첫 번째 어뢰, 인과를 비트는 항로
“너…… 대체 정체가 뭐냐? 어떻게 이걸 알고 있었지?”
치안대장 집무실의 무거운 공기를 뚫고 세라의 떨리는 목소리가 흘러나왔다. 방금 전까지 이준의 목덜미를 베어버릴 듯이 매섭게 웅웅거리던 플라즈마 블레이드 ‘발키리’의 푸른 열선은 완전히 꺼진 상태였다. 세라의 손목에 채워진 군용 무전기 너머로는 격렬한 가스 폭발음과 함께 대피에 성공한 빅토르 상사의 거친 숨소리가 간헐적으로 섞여 들려왔다.
신이준은 안면 마비로 인해 굳어버린 왼쪽 입꼬리를 애써 밀어 올리며, 지팡이를 짚은 손에 힘을 주었다. 흐릿한 은빛 방사선 피막으로 뒤덮인 그의 눈동자는 초점을 잃은 채 허공을 응시하고 있었지만, 그의 내면에 개방된 ‘심안(心眼)’은 세라의 흔들리는 신체 잔상과 집무실 내부의 전자기 흐름을 기하학적인 선형 궤적으로 완벽하게 포착하고 있었다.
“시간이 없습니다, 대장님.” 이준의 목소리는 발음이 미세하게 샜음에도 기묘할 정도로 차분했다. “제가 어떻게 알았는지는 중요하지 않습니다. 중요한 것은 제국의 은밀한 사냥개들이 이미 우리의 목덜미를 노리고 있고, 기습까지 남은 시간이 22시간 미만이라는 사실입니다.”
세라는 침을 삼켰다. 방금 전 눈앞에서 벌어진 기적 같은 예언의 실현은 그녀의 군인으로서의 이성을 완전히 마비시켰다. “침로를 변경해야 한다면…… 당장 함장님과 자치위원회에 비상 회의를 요청해야 한다. 서우진과 고르돈 위원장도 이 경보를 들으면 움직일 거다.”
“안 됩니다.” 이준이 단호하게 말을 잘랐다. “그들은 이미 저를 광인으로 규정했습니다. 공식적인 절차를 밟으려 해봐야 고르돈 위원장은 제 말을 권력 찬탈을 위한 선동으로 몰아붙여 저를 지하 감옥에 가두고 나침반을 압수하려 들 겁니다. 서우진 역시 기득권을 지키기 위해 제 궤도 계산을 묵살하겠지요. 우리는 공식 지휘부의 눈을 피해 비공식적으로 움직여야 합니다.”
“비공식적이라니? 내 치안유지대 병력만으로는 제국의 어뢰를 막을 수 없어.” 세라가 이마에 흐르는 식은땀을 닦으며 반박했다.
“막을 수 있습니다. 함교의 방어막 관제사인 ‘유리’를 포섭하십시오.” 이준이 주머니 속 청동 나침반을 만지작거리며 말을 이었다. 나침반 코어는 이준의 심장박동과 동조하여 미세하고 차가운 푸른 진동을 그의 손끝으로 흘려보내고 있었다. “제국의 플라즈마 어뢰는 일반적인 전자기 실드를 그대로 관통하도록 설계되어 있습니다. 첫 번째 루프에서 새벽호가 단 한 발에 완파당했던 이유가 바로 그겁니다. 하지만 어뢰가 충돌하는 정확한 마이크로초 단위의 타이밍에 맞춰 방어막의 극성을 역전시킨다면, 그 파괴 에너지를 실드 내부로 흡수해 무해한 불꽃으로 상쇄할 수 있습니다.”
“방어막 극성 초고속 전이…….” 세라의 눈동자가 크게 요동쳤다. “유리는 내 사관학교 동기이자 오랜 우방이다. 비공식적인 조치라 할지라도 내 보안 직권으로 명령한다면 콘솔을 개조해 줄 거다. 하지만 신이준, 만약 네 타이밍이 단 0.1초라도 어긋난다면 새벽호는 그 자리에서 증발한다.”
“틀리지 않습니다.” 이준이 낮게 속삭였다. “제 머릿속에는 이미 그들의 포격 궤도가 한 치의 오차도 없이 각인되어 있으니까요.”
