보이지 않는 밀작자, 그림자 추적
함교를 뒤덮은 붉은 비상등 불빛 아래, 신이준은 소매로 코 밑을 훔쳐냈다. 거칠게 닦아낸 소매 끝동에는 끈적하고 뜨거운 핏방울이 검붉은 얼룩을 남겼다. 머릿속이 마치 수만 개의 바늘로 찔리는 것처럼 지독하게 지끈거렸다. 양자 크로논 나침반의 억지 기동과 뇌 신경망의 강제 동조가 남긴 혹독한 대가였다.
왼쪽 뺨은 이미 감각이 마비되어 무겁게 처져 있었다. 말을 하려고 입술을 움직일 때마다 발음이 미세하게 새어 나갔다. 그럼에도 이준은 조종 콘솔을 꽉 움켜쥔 채 버텨 섰다. 쓰러질 수는 없었다. 이제 겨우 첫 번째 기습을 막아냈을 뿐이니까.
“이, 이건 말도 안 돼…….”
바닥에 주저앉은 차석 항해사 서우진이 넋이 나간 눈으로 강화 창밖을 바라보며 중얼거렸다. 제국군의 플라즈마 어뢰가 새벽호의 방어막에 부딪혀 무해한 노란색 불꽃 파편으로 흩어지는 광경은, 그가 사관학교에서 배운 모든 전술 교과서를 부정하는 기적이었다. 공식 레이더가 감지하기도 전에 어뢰의 주파수를 맞추고 극성을 전이시키다니, 그것은 인간의 연산력으로는 불가능한 영역이었다.
“서우진 소위, 바닥에서 꼴사납게 굴지 말고 당장 일어나라.”
세라가 차가운 목소리로 서우진을 쏘아붙였다. 그녀는 검은색 가죽 전술 슈트의 매무새를 가다듬으며 이준의 곁으로 다가왔다. 세라의 날카로운 눈동자는 이준의 흘러내리는 코피와 백발이 섞이기 시작한 머리칼을 주시하고 있었다. 그녀의 눈빛에는 이제 의심 대신 깊은 경외감과 걱정이 서려 있었다.
“유리 관제사, 방어막 출력 상태는?”
세라의 질문에 은색 고글을 쓴 유리가 떨리는 손으로 콘솔을 조작하며 답했다. “순간 과부하로 예비 전력 회로 일부가 차단되었지만, 메인 실드 발전기는 정상입니다. 어뢰의 파괴 에너지를 역위상으로 흡수해 흘려보낸 덕분에 선체 격벽의 피해는…… 제로입니다. 믿을 수 없을 정도로 완벽한 방어였습니다.”
함교 내부의 장교들 사이에서 안도의 한숨과 함께 기묘한 웅성거림이 퍼져 나갔다. 모두가 이 눈먼 임시 항해사, 신이준을 괴물이라도 보는 듯한 눈빛으로 바라보고 있었다.
하지만 이준은 그들의 시선을 느끼지 못했다. 아니, 정확히는 신경 쓸 여유가 없었다. 그의 머릿속에 개방된 ‘심안(心眼)’은 함교 내부의 모든 전자기 잔상과 인물들의 열원 실루엣을 푸른빛의 반투명한 궤적으로 그려내고 있었다. 이준은 그 푸른 잔상들 사이에서, 함교 한구석에 동상처럼 꼿꼿이 서 있는 한 남자의 실루엣에 온 신경을 집중했다.
수석 전술 장교, 한도윤.
도윤은 평소처럼 완벽하게 정돈된 제복 핏을 유지한 채 침묵을 지키고 있었다. 그의 얼굴은 포커페이스로 가려져 있었지만, 이준의 심안에 포착된 도윤의 신체 반응은 전혀 달랐다. 도윤의 심장박동은 비정상적으로 가파르게 요동치고 있었고, 그의 손가락 끝은 미세하게 떨리고 있었다.
그것은 경악과 공포, 그리고 예상을 벗어난 사태에 직면한 배신자의 전형적인 반응이었다.
‘도윤아, 너는 지금 지옥을 보고 있겠지.’
