공간 폭탄이다! 앞으로 4분도 남지 않았어. 보안 실드가 걸려 있어서 해체 도선을 건드릴 수가 없다!”


이준은 심안을 통해 반응로 뒤쪽에 숨겨진 폭탄의 푸른 잔상과, 그 주변에 흐르는 불안정한 중력 균열의 흐름을 읽어냈다. 공간이 미세하게 찢어지며 발생하는 왜곡 상수가 이준의 머릿속에 수식으로 정렬되었다.


그러나 진정한 위험은 폭탄만이 아니었다.


동력실의 어두운 스팀 파이프 숲 너머, 심안의 잔상 속에 또 다른 인간의 열원 실루엣이 포착되었다. 차갑고 예리한 살기를 품은 채, 한 손에 군용 플라즈마 나이프를 쥐고 어둠 속에 숨어 있는 사내.


한도윤의 지령을 받고 폭탄을 장착한 사보타주 기술자, 카엘이었다.


카엘은 이준과 마르쿠스가 폭탄에 접근하는 것을 저지하기 위해, 어둠 속에서 소리 없이 살수를 준비하고 있었다.


이준은 나침반을 꽉 움켜쥐며 나직하게 속삭였다.


“형씨, 조심해요. 놈이…… 바로 우리 앞에 숨어 있어요.”

HẾT CHƯƠNG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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