세라는 이 눈먼 청년의 얼굴을 오랫동안 응시했다. 그의 은빛 눈동자 너머에는 광기가 아닌, 뼈저린 절박함과 숭고한 책임감이 서려 있었다. 마침내 세라는 깊은 한숨을 쉬며 무전기를 켰다. “유리 관제사, 내 개인 보안 채널로 즉시 응답하라. 아무에게도 알리지 말고 극비리에 진행해야 할 장비 개조가 있다.”
* * *
시간은 무자비하게 흘렀다. 이준은 제1항해 관측실의 침대에 앉아 홀로 어둠을 견디고 있었다. 관자놀이 부근에서 시작된 지독한 고열은 대뇌 피질을 바늘로 찌르는 듯한 극심한 두통 발작을 유발했다. 머릿속의 ‘미래 궤도 암기’ 장치에 저장된 제국군의 포격 시간표가 그의 뇌 신경망과 마찰을 일으키며 타들어 가고 있었다. 귀에서는 고주파의 금속성 이명이 쉴 새 없이 울부짖었다.
이준은 떨리는 손으로 제복 안주머니에서 낡은 청동 오르골을 꺼냈다. 손끝의 감각만으로 태엽을 천천히 감자, 아르카디아의 전통 자장가인 ‘은빛 항로’의 아날로그 멜로디가 어두운 방안을 부드럽게 채웠. 멜로디가 귀를 타고 뇌 신경에 도달하자, 미친 듯이 날뛰던 뇌파가 서서히 가라앉으며 지독한 두통이 일시적으로 완화되었다.
‘이현아, 조금만 기다려라. 이번 루프에서는 반드시 모두를 살려내고 네가 있는 곳으로 가겠다.’ 이준은 오르골을 꽉 쥐며 자아를 상실하지 않기 위해 정신을 바짝 차렸다.
마침내 제국군의 기습 예정 시간인 24시간 루프의 기점이 코앞으로 다가왔다. 이준은 세라의 비공식적인 엄호를 받으며 새벽호 함교에 발을 들였다. 함교는 폭풍 전야처럼 고요했다. 서우진은 거만한 자세로 메인 조종 콘솔 앞에 앉아 있었고, 아르고 시스템의 스크린에는 깨끗한 연두색 파형만이 평화롭게 흐르고 있었다.
“너가 왜 여기에 다시 나타난 거지?” 서우진이 이준을 발견하고 불쾌하다는 듯 미간을 찌푸렸다. “보안 대원들은 뭘 하는 거야? 관측실에 격리되어 있어야 할 광인을 왜 함교에 방치하는 거지?”
“내가 임시로 그의 관측 협조를 요청했다, 서우진 소위.” 세라가 차가운 기세로 이준의 앞을 가로막아서며 치안대장으로서의 권위를 내세웠다. 서우진은 세라의 서슬 퍼런 눈빛에 혀를 차며 고개를 돌렸다.
이준은 주머니 속 청동 나침반의 바늘이 미친 듯이 회전하며 푸른 스파크를 튀기는 것을 느꼈다. 심장박동이 터질 듯이 빨라졌다. 기습 타이밍까지 남은 시간, 30초.
“시간이 없습니다!” 이준이 보이지 않는 눈을 치켜뜨며 외쳤다. “적의 플라즈마 어뢰가 발사되었습니다! 도달까지 25초!”
“무슨 미친 소리야! 레이더는 깨끗해!” 서우진이 조종간을 움켜쥐며 소리쳤다. 실제로 함교의 메인 전산망은 아무런 적대 신호도 감지하지 못하고 있었다. 제국군 한스 편대는 보이지 않는 암흑 물질 구역에 숨어 스텔스 차폐막 뒤에서 어뢰를 발사했기 때문이다.
하지만 이준의 심안에는 우주의 어둠을 찢고 새벽호를 향해 광속으로 쇄도하는 은빛 어뢰 3발의 살기 어린 궤적이 선명하게 투시되고 있었다.
“15초! 서우진, 조종간에서 손 떼라!” 이준이 지팡이를 내던지고 서우진이 앉은 메인 콘솔로 돌진했다.