이준은 속으로 차갑게 읊조렸다. 제국군 한스 편대에게 새벽호의 정확한 도주 좌표를 실시간으로 송신한 밀작자. 10만 명의 아르카디아 피난민들을 몰살의 구렁텅이로 밀어 넣은 진짜 배신자가 바로 그의 눈앞에 있었다. 사관학교 시절부터 늘 자신에게 밀려 차석에 머물렀던 동기이자, 열등감에 영혼을 판 스파이.
도윤은 이준이 어떻게 제국의 스텔스 어뢰 궤적을 미리 알고 막아냈는지 도저히 이해하지 못하고 있을 것이다. 자신이 넘겨준 완벽한 좌표가 무력화되었으니, 제국군 본대에 추가적인 연락을 취하려 들 것이 분명했다.
“신이준 항해사.” 세라가 이준의 어깨를 조용히 짚으며 나직한 목소리로 속삭였다. “몸 상태가 심상치 않다. 일단 관측실로 돌아가 안정을 취하는 게 좋겠어. 함교의 사후 수습은 내가 맡지.”
“……감, 사합니다, 대장님.” 이준은 마비된 왼쪽 뺨 때문에 어눌하게 새는 발음으로 답했다. “하지만 경계를 늦추지 마십시오. 한스 편대는 기습 실패를 인지하고 은신처를 찾기 위해 정찰 드론들을 전면 투입할 겁니다. 그리고…… 내부의 쥐새끼가 다시 움직일 시간입니다.”
세라의 눈동자가 매섭게 빛났다. 그녀는 이준이 가리키는 방향이 함교 내부의 장교들임을 직감했다. “알고 있다. 내 치안대원들을 동원해 함내 모든 외부 송신망을 극비리에 감시하겠다. 너는 몸을 추스려라.”
이준은 지팡이 끝으로 바닥을 짚으며 천천히 함교를 빠져나갔다. 그의 걸음걸이는 비틀거렸고, 쇠약해진 육체는 한 걸음을 옮길 때마다 비명을 지르는 듯했다. 하지만 그의 머릿속은 그 어느 때보다 날카롭게 회전하고 있었다.
* * *
기함 상부에 위치한 돔 형태의 제1항해 관측실.
차가운 금속 격벽으로 둘러싸인 방 안으로 들어서자마자, 이준은 참았던 신음소리를 내뱉으며 바닥에 주저앉았다. 관자놀이의 고열이 뇌를 통째로 태워버릴 듯이 끓어올랐다. 이준은 떨리는 손으로 제복 안주머니를 더듬어 낡은 청동 오르골을 꺼냈다.
태엽을 감을 힘조차 부족해, 그는 몇 번이나 손가락을 미끄러뜨린 끝에 간신히 태엽을 한 바퀴 돌렸다.
띠리리, 링…….
아르카디아의 낡은 자장가 ‘은빛 항로’의 아날로그 멜로디가 어두운 관측실 안을 잔잔하게 채웠다. 아날로그 음파의 부드러운 진동이 그의 뇌 신경망을 타고 흐르며 날뛰던 뇌파를 강제로 가라앉혔다. 극심한 두통이 서서히 둔탁한 통증으로 가라앉자, 이준은 거친 숨을 몰아쉬며 벽에 등을 기대고 앉았다.
‘시간이 없어. 한도윤이 제국 정보부 특수작전팀 [섀도우 팽]과 추가 통신을 시도하기 전에 꼬리를 잡아야 해.’
이준은 눈을 감았다. 보이지 않는 암흑 속에서 그는 이마의 방사선 슈트 신경 포트에 손을 얹었다.
“누리, 기동해라.”
이준의 뇌파 신호가 슈트의 송신기를 타고 관측실 한구석에 대기 중이던 초소형 드론에게 전달되었다. 주먹만 한 크기에 고양이 귀 모양을 한 구형 탐사 드론 ‘누리’의 푸른색 센서 안구가 깜빡이며 소리 없이 허공으로 떠올랐다.
누리는 이준이 하부 폐기물 격납고에서 직접 수거해 뇌파 동조형으로 개조한 그의 분신이자 유일한 눈이었다. 이준은 자신의 대뇌 피질을 누리의 초음파 센서 및 양자 스캔 모듈과 다이렉트로 연결했다.
“으윽……!”