“이 눈먼 애송이가 어디서 행패야!” 서우진이 분노하여 조종 키를 움켜쥔 채 이준을 밀쳐내려 했다. 서우진이 강제로 조종 키를 붙잡고 버티는 바람에, 이준이 설계한 회피 각도 연산의 영점이 흐트러질 일촉즉발의 위기였다.
“비켜라, 서우진!” 세라가 번개처럼 다가와 서우진의 손목을 꺾어 콘솔 바닥으로 사정없이 메쳐버렸다. 서우진이 비명을 지르며 굴러떨어졌다.
“유리! 지금이다! 극성 역전 준비!” 세라가 고함을 질렀다.
은색 고글을 쓴 방어막 관제사 유리의 손가락이 콘솔 위에서 폭풍처럼 움직였다. 그녀의 이마에 땀방울이 흘러내렸다. 비공식적으로 개조해 둔 위상 편향 장치가 기이한 고주파의 진동음을 토해내며 붉은색 스파크를 튀겼다.
[경고. 5초 뒤 우현 격벽 충격 감지. 경고. 4초…….]
그제야 아르고의 구형 레이더가 뒤늦게 붉은색 경고 신호를 비명처럼 뿜어냈다. 함교는 순식간에 아비규환의 공황 상태에 빠졌다. 서우진은 바닥에서 넋이 나간 채 레이더를 바라보았고, 장교들은 비명을 지르며 머리를 감싸 쥐었다.
“3, 2, 1…… 유리, 지금 격발해!” 이준이 조종 콘솔을 붙잡은 채 소리쳤.
유리가 이준의 목소리에 맞춰 위상 편향 레버를 끝까지 밀어 올렸다.
치이이이이잉!
새벽호 우현 전면에 전개되어 있던 푸른색 방어막이 어뢰 충돌 지점으로 순식간에 좁혀지며 집중되더니, 이내 노란색의 강력한 전자기 극성 장벽으로 초고속 전이되었다.
콰아아아아앙!
눈을 멀게 할 듯한 은빛 섬광이 함교의 강화 창밖을 완전히 뒤덮었다. 엄청난 충격파가 기함을 뒤흔들었지만, 이전 루프에서 겪었던 뼈가 분사되는 파멸적인 폭발은 일어나지 않았다. 제국군 한스 편대가 발사한 플라즈마 어뢰의 파괴 에너지가 극성 전이된 방어막의 역위상 주파수에 완벽히 흡수되며, 무해한 노란색 불꽃 파편으로 산산조각 나 사방으로 흩어졌다.
파지직, 펑!
순간적인 과부하로 인해 함교 콘솔의 일부 전선이 터지며 새벽호 전체의 전등이 일시적으로 정전되었다. 붉은색 비상 예비 전력이 들어오며 함교 내부가 핏빛 어둠으로 물들었다. 이준은 머릿속의 양자 연산 과부하로 인해 코에서 뜨거운 피가 주르륵 흘러내리는 것을 느끼며 비틀거렸다. 관자놀이가 불타는 듯한 극심한 열화 스트레스가 그의 전신을 덮쳤다.
하지만 함교는 기적 같은 정적에 휩싸여 있었다. 단 한 발의 타격도 허용하지 않은 완벽한 방어막 제어. 아르카디아 함대 역사상 최초로 제국의 기습을 완벽하게 무력화한 순간이었다.
바닥에 주저앉아 있던 서우진은 넋이 나간 눈으로 창밖의 불꽃 잔해를 바라보았고, 유리는 자신의 떨리는 손가락을 경악스럽게 내려다보았다.
이준은 흘러내리는 코피를 소매로 거칠게 닦아내며, 보이지 않는 눈으로 함교의 한구석을 응시했다. 그곳에는 침묵 속에서 경악을 숨긴 채 자신을 주시하고 있는 수석 전술 장교, 한도윤이 서 있었다. 이준은 이 기습을 막아냈음에도 마음을 놓을 수 없었다. 제국군 한스 대장은 포기하지 않고 정찰 드론들을 투입할 것이며, 무엇보다 우리 함대의 실시간 좌표를 넘기는 배신자가 여전히 이 함교 내부에 숨어있었기 때문이다.
이준은 차갑게 얼어붙은 나침반을 움켜쥐며, 도망치는 대신 적을 역으로 파멸시킬 궤도를 설계하기 시작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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