신경이 동조되는 순간, 이준의 뇌리에 날카로운 스파크가 튀었다. 눈앞이 번쩍이며 새벽호 내부의 복잡한 물리적 구조가 3D 입체 잔상으로 머릿속에 직접 그려지기 시작했다. 뇌를 바늘로 찌르는 듯한 통증이 다시 고개를 들었지만, 이준은 어금니를 꽉 깨물며 동조율을 유지했다.
“누리, 함교 구역 통로로 침투해라. 전술 장교 구역과 한도윤의 개인 선실 주변의 미세 전파를 스캔한다.”
소리 없이 부유하는 드론 누리는 환기구의 좁은 틈새를 미끄러지듯 통과하여 함교 하부의 격실 구역으로 향했다. 이준의 머릿속에는 누리가 전송하는 초음파 데이터가 실시간으로 번역되어 나타났다. 철제 파이프의 진동, 격벽 너머로 흐르는 냉각수의 소리, 그리고 함교 장교들의 불규칙한 발소리까지.
이준은 함교 장교들의 알리바이를 하나씩 대조하기 시작했다. 제국군 한스 편대에게 좌표가 전송되었던 정확한 시간대. 그 시간대에 외부 통신 주파수를 건드릴 수 있었던 인물들의 동선 격자를 머릿속의 지도 위에 펼쳐놓았다.
서우진은 당시 조종 콘솔에 묶여 있었고, 유리는 방어막 충전계통을 점검 중이었다. 로버트 함장은 사령관실에서 자치위원회와의 화상 통화를 준비하고 있었다.
오직 한 사람, 한도윤만이 기습 발생 5분 전, 전술 연산 장치를 점검한다는 명목 하에 예비 통신 중계기 근처의 사각지대에 위치해 있었다.
‘심증은 확실해. 하지만 고르돈 위원장과 자치위원회를 설득하려면 단순한 동선 대조만으로는 부족해. 한도윤의 단말기에서 직접 방출되는 제국제 특수 암호 주파수의 물리적 물증이 필요하다.’
그때, 누리의 센서에 이상 진동이 포착되었다.
한도윤이 함교의 메인 전술실을 나와 자신의 개인 선실로 향하고 있었다. 그의 걸음걸이는 평소의 우아함과 달리 초조함으로 인해 미세하게 빨라져 있었다.
이준은 누리를 한도윤의 선실 상부 환기구 그릴 안쪽으로 밀어 넣었다. 먼지 낀 그릴 틈새로 한도윤의 푸른색 양자 잔상이 투시되었다.
도윤은 선실 문을 굳게 잠근 뒤, 제복 안주머니에서 초소형 단말기를 꺼냈다. 일반적인 아르카디아 연합제 단말기가 아니었다. 은색 금속 재질에 붉은색 제국 황실 인장이 희미하게 새겨진, 신성 제국 군용 양자 송신기였다.
‘한도윤의 선실에서 발견된 제국제 부품…… 저것이 바로 밀작의 도구였군.’
이준의 심장이 쿵쾅거리기 시작했다. 도윤이 단말기의 홀로그램 화면을 켜자, 미세한 주파수 파동이 공기 중으로 방출되었다.
“누리, 주파수 정밀 스캔 개시. 저 단말기의 양자 얽힘 패킷을 가로채라.”
이준은 뇌 신경의 증폭률을 극한으로 끌어올렸다. 그의 은빛 눈동자 주변의 미세 혈관들이 터지며 핏줄이 붉게 솟구쳤다. 눈가에 은빛 방사선 피막이 흐려지며 극심한 안구 충혈과 함께 뜨거운 눈물이 뺨을 타고 흘러내렸다. 뇌세포가 타들어 가는 고통 속에서도, 이준은 누리의 수신 주파수를 한도윤의 단말기 파동에 동조시켰다.
[삐이이이- 양자 암호 해독 시도 중. 동조율 15%…… 30%…….]
머릿속에서 아르고의 경고음이 요란하게 울렸다. 제국의 보안 장벽은 견고했다. 한도윤이 사용하는 단말기는 제국 정보부의 최신 암호화 알고리즘으로 보호받고 있었다.
그때, 한도윤이 기묘한 위화감을 느낀 듯 갑자기 고개를 들어 환기구 방향을 바라보았다. 사관학교 차석 졸업생다운 날카로운 직관이었다.
“누구지?”
도윤이 단말기를 쥔 손에 힘을 주며, 다른 한 손으로 품속의 암살용 독침 펜을 만지작거렸다. 그는 즉각 단말기의 방화벽 우회 프로토콜을 가동해 주변 전파망을 역스캔하기 시작했다.
‘들켰나?!’
이준은 즉각 누리의 액티브 스캔을 중단하고 수동 수신 모드로 전환하려 했다. 하지만 도윤의 대응은 한 발 빨랐다. 도윤의 전술 단말기에서 방출된 강력한 방어벽 신호가 누리의 수신 장치와 정면으로 충돌했다.
파지직!
“아아악!”
이준은 관측실 바닥을 구르며 비명을 질렀다. 뇌 신경망에 직접 가해진 전자기 충격파가 그의 대뇌 피질을 사정없이 난도질했다. 머릿속이 하얗게 번쩍이며 극심한 두통 발작이 그를 덮쳤다. 눈과 코에서 동시에 붉은 피가 흘러내려 바닥을 적셨다.
그 지독한 고통 속에서도 이준은 ‘심안’의 끈을 놓지 않았다. 멈춰진 시간 속에서 발버둥 치듯, 그는 벽 너머 한도윤의 신체 잔상이 급격히 요동치는 것을 포착했다.
도윤은 침입자의 흔적을 발견하자마자, 제국과의 통신 패킷을 급히 암호화하여 통째로 지워버리기 시작했다. 그의 손가락이 단말기 콘솔 위에서 보이지 않을 정도로 빠르게 움직였다. 제국 정보부 특수작전팀 [섀도우 팽]과의 연결 흔적을 완전히 인멸하려는 꼬리 자르기였다.
“누리…… 퇴각해라……!”
이준은 피를 토하듯 명령했다. 누리는 소리 없이 환기구를 빠져나와 어둠 속으로 사라졌다.
* * *
관측실 바닥에 쓰러진 이준은 한동안 거친 숨만을 몰아쉬었다. 귀에서는 찢어지는 듯한 고주파 이명이 쉴 새 없이 메아리쳤고, 온몸의 감각이 마비되어 손가락 하나 까딱하기 힘들었다.
실시간 통신 내용을 직접 가로채 한도윤의 배신을 만천하에 증명하려던 계획은 실패했다. 도윤의 철저한 암호화와 신속한 데이터 삭제 때문에 확실한 물리적 물증을 확보하지 못한 것이다. 이 상태로는 자치위원회의 완고한 고르돈 위원장을 설득할 수 없었다. 오히려 역으로 무고죄로 몰려 격리당할 위험이 컸다.
하지만 이준은 완전히 실패한 것이 아니었다.
그는 떨리는 손으로 바닥에 떨어진 누리의 수신 기록 데이터를 더듬어 확인했다. 누리의 메모리 칩 깊숙한 곳에, 한도윤의 단말기가 방출했던 미세한 전파 흔적이 단 한 줄의 주파수 코드로 남아 있었다.
[수신 주파수: 144.825 MHz - 신성 제국 군용 양자 대역]
이준의 안면 마비된 입꼬리가 기괴하게 일그러지며 미소를 지었다.
“잡았다…… 쥐새끼의 꼬리를.”
확실한 자백이나 통신 원본은 없었지만, 한도윤의 단말기가 제국군 전용 양자 주파수와 실시간으로 동조하고 있었다는 명백한 흔적이었다. 이 주파수 반응은 향후 도윤의 목줄을 죌 결정적인 단서가 될 것이다.
그러나 이준이 승리의 미소를 짓는 것도 잠시, 관측실의 메인 콘솔이 기이하게 공명하며 미세한 진동을 토해내기 시작했다.
나침반의 청동 바늘이 우주의 보이지 않는 중력선을 따라 비틀리며 날카로운 소리를 냈다. 그것은 함대의 심장인 제3동력실 방향에서 거대한 시공간적 이상 왜곡이 시작되고 있음을 알리는 불길한 전조였다.
한도윤은 자신의 정밀 스캔망이 작동하고 있음을 눈치채고, 정체가 완전히 탄로 나기 전에 함대의 발을 묶어버릴 대규모 사보타주를 결행하려 움직이고 있었다.
지옥의 고동 소리가 동력실 깊은 곳에서부터 새벽호를 향해 서서히 다가오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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